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가거라~



아무리 작고 하찮은 것이라도
운명을 다하고 사라지는 데는 가슴이 아프다.
그 게 생명이 없을 것 같은 광물성일때...에도 역시,
우리에게 편리한 문명의 이기로 생명을 느끼게끔 해 주던 일상의 도구임에..더 더욱...

우리집 막내넘 나이랑 맞먹는 올해로 22살 난
우리집 꼬물 할부지 전자렌지는 며칠 전 유명을 달리했다.
하도 고령이라 차마 의사 쌤님 부르기는 포기했지만
22년을 한결같이 마다않고 로타리 스위치를 돌리고 스타트 버튼을 누르면
언제나 웅~~ 하면서 내 명령에 한 번도 어김없던 그 충성심~~
믿기지 않아서 정말이지 믿기지가 않아서
나는 괜스레 빈 것만 자꾸 돌려보기를... 수도 없이
불도 환히 잘 들어오고 소리마저도 여전한데...죽다니,

유난히 뜨거운 국물을 좋아해서일까? 요 며칠 힘들었다.
내가 전자렌지를 그렇게나 좋아했는지 여태 까맣게 몰랐었다.

점심 때 한 그릇의 국만 데울 때도 그랬고, 감기 기운에 쌍화탕을 데울 때도 그랬고
커피 생각이 날 때마다 손 쉬운 렌지에다 돌리니.... 더 그럴 수 밖에

없으니까 너무 너무 아쉽다.

자꾸만 전자렌지 앞까지 가서 얼쩡이다 되오기를 ...여러 번

오늘은 마음먹고 마트에 가서 딴 넘으로 더 멋진 젊은넘으로 하나 사 왔지만
아직 트렁크에서 꺼내 놓지도 않았다.

그 자리에다 덜렁 새 것이랑 바꿔놓질 못하겠다.

그래놓곤 좀 전에는 할부지 렌지에다 좀 두려워하면서도
금속 뚜껑인 딸기 쨈 병을 통채 넣어 돌려보았다

심장이 멎었을 때 전기쇼크를 가하듯..혹시나
번쩍!!푸다다닥!! 하고 되살아 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러나 기우일까? 불은 켜지고 부우웅.... 소리는 여전한데,

조용하다. 거부 반응이 전혀 없다. 확실한 사망이다.

그 뜨겁던 심장이 아예 잠잠하니 얼음처럼 냉냉하다.

왜 안되는데?? 왜??

'이 바보! 먹통! 배신자 같으니라구!"

할부지 렌지를 팍팍 쎄게 두둘겨 패 주었다.

22년을 내 곁에서 잘 지켜준 니가...

왜 갑자기 가야하는 거니??

.
.
.
응??






이요조
2003년 12월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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