#추억의 맛!  함경도식 식해가 그리워서~~

 

 

#젓갈의 추억

 

나는 고향이 이북이 아닌데도 식해가 그립다.

그 이유는 어렸을 때 자주 얻어(?)먹었기 때문이다.

얻어먹던 그 비슷한 맛을 만들어놓고는 난 요즘 행복하기까지 하다.

사변둥이로 태어난 내가 다니던 국민학교는 아마도 월남한 피난민이 가장 많이 다니던 학교였을게다.

부산 서구 남부민국민학교.

학교는 산복도로위에 위치해 있었고 학교뒤로는 벼랑이고 그 벼랑위 산동네가 있었다.

그 산동네에도 어김없이 피난민들이 얼기설기 둥지를 틀어 자리잡아 살고 있었다.

잘 아시다시피 부산항구도시는 산으로 둘러쌓였고 산은 겹겹이 집들이 빼곡하게 들어차서....

외항선원이 밤에 부산야경을 보고는 놀랬다고 한다. 높은 빌딩들이 빼곡했다가 다음날 보니 산꼭대기까지 피난민들의 판자촌이 빼곡하거라는....일화가 있다.

 

우리집은 산복도로 아래였고 집앞에는 소방도로를 두고 큰 나뭇공장이있었으며 그 앞길로는 송도를 오가는 찻길이 있었다.

그 건너편은 바로 바다이면서 쓰레기를 내다버린 매립지로 그 곳 매립지에 피난민들이 몰려서 살았던 (충무동5가)곳이다.

천막으로 용케도 집을 만들었는데 천막문을 들치고 들어서면 바로 부엌이 나타나고 벽없이 바로 방으로 이어지던 그런 구조였다. 추운 북쪽지방사람들은 그런 가옥구조에서 살았단다.

그러나 천막 안이라 그냥 너른 방 하나 뿐이었다. 집을 그런대로 지어 살아도 역시나 그런 구조로 집을 짓곤했다.

화장실은 바닷가에 천막으로 지었는데...앉으면 아래로 바닷물이 출렁이던 그런 화장실이었다.

남자 화장실 여자화장실만 분리해서 문도 없이 아랫칸만 질러졌는데...아침에는 줄을 선다고 했다.

해서 어린아이들은 바다를 향해 아무데서나 볼일을 본다고 했다.

그런 천막촌에 기거하는 친구들의 도시락 반찬은 주로 가자미식해였는데 내 입맛에 맞아 난  내 반찬과 바꿔먹기를 즐겼다.

그러다가 내가 초등 5~6 학년 땐가? 그 충무동 5가  난민촌에 불이 났는데...마침 해풍은 거쎄어서 불길은 성난 화마처럼 그 곳 천막들을

붉은 혀를 날름거리며 삽시간에 다 먹어치워버렸다.

난 멀리서 불구경을 하는데...온몸이 떨리고 다리도 후들거리고 치아마저 따그닥 따그닥 떨려와서 어른들에게 떠밀려 집으로 들어오고 말았다. 피난민들은 소방차가 일부러 끄지 않았다고 난리었지만....다닥다닥한 천막촌에 불이 난다는 건 누구도 끌 수 없는 기름에 불 붙인 꼴이었다.

 

그 후 기억엔 없지만 그래도 여기저기로 흩어져 살았지만...내 곁에 있던 친한 친구들은 다들 옆 동네로 흡수되어서 학교에는 변동사항없이 잘 다녔던 걸로 기억된다.

 

3년전 여름, 자갈치에서 배를 타고찍은 사진, 
영도와 마주보고있는  서구 남부민동이  나의 안태고향이다.
그 때 피난민들의 집단촌 충무동5가는 지금의 수산센터 흰 건물이 들어선 곳이다.
 
 

그 식해가 얼마나 먹고싶었던지 신혼때 비슷하게 흉내도 두어번 내어 보았지만...그 맛은 나지 않았다.

결혼하고나니 경북 영월이 친정이신 시어머님의 식해는 또 밥알로 식힌 이상해보이는 음식이었지만 그 역시나 중독성있는 맛이었다.  이북식 식해와는 달리 그 발효과정이 전혀 다르지만

그 식해도 만들어 본다고 몇 번 들썩였지만....요즘 간갈치가 잘 나오지 않으니 그 맛을 만나기도 어려워진다.

 

함경도식 좁쌀알이 든 가자미식해가 먹고싶어서 강원도 속초 부근에서 주문해다 먹었으니 그 맛은 아니었다.

냉장고에 든 오래 된 것을 퍼서 나눠준 듯...물기는 없고 주먹만큼이 비싸기는 왜그리도 비싸긴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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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냉장고 귀퉁이에 언제적 담은 오징어 젓갈인지...버리려다가 먹어보니 맛이 그럴 듯 한게 아닌가?

폭 곰삭았는데 더 이상 시지는 않고 새큼한 맛이 식혜맛이 도는 게 아닌가? 이런 ....횡재가 있나!!

두어번 꺼내어서 나 혼자서 그 맛을 즐기다가 드디어 조밥을 앉혔다.

조밥에 파마늘을 넣고 오징어 젓갈 작 식은거와 동율로 해서 비벼 넣었다. 딱 2배로 불어났다.

맛을 보니 그럴 듯하다. 조그만 통에 2만원인가? 3만원 받았던 ...주문한 식혜맛보다 더 낫다.

 

어렸을적 젓갈은 손수만드시던 내, 어머니~~

대구를 몇 마리 말리시면 대구알젓,아가미젓이 나왔고 아가미는 젓갈로 삭혔다가 칼로 다져서 깍두기로 버무리면 그 맛이 기가 막혔다.

생굴도 무속을 긁어서 함께 어리굴젓을 만드셨고, 남쪽이니 멸치젓갈은 기본이고 겨울이면 명태를 한상자 사다놓고는 배를 갈라 말리셨다.

역시나 명란젓이 나오고 창란이 나오고...명태살을 다져 깍두기를 담아도 맛났다.

명태나 대구는 어느 무엇하나 버릴 것 없다던 어머니 말씀따라 나도 몇년전만해도 동태를 사다가 직접 말리기도 하였는데...

그 때는 물론 적은 숫자여서 알이 나오면 기껏 알탕이나 끓이곤 하였다.

그러던 명태가 갑자기 근간에는 (해수온도가 올라감에 따라)어획량이줄고  명태값이 금태값이 되어버렸다.

몇 년전만해도 아니..내 블로그에만 해도 겨울에 말리는 명태 사진이 더러 있는데...내가 명태 창자를 몰라볼리가 있을까?

 

 

  # 아직까지도 유명마트 진열대위에 얹힌 그 창란젓

 

며칠전 이 글을 쓰고 L마트에 갔다. 젓갈을 창란만 빼고 한꺼번에 여러가지를 사간 나를 제깍 알아보는 것이다.

도우미 아주머니와 창란이야기를 하며 창란을 살펴보게 되었다. 그렇게 말썽이 났건만 창란은 여전히 창란이 아니었다.

그 분도 그런 말썽의 젓갈은 작은 영세업체에서나 사갔겠지..대담했지만, 내눈에 전체가 다 창란이 아닌 걸 ...어쩌냔 말이다.

세상에 무슨 창란이 그렇게 알빠져버린 알집처럼 생겼는지...그 걸 바라보는 입맛이 씁쓸했다.

 

뉴스보도/3월23일   유명마트확인/3월27일

전에글/사료용 참치내장으로 만든 창란젓갈 ☜ click~

 http://blog.daum.net/yojo-lady/13745637

 

 

#차라리 이렇게 만들어 먹고말지~

무채와 함께 오징어를 썰어서 담은 젓갈맛이 기가 막히게 발효되었다.

식해맛이 났다. 식해가 그리운 나는 즉시 조밥을 앉혔다.

기장조로하면 더 나을텐데...차조로 밥을 지었다.

마늘다진것과 파를 넣고 1:1 동율로 비볐다.

오징어 왕발도 보인다.

직접 담은 것을 증명하듯....물론 잘라주고,

잘 버무렸더니 딱 2배로 불어났다.

1통이 2통으로~

봄내내 먹을... 

그럴듯한 식해맛나는  반찬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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