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기억은 흉터로 남는다고 한다.

흉터는 가끔씩 드려다 볼 때마다 그 기억이 되살아나곤 한다는데

가슴에 ...마음에 있는 흉터도 가끔씩 내 비췰 때가 있을 터~~


그런데, 아무것도 아닌 흉터가 이상하게 ...비쳤으니,


2006년 4월  2일,

교회에서 오후 예배를 드리는 중이었다.

점심식사 후, 노곤함도 무겁게 눈꺼풀을 누르고...있고 나는 ...설교 도중에 그 게 팔짱을 꼈다는 말이 맞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양 팔을 끼고 있다가 무심결에 풀어 왼쪽 손 등을 바라보는데...


아~~~~~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던 흉터가 선연하다,


잊었던...일순 소름끼치도록 놀라기도 하고, ....웬일일까?

엊그제 다친 것처럼 방금 딱지가 떨어진 것처럼 빨간 줄이 그어져 있다.

웬 일일까? 흉터는 오래전에 사라졌는데....

내 귀에 설교는 닫긴지 오래다. 섬뜩하다. 내가 중학생 때 일이다. 우리는 가슴에 이런 걸 잘 달고 다녔었다.

손으로 직접 써서는 달기도 하다가 나중에는 아예, 차곡차곡 접어져서는 별별 문구가 다

인쇄되어 있던..산림녹화주간, 불조심강조기간...기타 등등...그 때는 왜 그렇게 달고 다녀야했던 게 많았던지..안 달면 정문에서 체크 당하던 때였다.

까마득한 ..벌써 40여년이 넘은 세월, 나는 짝꿍의 예리한 핀에 찔려서 그어졌다.

병원에 가서 기울 정도는 아니었는데...상처는 징그러웠고 좀 깊었다.


그리고 몇 년 소녀 적 내내 나는 그 손등을 보며 그 아이를 떠 올렸는데...

이젠 그 아이가 누군지조차도 잊었다. 그랬는데...그 흉터가 살아서 나를 흠칫 놀라게 한 것이다. 흉터를 보고 또 보았다. 좀 전에 내가 팔을 어떤 자세로 했기에, 핏줄처럼 붉게 살아났을까? 마치 엊그제 다친 것처럼?


어제 일이 놀라워서 다시 손등을 보았다.

흉은 없다 흔적도 없다. 아주 밝은 햇빛에 나가 보았다. 중간에 한 2cm정도는 있는 듯 없는 듯 하다.

그런데,,,어제는 왜? 긴 7cm의 길이로 그날 그대로 다친 것처럼 나타났을까?


그 것도 빨갛게?


.......정말 모를 일이다.



????


'가납사니 > 이야기 속으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삼사돈의 저승친구  (0) 2005.06.01
무의식의 세계  (0) 2005.06.01


 

 

[여보게 사돈!  우리 저승길에 함께 가시게나~]

 

 

 

 

내게 있어 두 할아버지는 멋지셨다.

친할아버지는 점잖으셨고 외할아버지는 자상하셨다.

외할아버지는 내게 있어 친구나 별반 진배없었다.

약주를 좋아하시고...학문을 좋아하셨던 외할아버지, 내 이름도 '요조숙녀'로 자라라고 지어주신 할아버지,

 

중2 때, 수학여행을 하룬가? 이틀인가?  앞둔 어느 날

친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수학여행을 포기하고 지금은 부산이지만 당시는 시골인 사상, 큰댁으로 갔다.

아버지의 눈물을 보고 나도 아! 슬픈 일이구나.....따라 슬퍼했다.

 

사돈이 돌아 가셨는데...외할아버지께서 문상을 오셨다.

그런데 이상하다. 외할아버지가 부축되어서 오시는 게 아닌가?

오시다가 낙상을 당하셨단다.

외할아버지는 예전부터 영이 맑으신 분이셨다.

다른 사람들도 다 그렇게 인정하는, 당신에게 닥칠 일을 대충 알고 계시는....

 

지금은 김해시(당시 김해 읍)에 버스가 잠시 정차할 때 화장실을 가시려는데...

웬 낯 선 장정 두 놈이 획 끌어내리더란다. 해서 땅바닥에 패대기치듯....엎어지시고,

중간지점이지만 집으로 되올라가려니 그렇고 그냥 도로 버스를 타고 상가까지 오셨단다.

나는 특별 외할아버지의 심부름꾼이 되었다.

 

그런데 내겐 기분이 좀 그랬다.

하필이면 친할아버지가 운명하셨던 별채람,

친할아버지의 시신은 본 채 안방으로 운구 되었기에....별채 할아버지 방이 제일 한적하긴 했다.

 

어린 나는 방학이면 늘, 외가행을 당연히 고집하던 아이였는데...

외할아버지는 시냇가에서 고동도 잡아 삶아 주시고.... 화장실에 가면 휴지를 염려해서

시멘트 푸대 종이 같은 걸 모아두었다가 곱게 잘라 부드럽게 비벼 놓곤 하시는 분이셨다.

농담도 얼마나 잘 하시는지...오뉴월에 늘어져서 곧 떨어질 것만 같은 황소 거시기를 보시고,

"에따 그 넘....붕알 늘어진 거 봐라.... 문도령아(머슴) 저 붕알 뚝 잘라라 우리 요조 국 끓여주게~~" 하시던,

 

겨울방학이면 할아버지는 민화투를 치자고 그러셨다.

난 싫다 그러고....

내가 이기면 옛날 이야기 하나씩!

나는 지면 한 판 더 하기 ....나는 자꾸만 지고 또 질 것 같으면 판을 엎어버리면 된다.

 

그 때 들려주던 할아버지 이야기는 무궁무진하다.

 

효자효부를 살린 산삼이야기.... 마을을 살린 산삼이야기, 용이 못된 깡철 이무기 이야기..등등

그러다가 출출하면 고구마나 무도 깎아 먹고 ..막내 이모에게 동치미에 국시도 말아 달라던....겨울밤

나는 그랬던 유일한 큰 친구를 잃게된다.

 

드디어 선산으로 출상하는 날,

트럭에는 친할아버지의 꽃상여가 실리고 뒤따르는 버스 맨 앞좌석에 외할아버지가 앉으셨는데..

나는 툭 튀어나온 본니트에 걸터앉아 여전히 외할아버지를 지키고 있었다.

 

사돈끼리 고향이 같다하지만...산을 넘어야는데...외할아버지가 어떻게 집으로 돌아가셨는지는 기억에 없다.

 

아무튼 한 열흘 뒤...외할아버지가 많이 편찮다는 바람에 어머니는 눈물바람으로 친정으로 달려가셨다가 친할아버지의 상망이라 돌아 오셨다.

(상망이란/ 탈상 전에 초하루 보름마다 지내는 제사)

또 다시 위독하시다 는 급보에 엄마는 허겁지겁 친정 행이셨고,

 

다음이야기는 엄마의 전언에 의하면

외할아버지는 차차 깨어나시더란다. 해서 다시 오려고 하니 외할아버지께서 엄마를 부르시더란다.

 

"야야....갈라고?  나도 함께 갈낀데...같이 가구로 쫌만 지둘러라~~"

멀쩡해 보이시는데도 뜬금없는 그 말씀에 깨달음이 온 엄마는 외할머니께 준비를 하자고 하셨다한다.

콩나물 시루에 앉히기....베옷 장만하기 요즘 같으면 돈만 들면 하지만...예전에는 그 게 아니었다 한다.

엄마는 아무래도 그 날이 꼭 그 날이 될 것 같아 말없이 바삐 서두셨다 한다.

 

아니나 다를까?  외할아버지는 친할아버지와 같이 같은 달, 같은 날, 같은 시, 에 운명하셨다.

 

왜 같은 달이었냐면 그 해에는 음력으로 윤달이 낀 해였기 때문이다.

 

아직도 내 기억에 남은 어머님의 애절한 통곡소리~~큰일을 다 치시고 집에 오신 울 어머닌 두 다리를 뻗고 우셨다.

 

"내가 불측해서  우리 아버지...평생에 제사도 한 번 못 가보게 됐으니...이 불효를 어이할꼬~~"

 

왜냐면 우리 어머닌 출가외인인즉....시집 일이 우선이 아니고 무어랴?

 

......

 

그런데 이야기가 여기서 끝났다면 우연의 일치겠거니 할텐데....

외할아버지의 하관(묏자리에 관을 내리는 일)이 시작되고 지관(풍수쟁이)은

무어라 큰 소리를 외치는데...

 

예를 들어 "갑자생은 보지 마시요~~" 하고 큰소리로 외친다.

 

그런데....우리 이모의 시어른이...그 소리를 듣고 당신이 해당되는데도 아니 보면 안되겠더란다.

사돈이 가는데...마지막 길을 꼭 봐야 되겠더란다.

 

그 어르신이 집에 오신지 시들머들 편찮으시더란다.

그런지 한 달만인지? 두 달만인지? 그만 이내 운명하시고....

 

소문은 번지는데....삼사돈이 친구래...저승길 친구래~~

 

 

그리고  여러 해가 지난 어느 날.....뒤늦게 발견한 사진 한 장,

삼사돈이 모두 다 흰 두루마기를 곱게 입고...한 분만 갓을 쓰지 않은 하이칼라 모습으로

진해 벚꽃구경을  가셔서 찍은 사진이 나왔다.

 

나는 몇 번이나 티뷔에 이야기 소재로 내 볼까 그러다가  그러구러 세월만 흘렀다.

 

벌써 40년도 더 지난 이야기네~~

 

 

 

 

 

* 우리 이종사촌 숫자는 현재 정확하게 나도 모른다.

외할아버진 하나 외삼춘을 두셨는데,  진즉에 월북을 하였고 나머지 딸만 여덟이다.

그 딸들이 적어도 평균잡아 적게는 다섯 이상은 손을 보았으니.....

어림잡아도 쉰여나므명은 되지 않을까?

 

그 외손들 .....신부, 수녀, 스님, 암튼 골고루 다 있다.

우리는 만나면 외할아버지 이야길 곧잘 한다.

특히 수녀인 동생.....자기 피에도 외할아버지의 피가 흐름을 느낀다나 뭐라나~~

그 중 몇 몇,  남 다른 예시몽에 대한 느낌을 어느정도는 알고 있다.

가능하면 무디게 하려들 애쓰지만.......


 

검색이미지

'가납사니 > 이야기 속으로' 카테고리의 다른 글

흉터  (0) 2006.04.03
무의식의 세계  (0) 2005.06.01


 

 

꼭 한 번, 써보고 싶은 글이었다.

 

[무의식 속의 의식]

 

나는 아주 어린 날을 너무도 선명하게 잘 기억해서...가족들을 놀래키는 그런 기억들을 가지고 있다.

어른들께 이야기 들어서가 아닌,

 

위엣 모자는 오래도록 그 모자의 생김새나 질감마저 내 뇌리에 박혀 떠나지 않기에 그대로 그려본 것이다. 붉은 양단 바닥에 쟈가드 무늬가 있으며 가장자리엔 하얀 토끼털로 둘러진 젖먹이 애기들 방한모자 ~

 

우리 집 마리(마르티스) 몽(레트리버)이 들이 내가 목줄만 들고 있으면 외출할 것으로 착각을 하고 환장을 하는 것처럼

나도 어린 날...이 모자만 쓰면 엄마 등에 어부바~~ 하고 바깥바람을 쏘이러 나가는 즐거움이

분명 있었으리라.

 

태어나고 자란 곳은 부산이지만...부모님 고향이 김해라 지금은 부산이 되었지만 김해 녹산 다리는 밀물썰물의 수문 역할을 하는 다리였다.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엄마 등뒤에서 나는 이 모자를 쓰고 고개를 외로 돌린 채

엄마 등에다 귀를 갖다 붙였다 떼었다 놀이를 계속하고 있었다.

 

녹산교 수문은 바람이 세었던 모양이다.

내 귀에 바람이 쏴아 들어왔다 끊겼다 들리는 소리에 나는 재미가 들려 있었다.

버스에 올라서도 그 짓은 계속되었는데...버스안에 꽉 찬 사람들....

문이 채 닫기기도 전이었는지..."와글 와글 쏴쏴~~" "뚝~~조용" "와글와글 쏴쏴~'

그 소리들을 나는 즐기고 있었다.

 

그 다음은 정지간(부엌)으로 난 문 쪽으로 기어가면서 울었던 기억이다.

발단은 배가 고팠는지...어쨌는지...설거지를 하시던 엄마가 방으로 들어오셔서 안아 젖을 물려주시던 기억이 그렇게 선명할 수가 없다.

 

중학생 즈음에 이 이야기를 듣고 설마~~ 하시는 엄마와 아버지 이모 앞에서 그림을 그려서 설명해 드렸다. 어디로 부엌문이 나 있었고, 나는 여기서 문 쪽으로 기어가며 울던 기억을 되살려~~

물론 다들 놀라며 신기해 하셨다. 잠깐 살았던 집이었단다.

그리고 나는 큰 병은 안 해도 자주 아팠다 한다. 아프기만하면  고열에 늘 시달렸다한다.

업자고 하면 좋아라 업혀서는 바람막이 덮개에 푸욱 둘려 쌓인 채, 한참을 업혀 가다가

"드르륵~"

도구루마?(작은 바퀴)가 구르는 병원문 열리는 소리를 듣자마자 악을 쓰며 뒤로 뻗대던....

그 바퀴문 구르는 소리는 아직도 내 귀에 쟁쟁하다.

아마도 그 소리는 곧이어 내 여린 엉덩이를 찌르고 들어오는 주사바늘을 연상해서 겠지만,

 

그리고 우리 독수리 오형제 모두를 건강하게 오래토록 자라게 해주던 집을 구입해 놓고 엄마 등에 업혀 갈 때 공사중인 빈 마당에 엉성히 키다리로 서서 피어있던 곧 뽑혀 나갈 해바라기 자태며...

 

어느 동생이 태어날 때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안방에는 엄마가 갓난아기랑 누워 계시고

건넌방에는 언니와 나는 아버지의 팔 베개를 하고 있었다.

 

아버지의 옛날 이야기가 시작되었는데...

양옆에 누운 딸들은 서로 아버지의 얼굴을 자기 쪽으로 돌아보게 하려하자

아버진...

"그래 나는 공평하게 천장을 보고 이야기하마" 시던....

 

서너살 애기때의 기억은 요기까지다.

 

.....................

 

다시 일곱살 여덟살 쯤의 기억들로 이어진다.

언니가 먼저 홍역을 했었다.

부모님 말씀으로는 큰애(언니)가 놀러나가는데...내가 들어오더란다.

그 길로 누운 나는 심하게 홍역을 앓았는데...인형을 사달라고 하도 보채서 그 당시 등겨로 속을 채운

빨간 모자에 간땅꾸(원피스)를 입은 서양아이 얼굴을 닮은 오무짱(인형)을 선물 받았다.

 

병석에 있던 어느 날 마당을 내다보니...내 인형을 가지고 언니가 제 친구와 사이좋게

놀고 있는 게 아닌가? 나는 자지러지게 울다가 그 인형을 받아 바락바락 찢어 버렸다.

주체할 수 없는 분노에, 속에 든 등겨를 탈탈 다 털어 내면서....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도 배우자가 바람을 핀 것 같은 그런 마음이었을 것 같다.

내가 제일 아끼는 물건을, 언니가 나랑 놀지도 않고 다른 아이와 너무 재미있게 노는 장면을 목격한....

나가 놀지 못하는 짜증, 그 인형을 찢을 때 쳐다보는 가족들의 놀라움!  나 스스로도 너무 아깝지만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마치 나를 찢는듯한 아픔,

 

그리고 내가 까무러치던 기억,

엄마에게 반쯤 일어나 앉아 안겼는데...마당을 가리키며 (내 기억에는 도라무깡/드럼통에는 물이 늘 들어 있었으므로) 물! 물! 하더니...

그냥 죽더란다. 거기까지는 어제 일처럼 아직도 기억이 완연하다.

 

 

.....................


이젠 거의 십 년쯤 되어 가는 일,
 
디스크 수술을 했다.

수술이라곤...내 몸에 칼을 대리라곤 상상도 않고 살아왔다.

심지어는 아직 귀도 뚫지 못하는 나일진대...

 

수술 전...공포에 수술을 먼저하고 나온 선배> 들에게 일일이 물었다.

 

모른다고..잠만 자고 나면 끝나있다고 그 후론 무통주사가 고통을 잊게 해 준다고

좋은 세상이라는 말들만 해 줬다.

 

나는 그래서 가벼운 마음으로 수술에 임했다.

마치 내 몸에 나쁜 버러지 하나 잡아죽이는 그런 마음으로 임했다.

며칠동안 낯이 익은 주치의에게 농담도 건네면서 마취에 빠져들었다.

 

회복실에서 병실로 올라와서 웃지 못할 일이,

사람은 마취가 덜 깼을 때...자기 비밀을 자기가 폭로하거나...성질이 다 나타난다는데...

 

우리 막내아들 왈,

"에이 음마두...나 쪽 팔려서 죽는지 아라써여~~"

"왜?"

"음마 땡깡 부린지 몰라?"

"뭘?"


아들 얘기를 들으니...대충 내가 뭘 했는지 기억이 난다.

 

"누가 수술이 안 아프다고 내게 거짓말 해줬어.....엉~엉, 난 너무 아팠단 말이야....엉엉~

누가 그랬어, 거짓말쟁이들~~ 너무 너무 아팠는데....누구야? 누가? 터무니없는 그런 거짓말을 왜 했어? 앙~ 앙~~ 꺼이 꺼이~~"

 

'오! 세상에 이런 창피스럴데가'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어쩌자고 그런 말들을? 근데....정말 나는 그렇게 아팠을까?

무의식 도중에도 정말 느끼는 것일까?

미스테리가 아닐 수 없다.

 

한가지 더 웃기는 것은  위에 말한 땡깡은 막내 아들이 일러주지 않았음 영영 모를 뻔한 무의식의

일이고....그 다음...의식이 좀 돌아 온 상태에서 마취는 아직 완전히 깨지 않은 상태였는지

내 눈에는 환각이 보이는데....병실 천장 석고보드 무늬가 온통 벌레가 되어서

오른편으로 좌르륵..쏟아지듯이 기어가다가 왼편으로 화르르 기울어지는....기이한 현상이...

 

이 환각상태를 입으로 일일이 생중계 쑈를 했다는 거다.

말이 많아지면서....온갖 소리를....

우리 가족들 얼마나 황당했을까?

 

그 후로도 갑상선 수술 한 번 더...

이 번에는 조카사위가 과장으로 있는 병원이라  이번에도 또 그러면 어쩌나 하는 염려에 정신 바짝 차리고 수술에 임했다. 정신을 곧추 세우고...또 세우고.....그래서 그랬는지

다행이 별일은 없었는데,

그 후로도 병원, 수술실에서 올라오는 환자들 많이 봐왔지만 나 비슷한 사람 여태 하나도 못 만나봤다.

 

무의식 속의 너스레~~

과연 내가 수술 중 아팠었노라 너무 아팠노라...엉엉 운 것은

실제 느껴서 그랬는지...

아니면 ?? 도대체 무엇인지.....데쟈뷰(기시감)였을까?  그 게 아직도 궁금하다.

 

글/그림:이요조

 

 

 

 

*어릴 적 일어는 반쯤 생활언어였습니다.

그 당시 사용했던 언어들을 그대로 살려 보았습니다.

의자를/고시가께....유리문짝을/아마도 라고 했습니다.

맞는지 안맞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튀김은 덴뿌라..... 그 이 후 우리말 순화운동으로

많은 글들이 바뀌었습니다.

아직도 목수일이나...미장원 식당같은 데서 아직까지 일어의 잔재가 좀 남았음을 봅니다.

 
 
※유전자 적인 답변
우리몸의 DNA에는 진 코드라는 것이 있는데 거기에는 기억 경험같은 것이 저장됩니다..
위 경우 말고에도.. 조상이 무언가를 경험을 심각하거나 강하게 했으면은 진코드에
저장이되. 후손에게도 전해집니다.. 예를 들어 쥐나 그런 것을 이상하게 남보다
더 싫어하고 무서워 하면 멀지않은 조상이 쥐때문이 무지 고생한 적이 있을 수도 있읍니다.
그게 진코드에 적혀 후손에게 전해진거죠

※데쟈뷰
deja-vu (기시설) 현상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들은 시간여행이나 영혼과 관련된 현상으로 추측해 보기도 하겠지만
그런 건 아니고 일종의 착각, 즉 기억의 착각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즉, 신경세포 정보전달의 혼란등으로....

'가납사니 > 이야기 속으로' 카테고리의 다른 글

흉터  (0) 2006.04.03
삼사돈의 저승친구  (0) 2005.06.01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