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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란 한 판 / 고영민

대낮, 골방에 처박혀 시를 쓰다가
문 밖 확성기 소리를 듣는다
계란…(짧은 침묵)
계란 한 판…(긴 침묵)
계란 한 판이, 삼처너언계란…(침묵)…계란 한 판
이게 전부인데,
여백의 미가 장난이 아니다
계란, 한 번 치고
침묵하는 동안 듣는 이에게
쫑긋, 귀를 세우게 한다
다시 계란 한 판, 또 침묵
아주 무뚝뚝하게 계란 한 판이 삼천 원
이라 말하자마자 동시에
계란, 하고 친다
듣고 있으니 내공이 만만치 않다
귀를 잡아당긴다
저 소리, 마르고 닳도록 외친다
인이 박여 생긴 생계의 운율
계란 한 판의 리듬
쓰던 시를 내려놓고
덜컥, 삼천 원을 들고 나선다


시집, 『악어』(2005년 실천문학사)

 

 
 
 

 


                                                고영민 시인

 

                                     1968년 충남 서산출생

                                     중앙대학교 문창과 졸업

                                     2002년 <문학사상>으로 등단

                                     시집 <악어> 2005년 실천문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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