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으로 떠난 여행(봉정사)

 

천등산 봉정사

 

11월30일 분명 늦가을이라고 우길 수도 있는데...

올해 가을은 실종하고 만추부터 모진 한파로 괴롭다가

안동에 도착하자 그나마 남쪽이라 군데 군데 남아있는 가을의 흔적들!!

국화와 낙엽이 꽃다이 예쁘다.

 

 

 

 

바람은 코끝에 쌩-하지만

햇살은 따사롭게 보이는 ...봉정사를 오르는 송림숲길이 예쁘다.

 

 

 

 

퇴계 선생이 머물었다가 물소리에 반했다는 명옥대

여름이면 계곡을 흘러내리는 물소리가 옥소리로 들릴 듯하다.

 

 

천등산 봉정사 일주문을 통과해야만...

악업이 씻겨지고 부처님을 배알 할 수가...

 

 

비보

쌓아둔 돌의 의미는

옛날에 풍수지리상 기가 허한곳을 이렇게 막아주고 보호한다.

 

 

6,25 전란통에 모든 역사기록서가 다 불에 타고...

건물도 소실되어 옛모습으로 재건되었겠지만

눈에 보이는 봉정사의 자태는 예사롭지 않다.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을 가진 이 곳은 우리 모두에게 자랑으로 유명하지만 정작 봉정서의 역사에 대해 알려주는 기록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영가지'에 따르면 '북서쪽 30리에 있는 천등산 아래에 있다. 신라시대에 이름난 절이 되었다.


가정 병인년(1566) 봄에 퇴계 선생께서 절의 동쪽 낙수대 건물에 붙인 시가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 16교구 본사인 '고운사'의 말사 중 하나인 봉정사의 최초 창건은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의 창건이라는 기록과 신라 문무왕 12년(672)에 의상대사의 제자인 능인스님께서 창건이라는 기록이 있으나 대체로 능인대덕의 창건으로 보고있다.

 

창건 이 후의 뚜렷한 역사는 전하지 않으나 참선도량으로 이름을 떨쳤을 때에는 부속 암자가 9개나 있었다고 전한다.
그러나 6,25때 인민군이 머무르면서 사찰에 있던 경전과 사지(寺紙)등을 모두 불태워 역사를 자세히 알 수 없다.

얼마전까지는 고려 공민왕 12년(1363)에 극락전의 육개부를 중수했다는 기록이 1972년에 실시된 극락전의 완전한 해체  복원시에 상량문에서 고려말에 제작됐다는 묵서가 발견돼 지금까지 한국에서 최고 오래된 목조 건물이 봉정사 극락전(국보15호)로 인정받게 되었고 극락전의 건립연대는 적어도 12세기 이전으로 추정된다.

2000년,2월 대웅전 지붕보수공사 과정에서 사찰 창건 연대를 확인해주는 상량문과 대웅전 내 목조 불단에서 고려말에 제작했다는 묵서가 발견돼 현존 최고의 목조건물이 극락전에서 대웅전으로 바뀔 것으로 확실시되고 있다.


대웅전 지붕의 종도리를 받치고 있는 북서쪽 종보 보아지에서 발견된 [宣德十年乙卯八月初一日書](중국연호인 선덕 10년 <1435년, 조선조 세종 17년>에 쓴 글)
라고 적힌 상량문은 경상도 관찰출척사가 직접 썼고 자사 新羅代五百之余年至 乙卯年分法堂重倉(신라대 창건 이후 500여년에 이르러 법당을 중창하다)이라는
사찰 건축연대를 밝혀주는 내용과 당시 봉정사의 사찰 규모 등이 자세히 기록되어있어 대웅전 창건 연대가 1435년 중창 당시보다 500여년이나 앞선 것으로 확인됐다.

 

이와 함께 대웅전 내 불단 바닥 우측에서 [辛丑支正二十一年 鳳亭寺 啄子造成 上壇有覺澄 化主戒珠 朴宰巨](지정 21년 <1361년,공민왕 10년>에 탁자를 제작,
시주하다.시주자 박재거)라고 적힌 묵서명도 처음 확인,대웅전 불단이 현존 최고의 목조건물임이 판명되었다.


한편 새로 발견된 상량문에는 2층 누각 신축, 단청을 한 시기, 임금으로부터 하사받은 토지, 사찰규모 등을 알려주는 내용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어
조선초 당시 봉정사는 팔만 대장경을 보유하고 500여결(1만여평)의 논밭에다 안거스님 100여명에 75칸의 대찰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봉정사는 6차례에 걸쳐 중수하였으며, 국보 제 15호인 극락전, 국보 제 311호인 대웅전, 보물 제1614호 후불벽화, 보물 제1620호인 목조관세음보살좌상, 보물 제448호인 화엄강당, 보물 제449호인 고금당,덕휘루,무량홰회, 삼성각 및 삼층석탑과 부속암자로 영산암과 지조암 중암이 있다.
특히 고려태조와 공민왕이 다녀가기도한 아름다운 사찰이다.

 

 

 

늙어 굽은 소나무가 길손을 반기는 듯~~

 

 

절 집 방문은 언제나 마음을 가다듬게 한다.

오랜 세월 마음을 갈고 닦은 사람들의 영들이 오르내리는 것만 같아서...

 

 

오랜 세월의 묵은 때가 보이는 듯한

사찰 누각을 지나 대웅전 마당으로

 

 

 

아직도 꽃이 피어있는 절집 경내는 햇살이 조용하다.

 

 

사찰누각 아래

따사로운 햇살도 모여 구도 중인듯...

 

 

이렇게 누각을 오를라치면

대웅전앞에 탑이 먼저 반기는데 탑이 없다.

탑은 극락전 앞에....그 이유는 뭘까?

 

 

 

국보 제 311호인 대웅전 

그닥 넓지 않은 조붓한 대웅전마당이

겸허하게 다가온다.

 

 

대웅전 문살이 화려하지도않고

단정한 모습이라 내 눈에는 더 좋아보인다.

 

 

국보 제 15호인 극락전

배흘림기둥에 토벽의 두 개 창살문은 마치 옥사같은 느낌이 들도록 생뚱맞아 보여..
예전 그대로 두었으면 좋았을 껄 여러번의 복원을 거쳐 고려의  옛건물이란 생각과는 멀어지는 느낌이다.

 

통상 대웅전마당에 탑이 세워져 있는데..극락전앞에 있음은

봉정사가 극락전의 건축이 먼저고 후순은 대웅전이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봉정사 삼층석탑   봉정사의 극락전 앞 뜰에 있는 이 탑은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높이는 3.18m이다.

탑의 무게로 인하여 기단부의 일부가 약간 파손되었으면, 상륜부 일부가 남아 있지 않으나 거의 완전한 3층 석탑이다.

  2중기단의 방형 석탑으로서 기단부에 비해 탑신부의 폭이 좁으며, 각층 높이의 체감이 적당한 반면

폭의 체감율이 적고, 지붕돌도 높이에 비해 폭이 좁아 처마의 반전이 약하다. 따라서 전체적으로 약간 둔한 느낌을 준다.

  이 탑은 봉정사의 극락전과 건립연대가 같을 것으로 추정되며, 당대의 다른 석탑과 비교하여

특이한 점이나 비적으로 뛰어난 점은 없으나, 전체적으로 고려 중엽의 석탑양식을 잘 갖추고 있다.

시도유형문화재 제182호

 

이 건 뭘까?

물이 고이지 않도록 만들어져 있어...뭔가 소중한 물건을 올리는 모양이다.

등불? 제례음식? 해설사도 모르겠단다.

 

 

해설사의 해설을 놓쳤다. 매우 궁금해지는 ....지하 사용도다.

 

 

불현듯 영주 부석사의 느낌이 들었다.

 

 

절집을 나서며 길을 내려오는데...

배추밭에는 고라니가 뜯어먹은 듯 배추 윗둥이 다 뜯겨졌다.

아마도 절집 텃밭인 듯...

 

그대로 다 먹으라고 이젠 내어 준 듯~~

그래 함께 먹고사는 다 함께 부둥켜 안고가는 세상!!

부처가 어디 절 집에만 앉아 있더냐

사람 마음 마음마다 다 부처가 앉았거늘...

 

 

봉정사 솔숲길

소나무 정령들이 두런두런 이야기 하며 서 있는 것 같다.

아! 좋다!!

 

봉정사의 창건설화는 아랫글에 따로 있으니 참조 바라며 많은 소나무와 시원한 냇물과 맑은 공기로
산중불교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어 불교를 믿든 안 믿든 더 없이 좋은 쉼(休)의 장소로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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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주 작은 것에 감동을 받는다.

비구니승이 있는 사찰의 아름다운 정원도 보아왔지만

겨울 황량한 정원에 무슨 꽃나무인지 표식을 해 둔 것이 감동이다.

구도자가 이렇게 작고 섬세한 아름다움에도 눈을 뜬다면 필시...

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실 도량의 스님임을.....

 

 

경북 안동시 서후면 태장리 902

전화054-853-4181

 

 

 

 

봉정사를 오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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