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민복 시인

 

1962년 충북 중원군 노은면 출생 
수도전기공업고등학교를 졸업
월성 원자력발전소에서 4년간 근무
1998년 <세계의 문학>에 <성선설>등을 발표하며 등단
1989년 서울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를 졸업
1990년 첫 시집 <우울氏의 一日> 세계사
1993년 <자본주의의 약속> 세계사
1996년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창작과비평
1998년 <오늘의 젊은 예술가 상>을 수상
2005년 <말랑말랑한 힘> 문학세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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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세계일보>촛대바위님 블로그에서

 

그늘 학습 / 함민복

 

뒷산에서 뻐꾸기가 울고
옆산에서 꾀꼬리가 운다
새소리 서로 부딪히지 않는데
마음은 내 마음끼리도 이리 부딪히니
나무 그늘에 좀더 앉아 있어야겠다

 

 

 


감나무 / 함민복


참 늙어 보인다
하늘 길을 가면서도 무슨 생각 그리 많았던지
함부로 곧게 뻗어 올린 가지 하나 없다
멈칫멈칫 구불구불
태양에 대한 치열한 사유에 온몸이 부르터
늙수그레하나 열매는 애초부터 단단하다
떫다
풋생각을 남에게 건네지 않으려는 마음 다짐
독하게 꽃을, 땡감을, 떨구며
지나는 바람에 허튼 말 내지 않고
아니다 싶은 가지는 툭 분질러 버린다
단호한 결단으로 가지를 다스려
영혼이 가벼운 새들마저 둥지를 잘 틀지 못하고
앉아 깃을 쪼며 미련 떨치는 법을 배운다
보라
가을 머리에 인 밝은 열매들
늙은 몸뚱이로 어찌 그리 예쁜 열매를 매다는지
그뿐
눈바람 치면 다시 알몸으로
죽어 버린 듯 묵묵부답 동안거에 드는

 

 

몸이 많이 아픈 밤 / 함민복

 

하늘에 신세 많이 지고 살았습니다
푸른 바다는 상한 눈동자 쾌히 담가주었습니다
산이 늘 정신을 기대어주었습니다
태양은 낙타가 되어 몸을 옮겨주었습니다
흙은 갖은 음식을 차려주었습니다
바람은 귓속 산에 나무를 심어주었습니다
달은 늘 가슴에 어미 피를 순환시켜주었습니다

 


 공터의 마음 / 함민복

 

내 살고 있는 곳에 공터가 있어
비가 오고, 토마토가 왔다 가고
서리가 오고, 고등어가 왔다 가고
눈이 오고, 번개탄이 왔다 가고
꽃소식이 오고, 물미역이 왔다 가고

 

당신이 살고 있는 내 마음에도 공터가 있어

 

당신 눈동자가 되어 바라보던 서해바다가 출렁이고
당신에게 이름 일러주던 명아주, 개여뀌, 가막사리, 들풀이 푸르고
수목원, 도봉산이 간간이 마음에 단풍 들어
아직은 만선된 당신 그리움에 그래도 살 만하니

 

세월아 지금 이 공터의 마음 헐지 말아다오

 

 

 

 

흐린 날의 연서 / 함민복

 

까마귀산에 그녀가 산다
비는 내리고 까마귀산자락에서 서성거렸다
백번 그녀를 만나고 한번도 그녀를 만나지 못하였다
예술의 전당에 개나리꽃이 활짝 피었다고
먼저 전화 걸던 사람이
그래도 당신
검은 빗방울이 머리통을 두드리고
내부로만 점층법처럼 커지는 소리
당신이 가지고 다니던 가죽가방 그 가죽의 주인
어느 동물과의 인연 같은 인연이라면
내 당신을 잊겠다는 말을 전하려고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고 독해지는 마음만
까마귀산자락 여인숙으로 들어가
빗소리보다 더 가늘고 슬프게 울었다
모기가 내 눈동자의 피를 빨게 될지라도
내 결코 당신을 잊지 않으리라
그래도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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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남 시인

 

                              1957 전남 장흥군 대덕읍 분토리 출생  
                         1985 중앙대학교 경제학과 졸업  
                         1997 세계일보 신춘문예 시 <정동진역> 당선으로 등단  
                         1998 시집 '정동진역(민음사)'

                  1998   윤동주 문학상(우수상)수상  
                         2001 시집 '모슬포 사랑'(문학동네) 
                         2002   중앙문학상 수상 

                         2004   문학과 창작 작품상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기획조정실에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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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최민식>사진작가

 

슬픔도 가꾸면 재산이 된다 / 김영남

 

귀하게 얻은 슬픔이란
뿌리가 잘 썩는 분재 같아
고운 흙으로 분갈이를 해주지 않으면
내부 공간을 심하게 망가뜨린다.

 

따라서 내부 공간을 가꾸기 위해서는
보습용 물레방아, 흔들의자를 들여놓고
대(竹)발로 밖을 차단해 놓은
마음의 베란다 한 켠이 필요하다.
자주 눈길을 주며, 웃자라거나
삐져자란 슬픔을 다듬을 수 있도록
예쁜 창도
안으로 달아놓아야 한다.

 

잘 보살핀 슬픔, 옹이가 곱게 앉은 슬픔이란
거실, 현관, 정원, 옥상 어디에 내놔도
주변을 깊고 넓게 변하게 한다. 값 비싼 난(蘭)처럼
진한 향기를 감돌게 하고, 조용한 숲속으로 바꾸어준다.

 

저기, 슬픔을 방치해
내부 공간이 헛간처럼 망가진 사람이
내부 공간 밖에서 술을 마시고 있다.

 


 

 
 

밑에 관하여 / 김영남

 

 

나는 위보다는 밑을 사랑한다

밑이 큰 나무, 밑이 큰 그릇, 밑이 큰 여자……
그 탄탄한 밑동을 사랑한다

 

위가 높다고 해서 반드시 밑동도 다 넓은 것은 아니지만

참나무처럼 튼튼한 사람,

그 사람 밑을 내려가 보면

넓은 뿌리가 바닥을

악착같이 끌어 안고 있다

 

밑을 잘 다지고 가꾸는 사람들 ……
우리도 밑을

논밭처럼 잘 일궈야 똑바로 설 수 있다

가로수처럼 확실한 밑을 믿고

대로를 당당하게 걸을 수 있다

거리에서 명물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밑이 구린 것들, 밑이 썩은 것들은

내일로 얼굴을 내밀 수 없고

옆 사람에게도 가지를 칠 수 없다

 

나는 밑을 사랑한다

밑이 넓은 말, 밑이 넓은 행동. 밑이 넓은 일……
그 근본을 사랑한다

근본이 없어도

근본을 이루려는 아랫도리를 사랑한다

 

 


 

아줌마’라는 말은 / 김영남

 

일단 무겁고 뚱뚱하게 들린다.
아무 옷이나 색깔에 잘 어울리고
치마에 밥풀이 묻어있어도 어색하지 않다.

그래서 젊은 여자들은 낯설어하지만
골목에서 아이들이 ‘아줌마’ 하고 부르면
낯익은 얼굴이 뒤돌아본다. 그런 얼굴들이
매일매일 시장, 식당, 미장원에서 부산히 움직이다가
어두워지면 집으로 돌아 가 저녁을 짓는다.

그렇다고 그 얼굴들을 함부로 다루면 안 된다.
함부로 다루면 요즘에는 집을 팽 나가버린다.
나갔다하면 언제 터질 줄 모르는 폭탄이 된다.
유도탄처럼 자유롭게 날아다니진 못하겠지만
뭉툭한 모습으로도 터지면 엄청난 파괴력을 갖는다.
이웃 아저씨도 그걸 드럼통으로 여기고 두드렸다가
집이 완전히 날아 가버린 적 있다.

우리 집에서도 아버지가 고렇게 두드린 적 있다.
그러나 우리 집에서는 한번도 터지지 않았다.
아무리 두들겨도 이 세상까지 모두 흡수해 버리는
포용력 큰 불발탄이었다, 나의 어머니는.

 

 

                                                                     사진 <네이버 포토갤러리>
 
 

누워 있는 것을 보면 나는 올라타고 싶다 / 김영남


나는 누워만 있는 것을 보면 올라가보고 싶다.
그 누워 있는 것들에 신나게 올라가서
한번 가쁜 숨을 매몰차게 몰아쉬고 싶다.

 

가쁜 숨을
기쁘게
내쉴 것들을 고르다 보니,
나를 기다리는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누워 있는 침대, 누워 있는 천장, 누워 있는 하늘…
저기 한 여자도
한사코 누워만 있는 바위를 올라타느라
가쁜 숨을
크게 내뿜고 있다.
여자가 슬슬 기어오르는 모습을 보니까
귀엽다.
용감해 보인다.
아니, 불행해 보인다.
세상에!

오죽했으면 여자가 하늘을 올라타야 할까?

 

나는 누워 잠자는 걸 보면 꼭 한번 올라타 보고 싶다.
누워 있는 상사, 누워 있는 행정, 누워 있는 학문…

 

 

 

 

빨래 / 김영남

 

이렇게 모가지를 비틀면 어떡하냐고

찔끔찔끔 눈물을 짜며

그가 완강하게 버틸 때면,

 

이놈 고분고분하지 않는다고

시커먼 거짓말 뱉어내지 않고 끝까지 숨기고 있다고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두둘겨 패서

질질 옥상으로 끌고 가 거꾸로 매달아버린다. 그녀는

그러면 그는 그때서야 얘기를 꺼낸다

정말 이렇게 나아가서는 안되겠다고,

어떻게든 집안에

평화의 깃발은 펄럭여야겠다고

 

보라, 그녀는 그를 다루는 1급 기술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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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인서  시인

 

 

1960 대구 출생

2001년 계간 <시와시학>에 <꽃 진 자리>등 여섯 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부산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수학

시집 - 그는 늘 왼쪽에 앉는다 ( 2005년 창작과비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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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네이버 포토앨범>

 

그 남자의 방 /  류인서


몸에다 무수한 방을 가진 남자를 알고 있다
햇살방 구름방 바람방 풀꽃방

세상에, 남자의 몸에 무슨 그리도 많은 방을!

그 방 어느 창가에다 망상의 식탁을 차린 적 있다

안개의 식탁보 위에 맹목의 주홍장미 곁에

내 앙가슴살 한 접시 저며내고 싶은 날이 있었다

그의 방을 기웃대다 도리어
내 침침한 방을 그에게 들키던 날
주름 깊은 커튼 자락 펄럭, 따스한 불꽃의 방들 다 두고
물소리 자박대는 내 단칸방을 그가 탐냈으므로

 

내게도 어느 결에

그의 것과 비슷한 빈 방 하나 생겼다
살아 꿈틀대던, 나를 달뜨게 하던
그 많은 방들 실상, 빛이 죄 빠져나간 텅 빈 동공
눈알 하나씩과 맞바꾼
어둠의 가벼운 쭉정이였다니, 그는 대체
그동안 몇 개의 눈을 나누었던 것일까
그 방의 창이 나비의 겹눈을 닮아 있던 이유쯤
더 이상 비밀이 아니구나, 저벅저벅 비의 골목을 짚어가던
먼 잠속의 물발자국 소리도 그의 것이었구나

 

 

                                                      사진 <네이버 포토갤러리>
 

예감 / 류인서


 왜 가슴보다 먼저 등 쪽이 따스해 오는지, 어떤 은근함이 내 팔 잡아당겨 당신 쪽으로 이끄는지, 쉼표도 마침표도 없는 한단락 흐린 줄글 같은 당신 투정이 어여뻐 오늘 처음으로, 멀리 당신이 날 보았을지 모른다는 생각 했습니다 우주로의 통로라 이른 몇번의 전화는 번번이 그 외연의 광대무변에 놀라 갈피없이 미끄러져내리고, 더러 싸르락싸르락 당신의 소리상자에 숨어 있고 싶던 나는 우물로 가라앉아버린 별, 별이 삼켜버린 우물이었지요 별들은 불안정한 大氣를, 그 떨림의 시공을 통과하고서야 비로소 반짝임을 얻는 생명이라지요 벌써 숨은 별자리라도 찾은 듯한 낯선 두근거림, 어쩌면 당신의 지평선 위로 손 뻗어 밤하늘 뒤지더라도* 부디 놀리지는 마시길, 단호한 확신이 아닌 둥그렇게 나를 감싼 다만 어떤 따스함의 기운으로요

*지평선 위로 손 뻗어 밤하늘 뒤지다 -朴碩在 

 

 

 

 

거울 속의 벽화 / 류인서

 


대합실 장의자에 걸터앉아 심야버스를 기다린다

왼쪽 벽면에 붙박인 거울을 본다

거울의 얼굴엔 마치 벽 속에서부터 시작된 듯한

뿌리깊은 가로금이 심어져 있다

푸른 칼자국을 받아 두 쪽으로 나뉘어진 물상들

잘못 이어붙인 사진처럼

하나같이 접점이 어긋나있다

 

그녀의 머리와 목은 어깨 위에 서로 비뚜름히 얹혀있다

곁에 앉은 남자의 인중 깊은 윗입술과 아랫입술이

멈춰선 톱니바퀴처럼 비끗 맞닿아있다

그 무방비한 표정 한 끝에 아슬하게 매달린 웃음을

훔쳐보던 내 눈빛이, 스윽

균열의 깊은 틈새로 날개꼬리를 감춘다

물병에 꽂힌 작약, 소스라치게 붉다

일그러진 둥근 시계판 위에서

분침과 시침이 포개 잡았던 손을 풀어버린다

 

이 모든, 아귀가 비틀린 사물들 뒤에서

아카시아 어둔 향기가 녹음의 휘장 속에 어렴풋 속을 보이고

그렇게 조금씩 제 각도를 비껴나고픈

자신과 화해할 수 없는 것들의 초상이 벽 속에 있다

 

 

         

                                            사진 <최박사님> 블로그에서

 

상사화 / 류인서

 

살 밖의 뼈가 어둡다고


달팽이는 저녁이슬 하나씩 깨물어 먹는다


살 밖의 뼈가 어둡다고


숲은 간이 싱싱한 어린 참나무를 찾고 있다


꽃대궁은 이미 뜨겁다


잎은 혼례에 늦는 신부를 데려오느라 아직 피지 않고 있다


살 밖의 뼈가 어둡다고


멀리 동구 밖 홰나무는 말울음 소리를 낸다

 

 

사진 <네이버 포토갤러리>
 
 

       (甁) / 류인서                                               

 

왼쪽 귀가 들리지 않는 그는 늘 왼쪽에 앉는다

그들은 늘 그의 오른쪽에 앉는다

아내 투정도 아이의 까르륵 웃음도

여름날 뻐꾸기 울음소리도 빗소리도 모두

그의 오른쪽 귓바퀴에 앉는다, 소리에 관한 한

세상은 그에게

한바퀴로만 가는 수레다

출구 없는 소리의 갱도

어둠의 내벽이, 그의 들리는 귀와 들리지 않는 귀 사이에

 

그의 비밀은 사실, 들리지 않는 귀 속에 숨어 있다

전기를 가둬두던 축전병처럼, 그의 왼쪽 귀는

몸에 묻어둔 소리저장고

길게 목을 뺀 말 모자를 푹 눌러쓴 말 눈을 뚱그렇게 뜬 말 반짝반짝 사금의 말 진흙의 말 잎과 뿌리의 말, 세상 온갖 소리를 집어삼킨 말들이 말들의 그림자가 그의 병 속에 꼭꼭 쟁여져 있다

그것들의 응집된 에너지를 품고 그의 병은

돌종처럼 단단해져간다


한순간, 고요한 폭발음!
소용돌이치며 팽창하는 소리의 우주가 병 속에, 그의 귓속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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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 Beautiful Days / 글참조 : 중앙일보 - 이근배 시인

정운(이영도)는 재색을 고루 갖춘 규수로 출가하여 
딸 하나를 낳고 홀로 되어 해방되던 해 
가을 통영여중 가사 교사로 부임했다. 
해방이 되자 고향에 돌아와 통영여중 국어교사가 된 
청마의 첫 눈에 정운은 깊은 물그림자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일제하의 방황과 고독으로 지쳐 돌아온 남보다 피가 
뜨거운 서른 여덟살의 청마는 스물아홉의 청상 정운을 
만나면서 걷잡을 수 없는 사랑의 불길이 치솟았다.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파도야 
어쩌란 말이냐임은 뭍같이 까딱않는데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날 어쩌란 말이냐" 
 
통영 앞바다에서 바위를 때리고 있는 청마의 시 
'그리움'은 '뭍같이 까딱않는' 정운에게 바친 사랑의 
절규였다.
유교적 가풍의 전통적 규범을 깨뜨릴 수 없는 정운이기에 
마음의 빗장을 굳게 걸고 청마의 사랑이 들어설 틈을 주지
 않았다.청마는 하루가 멀다하고 편지를 쓰고 시를 썼다. 
 날마다 배달되는 편지와 청마의 사랑 시편들에 마침내 
빙산처럼 까딱않던 정운의 마음이 녹기 시작했다.
청마가 정운에게 보낸 편지들은 모두 그대로 시였다. 
"내가 언제 그대를 사랑한다던?
그러나 얼굴을 부벼들고만 싶은 알뜰함이
아아 병인양 오슬오슬드는지고". 
"덧없는 목숨이여소망일랑 아예 갖지 않으매
요지경같이 요지경같이 높게 낮게 불타는 나의 -노래여, 
뉘우침이여". "나의 구원인 정향! 절망인 정향! 
나의 영혼의 전부가 당신에게만 있는 나의 정향! 
오늘 이 날이 나의 낙명(落命)의 날이 된달지라도 
아깝지 않을 정향 "- 52년 6월2일 당신의 마(馬) 
 
끝이 보이지 않던 유치환의 사랑은 갑작스런 죽음으로 
끝이 났다.1967년 2월 13일 저녁, 부산에서 교통사고로 
붓을 영영 놓게 된 것이다.
"-사랑하는 것은사랑을 받느니 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이렇게 고운 보배를 나는 가지고 사는 것 이다 
마지막 내가 죽는 날은 이 보배를 밝혀 남기리라 "
 
-유치환

통영여자중학교 교사로 함께 근무하면서 알게 된 이영도(일찍이 결혼했으나 21세의 젊은 나이에 남편과 사별하고 당시 딸 하나를 기르고 있었다)에게 청마는 1947년부터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편지를 보냈다.
그러기를 3년,  마침내 이영도의 마음도 움직여 이들의 플라토닉한 사랑은 시작됐으나  청마가 기혼자여서 이들의 만남은 거북하고 안타깝기만 했다.
청마는 1967년 2월 교통사고로 사망할 때까지 20년동안 편지를 계속 보냈고  이영도는 그 편지를 꼬박꼬박 보관해 두었다.
그러나 6·25전쟁 이전 것은 전쟁 때 불타 버리고 청마가 사망했을 때 남은 편지는 5,000여 통이었다.
<주간한국>이 이들의 '아프고도 애틋한 관계'를 〈사랑했으므로 나는 행복하였네라〉라는 제목으로 실은 것이 계기가 되어  청마의 편지 5,000여 통 중 200통을 추려 단행본으로 엮었다.
이 청마의 사랑 편지가 책으로 나오자 그날로 서점들의 주문이 밀어닥쳤고 베스트셀러가 되어
무명 중앙출판출사는 대번에 이름을 날리게 되었다.
마땅히 서한집의 인세는 청마의 유족에게 돌아가야할 것이나 정운은 시전문지'현대시학'에 '작품상'기금으로 기탁운영해오다 끝을 맺지 못하고 76년 3월6일 예순의 나이로 갑자기 세상을 뜬다.    더 크게 만들겠다던 문학상 기금은 정운의 타계로 붓지 않고  구상.김준석.임인규등 문학상 운영위원들의 합의로 '정운시조상'으로 이어져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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