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계천:이요조
은어낚시통신
/윤대녕
-내가 태어나던 1964년 7월 12일에 아버지는 울진 왕피천에서 은어낚시를 하고 있었다. 여름이 되면 그는 왕피천과 호산 기곡천, 그리고 양양에 있는 남대천으로 계류낚시를 즐기러 가곤 했다. 그리하여 그날 7월의 무더위 속에서 어머니는 땀을 뻘뻘 흘리며 혼자서 나를 낳았던 것이다.
그날따라 조황이 좋았던지 아버지는 바구니 가득 은어를 채우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강보에 싸인 나를 내려다보고 말했다.
이놈이 크면 함께 은어낚시를 가야지.
나는 그 소리에 잠이 깨 마구 울어대기 시작했다.
나는 속성 재배하는 채마처럼 쑥쑥 자라 여름철이 되면 아버지를 따라 은어낚시를 다니곤 했다. 은어들은, 강을 거슬러 오르던 중에 우리의 털바늘낚시나 놀림낚시 채비에 걸려들었다. 우리는 은어가 산란을 하기 위해 하구로 내려오기 시작하는 9월 무렵까지 낚시를 계속했다.
은어가 봄이 되면 바다로부터 돌아와 여름내 강물을 거슬러 오르듯이, 나 또한 해마다 여름이 되면 그들을 따라 강으로 회유하곤 했다.
그들이
내게 첫 번째 통신을 보내온 것은 수요일의 늦은 밤이었다.
그것은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일층 우편함 속에 들어 있었다. 가을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저녁, 나는 집 앞에 있는 24시간 편의점 로손에서 간단한 저녁거리를 사들고 집으로 돌아온 참이었다. 식빵과 야채 주스, 캔맥주, 그리고 원두커피를 끓이는 데 필요한 여과지 따위들이었을 것이다. 희미한 외등 불빛을 받아 어쩐지 서글픈 빛으로 길게 늘어나 있는 내 그림자를 밟으며 아파트 현관으로 들어섰을 때, 나는 주황색 우편함 속에 꽂혀 있는 청첩장 크기의 하늘색 봉투를 발견했다.
‘은어낚시통신’ 겉봉 좌상귀에는 컴퓨터 프린터 글씨체로 이같이 씌어 있었다. 그러나 보낸 이의 주소라든가 전화번호는 적혀 있지 않았다. 혹시 우편함을 잘못 찾아온 게 아닌가 싶어 오른쪽 아래를 보니 역시 같은 글씨체로 내 이름과 주소가 또박하게 인쇄돼 있었다.
현관에서 잠시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있는 사이 수위실의 사내가 휴대용 텔레비전에서 아홉 시 뉴스를 보고 있다가 뚱한 눈으로 나를 내다보았다.
나는 우선 비에 젖은 옷을 벗어 세탁기에 던져 넣은 다음 커피를 끓이고 저녁식사를 했다. 그리고는, 때로 누군가 찾아와주기를 바라는 어둑한 거실의 소파에 혼자 앉아 빌리 홀리데이의 노래를 들으며 천천히 맥주를 마셨다. 알코올과 약물 중독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1958년 마흔네 살의 나이로 자신이 늘 읊조리던 슬픈 노래처럼 죽어간 빌리 홀리데이. 혼자 있게 되는 음울한 저녁나절이면 나는 맥주를 마시며 매양 그녀의 노래를 듣곤 했다. 그녀는 그토록 신비한 목소리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왜 자살하다시피 죽어버린 것일까.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생멸해간 흑인 가수의 고적한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세상의 아주 외진 곳에 와 있다는 생각이 들어 잠시 진저리를 쳤다.
그때 낮게 가라앉아 있는 실내의 공기를 뒤흔들며 전화벨이 울렸다. 나는 흘끗 창가에 몰려와 있는 어둠을 쳐다보며 벨이 다섯 번 울릴 때를 기다려 수화기를 집어들었다. 이렇게 늦은 밤 내게 전화가 걸려오는 것은 아주 드문 일이었다.
한데 내가 여보세요, 하고 난 다음에도 상대방은 꽤 긴 사이 아무런 대꾸가 없었다. 잘못 걸려온 전화인가 싶어 수화기를 내려놓으려 할 때서야 아득한 미지의 저쪽에서 저…… 하는 소리가 가늘게 전해져왔다. 퍼뜩 심상찮은 예감이 들어 나는 슬그머니 수화기를 도로 귀에 갖다 대고 상대방이 뭐라 말해오기만을 집요하게 기다렸다. 약 십 초의 시간이 흐른 다음에야 웬 낯선 여자의 마른 목소리가 툭 튀어나왔다.
“빌리 홀리데이를 듣고 계시는군요.”
“!…….”
뇌수에 바늘 끝이 와 닿은 느낌이 듦과 동시에 나는 조심스럽게 자세를 가다듬었다. 마치 굳게 잠가놓은 문을 열고 누군가가 슬쩍 방 안에 들어온 것만 같았다. 대꾸하지 않고 나는 조용히 숨을 고르고 있었다. 이런 돌연한 일이 생기는 경우 나는 온몸의 힘을 다 빼고 가만히 정면을 노려보는 습관이 있다. 절대로 먼저 서두르거나 달려들지 않는 것이다. 그러다 불의의 역습을 받고 쓰러진 경험이 여러 번 있는 터였다.
“심야 전화라서 놀라신 모야이네요. 용건을 말씀드리자면…….”
정말 건조한 목소리였다.
“저희 은어낚시모임에서 보내드린 우편물은 받아보셨는지요.”
“은어낚시모임?”
이렇게 반문하자 이번에는 그녀가 잠시 주춤하며 이쪽 동정을 살피기라도 하듯 소리가 없었다. 내 나이쯤 됐을까. 결혼한 여자의 목소리는 아니다. 그리고 지금 그녀는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혼자 전화를 걸고 있다. 나도 이쯤은 감지할 수 있는 정도의 나이가 돼버린 것이다. 나는 아까 깜빡 잊고 뜯어보지 못한 하늘색 봉투를 집어들며 그녀에게 물었다.
“전화가 걸려오지 않았더라면 아마 뜯어볼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런데 이 안에 뭐가 들어 있죠?”
“저희 은어낚시모임에서 선생님께 보내는 초대장입니다.”
나는 벽시계를 오려다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밤 열한 시가 다 된 시간에 낚시회에서 전화를 걸어오다니. 또 지금은 은어낚시철이 지나지 않았는가. 게다가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낚시회 따위하고는 아무런 연고가 없을뿐더러 낚시를 그만둔 지도 벌써 여러 해가 된 것이다.
“지난여름에 선생님께서 신문에 쓰신 은어낚시 기사가 기억나시죠? 그 기사를 보고 저희는 이번에 간성에 있는 북천과 울진의 왕피천으로 계류낚시를 다녀왔습니다. 우편물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아무튼 선생님을 저희 모임에 모시고 싶습니다.”
“글쎄, 뭐 어쨌든 읽어보기는 하죠.”
“안에 지정된 장소와 시간이 적혀 있으니 아무쪼록 그날 참석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럼 이만 끊겠습니다. 어머, 벌써 레코드의 에이면이 다 돌아갔네요.”
우체부가 편지를 홱 집어던지고 바삐 사라지듯, 그녀는 내가 뭐라 하기도 전에 이렇게 호들갑을 떨며 냉큼 전화를 끊어버렸다. 사실 밤늦게 이런 전화를 받으면 가까스로 지탱하고 있던 감정의 리듬과 균형이 흐트러지기 때문에 달갑지가 않다. 하지만 오늘은 참겠다. 빌리 홀리데이를 알고 있는 정도의 여자라면 그래, 참을 도리밖에.
아무튼 나는 문제의 그 봉투를 뜯어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책상 서랍에서 가위를 꺼내들고 나는 침착하게 봉투의 가장가리를 오려내고 안에 들어 있는 내용물을 꺼내보았다.
그것은 사진을 복제 인쇄해서 만든 한 장의 엽서였다. 앞면의 사진을 자세히 보니 뜻밖에도 그것은 커티스*의 <호피인디언>**이란 작품이었다. 어디서 이런 사진이 인쇄된 엽서를 구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반갑기도 하고 놀랍기도 했다. 오래 전에 『북아메리카 인디언』이란 그의 사진집 중 한 권을 가지고 있었는데 지금은 어디로 갔는지 없어져 다시는 볼 수 없으리라 생각한 사진이었던 것이다. 나는 휘적휘적 소파로 돌아가 앉으며 나도 모르게 이렇게 중얼거리고 있었다.
무슨 일이 벌어지려 하고 있군……. 그래, 이건 단순한 우편물이 아니란 말이지.
아니나 다를까. 엽서 뒷면에 촘촘히 박혀 있는 글자들을 읽어가는 도중에 나는 서서히 긴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급기야는 지명수배라도 당한 듯한 께름칙한 기분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은어낚시통신 930911
말하자면,
지난여름 귀하께서 신문에 게재하신 은어낚시 기사가 우리들 중 한 사람으로 하여금 귀하를 우리 모임에 참석시키자는 제안을 하도록 했습니다. 귀하께서는 수년 전 한 여자와 만나고 또 헤어진 기억이 있으실 겁니다. 그게 누구라는 것은 이 엽서를 보신 후 당사자인 귀하께서 짐작하실 일이고 또 지금 저희들로선 밝힐 수가 없습니다. 만일에 그 사람을 기억하시게 되고 더불어 만나고 싶으시다면 아래에 적힌 날짜와 시간에 지정된 장소로 나오시기 바랍니다.
한 가지 덧붙여 말씀드리자면,
저희는 암호를 교환하는 방식으로 만나고 있는 익명의 지하집단입니다. 은어銀魚는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문장紋章입니다. 하지만 귀하가 쓴 훌륭한 낚시 기사를 읽지 않았더라면 지난여름 우리는 은어낚시 여행을 다녀오지 못했을 겁니다. 이제 매년 여름 우리는 은어낚시을 다녀올 계획입니다. 우리의 이러한 계획에 귀하가 동참해주시면 더없는 기쁨이 되겠습니다. 그렇지 않더라도, 나중에 아시게 되겠지만 귀하와 우리는 진작부터 밀접하게 연결돼 있는 관계하는 점 마지막으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아래,
9월 셋째 주 토용일(18일) 18: 00, 광화문 카페 ‘텔레폰’
추신 : 이것은 비밀통신이므로 소각하여주시기 바랍니다.
나는
내가 들고 있는 엽서를 이물처럼 내려다보며 거푸 담배를 피워 물었다. 서서히 머리가 욱죄들며 현관의 피돌기가 빨라지고 관자놀이의 맥박 뛰는
소리가 고막을 툭툭 쳐댔다. 나는 한 번 더 엽서를 주의 깊게 읽어본 다음 냉장고에 남아있던 맥주를 꺼내 마시기 시작했다. 누가 이런 소환장
같은 엽서 따위를 보내왔단 말인가. 셋째 주 토요일이라면 이번 주를 말함이 아닌가. 또 ‘텔레폰’은 광화문에 갈 때마다 내가 들르는 카페
이름이지 않은가. 이들은 내가 누구인지를 훤히 알고 엽서를 보낸 게 틀림없었다. 제기랄, 전에 나와 만났다 헤어진 여자란 도대체 누구더란
말인가. 과거에 헤어진 여자의 이름을 일일이 외우고 있는 놈이 세상에 어디 있단 말인가. 나는 소파에 길게 드러누워 커티스의
<호피인디언>을 다시 뚫어지게 들여다보았다. 턴테이블에서는 여전히 빌리 홀리데이의 레코드가 방심한 채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었다.
그들이 말한 낚시 기사란 내가 지난봄과 여름에 걸쳐 모 일간신문에 연재했던 ‘길 따라 물 따라’란 기사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그것은 낚시꾼들을 위해 전국 유명 낚시터를 찾아다니며 사진을 찍고 교통편이라든가 숙박시설 기타 그곳을 찾는 꾼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서 신문사 생활부에서 기획한 난이었다. 주말마다 실리는 그 기사는 제법 독자가 있어서 나는 꼬박 오 개월 동안 전국 유명 낚시터를 훑고 돌아온 터였다. 소위 말하는 예술 사진으로 별 빛을 보지 못한 후 나는 광고 사진을 몇 년 하다가 그것도 지긋지긋한 생각이 들어 우연한 기회에 안면이 있던 신문사 사람을 통해 들어온 그 제의를 선뜻 받아들였던 것이다. 말하자면 객원 리포터 형식을 취한 임시 고용 기자직이었다. 얼마간 떠돌아다니며 내친김에 풍경 사진에 앵글을 들이대 볼 작정이었다. 사단寫壇이나 광고업계의 생리에 일찍부터 진절머리가 난 있는 터였으나 그럴수록 한편으론 사진다운 사진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기도 했던 것이다. 어쨌든 마지막 승부를 지금까지 못 해본 풍경 사진에 걸어보고 싶었던 것만큼은 사실이었다. 마침 나도 십여 년의 조력釣歷은 있었으니 그닥 부담스런 일만도 아니었다. 아무려나.
시간이 갈수록 내 머릿속은 난마처럼 헝클어져 자정이 넘어 침대에 누웠으나 좀체 잠을 이울 수가 없었다. 식탁 위에 던져놓은 엽서의 사진이 눈에 달라붙어 좀처럼 사라지지를 않았다.
어느 날 ‘은어낚시모임’을 가장한 익명의 지하집단으로부터 난데없이 배달된 <호피인디언>. 내가 그들과 밀접하게 연결된 관계라니.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들 중 누군가는 한때 나와 잠자리를 같이했었을 지도 모른다. 그들이 지금 그렇다고 말하고 있다.
새벽 두 시쯤 됐을까. 나는 몽유병 환자처럼 침대에서 부스스 일어나 거실 식탁 위에서 잠자고 있는 엽서를 떨리는 손으로 집어 들었다.
내 마음속 깊은 곳의 나는 기억하고 있었다. 너무 어두워 차라리 투명해져버린 시간에 말이다. 오래 전 어느 날엔가 나는 커티스의 사진집을 ‘그녀’에게 선물한 적이 있었다.
그녀가, 나를, 불렀다…… 그렇다. 어느 정체모를 집단에서, 그녀가, 나를 부른 것이다. 그녀가 아직 이 서울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다니!
벌써
삼 년 전일이다. 인간관계만 하더라도 난 같은 사람에겐 무스한 변화가 뒤따랐을 시간이다. 아무튼 그해 가을에 그녀는 내 앞에서 영화의 마지막
장면처럼 홀연히 사라져버린 여자였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라고 했지만, 사실 그녀의 직업은 배우 겸 광고 모델이었다. 대학 연극영화과를
졸업하고 몇몇 시시한 영화에 단역으로 출연했지만 그다지 빛을 본 배우는 아니었다. 내가 그녀를 만났을 때 그녀는 모 의류회사의 시에프 광고를
찍고 있었다. 스물일곱이었으므로 나와는 동갑인 데다 우연하게도 같은 칠월 생이었다. 그러나 배우로서 성공하기엔 이미 늦은 나이였다. 그녀 자신도
그것을 알고 있었고 광고 모델을 시작한 건 순전히 생활비 때문이었다. 처음엔 속옷 모델을 하다가 나를 만날 때쯤엔 중소기업의 상품 광고에
싼값으로 출연하는 이미 한물간 모델로 전락해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우연한 기회에 새로 창업한 대기업 계열사의 수영복 광고에 출연할 기회를 잡았던
터였다. 당시 광고회사 촬영팀에서 일하고 있던 나는 수영복 광고를 찍기 위해 제주도 성산포에 갔다가 그녀를 만났다.
김청미. 한자 이름이 청미靑眉인지, 청미靑米인지, 청미靑美인지가 항상 궁금했다. 그러나 나는 묻지 않았다. 그냥 그런 식으로 상상해보는 게 좋았던 것이다.
아무려나 여름 기획상품 광고를 만들기 위해 초봄에 일정을 잡고 바다에서 촬영하는 것은 작업팀은 물론이고 아직 차가운 바닷물 속을 수업시 드나들어야 하는 모델로서는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 수정안, 대체안까지 합쳐 네댓 개의 각기 다른 이미지 촬영을 하고 나면 모델들은 그야말로 녹초가 돼버리고 말았다. 더군다나 시에프란 한번 제작되면 같은 내용을 일정 기간 반복해서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에 제작자의 마음에 들 때까지 똑같은 시퀀스를 끝없이 찍어대야 했다.
바다는 차라리 사막같이 건조해 보였다. 뒷전에 유채밭이 노랗게 엎드려 있었으나 그것조차 눈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모델들은 추위에 벌벌 떨면서도 싸구려 인형처럼 웃어야만 했고 작업팀 관계자들은 그녀들을 향해 상스런 말까지 거침없이 내뱉곤 했다. 게다가 광고회사측에선 제작비를 줄이려는 속셈이었는지 근처 민가로 숙박을 정해 잠자리마저 불편했다. 또 일이 끝나면 우우 시내로 몰려나가 술추렴을 하느데 그녀들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그들의 술시중까지 거들어야 했다.
삼박 사일의 마지막 날 밤 나는 일행 뒤에 처져 민박으로 돌아와 누워 있다가 자정쯤 바닷가로 바람을 쐬려 나갔다. 며칠 폭음한 탓인지 몸에서 흙가루가 흘러내리는 듯한 기분이었다. 바람은 몹시 차가웠지만 거대한 보름달이 코발트빛 바다 위에 비행접시처럼 조용히 흔들리며 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저쪽 일출봉이 바라다 보이는 유채밭 앞에서 조그맣게 웅크리고 앉아 있는 그녀를 발견했다. 저녁마다 술자리에 끌려다니며 받는 은근한 수모 때문에 유독 힘들어하던 그녀의 모습이 떠올라 나는 그쪽으로 다가갔다.
“속이 메슥거려 빠져나왔어요. 받지도 않는 술을 계속 퍼댔더니 죽을 맛이에요. 도대체 느끼해서 참을 수가 있어야죠. 겪어보니 당신들 모두 그렇고 그런 사람들예요.”
“…….”
몸살기마저 있는지 얼굴이 열에 떠 있었다. 그녀는 담배를 꺼내 물고 연기를 길게 바다 쪽으로 내뿜으며 잔기침을 해댔다. 체념 어린 표정에 깃든 우수가 그녀의 지친 마음을 짐작케 했다. 추운지 그녀는 자주 옷섶을 여미며 흠칫흠칫 몸을 떨었다. 한동안 입을 굳게 다물고 나는 수평선 쪽으로 날아가고 있는 새떼를 묵연히 바라보고 있었다.
“저게 뭐죠? 기러긴가요? 아니면 갈매긴가요?”
카메라를 들고 나왔을 것을……이라고 내가 생각하고 있는 사이 그녀가 담뱃불을 수평선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 환호하던 목소리의 눈부심.
그러나 너무 먼 데서 새가 날고 있었으므로 그게 무엇인가는 알아볼 수가 없었다. 그러나 기러기는 아닐 터였다.
“기러긴 다들 돌아갔겠죠.”
“그렇죠? 돌아갔겠죠?”
나는 대답을 하지 않고 고개를 주억거렸다. 다시 얼마간 기묘한 침묵이 흐른 뒤에 그녀가 나를 돌아보며 주저주저 물어왔다.
“기러기도 귀소성 동물인가? 아니면 그냥 철새인가요?”
뭘 묻기 좋아하는 여자였다. 마음이 하동河童 같아야 물음이 생기는 법이다.
“글쎄, 제비와 같은 그냥 철새가 아닐까요. 귀소성 동물이란 비둘기, 꿀벌, 연어, 송어, 은어 따위를 두고 하는 말일 겁니다.”
“아, 네 그렇군요.”
“그들의 대규모 이동은 태양 컴퍼스라 하여 태양의 위치와 이동을 목표로 행해진다고 하죠 아마.”
“언제 그런 걸 다 아셨어요?”
다시 하동의 얼굴로 그녀가 내 눈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하동―여름에 물엣 벌거벗고 노는 아이―가 떠올라 나는 슬몃 웃음을 터뜨렸다. 원래 하동이란, 강 따위의 물 속에 사는 상상의 동물로 모양은 사람과 비슷하고 소리는 어린아이의 울음소리를 닮은 짐승이라고 한다. 이런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 그녀가 다그쳐 물었다.
“뭐 특별히 알고 있는 게 아니고 어려서부터 은어낚시를 좀 했거든요. 은어도 귀소성 동물이 아닙니까.”
“아, 은어요.”
“그래요. 지금쯤 은어들은 바다에서 강으로 거슬러가고 있는 중일 겁니다. 벚꽃이 필 무렵, 남풍이 부는 따뜻한 날에 말입니다. 그리고 가을에 제가 태어난 하구로 돌아가 알을 낳고 죽죠. 말하자면 바닷물고기인 연어와 비슷한 회유성 민물고기이죠.”
“아, 몰랐네요.”
이런 식으로 데면데면한 대화를 하다 어느덧 나는 은어낚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녀는 기웃기웃 흔들리며 내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등 뒤에서 유채꽃들이 뭐라 수군대며 시시덕거리고 있었다.
“나는 다섯 살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 은어를 잡으려 다녔죠.”
“근사한 얘기네요. 그래 어디로 은어를 잡으러 갔어요?”
“밀양강, 섬진강, 강원도에 있는 남대천, 북천, 마읍천, 주수천, 낙풍천, 왕피천 두루 안 가본 데가 없죠.”
“왕피천요? 왕피천은 울진에 있는 내(川) 아니예요?
“어떻게 그걸 알죠?”
내가 좀 놀라서 물었다. 그러자 그녀가 내 말투를 흉내내어 대꾸했다.
“뭐 특별히 알고 있는 게 아니고 어려서 그쪽을 많이 지나다녔거든요.”
지나다니다뇨, 하고 내가 되물었다.
“어려서 한때 경주에서 살았는데 가끔 버스를 타고 동해 삼척까지 갔다가 도로 내려오곤 했어요. 별 볼일도 없이 말예요. 동해 삼척에서 포항까진 바닷길이라서 정말 근사하잖아요.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이지 싶어요. 하지만 울진 왕피천에 은어가 산다는 얘긴 처음 듣네요. 아무튼 지금말로 하면 살기 힘들 때마다 그 길을 오르락내리락 했던 거예요.”
이렇게 말하고 그녀는 어색한지 고개를 숙이며, 픽, 하고 웃었다. 하지만 웃을 일이 아니었다. 아버지가 죽은 다음, 혼자 왕피천으로 은어낚시를 가게 되면, 나 또한 그 바닷길이 좋아 경주까지 내려가곤 하지 않았던가. 물론 경주에 가면 석굴암을 볼 수 있다는 것도 그 이유 중의 하나이긴 했다. 나는 반가운 눈을 하고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언젠가 서로 비껴 지나갔거나 혹은 같은 버스를 타고 있었을지도 모르겠군요.”
무슨 말인가 하여 그녀가 뜨악한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나는 그렇고 그렇다는 얘기를 주섬주섬 늘어놓았다.
“그게 사실이라면 우린 정말 근사한 인연을 갖고 태어난 사람들이네요.”
그 말을 듣고 있자니 불현 애달프고 그리운 생각들이 몰려왔다. 나는 바닷길을 함께 회유하고 있는 그녀와 내 모습을 상상하고 있었다. 그녀 또한 그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을 터였다. 눈이 마주치자 그녀는 얼른 눈을 내리깔고 손가락 끝으로 한참이나 모래를 매만지고 있었다. 한동안 나는 은어 생각에 빠져 있었던가.
그러고 나서, 예기치 않게도 폭음을 하고 난 아침처럼 걷잡을 수 없는 마음의 증류상태가 찾아왔다. 나는 갑작스레 텅 빈 상태가 되어 무릎에 턱을 괸 채 바다 위에서 출렁대고 있는 달빛을 망연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러갔던가.
문득, 그녀의 손이 내 어깨 위로 슬그머니 올라왔다. 마치 뜻밖의 손님이 찾아와 창문을 두드리듯이.
그녀와 나는 서툴고 기묘한 몸짓으로, 서로를 차단하고 있는 투명한 공간을 서먹하게 거역하면서, 마침내 상대의 차가운 입술에 지친 듯 입술을 갖다 댔다. 그때 나는, 때로는 그리움이 정욕을 부른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그녀가 모르게 가만히 진저리를 치고 있었다. 그 기이한 깨달음의 짧은 순간이 지나기가 무섭게 그녀가 필사적으로 내 몸 위로 기어 올라왔다. 돌연한 일이라서 나는 잠시 멍한 상태에서 가만히 몸을 풀고 숨을 가다듬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였다. 그러는 사이 그녀가 내 목을 힘주어 끌어안고 그냥, 여기서……하면서 맹렬하게 몸을 떨기 시작했다.
유채꽃의 바다에서 그녀와 나는 아무 뉘우침도 약속도 없이 급기야는 하나가 되어 달빛이 끄는 대로 조수처럼 떠내려갔다.
서울로
돌아오고 나서 일주일인가 후에 나는 인사동의 한 카페에서 그녀를 다시 만났다. 그날따라 그녀는 속앓이라도 하는지 얼굴이 사뭇 창백했다. 아무
말도 없이 줄담배를 피우며 조용조용 술잔을 들었다 놨다 할 뿐이었다. 위태로워 보였다. 위태로워 보였지만 나로서는 딱히 어떻게 할 수도 없었다.
자정이 가까워지자 그녀는 나 좀 쉬게 해줘요. 하더니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그녀를 데리고 가까운 여관으로 들어갔다. 꼭 그러라는
법이 없거늘, 멍하니 풀린 눈으로 텔레비전을 바라보고 있다가 나는 그녀의 놋을 벗기고 침대로 올라갔다.
그녀는 눈을 감고 미라처럼 누워 있었다. 그녀가 그걸 원하고 있던 게 아님을 안 것은 행위가 시작된 직후였다. 감동 없이, 그야말로 ‘행위’가 끝났을 때, 그녀가 천천히 눈을 뜨고 넋이 나간 얼굴로 중얼거렸다.
“모든 게 점점 무서워져요. 지금도 역시 그렇고 말예요.”
그 후로 몇 달 그녀를 더 만나면서 그녀와 나는 으레 돈가스나 비프스테이크로 저녁을 먹고, 맥주를 마시고, 그리고 요령부득인 상태가 되어 여관에 들어가 메마른 섹스에 열중했다. 그러니까 이런 식이었다. 돈가스, 맥주, 섹스, 비프스테이크, 맥주, 섹스, 돈가스, 맥주, 섹스……. 섹스에 미친 것이 아니라 웬일인지 무인도에 유배된 사람들처럼 다른 할 일을 찾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어느 가을날에 나는 충무로에 있는 한 극장 앞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째서 약속 장소를 극장으로 했는지 따위는 아랑곳없이, 나는 꽤 오랜 시간 그녀를 기다렸던 기억이 난다. 영화가 시작되고 나서도 이십 분이 지나서야 그녀는 자주색 바바리 차림을 하고 등 뒤에서 슬쩍 나타났다. 얼근 그녀임을 알아보지 못하는 잠깐 사이 문득 달려든 그 모호한 낯섦도 간과한 채 그녀는 다짜고짜로 영화가 상영되고 있는 컴컴한 극장 안으로 나를 데리고 들어갔다. 무슨 말을 할 사이도 없었다. 그리고 영화가 끝나기까지 그녀와 나는 마치 타인처럼 멀거니 스크린만 마주 보고 앉아 있었다. 어색하니 긴 여백의 시간이 지나고 종이 울리고 불이 켜지고 사람들이 몽롱한 눈빛으로 저마다 자리에서 일어나 부산스레 밖으로 빠져나갈 때 그녀가 불쑥 이런 말을 내뱉었다.
“사막에서 사는 사람.”
그 말이 나를 겨냥한 것임을 깨달은 것은 그녀의 얼굴을 희뜩 올려다본 다음이었다.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그녀의 얼굴은 창백하게 굳어 있었다.
“상처에 중독된 사람.”
그녀는 줄곧 희끄무레한 스크린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그렇게 뇌까렸다. 나는 싸늘히 식은 채로 그녀의 말을 듣고만 있었다.
“감정에 나약한 척하면서 사실은 무모하고 비정한 사람, 터미네이터.”
“……”
“무서운 사람.”
무서운 사람, 하더니 그녀는 목뼈가 부러진 것처럼 고개를 푹 꺾고 소리죽여 울기 시작했다. 그녀는 다음 회 관람을 하기 위해 좌석을 찾아온 남녀에게 자리를 내줄 때가지 그렇게 숨죽여 울고 있었다.
극장에서 나와 그녀는 말없이 을지로 3가를 지나 백병원을 지나 명동으로 이어지는 육교를 건너 명동성당 쪽으로 천천히 천천히 걸어 올라갔다. 무심히 그녀 옆을 다라 걷고 있던 나는 어느결에 그녀와 나 사이의 거리가 조금씩 조금씩 벌어지고 있음을 눈치챘다. 그리고 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그녀가 내게 요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걸 깨달은 순간에야 나는, 수많은 사람들이 밀려 내려오고 있는 거리 한복판에서 걸음을 멈춰 섰다. 그녀는 뒤 한번 돌아보지 않은 채 사람들 사이에 파묻혀 걸어가더니 마침내 책 속의 글자처럼 작아져 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그날 밤 나는 집으로 돌아와, 편광안경을 끼고 타이츠와 노란색 논슬립화를 신고 허리에 뜰채를 꽂은 은어낚시 복장을 하고 거울 앞에 우두커니 서서 골똘히 나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이후 텔레비전이나 잡지 광고 같은 데서 가끔 그녀를 볼 기회가 있었으나 그녀를 만난다는 것은 도무지 불가능한 일로 생각됐다. 그녀는 그때 내 앞에서 완전히 사라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제주도에서 찍은 수영복 광고도 여름이 지나자 텔레비전에서 사라지고 일 년쯤 지나서는 어디에서도 그녀의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나는
기다리고 있었다. 창문으로 주름져 내리고 있는 토요일 저녁의 가을비를 쳐다보며. ‘텔레폰’ 안에는 초저녁부터 술잔을 기울이는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카페 주인은 맥주 한 병을 시켜놓고 창가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이즌 자를 아까부터 탐탁찮은 눈으로 흘끗거렸다. 평소에는 알은 체를
하다가도 이런 경우엔 여지없이 눈치를 주는 것이다. 여섯 시 오분전. 나는 손목시계를 쳐다보며 오 분만 버티면 되겠지 하고 담배를 피워 물었다.
아침나절에 나는 소파에 앉아 그들이 보낸 사진엽서를 재떨이에 다 태우고 있었다. 누가 볼 리도 없건만 책갈피에 감춰둔 그 사진엽서는 오늘 아침까지도, 나를 태우라니까! 라는 말을 내게 끈덕지게 되풀이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사라져가는 종족’ <호피인디언>은 정말 내 재떨이 속에서 순식간에 재로 변하고 말았다.
그러고 나서 예기치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아침까지만 해도 나는 저녁에 ‘텔레폰’으로 나갈 것인지 말 것인지를 망성이고 있던 것이었는데, 물끄러미 재로 변한 사진을 보고 있자니견딜 수 없이 ‘그녀’가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서서히 무서운 갈증으로 변해 나늘 짓눌러대더니 마침내는 나늘 ‘텔레폰’으로 나가게 만들고야 말았다.
여섯 시 정각이 되자 나는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맥주를 한 병 더 주문할까 하다가 나는 조금만 더 기다려보기로 하고 다시 창 밖으로 눈을 돌렸다. 그때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전화였다. 나는 카운터로 걸어가 수화기를 집어들었다. 어쩐지 귀에 익은 여자의 목소리였다.
“거긴 꽤 시끄럽군요. 세종문화회관 뒤 주차장으로 오세요. 빨간색 스포츠카가 있을 거예요. 거기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수요일에 내게 전화를 걸어온 여자의 목소리였다. 나는 말없이 전화를 끊은 다음 카페에서 나와 길 건너편 주차장으로 건너갔다.
놀랐던가. 빨간색 스포츠카 안에는 선글라스를 낀 긴 머리의 여자가 혼자 담배를 피우고 앉아 있었다. 나는 차 가까이 다가가다 말고 주춤 멈춰서서 안에 앉아 있는 여자를 눈여겨 바라보았다. 비가 후득후득 어깨에 듣는 것도 잊은 채. 잠시 후 소리 없이 문이 열리며 타세요, 하고 그녀가 감기 든 소리를 했다. 나는 빨려들 듯 차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가 담배를 다 피울 동안 나는 우투커니 앉아 차창에 떨어지고 있는 빗방울을 멀거니 쳐다보고 있었다. 비에 뭉개진 밤풍경 속으로 사람들이 유령처럼 지나가고 있었다. 나는 옆에 앉아 있는 그녀의 몸냄새를 맡고 있었다.
“이 차에 냉동 시체를 태운 건 오늘이 처음이에요.”
건조한 목소리로, 그러나 어쩐지 호의가 느낀 건 아마도 그녀가 농담을 했기 때문일 터였다. 사실 나는 기도가 막힐 정도로 긴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저도 빨간색 장의차에 타본 건 오늘이 처음입니다.”
나도 따라 농담을 할밖에 없었다.
“장의차…… 때론 죽음 반대편으로 달아나듯 속력을 낼 때가 있죠. 속도에 취해서.”
“……빛의 속도로 달리면 시간은 정지하고 죽음도 면하겠죠.”
“그럼 공간은 일그러지고.”
“회귀하게 되죠. 지금 가야 할 곳으로.”
이렇게 말하고 그녀는 차에 시동을 걸었다. 윈도 브러시가 작동하자 방금 그녀와 나눴던 말들이 금세 꿈속에서의 일처럼 느껴졌다. 그녀는 솜씨 좋게 차를 몰아 코리아나호텔 앞을 지나 서대문으로 빠지는 길로 성큼 들어섰다. 카 스테레오에선 제인 버킨이 부르는 <예스터데이 예스터데이>가 조용히 흘러나오고 있었다. 영화 <마담 끌로드>의 주제곡이었던가. 십 년 이상 이 노래를 들어보지 못했다……. 어쨌든 회귀하고 있는 중인 것만은 틀림없나 보다.
“윈래 그렇게 말이 없어요? 벙어리띠예요?”
그녀가 정면을 주시한 채 칼칼한 소리로 말문을 열었다.
“용띠예요. 당신은?”
“그 정도는 벌써 알고 있다구요. 어디 생일까지 한번 맞혀볼까요?”
“!……좋으실 대로.”
설마 하고 나는 태연한 얼굴로 말했다.
“육십사년 칠월 십이일.”
순간 피가 멈추며 오싹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잠시 눌러두고 있던 의혹이 퍼뜩 잠을 깨 눈을 뜨고 일어섰다. 이들의 정체가 도대체 무엇이기에 이렇듯 나를 속속들이 알고 있는 것일까. 뭘 어쩌지도 못하고 우정 사나운 표정을 해보았으나 그녀의 표정은 조금의 흔들림도 없었다. 그냥 어림잡아 말했는데 맞아요? 하며 피식 웃기까지 했다. 제기랄. 귀밑머리가 턱밑까지 그린 듯 흘러내린 얼굴이 제법 그럴듯했으나 그때만큼은 요귀처럼 섬뜩해 보였다. 그런 데다 저놈의 선글라스가 자꾸 신경에 거슬렸다. 그렇지만 나도 그리 쉽게 말려들고 싶지는 않았다.
“동사무소에 근무하시나 보죠? 하지만 그것 말고도 기억하실 일이 꽤 많으실 텐데.”
“우린 모두 동갑내기들이죠. 정확히 말하면 육십사년 칠월생들. 이제 아시겠어요?”
이건 또 무슨 소린가. 우리?……모두 육십사년 칠월생들이라니! 이 이상 참을 수가 없어 차를 세워요, 하고 내가 버럭 소리를 지르려는데 기적같이 차가 스르르 멈췄다. 동아일보 신사옥 앞 도로에서 길이 막히고 있었던 것이다. 신경이 파랗게 곤두서며 핏줄이 터져버리기라도 할 듯 온몸이 후끈하게 달아올랐다.
“고정하세요. 거기다 모두 서울 태생이라는 것까지 아시면 아예 뛰어내리시겠네요.”
차 안을 가득 채운 매큼한 담배 연기. 갑자기 머리가 욱죄들며 견딜 수 없는 피로가 엄습해들었다.
“멀미가 나서 그러니 차창이라도 내려요. 어서!”
“그러죠. 하지만 이렇듯 회유하다 보면 멀미가 나기도 하는 법이죠.”
차 안으로 튀어 들어오는 빗방울이 얼굴에 점점이 묻어나자 비로소 숨통이 트이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들쑤셔진 마음은 좀처럼 가라앉지가 않았다. 마포대로는 이내 뚫린 기미가 없었다. 이 더딘 길을 밟아 지금 내가 어디로 가고 있단 말인가. 나는 더듬적거리며 그녀를 돌아보고 말했다.
“이제 그만 가면을 벗죠. 그리고 말해요. 무슨 얘기든 좋으니까. 솔직히 말해 이렇게 유괴당하는 식은 참을 수가 없어요.”
그녀는 한동안 입을 다물고 아무 소리가 없었다. 점점 빗소리가 커지고 있었다. 이 비가 그치고 나면 가을은 좀더 붉어지리라. 차가 십 미터쯤 전진하고 다시 멎었다. 말해요, 하고 다시 나는 나직이 내뱉었다. 그녀는 어디서부터 얘기를 꺼낼까 궁리하고 있는 표정이었다.
“아르누프 라이너***란 화가 이름 혹시 들어보셨어요?”
까슬까슬한 목소리가 되어 이윽고 그녀가 입을 열었다. 딱히 대답을 바라는 눈치는 아니었다. 모른다고 하려다가 나는 가만히 있었다.
“그럼 보디 페인팅이란 말 들어보셨어요?”
그거라면 언젠가 미술잡지에서 본 기억이 있다. 몸에 물감을 뒤집어쓴 몇몇 남녀가 거리를 활보하거나 공원 같은 데 누워 있는 사진을 본 적이 있는 것이다.
“사회적 금기를 해체하고 삶에 대한 자유의지와 생명의식을 표현하고자 하는 일종의 전위예술이죠. 그럼 제가 퀴즈를 하나 내죠. 그걸 맞히시면 오늘 밤 별을 달아드릴게요.”
공덕동 로터리에서 차는 급히 우회전한 다음 서강대 방향으로 슬슬 미끄러져가고 있었다. 비안개 때문에 뿌옇게 눈앞이 가려 마치 어두운 물 속을 헤쳐 올라가고 있는 것만 같았다.
“이 차에는 지금 삶에 거역하다 파면된 것들, 상처받아 불구가 된 것들. 혹은 사살된 욕망 따위들이 실려 있죠. 아시겠어요?”
“어느새 장의차에서 달리는 공동묘지가 됐군요.”
“공동묘지……하지만 신생을 꿈꾸는 공동묘지.”
“……계속해봐요.”
“일테면 우리에게도 헌법이 있다는 거예요.”
“!……계속해봐요.”
“제1조 1항 엘뤼아르의 시 자유, 2항 슈바이거의 책 깨어나 슬픔을 보라, 3항 짐 자무시의 영화 천국보다 낯선, 4항 모차르트, 5항 고흐와 뭉크. 제2조 1항 마리화나, 2항 카메라와 프리 섹스, 3항 우주비행선, 4항 인도와 티베트. 제2조 1항 캔맥주와 모래사장, 2항 마리라 칼라스와 미이크 올드필드, 3항 롤랑 바르트와 파스칼 레네…….”
메뉴판을 읽듯이 그녀는 무감각한 어조로, 그러나 또박또박하게 읊조려댔다.
“그중엔 고발 품목도 들어 있다는 것도 아시겠죠.”
나는 부러 목소리를 낮게 깔아 말했다.
“흥, 증거 없는 현실이란 말도 못 들어보셨나요. 이봐요. 나만 하더라도 다음에 우리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만나게 될지 모르고 있단 말예요. 아시겠어요?”
증거없는 현실……. 나는 속엣말로 이렇게 뇌까리며 문득 호피인디언을 생각하고 있었다. 이들 또한 마침내는 저 지층의 밑바닥으로 사라져갈 종족은 아닌가 하고.
“자, 그럼 지금부터 문제를 내죠.”
갑자기 그녀가 반색을 하고 엑셀레이터를 밟았다. 차는 극동방송 쪽으로 신호마저 무시한 채 빠르게 미끄러져가고 있었다. 인광물질을 단 갑충처럼 엎드려 있는 차들 사이를 비집고. 나는 이마의 식은땀을 닦아냈다.
“제가 지금 말한 것들이 이 차 어디에 실려 있는지 알아맞혀 봐요. 그러니까 헌법들 말이에요.”
“이 차에 말입니까?”
“그래요. 이 차에.”
그녀의 얼굴엔 조금 전까지만 해도 보지 못했던 이상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몸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적어지고 기묘한 냉기마저 느껴졌다.
나는 대답을 못하고 그냥 차 안을 휘둘러보는 시늉을 했다. 이런 문제의 답이란 본시 출제자만이 알고 있는 법이다. 나는 처음부터 포기한 채 묵묵히 앞만 노려보고 있었다. 차가 신호등에 걸려 잠시 멈춰 있는 사이 그녀가 건성으로 한판승, 하더니 맥빠진 표정으로 말했다.
“그것들은…… 모두 차에 그림으로 그려놨어요. 차체에 말예요. 그러고 나선 그 위에다 온통 빨간색을 덧칠한 거죠. 보디 페인팅을 하듯 말이죠.”
나는 맹하게 풀어진 눈으로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아…… 차에다 말입니까?”
“그래요. 이제 더 이상 그것들이 억압받지 않도록, 관리되지 않도록, 더 이상 공격받거나 상처받지 않도록 말이죠. 아무튼 우리 집단이 언더의 형태를 띠고 있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은 의미에서겠죠. 우린 이렇게 무경계 상태에서 서서히 회복되고 있어요.”
무경계 상태…… 정말 의식의 무경계 상태에서 나는 속수무책인 채로 어딘지 알 수 없는 곳으로 실려가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탈출할 방법은 없다. 곧장 나아가보는 수밖에.
홍익대학교 쪽으로 올라가는 길이었던가. 그녀가 이제 다 왔어요. 하더니 좌회전 라이트를 켜고 어두운 카페촌의 좁은 골목으로 급히 빠져들어 갔다. 아주 순식간의 일이어서 나는 파랗게 신경이 곧추섰다.
그녀와 나는 광화문에서 떠나올 때와 마찬가지로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차 안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녀는 카 스테레오를 끄고 헤드라이트를 끄고 그리고 마침내 시동까지 꺼버린 다음 하나 남은 담배를 피워 물었다. 담배 연기를 빨아들일 때마다 그녀의 얼굴이 희미하게 켜졌다 꺼졌다 했다. 멋진 드라이브였다고 말해주고 싶었으나 이제는 농담 따위를 할 계제가 아니었다. 나는 이송시간이 임박한 포로와도 같은 처지에 놓여 있었던 것이다. 그전에 나는 그녀에게 마지막으로 물어볼 말이 있었다. 그러나 좀처럼 엄두가 나지 않아 꾸무럭거리고 있는 동안에 초조감만 자꾸 더해갔다. 먼저 입을 연 것은 내가 아니라 그녀였다. 다 피운 담배를 비벼 끄고 그녀가 선글라스를 벗으며 나를 쳐다보았다. 잠시 긴장하여 숨이 멎었던가. 영화 <일식>의 모니카 비티를 닮은 크고 부드러운 눈이었다. 어디선가 물통 같은 게 굴러가는 소리가 아득히 들려왔다.
“당신은 지금 천구백육십사년 칠월로 돌아온 거예요. 타임머신을 타고 말이죠. 내일 아침까지는 빠져나갈 수가 없어요. 무슨 일이 일어나도 그냥 그대로 있는 거예요.”
“……약속하죠, 하지만, 한 가지 알아야만 할 게 있어요. 그게 아니었다면 아마 나는 여기에 오지 않았을 겁니다.”
물통 굴러가는 소리가 멎었다. 그 사이를 비집고 거리의 소음이 끼어들었다. 말하라는 뜻으로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여기에 정말 존재하고 있는지 말해봐요. 내게는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그녀는 존재하고 있다, 고 분명히 말했다.
“보충해서 말하죠. 우리들 최초의 모임은 이 년 전 봄에 시작됐죠. 당시 무명 배우였던 그녀와 동갑내기 친구인 잡지사 기자, 대학 강사, 화가 이렇게 몇몇 사람들이 신촌의 한 카페에서 모임을 갖게 된 게 동기가 됐죠. 저마다 이유야 다르겠지만 아까도 말했듯 그들은 모두가 삶으로부터 거부된 사람들이었어요. 그들은 자주 만나 공통의 것을 찾으며 좀더 은밀한 방식으로 모임을 키워나갔죠. 그 후 건추가, 수련의, 언더그라운드에서 활동하던 가수, 시인들이 더 들어왔고 집단의 동일성을 확보하자는 뜻에서 육십사년 칠월생들만으로 모임을 제한했어요. 무론 그들은 겉으로는 아무 이상이 없는 사람들처럼 살아요. 하지만 역시 삶에 제대로 뿌리박지 못하는 사람들이죠. 아무튼 우리는 한두 달에 한 번쯤 은밀히 모였다가 헤어지곤 해요. 어떻게 보면 두 겹의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죠. 현실적인 삶을 더 이상 용납할 수 없으니까, 그렇게는 살아지지 않으니까, 말하자면 지하에다 다른 삶의 부락을 하나 더 세운 거예요. 우리가 은어를 문장으로 한 것도 다른 뜻이 아니예요. 말하자면 우린 여기서 거듭나기 연습을 해요. 어떻게든 우리 방식으로 버티고 사는 법을 배운단 말이죠.”
나는 흐릿한 차창을 쳐다보며 내가 방금 떠나온 세상을 떠올려보았다. 그러나 지금 내가 와 있는 곳이 내가 존재하고 있는 곳인지, 그곳이 내가 존재하고 있는 곳인지 전혀 분간이 되지 않았다. 자 그럼 이제 가죠, 하고 그녀가 내 의식의 잠을 두드리며 안전벨트를 풀고 먼저 차에서 내렸다.
한동안
계속되던 낯선 콘크리트 길. 사방으로 낮게 잇대어져 있는 지붕의 처마들. 복도와도 같이 좁고 어두웠던 골목길들. 나늘 가로막는 자세로 내 앞을
걸어가고 있던 그녀의 고른 발짝 소리. 그러다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ㄱ자로 구부러진 지하 계단의 희미한 윤곽. 가슴속에선 차가운 피가
소용돌이치고 얼핏 돌아다본 뒷전에 내려앉고 있던 단단한 어둠.
이어 둔중하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나는 정신을 차리고 내 앞에 버티고 서 있는 지하 장고의 나무문을 바라보았다. 비에 젖은 몸이 간단없이 떨려왔다. 어둠 한 겹을 사이에 두고 있는 그녀의 뒷모습도 그렇듯 떨리고 있었다.
나는 불현듯 거기 그렇게 밤새 서 있고 싶다는 간절한 생각이 들었다. 이토록 기묘한 흥분을 젖은 옷 속에 감추고 이내 열리지 않는 문 앞에서 나는 다만 입을 다물고 그녀와 함께 언제까지라도 서 있고 싶었다. 그러나 이윽고 문 안쪽 멀리에서 희미하게 신발 끄는 소리가 들려왔다. 후다닥이라고 해도 좋을 아주 짧은 순간에 나는 돌연 그녀를 끌어안고 싶은 강렬한 충동에 휩싸여 있었다. 왜였을까. 내가 한순간 그토록 혹독한 욕망에 사로잡혀 있던 까닭이 무엇이었을까.
나는 두려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일찍이 나는 나와 전혀 다른 삶과는 만나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그러한 삶을 차마 꿈꿔본 일조차도 없었다. 그러나 비죽이 그녀 쪽으로 내밀어졌던 내 손이 거기 가 닿기도 전에 나는 그녀가 문을 사이에 누군가와 주고받는 수화誰何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돌쩌귀 소리가 들리면서 문이 열렸다.
비가 오는군, 하고 문을 열어준 사내가 목쉰 소리로 말했다. 홀연한 어둠이라고 말해야 할 그런 이물스런 어둠에 싸여 있던 남자의 얼굴. 저 어딘지 모르는 안쪽으로부터 사내를 뒤따라왔던 단 한줄기의 푸른 불빛, 그러나 그가 내민 손을 가까스로 거머쥐었을 때 내 손으로 전해져온 돌연한 온기로 인해 나는 또다시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남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마침내 나는 그들을 따라 긴 회랑을 걷기 시작했다. 벽면의 마른 나무 향기와 또 저쪽 어딘가에서 흘러나온 쾨쾨한 냄새에 취해 순간순간 정신이 흐릿해져갔다. 식초산 같은 시큼한 냄새였다. 초가 타는 냄새겠거니 싶었지만 분명 그 냄새만도 아니었는데도 나는 걷고 또 걷는 느낌이었다.
마침내 사람들의 두런거림이 내 귀 끝에 와 닿았다. 그리고 가닥이 분명해진 빛줄기가 바닥의 나뭇결을 드러내면서 풀이 타는 냄새와 함께 술내가 코끝에 진하게 묻어났다. 그리고 뒤미처 내 눈에 들어온 것은 밤 낚시터의 불빛처럼 실내에 둥글게 원을 형성하고 떠 있는 수십 개의 촛불들이었다. 거기서 내 의식은 도마뱀의 꼬리처럼 문득 잘려 달아나고 있었다. 그 순간엔 내 존재가 촛불 하나의 의미도 지니지 못한 채 그저 옷을 걸친 또 하나의 공간으로 공중에 떠 있을 뿐이었다. 필시 환기창도 없이 사면이 가로막혀 있을 어둑한 실내에서의 소요가, 그러나 내가 나타남과 동시에 일시에 멎었다. 어둠 속에서 가만가만, 따로이 혹은 두셋씩 부유하고 있던 저들의 시선이 내가 서 있는 공간의 둘레로 몰려들었다. 얼핏 눈가늠으로 보기에 십여 명쯤 돼 보였다. 술잔을 들고 누워 있거나, 혹은 벽면 모서리에 반라가 되어 서로 껴안고 있거나, 아까는 미처 듣지 못했지만 기타를 치고 있거나, 혹은 촛불 밑에서 책을 읽고 있거나, 또 혹은 책상 위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거나 아무튼 제각각 풀어져 있는 그들의 모습이 동공 깊숙이 빨려 들어왔다. 비록 길지 않은 순간이었을망정 나는 홀로 구석자리에 버티고 서서 어떤 태도도 취할 수가 없었다. 잠시 후 그들의 팽팽하던 시선이 그 긴장감을 잃고 다시 뒤엉키기 시작했을 때 나는 그게 나에 대한 그들의 묵인과 동조의 표시임을 깨달았다. 그들은 그저 내가 적이 아님을 확인하고 싶었을 뿐이었던 것이다. 그들 중 누군가가 나를 향해서, 그러나 쳐다보지 않은 채 뜻 모를 소리를 중얼거렸다.
“세계는 이쪽과 저쪽으로 나누어져 있지. 자넨 지금 저쪽으로 와버린 거야.”
나는 엉거주춤 책이 몇 권 꽂혀 있는 장식장 모서리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진정코 나는 ‘저쪽’에 와버린 것인가. 그 잠시 내 눈에서 사러졌던 그녀, 그러니까 나를 여기까지 데리고 왔던 여자가 어느새 옷을 갈아입고 초록색 술병을 들고 나타났다. 포도주라고 생각되었지만 제대로 맛을 느꼈을 까닭이 없었다. 나는 따라주는 대로 두 잔을 거푸 받아마셨다.
“그냥 그대로 있어요. 누군가 부르러 올 때까지.”
이렇게 말하고 그녀는 나를 놔둔 채 부스스 일어나더니 저들 일족 편에 가담해버렸다.
그때부터는 누구도 더 이상 나를 눈여겨보거나 말을 걸어오는 사람이 없었다. 그들은 아까처럼 여기저기 널브러져 간간이 술잔을 부딪치며 무슨 얘긴가를 쉼없이 주고받았다. 나는 밑동까지 타들어간 촛불 같은 신세가 되어 다시금 긴박하게 시간을 재기 시작했다. 여기 존재하고 있다고 한 ‘그녀’의 모습은 어디에도 눈에 띄지 않았다. 도대체 누가 언제 나를 부르러 온다는 것인가.
나는 홀린 듯 다시 호피인디언을 생각하고 있었다. 저 바람모지에 서서 영원한 망각을 기다리고 있는 슬픈 종족을. 그와 함께 내 눈에는 오래 전에 나와 헤어진 그녀의 모습이 느릿느릿 스리고 지나갔다.
나는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참을성이란 말마저 잊은 채. 나에겐 오직 기다리는 일만이 주어져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끊임없는 수군거림에 귀를 기울이며 술병 하나를 다 비워갈 때까지 내게는 그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고의적이라고 느낄 만큼 그들은 나를 등지고 앉아 그들의 제의祭儀에 열중해 있었다. 나는 소외되진 않았으나 그렇게 배제된 채로 앉아 있었다.
어느 사이엔가 그들은 슬몃슬몃 동그랗게 원을 그리며 모여 앉고 있었다. 그때엔 그들의 수군거림도 뚝 끊겨 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려나 보다, 하고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들은 토하는 자세로 깊숙이 허리를 구부리고 앉아 저마다 피스peace, 피스라고 뇌까리면서 낮은 웃음소리를 냈다. 한 번도 경험한 바 없었지만, 나는 직감적으로 그들이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깨달았다. 풀잎 타는 냄새가 내가 있는 곳까지 수평으로 느리게 떠와서는 코끝에 달라붙었다. 반사적으로 경계하고는 있었지만 나 또한 아득히 온몸의 힘이 빠져 달아나며 피가 아래로 아래로 쏠리고 있다는 느낌이 몰려왔다. 누군가가 바닥에서 나를 집요하게 끌어당기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때 누군가가 내 어깨를 가만히 두드렸다. 너무 놀란 나머지 나는 뒤를 돌아볼 수조차 없었다.
……그러나 내 몸은 그 손을 알고 있었다. 그 크기와 생김새와 어깨에 와 닿는 무게와 느낌까지를. 비로소 나는 그동안 내가 이 낯익은 손을 얼마나 사무치게 그리워했던가를 깨닫고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몽상에 빠져 있기에는 내가 처한 상황이 너무나 분명한 현실임을 알아야만 했다.
그 손은 슬며시 내 손을 잡아끌더니 장식장 뒤에 나 있는 문을 통해 웬 낯선 장소로 나를 데리고 들어갔다.
그때부터
나는 회유하고 있었죠, 하고 그녀는 말했다.
‘그때’가 언제의 그때인지를 나는 머릿속으로 더듬고 있었다. 그녀와 내가 앉아 있는 장소는 의자가 세 개뿐인 작은 카페 모양의 음습한 곳이었다. 촛불 하나가 중간 탁자 위에 덩그러니 놓여 흐린 빛을 발하고 있었으나 안은 어둡기 짝이 없었고 기이한 냉기마저 감돌았다. 방금 내가 있던 지하 창고와 맞닿아 있는, 내가 수년 만에 그녀를 만난 장소는 그렇게 폐업한 술집 같은 모양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구석자리 의자에 미동도 없이 앉아 있었다. 핏기라곤 느껴지지 않는 섬뜩한 얼굴이었다. 마치 도화지 위에다 연필로 쓱쓱 스케치를 해놓은 듯 표정 없는 얼굴. 치마 밑으로 비죽이 나와 있는 마른 맨발만이 그녀가 존재하고 있음을 가까스로 느끼게 했다. 그리하여 그녀와 내가 주고받은 말은 어째 비현실적으로만 생각됐다. 나는 그렇게 실재와 비실재 사이에서 간신히 버티고 있었다.
나는 원래 내가 있던 장소로 돌아온 거예요.
스케치북 안에서 다시 그녀의 삭막한 목소리가 울려나왔다. 그 목소리의 집요한 힘에 눌려 나는 괴롭다는 느낌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녀의 그 메마른 표정이 그런 생각을 더없이 부채질했다. 나는 고개를 떨구고 바닥의 차디찬 어둠을 내려다보았다.
이제 당신도 돌아오기 시작하는 거예요. 당신은 지금까지 너무 먼 곳에 가 있었던 거예요. 그러다간 돌아오는 길을 영영 잊어버리게 될지도 몰라요.
정말 나는 지금까지 내가 있어야할 장소가 아닌, 아주 낯선 곳에서 존재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차츰 들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삶의 사막에서, 존재의 외곽에서.
지금부터, 돌아가고 싶다고 나는 간신히 그녀에게 말했다.
그러자 촛불 속에서 그녀의 얼굴이 수초처럼 잠깐 흔들렸다. 그 촌음의 순간에 나는 그녀를 처음 만났던 제주 밤바다를 아스라이 떠올리고 있었다. 봄, 우채꽃, 기러기, 은어, 달, 하동…… 이런 것들을. 이런 것들 속에서 만났던 그녀를. 어쨌거나 나는 거기까지 생각이 닿아 있었으므로 용기를 내어 그녀에게 말했다. 허위와 속임수와 껍데기뿐인 욕망과 이 불면의 나이를 벗어버리리라고.
아니예요, 더 거슬러와야 해요. 원래 당신이 있던 장소까지 와야만 해요.
그녀가 그렇게 말하면 말할수록 나는 뼈아픈 마음이 되어갔다.
울진 왕피천까지 와 있다고 나는 말했다. 어쨌든 이런 식으로 말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좀, 더, 와야만 해요.
표정 없던 그녀의 얼굴에 격한 감정의 흔들림이 스치고 지나가는 게 보였다. 그러한 와중에 나는 그녀가 나를 만나곤 하던 그때의 순간들에 나에게서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입었음을 확연히 깨달았다.
그녀는 산란 중인 은어처럼 입을 벌리고 무섭게 몸을 떨고 있었다. 그녀는 그런 자세로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고 있다가 마침내 벽에 모로 기대어 천천히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먼 존재의 시원, 말하자면 내가 원래 있어야만 하는 장소로 돌아가기까지 나는 보다 많은 밤과 낮을 필요로 해야 했다.
긴 흐느낌의 시간이 흐른 뒤, 나는 가까스로 그녀에게 다가가 살아 있는 자의 온기라곤 느껴지지 않는 그녀의 차디찬 손을 완강하게 거머쥐었다.
아침이 오기까지 나는 그녀의 손을 잡고 내 살아온 서른 해를 가만가만 벗어던지며, 내가 원래 존재했던 장소로, 지느러미를 끌고 천천히 거슬러 올라가고 있었다.
931122
서울에 첫눈이 내린 그날 밤에, 나는 그들이 보낸 두 번째 통신을 수신했다.
―《한국문학》1994년 1․ 2 월 합병호
* 에드워드 커티스(1868~1962) : 미국의 사진작가. 그는 자신의 인류학적 관점에 입각해서 렌즈를 맞췄으며 특히 인디언 기록 사진에 평생을 바쳤다. 커티스는 인디언을 ‘사라져가는 종족’으로 보았기 때문에 그들이 사라지기 전에 그들의 전통과 풍습, 제도 등을 기록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의 사진들은 1907년부터 1930년까지 20권짜리 시리즈인 ‘북아메리카 인디언’이라는 이름으로 묶여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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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피인디언> : 커티스의 대표작 중 하나. 폐허가 된 건물의 계단 위에서 호피인디언들이 외계동물 같은 복장을 하고 서서 황혼녘의
들판을 내려다보고 있는 뒷모습을 찍은 것이다. 난쟁이처럼 왜소한 체구에 특이한 머리장식과 복장이 사라져가는 종족의 쓸쓸함을 더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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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누프 라이너(1929~ ) : 오늘날 국제적을 잘 알려진 오지리 예술가로 『현대미술편람』의 리스트에 의하면 세계 최고 화가 100인 중 한
사람이다. 그는 이미 50년대에 자신의 그림은 물론 다른 화가의 그림에다, 그리고 나중에는 데스마스크에다 ‘덧칠’하는 방식을 통해서
전위예술계에서 화제가 되었다. 그는 육체언어를 가지고 영화를 만들기도 했으며, 또한 마약을 가지고 실험예술을 하기도 했다.
윤대녕 : 1962년 충남 예산 생. 1990년 《문학사상》을 통해 등단했다.
장편소설 『옛날 영화를 보러갔다』 『달의 지평선』 『사슴벌레 여자』 중편소설 『장미창』, 소설집 『남쪽 계단을 보라』 『은어낚시통신』등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