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인의 자긍심을 고무시킨 왕인박사님 동상

 

 

 왕인박사 유적지를 찾았습니다.
자칫 볼 것이 없다 라는 생각을 하기 쉬운 곳입니다.
문화해설사(전갑홍)님 께서 얼마나 이야기를 재미있게 엮어주시던지 유적지가 아니라
삶의 질을 높여주는 좋은 기를 받아온 듯한 기분이 들게끔 유익하고 재밌는 설명을 곁들여 주셨읍니다.

왕인박사 유적지는 백제인의 자긍심 그 자체였습니다.
4세기 후반 무렵 일본(倭國)에 건너가서 선진문물을 전해주는 활동한 백제의 학자 왕인박사님의 묘는
비록 일본땅에 모셔져 있다하여도 그 英靈은 영암군 군서면 동구림리 산 18번지에 계신다는 것을,


*****백제는 왜국과 오랜 교섭을 가졌고 많은 인물이 직접 건너가서 선진문물을 전해주었다.
왕인도 그중 한 사람이지만 우리 기록에는 없고 일본측 기록에만 실려 있다.
그러나 기록마다 연대를 비롯하여 이름도 약간씩의 차이가 있다.
활동연대는 대략 근초고왕대(346~375)에서 아신왕대(392~405) 사이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고지키 古事記〉에는 화이길사(和邇吉師)로 되어 있는데, 길사는 백제 인명에 붙는 존칭이다.
〈니혼쇼키 日本書紀〉에는 왕인으로 되어 있다. 화이와 왕인은 발음이 모두 '와니'(Wani)이다.
근초고왕대에 건너간 아직기(阿直岐)가 왜국으로 건너가서 말을 기르는 일을 하다가 경서(經書)에
능함이 알려져 응신천황(應神天皇)의 태자 우치노와 키이로츠코[兎道稚郞子]의 스승이 되었다.
왜왕이 아직기에게 "(백제에) 너보다 나은 박사가 있는가" 하고 묻자
 "왕인이라는 사람이 가장 우수하다"고 대답했다.
그리하여 왜국에서 학덕이 높은 학자를 보내줄 것을 요청했고, 왕인이 〈논어〉와 〈천자문〉을 가지고
건너가게 되었다. 당시 백제에서는 제철기술자·직조공·양조기술자 등을 함께 보냈다.
왕인은 우치노와의 스승이 되었고, 경서에 통달하여 왜왕의 요청에 따라 그 신하들에게 경(經)과
사(史)를 가르쳤다.
그의 후손들은 일본의 가와치[河內] 지방에 살면서 문서기록을 맡은 사가 되었다고 한다.
전라남도 영암군에는 왕인과 관련된 것으로 알려진 유적이 있으나 분명하지 않고, 일본 히라카타[枚方]에는
그의 무덤으로 전하는 장소가 있다.*****

 

그냥 무심히 왔다가는 무심하게 되돌아 나갈지도 모를 왕인박사 유적지!
방명록을 보면서 거의 일본인들의 서명이 가득한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해설사님은 일본관광객들이 왕인박사님 조사당에 와서 무릎을 꿇을때면 가슴 가득히 차오르는 민족 문화적
자긍심으로 뿌듯하다셨습니다.

천인천자문 앞에서  손자를 본 조부께서 그를 어여삐 여겨 각계 존경받을만한 분들에게 천인천자문을 받아
왕인 유적지 박물관 마당에 조형물로 꾸며 놓았더군요.

바로 그 것입니다.
후세에게도 왕인 박사님을 귀감으로 삼아 그렇게 되도록 간절히 바라는 것!
저 역시나 미출가전인 자식을 셋씩이나 두었지만  손자가 생긴다면 돌이나 백일기념으로 아기를 데리고
왕인박사 유적지를 찾아서 그 땅을 밟아 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그 게 바로 후손을 위한 기도하는 절실한 마음일 것입니다.


박사의 탄생지에는 큰 너럭바위가 있고 너르고 부드러운 잔디밭으로 꾸며져 있었습니다.
왕인박사님이 탄생하신 아주 좋은 地氣가 흐르는 땅이니 실컷 느껴보라시더군요.
해설사님은 이 좋은 곳에 왔으니 氣를 받고 가야한다시며 무거운 등산화 양말등을 전부 벗게하고
氣 체조를 하게끔 도우셨습니다.
새벽 일찌감치 버스로 영암땅까지 달려와 월출산에 올랐다가 도갑사에도 드른 후라 몹시 피곤하고 지쳐 있었습니다.
잔디밭에 드러누우니 얼마나 홀가분한지....세상사 시름이 다 달아나는 것 같았습니다.

나중에야 알고보니 <영암氣건강체조 보급사업단장>이시더군요. 어쩐지...
아무튼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습니다.

몸을 개운하게 풀고는 왕인박사가 마셨다고 전해오고 있는 성천(聖泉)으로 향했습니다.
 
성천물을 마시면 왕인박사님처럼 현자(총명한 아들)를 낳을 수가 있다는 말에
믿거나 말거나지만  저도 물을 맛있게 마셨습니다.

내려오는 길에는 해는 까무룩 잠겨버리고 어둠이 깔린 서산 노을이 아직은 붉게 걸려있었습니다.
왕인박사유적지에서 바바라보는 노을도 꽤나 아름답게 보입니다.

한 번 더 뒤돌아서서 왕인박사님께 읍하고 돌아 나왔습니다.
열사흘 상현달이 몸을 불리며 밝게 왕인님 흉상을 비추고 있었습니다.

 

늦은 시간까지 안내하고 해설해주시던 전선생님께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립니다.


위치전남 영암군 군서면 동구림리 산 18번지 
문의/안내왕인박사 유적지
관리사무소 061-470-2561
이용시간
하절기 9:00∼18:00
동절기 09:00∼17:00

해설사/전갑홍/011-607-0516

 동상뒤로는 월출산의 능선이 둘러싸고 있다.

월출산 중턱에는 박사가 공부를 했다고 전해오는 책굴(冊窟)과 문산재(文山齋). 양사재(養士齋)가 있답니다.

 

 날이 어두워지도록 왕인박사님의 현명하신 氣를 받고자...

 천인천자문

한 글자 한 글자 천사람에게 글을 받아 이루어 논 조형물

 후손들이

지혜로운 사람으로 거듭 나기를

기도하는  한 할아버지의 사랑이 만들어 낸 조형물~

박물관<靈月館>

 

 왕인박사님의 英靈을 모신 사당<廟>

방명록을 쓰고

 참배를 드리고

 방명록엔 거의 일본 관람객들의 서명이다.

 

 깨끗한 길이다. 왕인박사유적지에서 바라보는 일몰이 절경이라는 곳

 왕인박사의 탄생지에는 큰 너럭바위만 있는 고운 잔디밭으로 되어있다.

 문화해설사님이 영암기건강체조 보급단장이시라더니...

이 땅의 지기를 온 몸으로 받아가라신다.

기를 실컷 받았으니 성천으로 향하는 데

날은 까무룩 저물어버렸다.

 성천이라 이르는 왕인박사님이 마시던 샘물

성천의 물을 마시면 왕인과 같은 훌륭한 사람을 낳는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성천물 마시고 땅의 기운도 받았으니 조만간 현자를 낳게되실 것입니다.

ㅎ`ㅎ`

 

야간모드로 찍었더니 흔들렸지만...훤하게 나온다.

어둠이 내려앉았는데도, 

음력 열사흘 달빛이 왕인박사님을 비추고...

 

 어두웠는데도 노을의 잔영이 곱다.

 

 

글/이요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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