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태백을 다녀왔다.
영월에서 태백을 오가며 나는 산봉우리의 남자다운 위상에 심취했다기 보다 푸욱 빠져 있었다.
주말에 그가 있는 곳으로(우리는 주말부부임)왔는데...
월요일 그가 나가고 빈-집에 혼자 있자니... 짝사랑하던 연인 얼굴이 떠오르 듯...그리움이
솔-솔- 피어나는 게 아닌가?
갑자기 그림이 그리고 싶어졌다.
집에야...그림을 그리지 않아 그렇지...도구는 얼마든지..넉넉한데 말이다.
왜 아무 것도 없는 이 곳에서?
나는 하고싶은 일이 있으면 못 참는다.
나중에 후회를 할지라도 하고 봐야는 성격이다.
핸드백에서 화장품 가방을 꺼내 엎었다.
종이는? 볼박스 하나를 찾아내었다.
엎어논 화장품으로 대충 칼라를 내어 보았다. (음...쓸만하다)
나는 그림 공부를 한 것도 아닌데...그리고 싶을 때는 목을 조이는 것 같아 실천에 옮겨야 죄는 숨통이 트이는 걸 느낀다.(그러나...
그림보고 웃지 마시라)
어쨌거나 내겐....숨통 트이는 방법이자 유일한 길일테니까,
쏟아논 화장품, 일등공신은 붓과 눈썹그리기 아이샤도우, 볼펜은 무용지물, 눈썹 연필은 금새 다 닳고,
빈-박스에다 그림그리기
참으로 눈물겹다.
누구였나? (헷갈린다) 유명한 화가가 끼니도 잇지 못했지만...
늘 문닫을 시간에 빵집에 가서 내일이면 날자가 지날 식은 세일 빵을 사갔다.
매일 꾸준하게 가게를 들리는 그에게 연민이 생긴 빵가게 아가씨는 어느날 그에게
따뜻한 빵을 몰래 넣어준다.
.
그
.
런
.
데
.
그 다음날, 그는 화가나서 씨근덕 거리며 나타난다.
그는 그 빵을 먹지 않았던 것이다.
지우개가 마땅찮았을 시절 식은 빵으로 목탄 스케치를 지우개로 사용하고...남은 빵을 뜯어 먹었던 것이다.
그런데...따뜻하고 촉촉한 빵을 갖다대자 그림은 지워지긴 커녕 엉망이 되어 버렸던 것이다.
왜?
나는?
집에가면 좋은 재료 다 두고는 그런 감흥이 일지도 않더니...
아무 것도 없는 빈한한 이 곳에서? 푸푸후~
악보를 받아 쓸 종이조차 없어서...머리에서 쏟아지는 악상을 다 담아내지 못하는...해서 예술혼이
더 불타 오른다는.....세기의 음악가들.....으으 윽....
언감생심(@.@) 그림도 못그리면서..별, 꼴값 떠느라 청개구리 짓을 다 하누나~
뇌리에서 떠나지 않던 산 봉우리를 그렸다.
액자가 없지만 그려서 벽에다 붙이고....다시 수정,
헌데..유치하게도 그 산에 진달래를 피우고 싶었다.
첫그림에 진달래를 그려넣다가 실수할 것만 같은 생각에 하나 더 그려보기로 했다.
립스틱을 쏟아 부어 테스트 한 결과 그런대로 마음에 흡족했다.(립스틱 purple 한 칼라 더 추가)
흐...그림이 형편없다. 그러나 기히 시작한 일, 마무리로,
박스를 잘라내어 또 다른 진달래가 핀 산을....녹색이 약간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신록을 막 잣아 올리는 봄산을 그렸을텐데....(녹색부재)
연둣빛 대신 립스틱, 보라빛을 하나 더 추가. 내 눈엔 조금 나은 것도 가토....(갸웃)
그이집에는 유치원 아이들 마냥 액자없이 가벼운 그림들이...주렁주렁~
남편 혼자서만 봐주는 유일무이한 작은 공간, 유치의 극치를 달리는 마눌, 그림 게시판이다. ㅎㅎㅎ~~~
촌스럽지만 투박하고 억쎈 나무결의 내츄럴한 액자에나 끼운다면 그런대로 봐줄만도 할 것 같은데...
ㅋㅋㅋ 과연 그럴까?
글:그림/이요조
달리는 차 안에서 스치며 찍은 사진들/영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