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비안느
*대화?
거, 별 거 아니더라~
어느
분이 물으신다. 아랫글에서
여자
분이 글케나 졸음이 오도록 혼자서 운전을 했냐고,
그랬다.
그가 외국에 나가 있을 때 시어른들 생신이 되면 고향까지 내려가야만 했었다.
우리 아이들은
한참 대학 고등, 중등 줄줄이 있을 때였고 내겐 일도 있을 때였으니....
일단
집에서 음식을 만들어 생신 전날 저녁에 출발(시가는 경남 창녕)
다음
날 아침, 생신 상을 봐 드리고 곧 바로 상경 아니면 주로 당일 날 새벽같이 출발, 그 날 하루를 제대로 보고 오후에 출발하면
지친 밤 운전이 되는 셈이다.
하행
상행 다 합치자면 24시간안에 고속도로 운전 거의 14~5시간이 걸린 셈이다.
나머지 시간은
음식하느라...잠도 못자...이야기 하느라 잠못 자....거의 내리닫이 강행군이다.
나가있는
외아들대신 외며느리 노릇하자니...참말로 힘들었다.
그러나
그 때만해도 펄펄 날았다.
나는...
언제나
강했다.
그러던
어느 날 허리가 끊어져 쓰러지니(디스크 수술) 그 이후로 내 팔자가 영판 달라지더라.
물
한 잔 제 손으로 냉장고에서 꺼내지 못하던 양반이 늘그막에 뭐든 시키는 대로 잘 하려 노력하는 폼새가 참으로 눈물겹도록 고맙고
가상하다.
내가
강했던 시절,
남편에
대한 나의 불만은 아예 모든 걸(가사도움등)감수하고 바라지도 않았었다.
원인
제공은 스스로도 어느 정도 자초해서 만든 결과이기도 하다.
시골을
내려가도 " 당신 힘들지 않아요? 내가 할께...담 휴게소에서 세워요"
그랬었다.
해서 골고루..나눠서 운전을 했다.
아프고
난 이후로 (딸도 없는 독자로 자라난)내 남편은 덕분에 강해졌다.
고향
길을 내내 혼자서 다 운전하기도 하는 위력을 다 발휘했다.
'그러게
이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니까...'
내게
있어 내 삶의 중요한 전환점이 허리수술이라니, 허리가 꺾임과 동시에 내 氣도 꺾였음이라~
분명,
그
이전에 남편은 아내와의 많은 대화를 요구해 왔다.
난,
솔직히 대응하기 싫었다.
대화가
아니라...늘...아버지처럼 잔소리만 늘어놓는 바람에. 속으로 '너나 잘하세요!' 였으니~~
그
게 습관이 되고 침묵에 타성이 붙어서 나도 그도 서로에게 요원해졌다.
이혼도
하고 싶었다. 그 당시 서로는 심한 허탈감, 권태감에 빠진 듯 하다.
아니면
별거라도?
굳이
별거가 아니라도, 실제 아이들 학교가 가까운 집과 애초에 우리가 올라와서 살던 집이 분리되어 있었기에 자연스레 분리되어 당분간 왔다 갔다 하며
별거처럼 지나게 되었다.
외로웠다.
무지...
누가
'혼자 눈 뜨는 아침' 을 그리워하는가?
나는 별거를 마치 소설처럼 꿈 꾸다가,
아침이면
햇살이 간지럽게 날 깨우고 새소리에 잠이 깨어나도 행복은커녕 얼마나 지독한 외로움인지 눈물 빠지게 깊이 깨달았다. (흐, 별 거 아닌 별거로도
한 두 달 만에 해탈 하다니~) 가족의 소중함을...가족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와의
때늦은 대화를 시도하는 상상을 했다.
조용한
데서 차를 마시자 그럴까? 아니면 내가 술을 못 마시니, 간단하게 마실게 있는 칵테일 바라도?
상상은..그저
상상으로 그쳤다.
대화를
안 해봤으니, 끌어 낼 줄도 몰랐다. 그리고 그 벽은 너무 두터웠다.
.
.
.
잘못된
것인 줄은 알았다.
그러다가
남편이 지방으로 사업차 떨어져선 정말 별거를 하게 되고,
주말이면
만나, 같은 차를 타고 가까운 곳에 바람도 쐬고 식사도 하게 되고, 그러자니 자연 대화가 아주 부드럽게 이어졌다.
대화란
정말 별 거 아니더라...
나는
분위기 멋진 어디서 폼나게 드라마처럼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며 “힘내...우리 서로 조금씩만 양보하고...미안해~~ 사랑해” 이런 게 대화인 줄만
알았었다. 여태,
세상
참으로 헛 살았다.
그냥,
앞지르는 차에게 먼저 욕도 해 주고..
"저
차,,저거 분명 즈 아버지 죽어서 그러나벼... 오늘은 그냥 내가 봐줬다 ~"
"흐...쟤는
즈그 고모쯤 죽었나비~"
그런
시답잖은 이야기로도 충분하더라. 대화는... 자연치유도 되더라.
몸에
좋은 보약은 밥이 上藥이고 보약은 下藥 이라더니...
몸에
유익한 대화는 허리끈 풀드끼 맴 탁 풀어논 일상의 싱거운 대화가 제일 낫더라....아무 알맹이도 없어 보이는
것이,
되풀이
하다보니...뭔가 끈끈한 진액이 생겨나서 틈난 새를 본드처럼 붙여도 주더라~
요는
신체(心)를 붙여주는데는...화학용 '본드' 보다 천연 접착제 '아교'가 훨 낫다는 말이다.
승용차가
귀할 때는 회사차로 간혹 여행은 다녔어도 동승한 다른 이가 있었고,
우리는
둘 다 같이 면허를 따고 동시에 각각의 차로 바쁘게 살았기에
가족이 함께 다녔어도 요즘처럼 이런 둘만의 오붓한 재미는 별로 못 느꼈었다.
우리
오늘은 뭘 사먹을까?
아니면
마눌이 도시락을 준비하고 횟집에서 회를 떠서는 더 좋은 장소로 이동할까?
애주가라
경치 좋은 곳,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한두 잔 걸치고 거나한 뒤 무슨 걱정이랴?
실한
마눌이 있는데....
대화?
무슨 대화가 짜다라(사투리/억시기와 비슷) 많이 필요할까?
우리
부부애는 확실하게 회복했다.
.
.
.
자식간의
대화, 역시 그는 실패했다.
아버지와의
대화는 대체로 논리적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은데 엄마의 경우엔
논리적
대화하기보다 감정적으로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아버지의
바람직한 대화란 엄마와는 달리 특별한 주제에 대해 서로의 생각을 이야기 하는 경우가 많고, 그것이
자녀들의 학습 능력의 향상과 직접적인 연관도 있다는데....
우리
집 그이는 젊어서부터 TV를 너무 좋아했다.
난
진작 그 걸 깨부수고 싶었는데, 그리하질 못하였다. (정말 후회스럽다)
요즘은
주말마다 함께 있다보니, 어느 덧 동화되어 나 역시 TV 마니아가 다 되었다.
함께
이순신도 보고...삼순이, 금순이도 보고 웃고 이야기 하고 ....
에혀~
부부는
오래 살면 닮는다더니...누가 그런 명언을~~
막내까지
대학에 들어간 다음에사 아이들을 하나씩 불러 바깥으로 포장마차로 끌고 나가서 가끔 이야기 하는 아버지!
그
것도 못하는 아버지보다야 낫겠지만 아무튼 나도 그 방식이 싫었었다.
언제나,
내게 마당으로 나오라 그러면 난 그 게 싫었다.
맥주와
안주를 차려 나가야 하고, 술의 힘을 빌어 이야기 하는, 그 자체가...아무튼,
그렇다고
어머니의 감성적인 대화?
천만에,
기대하지 마시라...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아버지 보다 더 엄했다.
두
넘을 군대 보낼 때도 현관 밖에 신발도 신지 않았던 엄마였다.
"그래
잘 다녀와라...매사 조심하고..." 그 게 끝이었다.
대신
먹을거리는 기차간에서 친구들이랑 나눠 먹으라고 마련을 해 주었지만...
子情이
없냐면 절대적으로다 그도 아닌 듯한데...
딸을
처음으로 미국이라 먼 길을 보내놓고 ...
도착
전화가 없었다. 이틀이 지나도 전화가 없다. 안절부절못했다.
영어를
잘 하는 사람을 초빙 해다가 자정너머 학교로 전화를 넣었다.
여러
번의 교환을 거친 다음에야 담당자와 통화를 했는데,
"시간은
지체했지만...아이가 너무 똑똑해서 혼자서 잘 왔다. 아마도 전화할 그럴 틈이 없었던 듯, 지금은 기숙사에서 시차 적응에 깊은 잠에 든
모양이니...너무 걱정 말라 깨면 바로 부모님께 전화하라고 전하겠다.
유학알선업체의
실수로 공항에 픽업 나온 사람이 없어(픽업료도 따로 계산) 아이는 네 시간을 서성대며 기다리다가 직접 학교로 전화를 해서 찾아
들었단다.
화가
터질 것 같은 나는 유학 알선업체에다 전화를 넣었다.
고함을
냅다 지르고는 그 회사 문 닫게 만들겠다고 으름장까지 놓고..아무튼 볼썽사납게 굴었다. 여느 집이면 보통 아버지들이 그러는데...엄마인 내가
나서서 말이다.
다음
날 종로 경찰서에서 전화가 왔다.
신고가
들어와서 그런단다. 자기 직분의 소속과 이름을 댄다.
일단
끊으라 했다. 그리곤 내가 직접 경찰서로 걸었다. 확인해서 통화를 시도했다.
“그냥
화가 나서 한 소리니.아무런 뜻도 없다"며 일단락 짓긴 했지만
이처럼
다혈질의 파쇼적인 무서븐 에미가 무슨 감성적인 대화를 조근조근 나누겠냔 말이다.
나는
외유내강인 사람들이 무섭다.
나는
외강내유여서 겉으론 전광석화같이 우르릉 소리만 요란한 천둥만 치지....내실은 야무진 구석이 없다.
제
때맞춰 아버지의 번개가 칠 때도 종종- 있으면 좋으련만...
그러자니
자연히 아이들과의 대화도 소원해졌다. 누가보면 "새로 얻은 어미'처럼...
장남은
어렸을 적엔 TV 개그를 보며 까르르 자지러치는 아이였다.
못마땅한
나는 그렇게 웃지 말라고 여러 번 주의를 주고, 그 후 장남에게서
다정한
"엄마" 소리를 영영 못 듣게 되었다.
그냥
다가와서...멀뚱히 서 있으면 돈이 없다는 거고
웃을락
말락하면 입술이 배실하면 또 미안스럽게 돈이 모자란다는 거가 표현의 전부였던 아이다.
아무튼
바쁜 세상에 자칫 잘못하면 문명의 발달로 각각 따로 노는 세상이니, 따로국밥이기 마련~
작금엔
각방마다 tv가 다 있다니, 그 것도 대화를 단절시키는 원흉이다.
근데..요즘,
이 넘들이....어라?
예전에
우리 친정 부모님 말씀이 돈 없어지고(가세가 기울고) 나니, 건강해 지더라."는...
아버지의
오랜 지병인 위장병, 어머니의 심장병(홧병? 큰 재산을 뭉텅뭉텅 내 보낼 때마다 얻은)차라리 빈손이고 나니 두 분 지병이 씻은듯이 말짱해
지셨다는....
그렇듯이..
내가
허리가 아픈(기가 꺽인) 전환기를 갖게 되자
(승용차로
여수를 한 번 다녀오게 되었는데 왜
그랬는지, 그 날 운전은 거의 내가 하게 되고 올라올 때 역시 내가 하고는 운전이 허리엔 제일 나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자연히
아들 넘들도 연달아 성인이 되고 나는 운전을 기피함과 동시에 차도 잃었다.
대신
아들 넘들이 번갈아 운전하는 차를 늘 얻어 타다보니...
차
안에서 그럭저럭 논리성은 없지만 대화의 장이 열리기 시작했다.
난
이야기를 옛이야기에 빗대기를 좋아한다.
그냥
라디오에서 흐르는 전설 따라 삼천리처럼 궁시렁 궁시렁 대다가...마지막에 지넘들 아킬레스를 탁! 치는 수법이다.
나
역시 바람직한 대화법은 아니다. 언제나 '이솝'식 교훈이다.
대화란
동등한 입장에서 주제를 놓고 논리적으로 토론하는 게 바람직한 대화라지만,
어디
부모말이라믄 도통 귓등너머로 듣는 요즘 아이들이 아닌가? 거기다 내가 지레 무식하다보니,
그 넘들 에미 백 마디에 한 마디쯤 하다가 이젠 열 마디에 한마디가 되고 어느새 에미인 나는 들어주는 입장으로
바뀌어있더라~~
대화?
우리
집엔 이런 허접한 도랑물 같은 대화가 그래도 마르지 않고 졸졸졸 흐르는 소리가 끊이지 않고,
예전에는
집안에 책 읽는 소리가 끊기면 집안이 안 된다 했거늘
시절이
하 수상한 요즘엔 우선적으로 이야기 소리가 끊기면 되레 큰일이다.
가진
거 없어도 살림살이 이만하면 족하지 아니한가?
ㅎㅎㅎ~~
글/이요조
(신나게
쓰다보니 우리 집 속사정이 안 비칠래야....안 비칠 수가 없다..흐미...)
지난
밤에 '타로카드'를 만지막 거리다가 [JUDGEMENT]가 나왔다.
심판이 무서워~ 나는 오늘 회개하는 심정으로 이 글을
쓰나니~~
심심풀이 카드 점괘에 흔들려 이런 글을 쓰다니...흐, 난? 날라리 크리스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