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김치가 되다.

이 말이 이리도 가슴에 절절한 날!

 

쪽파김치를 추석 때 조금 담았더니 하도 맛나다길래 나의 시간적 여유와 쪽파 기격이 좀 떨어지는 날이 맞물리기만 기다렸다. 드뎌 D-day가 왔다.

금욜날 저녁 쪽파 큰단 네 개를 사놓고 병원에서 물리치료 받고 이제 막 거사를 치를 준비를 하고 나오니 ㅡ

어라차차 차가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

트렁크에 쪽파를 담고 문이 채 안 닫겼나보다.

호부 그깟 이유 땜새? 아무튼 방전됐다.

왜 이러지? 보험회사 as를 부르고 어쩌고 그만 맥이 빠진다.

 

 

돌연 피로가 엄습하는 귀차니즘이 발동ㅡ집으로 돌아와 현관 입구에 그냥 장 본 것을 내박쳐 두었다.낼 아침에 하지 뭘~~

 

토욜 아침 느즈막히 일어나 밥을 먹고 남편을 꼬드겨 함께 쪽파를 까려니 (아뿔사 오늘 동창중에 마음 맞는 몇몇이 만난다고 했던 기억이 난다. 영종도에 들어가서 1박을 하며 놀꺼랬는데 비소식에 그냥 토요일을 온통 저들만의 (주님믈 영접)날로 잡은 모양이다.

ㅡ에휴 자기 잘 먹는대서 사온 쪽판데. 이걸 나 혼자 다 다듬게 생겼으니~ ~

그 때 따르릉 전화벨이 울린다.

 

셋째가 얼마전 둘째를 가졌다기에 온가족이 축하했는데 ㅡ토욜 아침에 이상이 있단다.

셋째는 급한일로 회사에 나갈일이 생겼으니

엄마가 병원에 오셔서 23개월 된 천방지축 이헌이를 좀 봐달라는 부탁이다.

 

팟단을 내팽개치고 병원으로 한달음에 달려갔다.

며늘애는 아직 진료 전이다.

무슨 사람들이 그리도 많은지 ....저출산 국가라고?

남편은 기다리다 못해 약속장소로 떠나고

진료차례가 왔는데 이헌이는 죽어라 에미와 떨어질 생각을 않는다.

말만 할미지 데면데면한 손자와 할미사이다.

병원이 떠나가라 울기 시작하자 간호사가 애기를 안고 진료실로 함께 들어가는 걸 허락해 주었다.

 

진료실에 들어가니 초음파 영상이 산모가 누워서도 바라보이게 설치되어 있었다.

23 개월짜리 이헌이가 뭘 아는지 초음파 사진을 보고 갑자기 <아가야 안녕!>을 외친다.

그 말에 의사쌤님 <애기 안녕 못해!> 한다.

계류유산이랜다.

<.............,...,>

이럴땐 뭔 말로 어떻게 위로 해줘야 하나?

괜히 이헌이 할부지에게서 온 문자나 읽어준다.<아버지가 많이 위로해 주래 ㅡ>

수술을 끝내고 회복실에서 몸을 추스른 다음

<너너들 끼리 있어야 더 편히 쉴 수 있지? >하며 돌아오는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ㅡ국이라도 끓여주고 올 껄 ㅡ

 

그노메 집어던진 팟단을 청승스레 부여잡고

아픈 다리를 뻗은 채 파를 깐다. 뭔 이따우 주말밤이 다 있냐?

벌써 뜬 잎이 많이 생겼다.

 

막내에게 전화해서 에미 국이라도 끓여줬냐고

물었지만 솔직히 나도 맴이 내 맴이 아이다.

 

파를 까다가 까다가 다리에 쥐도 나고 허리도 아프고 서글프기도 하고 더 이상은 못할 것 같아 그냥 팽개치고 드러누웠다.

 

자정 무렵이 되어서 전철에 도착한 남편을 마중나갔다.

어디쯤?하고 문자를 보냈더니 문자를 제대로 못 찍을 만큼 대취했나보다. ㅈ ㄱㅏ ㅓ ㄷ ㄷ뭐 대충 이렇게 찍어 보내왔다.

 

술먹는 사람들은 가끔씩 이렇게 코가 비뚤어지도록 마셔줘야 그래도 술 좀 먹는다 하려고 그럴까? 도저히 이해가 불통이다.

 

전철역 주차장에서 기다리다 사이드밀러에 드디어 포착된 익숙한 실루엣 하나!

자기딴에는 미안해서 달려나오는 폼새가

갓 걸음마 뗀 아이가 자빠라질 듯 꼬꾸라질 듯 달려오는 모습이랑 어찌 그리도 비슷한지...

내 아들 같으면 콱 ㅡ 한 대 쌔리 패주고 시픈데 ㅡ

시엄니 아들이지 내아들이 아니니 ㅡ 입이 쓰다.

 

일단 너무 피곤한 하루 ㅡ 찝찝한 마무으리!

담날 일욜 7시에 잠이깨어 나머지 한 단 반을 다 까긴 했는데 씻으려보니 지난 밤에 까두었던 파도 죄다 물렀다.

 

ㅡ에이 젊은년 같았으면 고마 획 다 내다 버리뿟따ㅡ 하며 혼자 중얼거렸더니 물 마시러 일어난 막 잠에서 깬 남편 제발 저려는지?

ㅡ뭐?나를 내다 버린다꼬? ㅡ

하는 반문에(새벽녘엔 지난 밤,먹었던 술이 발효되기 시작하여 제대로 부패된 악취가 속에서 피어나는) 짜증이 확 올라온다.

ㅡ아니 이 파 말야~~ 나도 미쳤지 왜 다리도 션찮은데 싸서 이 지X인지 몰러 ㅡ

고함을 냅다 질렀다. 이런 걸 일타쌍피라고 한다지?

속이 훨씬 후련하다.

 

다듬어진 파를 또 다듬는다.

실하디 실한 쪽파 큰 단 넉단이 두 단도 채 못된다.

 

쪽파김치를 드뎌 버무리긴 했다.

조금 덜어내 데쳐서 김치 담은 양념을 닦은 파나물을 만들고 또 데친 파를 초고추장 강회를 만들까 하다가 고추장에 마요네즈를 가미 ㅡ 부드러운 마요고추장 파절이가 완성되었다.

 

둘째가 애기 둘을 데리고 왔다. 미리 전활 주었지만 딱히 오지말라 소리도 못하겠고 ㅡ 아이들이 와서는 지친 에미 물색을 보더니 나가서 점심먹잰다.

ㅡ아냐 지금은 나가는 게 더 피곤해 ㅡ

그리고는 그냥 밥솥에 나머지밥 긁어서 재탕인 사골국에 파김치 파나물 ㅡ 아! 더 있다.샐러드용 새우넣고 파전을 구웠었지.

언제나 오면 저녁까지 멕여 보내다가 오후 너댓시에 아이들 그만 돌려보내고 나니 괜히 미안해서 또 속이 편편찮다.

 

요즘 우리집 식탁엔 파나물 파김치만 잔뜩 ㅡ

.파가 을매나 약이 바짝 올랐는지 파김치 몇 저럼에 속이 쓰리다. 덕분에 나도 고마 요래조래 파김치가 되아부럿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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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스(생활)를 얼마나 받았는지ㅡ

예전 같았으면 이런 글 대놓고 못 쓰지요. 이젠 이렇게 써야지만 내 맘이 임금님 귀는 당나귀ㅡ귀 를 외친듯한 시원함!

대나무숲이 바로 제게 있어 요ㅡ요 ㅡ 블로그 글쓰기 ㅎㅎ

아직 잘 모르시겠다구요.

그럼,더 늙어보세요. ㅎ~~~♡

 

지금은 음~~ 어제 독감 예방주사까지 잘 맞고 훌쩍 여행 떠나와서 대전 유성의 딸이야 가 아닌 아들이야 ㅋ

"아드리아호텔"룸 베드에서 뒹글거리며 이 글 올립니다.

아픈다리 적절히 운동이 될 수 있겠다 생각한 남편이 허락한 것인데 아직 제가 생각해도 무리군요.

집에가면 이젠 반대로 남편 잔소리에 한 번 더 식겁하게 생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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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여행 #아드리아호텔 #파김치 #파나물 #유성팸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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