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0년의 유규한 역사를 간직한 고려말 옛살림집의 형태를 그대로 보존한 아산의 맹씨행단을 찾았다.
조선 세종 때 청백리로 유명한 고불 맹사성(古佛 孟思誠/1360~1438)이 살았던 집이다.
맹씨 고택은 아늑하고 옛정취가 물씬 나는 곳에 고즈넉히 자리잡고 있었다.
맹씨 고택을 처음 접한 순간, 여태껏 보지 못했던 구조를 지닌 게 특이해보였다.
맹씨고택은 독특한 고려식 건물로 대청이 한 가운데 두칸이 있고 그 양쪽으로 방이 한 칸씩 있으며 공(工)자형 맞배지붕이 특징이다.
工자형 건축물이 얼른 와닿지 않는다면 H형 건축물이라고 바꿔말하면 우선 나 부터라도 이해도가 더 빠르기도 하다.
아산 맹씨행단이 잘못 전달되면 아산맹씨로 착각하게 된다. 아산은 지명이고 맹씨행단은 문화재명이다.
신창맹씨의 고택으로 가옥은 원래 고려말 최영(1316~1388)장군의 부친이 지어서 최영장군이 살던 집이었는데 맹사성이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늠름한 기지를
지켜본 최영이 그를 손서(손녀사위)로 삼고 집을 물려주었다 한다.
행단이라는 말은 맹사성이 심었다고 전해지는 600여년 된 은행나무 두 그루가 있어 행단(杏檀)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전하나 후학에게 글을 가르치며 공부하던 자리의 의미이기도 하다.
맹사성이 심었다고 전해지는 600여년 된 은행나무
아래 사진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옛 살림집 맹씨 고택(孟氏 古宅)이다.
맹씨고택은 독특한 고려식 건물로 대청이 한 가운데 두칸이 있고 그 양쪽으로 방이 한 칸씩 있으며 공(공)자형 맞배지붕이 특징이다.
기둥과 도리사이에는단포가 용의 혀로 장식되어있다.
댓돌을 따로 두지 않고 전체적으로 한 칸 올려서 드나들기 편하게 낮게 만들었다.
아궁이와 방구들의 높이가 얼마잇지 않아서 장작같은 직화로는 ..조금 어렵지 않았을까 생각되어졌는데
그 당시에는 구들이 그리 보편화되지 않았다는 것을 검색글에서 읽었다.
아마도 가축의 분뇨같은 것으로 난방을 하지 않았을까 짐작들게 한다.
방에서 내다볼 수 있는 작은 창이 정겨웁다.
공(工)자형 측면 드나드는 용도는 아닌 바람맞이 여닫는 봉창인듯 하다.
양쪽에 하나씩 있는 방의 아궁이가 연결된 두 개의 굴뚝모습
측면에서 본...좌우를 자른 이 그림만 보면 흡사 팔작지붕 모습을 하고있다.
눈여겨 보면
아궁이가 여느집처럼 솥을 걸어놓고 밥을 하면서 군불을 넣는 방식이 아니다.
부엌과 화장실이 모두 별채로 따로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게 특이할만한 점이다.
하루이틀이면 몰라도....요즘 주부들이라면 그 동선(動線)에 다들 두려워 할 거리다.
비바람치거나 눈이 온 날은 식사를 어떻게 준비했을까?
맹씨고택 배면과 굴뚝
맹씨행단 사당인 세덕사(世德祠)
맹씨고택 뒤안에 있는 세덕사의 아름다움
사당, 세덕사 입구에는
조팝나무가 화사하게 피어있었다.
세덕사를 둘러보고 나오자 입구에 있는 이 건물은 맹씨행단의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고불 맹사성의 유물들을 전시해두었는데, 옥으로 다듬어 만든 피리 옥적,
정교한 장식의 비녀 수정죽절비녀 ,채석포도문일월연 인 자색벼루, 옥으로 만든 사각형의 도장 백옥방인 등이 전시되어 있었다.
☏ (041)546-3027 아산시 배방면 중리 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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