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간의 사랑
* 사흘 간의 사랑 *
지 난 주 금요일엔 "자랑스런 우리 강서구"의 유치원 행사가 인근 방화 공원에서 있었다. 강서구의 모든 유치원생, 부모, 선생님들이 참여하는 행사여서 만만치 않은 규모인 만큼,어 린아이를 유혹하는 갖가지 행상들이 줄을 서서 일찌감치 부터 자리를 잡고 있었다.입구에 들어서부터 잿밥에만 마음이 있는 딸아이는 솜사탕부터 시작해서 피카츄 풍선으로 이어지며 새로운 행상을 대할 때마다 눈을 반짝거렸다.
점차 시간이 흐르면서 들끓는 사람들 속에선 촘촘히 섞여 있자면 이내 히스테리가 되고 마 는 내 고약한 성미가 스멀스멀 용트림하기 시작하면서 아이의 징징거림에 대한 내 대응이 슬슬 거칠어지기 시작하고 있었다. 어린이를 즐겁게 하기 위한 공원 한 가운데서의 북, 꽹과리의 연주는 심한 소음으로만 남아 서 짜증을 북돋더니 내 인내력이 바닥을 들어낼 때쯤 다행히도 간신히 멎어주었다.
이때다 싶어서 만나기로 했던 민석이 엄마(심한 북소리에 전화가 불가능했었음)에게 전화하 려 하는데 째지는 아이의 비명이 들렸다. 누가 다쳤나 싶어서 후다닥 돌아보니 민석이가 지 고집대로 하고 싶어서 지르는 비명이었다. 그 녀석도 참...
드라이 아이스와 색깔 물을 시험관에 넣어서 무언가를 해보는 실험코너가 있었는데, 해보려 고 늘어진 아이들 줄이 족히 20여명은 되 보였다. 민석이 녀석은 줄을 안 서고 자기 먼저 하겠다고 미친 듯이 떼쓰는 중이였다. 민석이의 떼쓰는 모습에 익숙한 딸아이는(신기하게도 그 순간엔 울 딸은 어른스러워진다) 엄마들과 합세해 민석이를 달래며 하는 말이 " 민석아~ 조기 올 때 보니까 병아리 있더라아~ 무지 이쁘다. 우리 그거 보러 갈래?" 나도 못 보고 스쳐지나간 병아리를 어느 틈 엔지 눈 여겨 보아둔 딸아이는 우리 셋을 뒤로 하며 팔랑거리며 병아리 장수 앞으로 날듯이 앞장섰고 순식간에 울음을 그친 민석이도 부지 런히 딸아이를 따라잡았다.
공원 입구의 쓰레기더미에서 멀지 않은 잔디에 작게 자리잡은 얼굴이 까만 주름 투성이의 할아버지가 두개의 종이 박스에 40마리 정도 되는 병아리를 앞에 놓고 파는데 에는 흥미가 없다는 듯한 촛점 없는 눈빛으로 멀거니 우리를 바라보았다. 기이하게도 그 많은 군중 속에서 병아리에게 관심을 두고 구경을 하는 것은 우리뿐 이였다. 딸아이와 민석이는 병아리 앞에서 붙박이가 되어버렸고 난감해진 나와 민석엄마는 눈만 마 주치며 혈압을 올리고 있었다. "엄마는 병아리 못 키워""똥은 누가 칠 거니?""엄마는 무서워서 만지지도 못한단 말야""집에 가져가도 금방 죽을 꺼야" 그 어떤 엄마들의 협박의 말도 아이들은 듣지 않았다. 그저 엄마들의 눈치가 사줄 것 같지 않으니 그 자리에서 붙어 있을 뿐이었다.
점점 바람은 세 지고 날씨는 차가워졌으며 엄마들은 배가 고팠다. 병아리 장수 할아버지는 우리 엄마들의 못마땅한 눈치를 채고는 당신 혼자 우리를 그 자리에 두고 화장실도 다녀오 고 주위도 배회하며 편안한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결코 우리에겐 사라는 말이 없었다.결국 우리 두 엄마는 짜증이 머리끝까지 남을 감수하면서 병아리 한 마리씩과 모이 한 봉지씩을 아이들 손에 쥐어주고 나서야 주린 배를 채우러 공원을 나설 수가 있었다.
주변의 식당들은 모두 만원이었고 간신히 찾아들은 작은 식당 안에서도 아이들은 당연히 식 사에는 관심이 없었다. 좁은 공간 안에 손님들은 촘촘히 들어찼는데 두 마리의 병아리는 소 리 높여 삐악거리기 시작했고, 아이들은 환호성을 높이고... 옆자리의 아이들도 같이 합세해서 아우성이고... 식당 안이 금새 아수라장이 되어버렸다. 다른 손님 눈치, 식당 주인 눈치에 간신히 목구멍으로 밥을 쑤셔 넣은 우리 엄마들은 더 이 상 붙어서 수다떨 을 흥미와 기운을 잃어버리고는 각자의 집으로 찢어졌다.
집에 돌아와서 우린 부산스럽게 이웃집에서 커다란 종이 상자를 얻고, 신문지 깔고, 딸아이 소꿉놀이 상자를 뒤져 병아리의 물그릇과 모이그릇을 마련하여 임시로 병아리 집을 만들었 다. 병아리는 끊임없이 먹이를 쪼아대고 물도 마시며 딸아이의 환심을 한껏 사면서 행복을 누렸다. 계속 먹어대니 배설 횟수가 엄청나서 나는 신경질적으로 깔아놓은 신문지를 바꿔 놓으려고 병아리를 집어들었다. 앙증맞은 발을 버둥거리며 작은 두 날개를 파닥이는데, 순간 내 온 몸에 전율이 흘렀다. "이렇게 연약하게 작을 수가.......이렇게 털이 포근할 수가...."
갑작스레 이 작은 미물이 안타까워지면서 가슴 한 구석이 싸아 해졌다. 짜증을 뒤엎고 슬그머니 피어오르는 이 애정을 어찌 하노....... 분명히 민석이 엄마와 주고받은 말로는 "닭이 되면 어쩌니? 정말 큰 일이다. 길에서 파는 병아리는 다 병든 것이라는데 걱정 말자. 금새 죽을 거야." 였는데... 이젠 마음이 바뀌어 정말 병든 병아리 일까봐 걱정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저녁에 남편은 "그거 다 병든 버려진 병아리를 줏어 다가 파는 거야. 내일이면 죽어."하며 감성 없이 내뱉었다. 죽는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모르는 딸아이는 깔깔거리며 "그래~! 죽을 꺼야" 를 제 아빠 따라 복창했다. 속이 울컥거렸다. "죽다니...저 불쌍하고 작은 것이.. 말도 안돼" 딸아이가 잠들고 나서 늦게까지 혼자 병아리를 사랑스럽게 지켜보는 나를 보던 남편은 "애 하나 더 만들자아~ 당신 하나는 부족한가보다" 라며 농담했다.
딸아이는 간간이 잠결에도 병아리가 잘 자고 있는가를 물었고, 눈뜨자마자 병아리가 담긴 종이박스 앞으로 달음질쳤다 . 살살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어느새 우리 집 두 번째 요정이 (첫 번째는 딸 아이)되어버린 삐약이는 종종거리며 모이를 쪼고, 좁은 상자 곽 안에서 활개를 쳤 다. 조심스럽게 여린 몸에 타격이 갈세라 집어 들어서, 삐약이를 상자 곽 밖으로 내놓자 요놈은 사정없이 온 집안을 돌아 쳤다. 그 작은 몸으로 어떻게 그 많은 보행을 할 수 있는지.... 그 날 하루종일 우리 집은 남편까지 합세한 사랑과 경이의 탄성으로 그득해졌다.
다음 날 일요일, 귀엽게 종종 치고 먹이도 쪼고 하던 삐약이는 긴 낮잠을 자기 시작했다. 깨어 있을 땐 T.V시청조차 불편할 정도로 삐약거려서, 나는 약간은 반가움으로 이 둘째 요정 의 낮잠을 즐겼는데...
문득, 너무 오랜 시간을 잔다싶어서 설거지하다 말고 부엌에서 남편에게 외쳐보았다. "왜 이렇게 오래 조용하지?" 대답은......."죽었어~!"
놀라서 얼른 들여다보니, 엎드려서 조용히 자고있던 삐약이는 벌러덩 뒤집어져서 (사람이 누운 자세로) 눈을 뜨고 고 앙증맞은 눈까풀을 깜박거리지를 않았다. 너무 어이없는 죽음이다. 좀 아까 까지 그렇게도 잘 삐약거리고 바스락대더니..... 아주 작은 벌레의 시체조차 휴지를 뭉터기로 뽑아내야 치울 수 있는 나였는데, 이 가녀린 병아리의 주검은 내게 전혀 징그러움으로 다가서질 않았다. 파닥이던 그 조그만 날개가 너무나도 처연해서 가슴이 아렸다. 도대체 무엇이 이 작고 여린 병아리를 엄마 품에서 떼어냈을까? 아~~~,,난 이제부터는 달걀조차 먹지 않을 테다. 이게 다 징그런 우리 인간족속들이 즐겨 먹어 치는 치킨, 달걀요리 때문이 아닌가?
뜻도 모르면서 "죽었어~!"하고 제 아빠를 따라서 재미있게(?) 외쳐대던 딸아이가 내 표정을 보더니.... 마음이 전이되었나보다. "엄마~~ 병아리 불쌍해"하며 울먹거렸다.
그렇게 삐약이는 사흘도 머물지 못한 채 우리 곁을 떠났다.
딸아이가 태어나서 처음 맞은 이 이별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떤 기억으로 남게될 지는 모르겠으나 소중한 하나의 경험이었음은 분명하다. 만남, 사랑, 그리고 어쩔 수 없는 이별까지....
그리고 나서,,,,사흘 후, 난 깡그리 그 사실을 잊고 저녁 찬거리가 없어서 고민하다가, 달걀 다섯 개를 풀어서 달걀 찜을 했다.
Oct,2002 이.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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