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버스국민체조



어두운 관광버스 안에서 혼자 씨익 웃습니다.

어르신 한 분이 일어나시더니 광광버스 국민체조를 시작하시네요!


절대자 그분께 절대 관광차 안에서 저도 남들처럼 노래부르고 춤추고 놀아보는 게 버킷리스트라고 말 한 적도 없는데 친절하신
그분은 제게 이런 곳(춤추는 관광버스) 까지 인도하시는군요.

<감사합니다.>


관광버스를 타고 춤을 꼭 춰야겠다는 분을 가만 앉아있으라면 분명 속이 터져 병이 날 것입니다.

저 같은 사람은 일어나서 움직이거나 노래를 부르라 치면 아마도 속이 뒤집혀 병이 날 것입니다.

춤도 노래도 보고 듣는 것도 다 싫다. 눈꼭 감고 병든 병아리처럼 조는 척 하고 다녀온 후......큰 몸살을 앓았습니다.

그 후로는 휴게소 마다 화장실이라도 꼭 다녀오고 찬바람 쐬는 게 얼마나 몸에 좋은 지 깨닫기까지 한참 걸렸습니다.


연세가 꽤 있어보임직한 어르신!

노익장을 과시하듯 춤이 아닌 체조로 이렇게 재미나게 보여주시는군요.

지역 어르신들과 함께 하는 여행에서 이런 재미나는 춤을 봅니다.


앉은 자리에서 저도 난생 처음으로 관광버스 국민체조를 앉은 자리에서 곰실곰실 따라 해보다가 피식 웃음이 나오다가 동영상으로 담습니다.

<바로 이 게 진정한 관광 춤!>


얼마 전 우리 집의 진정한 애기 막냇손자의 오징어댄스 춤을 보고 웃었는데 그와 진배없습니다.


전 11월달  20여년 써오던 블로그 글을  한 달 내내 거르는 이변이 생겼습니다.

그나마 11월 1일에 쓴 글이 있기에 20여 년 쓴 블로그에 글 없는 꽁달은 간신히 면했습니다.



엘리베이터춤





사람 좋은 사람....

사람이 두 번 들어갔다.

첫 번째 사람은 사람이란 명사가 아니고 형용사쯤으로 보면 된다.

난 그런 사람을 여행길에서 연거푸 만났다.


여행이란 참 좋은 것이다.

물론 미지의 장소로 가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끔은 낯 선 이를 만나는 기쁨과 전혀 몰랐던 여행지를 찾아가기 전의 설레임~

그래서 난 이상한 버릇이 생겨났다. 절대 사전 지식없이 청맹과니인 채로 떠나는 것이다.

아! 물론 여행계획이나 일정표 기타 등 등은 내가 관여치 않는 주로 팸투어를 이름이다.

그저 편한 신발과 카메라만 있으면 언제든 콜~이다.


검색을 하면 와그르르 쏟아지는 내가 가야할 곳의 모든 정보는 나의 설레임을 빼앗고 기대를 상실케한다.
대신에 나름  세상에서  요리조리 피해가는 서바이벌 비책을 배우며 영악해질 수가 있다.
물론 문화재탐방도 있지만...그럴때는 복습이 유용하겠지만 내 고유의 신비스런 첫 느낌은 지워지게 된다.
그리고 그것과의 만남에 있어 지식이 먼저 앞서면 나는 작아지게 된다.


잘 그리지 못하지만 나도 여행 후 카메라에 담은 것은 지차하고 스케치로 남기길 좋아한다.
일본 여행때도 그랬다. 손그림이 카메라보다 내 마음에서 스캔 된 것을 다시 끄집어 낸다는 것~
 다시 생명을 불어넣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당진항에 갔을 때, 정박해 있는 군함을 보며 직접 스케치하고 있었다.
낼 모레 칠순인 나는 아직도 내 안에 어린아이가 있어 꼭 내가 보고싶으면 억지로라도 뺏어야 하고, 일부러라도 저질러야 하고...

관광공사와 문화체육관광부 주관으로 <지역명사와 함께하는 문화여행> 10편 프로젝트 제 1부 당진 신평양조장 '김용세'명인을 만나러 떠난 당진 여행길이었다.


심훈(상록수의 작가) 선생의 생가 필경사에 들러 박불관 관람중, 나는 무례하게도 그의 스케치북을 뺐다시피
구경하고 셔터까지 눌러댔다. 사람좋은 그는 그저 허허 웃었다.

그리고 명함을 건네받았다. 월간 여행스케치 객원작가이며 크리에이티브원 소속임감?  ㅎ


지역 명사를 찾아서~가 아니라 바로 내 곁의 명사다. 예상했던대로 그는 일러스트 작가였다.

그리고는 그를 까맣게 잊었다. 동안에 5째 손자녀석도 나오고 나는 정신없이 지냈다.

어느덧 한 달여~~ 후딱 달포가 지나고 다시 <지역명사 2탄?> 파독간호사 석숙자를 찾아서 남해독일마을로 Go go go~
지각을 했다. 10분!
머피의 법칙이 살아서 일일이 적용되는 날이었다.
그러나 난 실망않는다.

나에겐 모진 머피의 법칙 뒤에 언제나 샐리의 법칙이 고맙게도 뒤따라 오므로....
중학교 고등하교 시험칠 때도 난 늘 눈물이 찔끔나는 일을 당했다.
그러나 늘 합격이었다.
그 다음부터 생겨난 버릇....그래 좋은 일이 있을 조짐이야!



중구 청계천로에 있는 한국관광공사에서 언제나 출발하는 버스~  10분 딱 늦었을? 뿐인데 모두 와서 앉아있다.
<늦었으니 커피 살거죠?>
<예~>
쥐구멍 찾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하며 빈자리를 찾아 들어 들어가니 맨 뒤에 좌석, 딱 하나 남았다.
리무진이라 적은 좌석이 만석이란다.
급하게 찾아들어 민망함에 한숨 돌리려는데 옆자리에 눈군가 인사를 한다.

가만 듣고보니 건성하는 인사가 아닌듯하다. 명사 1차 때 함께 가신 분?

<예~~ 방가워요!>
건성..난 대답을 한다.

점차...대화가 이어지는 중에 난 그 때 그 일러스트 작가님을 떠올렸다.
<이런 실수가....>
사람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내 아둔함도 있지만 그는 모습이 많이 달라져 있었다.
 

깔끔하던 모습에서 수염도 덥수룩하고....두 번째 인연이다.

'지각하길 잘 했어~~'   1박2일 동안 내내 그와 한 자리에서 그를 싸부로 모시고 미진해서 잘 그리고 싶어 안달인 나는 그림에 대한 해갈을 어느정도 풀었다.



그는 지리산 노고단자락을 바라보며 자란 구례 출신이고 58개띠다.

내 막내 동생과 같아서 그것 하나만은 잘 기억하고 있다.

이야기 도중에 내가 얼마전에 전주 한옥마을 다녀왔는데 좋더라....글을 더 써야겠다니 서슴없이 그림을 준다.

그런데 어쩌나....사용하면 참 좋은데....검색엔진기능이 두 번 사용된 건 용하게 가려낸다. (요는 저작권문제)

그래서 상위검색에서 제외되기도 한다.


괜한 벼락이다.

사용하면 참 좋을텐데....

그냥 이렇게라도 그를 소개하고 그림을 보고 즐기기로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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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전해지는 느낌? 와닿는 교감?

사진보다 백배 더 낫다면 ......나는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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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은 사진보다 시선을 더-오래 묶어둔다.

특히 여행스케치는 기억속에 두 번 저장된다.



당진항에는 퇴역군함 2척이 활용 상시 운영되고 있다.

임작가님 스케치중~~






사람 좋은 사람! 이렇게 써야 맞을까?

아님 <사람좋은 사람!> 이렇게?

아무튼...좋은사람!



신평양조장 <김용세> 명인을 찾아서

백련막걸리







전주 시티투어 버스

전주한옥마을 이야기에 사용하라고 주신 그림

전주 전동성당 전경

전주 풍남문

남해 독일마을

독일마을 카페에 비치된 독일맥주들



남해 금산 보리암 미륵불


남해다랭이논





2차 팸투어 남해 금빛촌 숙소 아래 기다리고 있는 버스 (2일차 아침)

버스 뒷창에 그려진 그림의 의미는 (저도 첨 봤네요)

골프단체이동, 등산동호회, 낚시회출조, 그리고 버스안에 커피가 비치됐다는 뜻의 그림이라네요!!


http://blog.daum.net/borialpine
sanhee의 스케치여행









 

*청도 와이너리 앞에서 찍은 감나무 사진*

 

아침도 안먹은 빈속으로 어영부영 산을 올랐다가

많은 것을 보고 느낀 사유의 시간이 너무 좋다.

헛개나무 열매 하나 하나 줏을 때마다 떠오르는 이들을 위한 기도 한 줄! 또 한 줄의 간구!

생각의 기도만으로도 오히려 내가 더 충만해졌다.

흐믓하게 산을 내려왔다.

 

집에 와서 낙엽과 검불 부스러기등을 떼내고 정리해서 세 군데 나눴다.

 

남편이 암수술하고 회복중인 그녀와 그리고 머리를 다쳐 수술을 했다는 그녀의 남편을 위해 (여행멤버들)그리고 지난 봄에 스탠트 시술을 받은 내동생에게 모두들 매일 독한 약을 복용할 그들에게 그냥 물로 끓여 먹으면 좋겠다 싶어 포장하여 택배로 보냈다.

청정지역에서 어렵게 채취한 것이다.

아픈 사람들을 생각하며 한 알 한 알 줏었으니 내 작은 사랑의 정성이 닿아서 얼른 쾌유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헛개나뭇잎 낙엽은 힘도 없이 오그라지며 삭아 바스라지니 형체도 없고 근방에 숱하게 떨어진 성성한 상수리나뭇잎을 한 장씩 넣어서 보냈다.

헛개열매의 효능과 달여먹는 방법 등은 카톡으로 전달하고~

 http://blog.daum.net/yojo-lady/13747122

 

헛개열매를 나누고 나니 바로 누가 또 내게 사랑의 나눔을, 사랑의 정을 보내왔다.

청도에서 감을 보내겠단다. 떫으니 깎아서 곶감이나 만들어 보라면서~~

 

외출했다가 집에와보니 그 무거운 것을 대문위로 던져서 나뒹구러지게 넣어 두었다.

두 박스나 ㅡ

상처나지 않았을까 얼른 열어 확인해보니 다행히도 괜찮다.

 

난 그녀에게는 아무것도 베푼 게 없는데 ㅡ

아마도 그녀는 다른 것으로 충분히 상급을 많이 받은 것으로 느껴진다.

 

시어른 모시고 아이 셋에 정신없이 살 때는 몰랐는데 이제 주위를 좀 둘러보고 하다못해 적은 것 하나라도 나누다보니 내게로 두 배 네 배가 되어 되돌아 오는 거 같다.

더 늦기전에 이 또한 알게 해주시니 감사할 따름이다


 




 

 

 

지인에게서 감 택배를 받고...

 

난 그녀게게 아무것도 해준 것이 없는데<떫은감이니 곶감이나 만들어 보라며~>

외출했다가 오니 대문안으로 집어 던져졌다.

<이런...먹을 게 다 찌그려졌겠다> 그러면서 감이 두 박슨줄 알고 한 박스만 뜯어보니 그리 상하진 않았다.

급히 저녁준비로 놔두고 (요즘은 바깥기온이 더 냉장고 같으므로) 감사의 문자를 보냈는데...

한 박스에는 대추가 들었단다.  일단 고맙다고 전하고  다음 날 아침에 마당에 나가 확인해보니 정성도 이런 정성이 없다.

감말랭이, 대추, 대봉감, 밤까지 차곡차곡들었다.

콧등이 찡하다.

마치 친정엄니가 꼭꼭여며 딸에게 보낸 선물꾸러미처럼~~~

 

마당에 있는 어린 감나무(잡감)는 올해 해걸이를 하는지 지난해는 가지가 부러질 정도로 달리다가 올 해는 겨우 체면 유지다.

그나마 따려고 보니 따뜻한 기온에 땡감이 홍시가 되어 절반은 직박구리란 늠이 다 파 먹었다.

먹다 매달린 감에는 초파리가 우글거린다. 그냥 다 따버렸다.

새가 똥싸는 것도 싫고....초파리도 싫고,

까치감 몇 개만 두고는 먹다 남은 것 까지 정리해서 다 따내리고 보니 내 심술이 조금 심했다 싶었다.

가지채 꺾은 감은 다 나누고 낱 개 스므알 정도는 남편이 하도 소금물 침시 운운하며 소원해쌌길래

오이지 건지고 남은 소금물에 건성 퐁당퐁당 던져두었더니 이참에 한 개 꺼내 먹어보니 감은 싱싱하게 그대론데....

반찬으로 먹기엔 너무 싱겁고, 덜 시고.....맛이 너무 약하다.

갓 딴 것처럼 싱싱하긴 하니 봄까지 그냥 내싸둬도 되겠다.

아님 소금물 더 풀어 건져내어 다른 맛을 심어주등가......(그래야겠지?)

 

보내온 감때문에 일일이 동그랗게 깎아 매달아 곶감을 만들까 하다가 건조기 한 대를 급주문했다.

전기보다 햇볕이 좋다고 뭐든 햇살에 말리기를 고집하던 내가 그만 꺾였다.

 

 가지에 매달린 감이 아닌 낱 감을 나눌수도 없고 건조기에 넣어 일단 감말랭이나 만들어야겠다.

17일 건조기가 온다니....오늘부터 감깎기 모드로 진입~~~

 


찌그러진 감을 먹어보니 별로 안 떫다.  건조기 개앤히 주문했나?

 


 

 

 

 

'웃음보따里(리) 이장님' 홍헌표!

 

 

얼마 전 감투를 하나 썼습니다. '웃음보따里(리) 이장님'입니다. 웃음보따里는 4주 전 실렸던 제 칼럼
'온몸 흔들며 함께 웃음 나눌 분 없나요'를 계기로 만들어진 동아리입니다.

평소 아무리 웃으려 애를 써도 원하는 만큼 안 되기에, 가볍게 차 한잔 마시거나 밥을 먹으면서 신나게
웃는 소모임을 꾸려볼 작정이었습니다. 많아야 10명 정도일 거라는 제 예상과 달리 1주일 만에 50여명이
동참 의사를 밝혔고, 지금은 회원 수가 74명으로 늘었습니다. 회원들이 제게 '웃음보따里 이장님'이라는
감투를 씌워준 7월 말 첫 모임에는... 온몸 흔들며 함께 웃음 나눌 분 없나요
행복해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어서 행복하여 집니다.”란 

 

홍헌표 이장님의 웃음마을을 찾았다.

 

     

 

#1  웃보리 웃음마을 이야기

       요즘 부쩍 가을을 타고 몸도 마음도 무겁고 시들머들 우울하던 차에 박재란이 우리 부부에게 함께 성곽길을

     오르자고  부탁해왔다. 혼자라서 무척 외로운가보다! 생각하곤 흔쾌히 함께 가주마고 약속했다.

     박재란 부부가 웃보리 가족이란 말은 익히 들어왔기에 그저 옷보리에서 하는 행사려니 했었다.

     박재란 김선욱 부부( Cancer 4 cure 가 건강 cycling 4 cure ) 숱한 이야기만 남기고 승화한 고 김선욱

     그래서 흔쾌히 대답했다가 남편은 바쁜 일로 못가고 나만 따라 가 본 곳이 바로 웃음보따리(里) 마을이다.

     나도 썩 잘 웃는 편은 아니지만 행사 전에 이런 웃음보따리를 풀 줄은 미처 몰랐었다. 

  

 예로부터 어른을 공경하지는 말은 공경이 잘 되지 않기 때문이다. 

 방정환님의 어린이를 사랑하자는 구호가 퇴색된 것은 지금은 어린이들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이다.

웃음보따리.... 잘 웃을 수 없는 이들의 웃음집단이다.

 

불치병이나 암환자들...담담한 가슴의 사람들이 모여 가슴 풀어헤치고 마음껏 왁자지껄 웃는 모임이다.

 

 오래전 내 아이가 아파서 원자력 병원에 입원했던 일이 있었다.

내 아이는 다행이라하기엔 너무 미안하게도(저들에게)  악성 종양은 아니었지만....

주로 어린 아이들은 골육종 Cancer를 앓고 있었다.

 

전국 각지에서 올라와서 암 치료를 수차례 받아야만 하는 아이들....주로 엄마와 함께였다.

가만 눈여겨보니 아이들 엄마끼리는 마치 끈끈한 혈육처럼 똘똘 뭉쳐 재미있게 지냈다.

 

<하하 호호~~> 아이들도 병원 복도를 마치 학교복도처럼 건강하게 뛰어다녔다. 

처음엔 도통 이해가 가지 않다가...저들의 이야기를 듣고는 핑글 눈물이 돌고 말았다.

 

 고향에 가면....집에 가면....아이와 엄마는 환자이기에 앞서 죄인이라고 했다.

 

마치 천형을 받아 그런 병이 찾아 온 것처럼 동정의 눈빛, 그런 것으로 맘껏 웃을 수 조차 없다고 했다.

남편앞이라 다를 것 없었다고 했다.

그런 똑같은 상황의 똑 같은 심정의 엄마와 아이들이 모인 것이다.

소풍 전날처럼 삼삼오오 모여 아이들 먹거리를 만들어주고 과일을 사오고~~

 

아이들과 엄마들은 마치 먼-타국으로 여행 떠나온 그런 자들의 기쁜 얼굴들이었다.

 

 

 

웃보里 역시 이런 저런 사연으로 모인 사람들은 모두 정겨웠다.

모두들 즐거워서....우스워서 죽을 지경처럼 웃어댔다.

 

 따듯한 가을볕살이 도타운 날이다.

 

서울성곽길에 올랐다. 몽마르트 언덕이라는 낙산공원에서 대학로로 거슬러 내려왔다.

 

시월 마지막 어느 날을 웃보리 마을 사람들과 함께 소풍을 떠났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내가 잘 웃지 않을 이유가 없다.

....이젠 웃어야지...목젖이 다 보이도록~

 

 

#2 낙산공원 서울성곽길 걷기

http://blog.daum.net/yojo-lady/13746630

 

  #3 성곽길 걷기 가을소풍(대학로 풍경)

http://blog.daum.net/yojo-lady/13746629

 

 

 

 

 

 

나를 그려본...종이컵 그림

 

 

 

 

 

 

 

 

교회지하실에서 잠시 웃음보따리를 풀은 뒤

서울성곽길을 올랐다.

박재란여사

 

 

 

 

 

[크로스로] [인터뷰] "죽음에 갇히지 않는 희망과 함께했다"

 

 

[조선일보] [Why] 하루 15㎞/h 속도로 말기암과 싸운 남자

 

 

  • 자전거 여행기, 암환우 돕기 캠페인 안내.

     

    고 김선욱님의 명복을 빕니다.

     

     

     

     


    어제 조용필 콘서트 장에서 만난 ‘박 수홍’과 그의 부모님이시다.

      

     우리 부부가 앉은 바로 뒷좌석이다.

     사진찍기를 허락받고 카메라를 들이대자 일어서주려는 그를 말렸다.  부모님도 계신데.. 불편을 드리는 건 나의 예의가 아니다.

     

     

     박수홍과 그의 부모님

     

     

     

    큰 키에 해맑은 미소, 짙은 눈썹, 가지런한 치아,

    서글서글한 눈매가 조합을 이뤄 단정하고 선하다는

    느낌인데 거기에다

    반듯한 외모에 반듯한 성정까지 엿보이니~~

    부모로써 무척이나 자랑스러울 것 같다. 

    그의 부모님이..  부럽다.

     

     조용필 콘서트 옆자리에 앉은 젊은이가 묻는다.

    <팬이세요?>

    얼른 대답이 선뜻 나오진 않는다. 그 게 바로 나다!!

    처음엔 안 가겠다는 남편은 오히려 신이 났다.

    좋은 자연 경관외에는 그다지 열광하는 게 없는 나!!

    좋아한다는 것에 대해선 무엇이든 미적지근한 나!

     

    은연중 방송에서 그를 늘 눈여겨보았나 보다.

    부모님 모시고 나온 ‘박 수홍’ 아마 거기서 더 반했나보다.

     

    요즘 톡톡 튀는 MC들과 비교되는 그!

    그 가운데서 그냥 묵묵히 점잔하게 제 자리를 지키는

    박수홍!

    약간 보수적으로도 보이는...가볍지 않고 신사적으로

    보이던 게...   아! 그랬었구나!

    그 근원이 부모님에게서 온 것임을 한 눈에 느낄 수가 있었다.

     

    어질고 인자하다는 표현에 한 치의 오차가 없을 듯한 그의

    부모님 느낌!

    역시나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나온다는 이치를...

     

    그런대로 ‘박 수홍’을 좋아했나보다.

    내 인증은 나 스스로 생각해봐도 실로 대단한 것이다.            

    ㅎ```     

                                                                                                    

                                                    

      `13, 06,02         이 요조                                                   

     

     

    박수홍은 1970년 10월 27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1991년 KBS 대학개그 콘테스트 동상을 수상해 성공적인 데뷔를 했다. 현재는 방송활동과 함께 웨딩 컨설팅회사인 라엘 웨딩을 경영하고 있다.

     

     

     

     

                                                       

     

    조용필 콘서트 이야기는 다음 글로,

     

    와우!! 우리는 우수외국인선원!!

     

     ***신나는 휴가를 받은 선원들 20명의 한국문화체험에 취재차 따라 나섰다.

    한국문화에 적응하려 노력하고 즐거워하는 모습에 덩달아 즐거운 하루를 보냈다.****


    그물을 잠시 내려놓은 우수 외국인선원들이 한국문화체험에 나섰다.


    수협은 지난달 25일부터 27일까지 2박3일간 베트남에서 온 선원들을 초청해 경복궁, 한국민속촌, 명동 등 서울과 경기도의 명소를 돌아봤다.   


    수협중앙회는 국내 20톤 이상 어선에 근무하는 외국인선원 중 모범 베트남 선원 20명을 초청이들 베트남 선원들은 강원도 고성군 3명, 목포시 2명, 군산시 3명, 구룡포 5명, 대형선망 7명 등이 참여해 지난 25일부터 27일까지 서울·경기 지역에서 한국문화체험 행사를 가졌다. 

     
    올해 4회째를 맞는 우수 외국선원 한국문화체험에는 베트남 선원 20명을 초청했다.
    베트남 선원들은 한복을 입고 화전 만들기, 전통 옹기성형을 체험했고 난타공연도 관람했다. 특히 올해는 베트남과 국교를 맺은 지 20년째 되는 해라 그 의미가 남다르다. 25일 환영식에는 응웬 마이 동 주한 베트남 공사가 참석해 자국 선원들을 격려했다.

     

    이번 행사에 초청된 외국인선원들은 2박3일동안 경복궁관람과 박물관관람 그리고 용인민속촌 남산타워, 등을 견학하고 이천 도예마을에서 도자기 만들기 체험을 가졌다. 


     행사가 거듭될수록  외국인선원들이 고향을 떠나 대한민국 수산업에 종사하는 자부심과 긍지를 느끼고 향후 근무를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가 한국을 널리 알리는 문화홍보대사로 역할을 하는데 소중한 계기가 되어줄 것이다.


      한편, 수협은 수산업부문의 선원인력난 해소를 위해 1996년부터 외국 인력지원 사업을 시작해 외국인선원 도입·관리를 하고 있으며 이번 행사에 이어 인도네시아 및 베트남 선원들을 대상으로도 한국문화체험을 순차적으로 실시할 계획이다. 

     

    수협중앙회 주최로 열린 한국문화체험행사에서 베트남 선원들이 즐거워하며 한국 문화체험에 신나는 일정을 보냈다.


    수협은 지난 2009년을 시작으로 중국인 20명, 2010년 인도네시아인 22명, 2011년 중국인 23명 등의 선원들을 초청해 열띤 호응을 얻었었다.

     

    이 행사는 그 동안 외국인 선원들의 국내생활 적응도를 높여 안정적인 국내생활을 도와왔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26일 경복궁 나들이로 한국문화를 이해하는 날이다. 박물관에서는 촬영이 금지되어있지만 그들의 관심도는 한국인의 출생 교육 결혼 등 한국인의 삶을 나타내는 장소에서 발이 떨어질 줄 몰랐다.

    단체로 제일 눈길이 오래 머문 곳은 서당에서 공부하는 모습이었다.

    우르르 떼지어 한동안 보이던 뒷모습에서 망양지탄(望洋之嘆)이 아닐까 생각하여 짜안했다. 

    경복궁에서 나와 인사동 거리를 스쳐 한강을 넘어 신갈인터체인지로 해서 용인민속촌으로 Go~ G0~

    용인민속촌에서 자유이용권 팔찌를 차고는 모두들 동심으로 돌아갔다.

     

    점심과 저녁을 함께 했는데 점심은 파전, 동동주, 비빔밥, 저녁은 삼겹살파티에 음식을 가리지 않고 맛있게 그릇을 싹 비우는 식성에 감탄을...

     

    민속촌 물가에 있는 오리가족들을 모두들 보고 있는데, 저들도 저 모습을 보며 두고 온 가족 생각이 많이 나겠구나 싶어 애잔한 마음이 들었다.

    가족을 멀리 두고 떠나 온 관중이 많이 지켜보는 앞에서  오리 둘은 왜 그리도 다정한척 하는거얌 ㅜㅜ

     

    수협 블로거 기자로 외부 행사로는 처음나선 취재길이다.

    아침 8시30분부터 저녁이 이슥하도록 하루 왼종일 .....다리 아플 짬이 없었다.

    누님! 이모님!  제 이런 애교어린 한국어 호칭까지 배웠을까?

    그들의 어눌한 말솜씨의 애교에 그만..피로한 줄 모르고 따라다녔다.

    하루 온종일 함께 지냈다고 저녁에는 헤어지려니 굉장히 서운하다. 마지막인 내일 남산에도 나가줄까 싶은 맘이 굴뚝이고 몸은 천근! 숙소인 리버사이드호텔까지 와서 대충 인사하고 지하철 타는 곳으로 얼른 도망치듯 빠져나오는데....

    한참을 헐레벌떡 뒤따라와서 굳이 이별의 악수를 청한다.

    에에이.....몹쓸....情!

     

     

    그냥 앉아봤다가 호되게 당했다.

     ㅋㅋㅋ 장난으로 누워봤는데.....설마했는데......곤장을 치다니!!

    모두들 외줄타기 공연, 국악비보이 공연에 푹 빠져들었다.

     


     

     


     

     

     

    오늘 하루는 그물을 던져놓고 한국문화체험도 하고 , 맘껏 즐기기도 하고~~

    마냥 신이 난 그들을 바라보는 나도 덩달아 신이났다. 

    4D입영상관도 즐기고~   옹기생활관에서 옹기성형체험도 해보고~~




     

     

     


     


       베트남과 한국을 함께 새기고 싶었다는 ....

     


     




     

     

     

     


    이 번 행사에  ▲ 수협의 김태홍님외 ▼ 임보라, 임성민, 김해용과장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문화체험 행사를 통해 외국인선원들이 조금이나마 한국을 이해하고 근로의욕을 높여 나가기를 기대 한다”

     

    “앞으로도 우리 수산업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인 이들 외국인선원이 외로움을 느끼지 않고 안전하게 조업활동을 할 수 있도록 적극 돕겠다”

     

    는 수협의 취지와 목적이다.

     

    글,사진/이요조

     

     

     

     

     

     

     

     아랫층

     

    태성입니다~

    잘 지내셨습니까~ 


    출발하기 전에 전화를 했었는데 전화가 잘 안되더라구요

    여튼 아시다시피 이탈리아에 잘 도착해서 적응하고 있습니다

    이제 보자 2주 지났네요

    일단 6개월 인턴이니 열심히 하다 될 수 있으면 정직원 되어서 일할 생각인데 

    일단 6개월 지나봐야 알겠죠 ㅎㅎ

    블로그에 들어가서 메일주소는 알게 되었습니다

    가끔 안부전해 드리겠습니다 항상 건강하세요~

    이모부님께도 안부전해 주십시오~~

    제 사진을 보내드려야 되는데 제 사진은 없어서 못 보내드리고 제가 기거하는 집 사진하고 자전거 사진 보내드립니다 ㅎㅎ

     

     

     

     

     제 두 발이 되어줄 자전거

    집 전체

     

     이층 제 방

    앞마당

     

     

     

    태성아!!

    적응을 잘 한다니 다행이구나!!

    엄마, 아빠곁엔 이젠 아무도 없어 허전하시겠다.

    난, 아직도 덩치크고 징그런 두 늠들 끼고 사느라 힘들어 죽겠는데...

    이모는 요즘들어 더 자주 여행을 다니느라 자주 집을 비웠고,,,여행중에는 혼이 나가 전화는 아예 안중에도 없었으니 말이다. ㅎㅎ

    네 떠나는 날도 몰랐다. 네가 보내준 사진....좀 낡은 듯 하지만 그런게 더 멋이 되 보이는....이태리 풍경이구나!! (좋구나!)

    그런 이태리니..네가 전공한 디자인학과와는 아주 잘 어울리는 곳이라  생각되는구나!!

    어디서든 너만은 잘 해내리라 이모는 믿는다.

    태성이 파이팅!!!

    .

    .

    피에쑤

    비싸지 않은 자전거조차도 멋져보인다.

    근디...자전거보다 체인이 더 값나가겠다(쇠값) ㅎㅎㅎ

    하긴 이태리엔 좀 도둑이 많다더라 조심하여라~

     

     

    자전거국토대장정.. (8) http://blog.daum.net/yojo-lady/2332813

    [세상아, 다 덤벼라!!] 참 대단한 놈이다.

    부산에 있는 내 여동생의 아들, 이질 녀석이 말이다.

    자전거로 그 것도 싸구려..

     

     

    :+:+:+:+:+:+:+:+:+:+:+:+:+:+:+:+:+:+:+:+:+:+:+:+:+:+:+:+:+:+:+:+:+:+:+:+:+:+:+:+:+:+:+:+:+:+:+:+:+:+:+:+:+:+:+:+:+:+:+:+:+:+:+:+:+:+:+:+:+:+:+:+

     

    2012년 이모에게 보낸 연하장!!

     

    지가 묵고있는 집에서 찍은 사진과 직접 쓴글씨로....

     

     

    고맙다.

    먼-이태리까지 가서 공부하는 만큼 열심히 하여라!

    부디 인턴에서 정직원이 되기를 기도하마~~

     

    이모가

     

     

     

    산책길이 너무 좋아보여 혼자서 울주군 올레길이라 명명했던 아름다운 길- 

    농장에서 조금 오르면 바다가 보이고...내려다 보면 호수가 있는 청정한 곳!

    이런 곳에 위치한 울산배 봉화농장

    경남 울주군 온양읍 대안리 무룡마을 봉화농장

    봉화농장 김말봉(65세)대표(010-3853-3758)

     

     

    참으로 긴-세월이다. 거의 반평생을 애오라지 외길로만 배농사에 전념!!

    그는 지방지에 <배농사 외길 44년 후회없는 삶>이란 제하에 농업인으로 기사도 실렸다.

     

    이젠 농사일 그만 접어두고 쉴만도 한데 그는 여전히 젊은이들 못잖은 열정으로 외길을 간다.

    농장가는 길은 울주군에서 다들 울주 올레길이라고도 불리우는 아름다운 곳이다.
    인근 아파트 사람들이 밤낮 구별없이 산을 오르는 정말 좋은 천혜의 산책길을 끼고 있는 곳에 농장은 자리 잡았다.
    아침만 되면 아파트에서 다른 이들은 운동삼아 산책을 나가면 그는 농장으로 운동삼아 일을 나간다.


    4년 전..환갑의 나이에 이미 두 자녀를 결혼시키고 40년간 이어온 농사일을 그만 둘 계기가 있었다.
    그 때는 배농장일 뿐만 아니라 많은 수의 양돈에 심지어 육우, 양봉까지...그러던 차에 배 농장과 주택 전체의 부지가 부산→울산 고속도로 (온양 ic) 6,000여평 이 온양 IC 인터체인지로 흡수되면서 농장 전체가 보상을 받게 되었다. 노후 정리가 제절로 된 셈이었다.

     

    그러나 모든 지인들의 예상을 반전하듯 노후에 모든 일을 정리하고 편히 살 기회를 저버리고 갑자기 일손을 놓게되면 안 된다며 좀 작은 배농장을 인수했다는 소식에 <그래 가만 놀면 뭣해...건강하려면...>하고 축하하러 가 본 즉 쉬엄쉬엄 노후를 보내겠다는 농장이 3,000여평이다.

    그만큼 아직도 건강이 허락한다는 뜻도 되겠다.
    앞서 농장과는 달리  아파트에 주거를 마련 장모님을 모셔놓고  농장에는 농막을 지어 언제나 지인들에게 활짝 열려있는 곳이기도 하다.

    평소 농장일은 부부가 모든 일을 다 해내며,  바쁜 일손에는 지인들의 도움을 좀 받는 다지만... 우리 눈에는 3,000여평도 까마득해 보였다.

    농장일 뿐만 아니라 양봉을 하며 각종 효소들을 항아리마다 가득 담구어 두는가하면 개 두어마리와 토종닭들 수십마리 그리고 텃밭들,

     

    잠시라도 부지런하지 않으면  흉내조차 낼 수 없는 일들을 그는 쉬엄쉬엄 놀이 삼아 하는 일이란다.
    학창시절부터 하던 마라톤을 예순하고도 중반인 나이에 틈이 날 때마다 아직도 계속하니 참으로 대단하다 하겠다.
     

    농막에는 효소를 넉넉히 담구어 둔 항아리들이 즐비하다. 사람이 먹어도 될 효소를 물에 희석하여  배나무에 직접 살포한다.
    농장 부근에만 가도 늘 효소익는 냄새가 술익는 냄새 못잖게 향이 코끝을 찌른다.
    효소를 거름으로 먹고 자란 배여서 그런지 당도가 높은 봉화농장의 배는 유난히 아삭하고 달고 맛있다.

     

    울산배하면 봉화농장 김대표를 우선

    떠 올리는 명실상부한 울산배의

    터줏대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농막 황토방에서 하루밤을 묵고 나오니 농막앞 시멘트 마당에 지렁이가 많이 나와서 죽어 있었다. 

    밤이슬을 즐기러 나왔다가 미처 돌아가지 못한 놈들이란다.

    농장이 그만큼 자연친화적이라는 증거다.
    그 농장아래 수십마리의 닭들은 지렁이를 먹고 살고, 그 닭들이 낳은 유정란을 사람들이 또 받아 먹고,자연은 그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베푸는 것이다.


    여태껏 지내오면서 그도 굵직한 감투란 감투는 많이도 싸봤다.  숱한 농업인 상도 많이 받았지만  이제는 아무런 욕심이나 미련이 없다며 한걸음 조용히 뒤로 물러나서는  동네 후배에게 배축제에 나가도록 조언을 베풀어 2010년도 대상을 타게끔 도움도 주었다.  평생 익힌 농법의 노하우를 나누며  이웃 농장과 서로 상생하며 살자는 것이다.

    그러자니 동네 인심은 자연 돈독해질 수 밖에 없다.  그러자니 자기 일을 젖혀놓고서라도 달려와서 봐주니  내 바쁜 일손에는 항상 지인들의 도움이 끊이질 않는단다.
    살아오면서 인심도 잃지않고, 욕심도 내지 않고 그저 묵묵히 흙만 일구는 그런 농부임에 틀림없다.

    그의 나이 오십줄에 그는 이미  자신의 무료할지도 모를 노후를 대비해서  나이들면 봉사하고 살겠노라고 건강맛사지, 침술, 봉침등을 열심히 배워서

    요즘도 시간이 나면 봉사회에 나서서  어르신들께 도움을 드리고 있다고 한다.

     

    첫 농장 보상비만으로도 넉넉하게 편히 지낼 수 있을텐데도 평생 해오던 일은 계속해야 한다면서 묵묵하게 농사일만을 지속하면서도

    짬나면 사회봉사에, 또는 마라톤의 열정을 쏟고있는 알찬 삶의 나무를 잘도 가꾸고 살아가는 참으로 멋진 농업인이 아닐 수 없다.

    앞만 바라보며 묵묵히 외길 44년을 한 우물만 파는 그 뚝심은  가히 성공한 농업인이라고 자타가 인정하기에도 충분하다.

     

    직박구리도 까치 못잖은 불청객이다. 단맛이 도는 과일을 즐겨한다.  농장 배나무 아래엔 토종닭 수십 수를 기른다. 

    배즙을 만들기 위해 수세미도(수세미즙) 부지런히 기른다.

    양봉도 손을 놓지 못하고 꾸준하게 한다.

    2010년도 울산 배축제에서

    울산 농협의 중책을 맡고있는 그(왼쪽 뒷모습)의  장남(중앙)과  김대표의 부인 한정순여사(가방을 든)

    그의 농장 농막에는 사람 좋아하는 지인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노후를 이렇게 보내야 하는 게 우리 모두의 꿈이 아닐까 싶다.

    그는 모든 열정을 바친 댓가로 그 꿈을 실현해내고 있는지 모른다.

     

    노후를 이렇게 보내고 싶다는 것!!

    도시인 대개의 소망이다.  

    유독 도시 샐러리맨들의 꿈이 아닐까 싶다.

    그는 젊음의 모든 열정을 바친 댓가로 그 꿈을 실현해내고 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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