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록에 쌓인 절집과 운치있는 공작산 생태숲이 한자리에~ 

 

 

다시 가보고 싶은 절집 '수타사'

 

 

5월1일

봄꽃은 흐드러지지만 만개한 꽃들이 왜 더 슬프게 느껴지는 봄인지~~

아직은 나들이라고 나서기에 머쓱했다. 

강원도 홍천 땅도 예외 없이 빈소가 차려지고 곳곳에 노란 깃발이 나부끼고  근조 프래카드가 무겁게 붙어있고

수타사에도 세월호 혼령들을 위한 기도가 플래카드로 예외없이 나붙여졌다.

 

 

수타사 절집 이름의 유래

 

녹음 짙어 푸르른 수타사로 향했다.

수타사는 물길이 넉넉히 감싸 돌아나가는 절이었다.

한글로만 이름듣기엔 물하고 관계있는 절집 아닌가 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넘실대는 물이 신록의 푸르름 반영으로 어디가 물인지 어디가 숲인지 모를 지경이었다.

그래서 나름 짧은 한자 실력으로 물水에 찰타(打) 정도로 생각했다.

반영으로 초록색 숲인지 물인지 물을 건드리면 숲이 소리를 내며 흔들릴 거란 생각을....

 

수타사는 얼핏 연상되는 내 생각과는 전혀 엉뚱하게도 목숨 壽에 타는 험할 陀  현재의 이름 수타사 (壽陀寺)로 바뀐 것은 이름이 좋지 못하다하여 1811년 순조 11년에 아미타불의 무량한 수명을 상징하여 이름으로 한자로 바꾸었다고 한다.

 

홍천의 명산 공작산 군립공원 최상류 계곡의 경관이 아름답고 양지바른 곳에 자리 잡은 공작산자연휴양림 이 수타사 환경을 한결 돋보이게 하고 있었다.

공작산 수타사 생태 숲은 수타사 일원 163ha의 넓은 산림에 나무 144종 10만2271그루가 자생하고 있다고 한다.

수타사 주변을 따라 산책로와 관찰로 등이 갖춰져 있다. 숲속 길에는 15m이상 자란 나무들이 빼곡히 자라고 있었다.

 

불교신자는 아니라서 먼저 생태공원의 거대한 창포연못위로 설치된 데크목을 걸어 보았다.

여기저기 가족들과 혹은 친구들과 연인과 함께 봄나들이 나온 사람들~~

보는 사람이 덩달아 행복해지는 그런 모습들이다.

연못에 창포꽃이 뒤덮으면 또 얼마나 아름다울까?

상상해보았다. 물이 있어 한 여름에도 시원할 것 같은 이 곳!!

마침 몸을 말리려 바위에 오르는 무자수(물뱀)도 만나보고,,,

초파일을 코앞에 둔 부처님의 한량없는 가피는 뭐든 다 푸근히 감싸 안아 자연과 어우러지고 있었다.

5월 황금연휴 마땅한 곳이 떠오르지 않는다구요?  홍천 수타사는 어떠세요?

봄볕에 모처럼 나온 많은 사람들~

세월호와 함께 가라앉은 이 봄의 무거운 마음까지 부드럽게 따스하게 어루만져 주는 듯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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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숲길을 걷다가 사진도 찍다가 수타사의 성보박물관에서 문화재 <월인석보>, 지왕시왕도, 관세음보살상 사리함 등 전시된 문화재를 만나 볼 수 있었지요.

그리고 또 수타사입구 다리를 건너 맞은편 숲길로 100m 쯤 접어들면 고려시대로 추측되는 수타사 삼층석탑도  묵묵히 있더군요!

초파일 지나고 단오가 가까워오면 물에는 창포가 그 키를 자랑하고 창포꽃이 우아하게 반영이 예쁜 연못을 채우겠지요.

그때쯤 들러도 아주 멋진 경관이 되어줄 것입니다. 수타사는....

 

 

 

 

월인석보는 1459년(세조 5) 세조가 세종이 지은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을 본문으로 하고,

자신이 지은 ≪석보상절(釋譜詳節)≫을 설명부분으로 하여 합편한 책이다. 편찬 동기는 죽은 부모와 일찍 죽은 아들을

위한다고 되어 있지만, 어린 조카 단종을 몰아내 죽이고 왕위에 올라 사육신(死六臣) 등 많은 신하를 죽인 끝에 당하는

정신적인 고통, 회한과 무상(無常)의 깊은 수렁에서 벗어나 구원을 얻기 위하여 추진된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은 ≪석보상절≫로 미루어서 모두 24권으로 추정되지만, 현재 전하고 있는 것은 중간본까지 합쳐도 완질이 되지 못한다.

 

초간본 10권(권1·2·7·8·9·10·13·14·17·18) 8책과 중간본 4권(권21·22·23·25) 4책이 보물 제745호로 지정되었으며, 초간본 2권(권11·12) 2책이 보물 제935호로 지정되어 있다.

합편을 함에 있어서 조권(調卷)도 다르고 내용에도 많은 첨삭을 가하는 등 상당한 변개를 행하였다.

 

이 책은 세종과 세조의 2대에 걸쳐 임금이 짓고 편찬한 것으로, 현존본에 나타난 판각기법이나 인출(印出) 솜씨 등을 보면 조선 초기 불교문화의 정수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세종의 훈민정음 반포 당시에 편찬, 간행되었던 〈월인천강지곡〉과 ≪석보상절≫을 세조 때 다시 편집하였기 때문에, 초기의 한글 변천을 살피는 데 있어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또한, 조선 초기에 유통된 중요경전이 취합된 것이므로 당시 불교 경전의 수용태도를 살필 수 있는 자료이다.

 

문화재 <수타사 삼층석탑>이 있다. (고려시대, 문화재 자료 11)

수타사에 있는 석탑으로, 1층 기단(基壇) 위로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다.

기단에는 아무런 장식을 하지 않았고, 2·3층 몸돌이 없어진 탑신은 남아 있는 1층 몸돌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을 얕게 새겨놓았다. 지붕돌은 네 귀퉁이가 뾰족하게 치켜 올려갔고, 밑면에 1 ·2층은 3단, 3층은 2단의 받침을 각각 두었다.

꼭대기의 머리장식으로는 동그란 돌 하나가 남아 있다. 고려 후기에 세운 것으로 추측되고 있으며, 전체적으로 각 층의 지붕돌 너비가 거의 줄지 않고 있어 원래는 높고 날렵한 큰 규모의 탑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수타사성보박물관은 수타사가 소장한 보물 제745호인 월인석보의 도난 및 훼손을 방지하기 위해 수타사 경내에 4억원의 예산을 들여 완공하였으며, 2005년 5월10일 개관했다.

건축 연면적 24.67평의 성보박물관은 경보안전장치와 무인감시시스템을 갖췄으며 보물 745호인 월인석보를 비롯, 도 유형문화재 122호인 영산회상도 및 123호인 지왕시왕도와 관세음보살상 사리함 등 문화재를 보관·전시하고 있다.
성보박물관은 지난 1999년 오대산 월정사에 임시 보관됐던 수타사의 보물 제745호인 월인석보가 6년만인 2005년4월 11일 반환돼 소장된 것을 기념해 이날 개관식을 가졌으며 박물관은 일반인에게 공개되어 누구든지 관람을 할 수 있다.
 




 

참고로 저는 ITX를 청량리 역에서 출발 춘천역에 도착(2시간)

대기하고 있는 버스를 이용 이동했습니다. (60분 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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