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안사는 신라 문무왕 13년(673)에 원효대사(元曉大師)가 창건하여 쌍계사(雙溪寺)라 하다가 애장왕(800~809재위)이 다녀간 후
장안사라 개칭하였다.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때 소실된 것을 인조 16년(1638) 태의선사가 중건하였으며, 효종 5년(1654) 원정,
학능 충묵스님이 대웅전을 중건하였다. 경내에는 대웅전(大雄殿), 명부전(冥府殿), 응진전(應眞殿), 산신각(山神閣) 등이 있다.
대웅전은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 37호로 지정되었다.
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 장안리에 있는 사찰.
종파 대한불교조계종
창건시기
신라
창건자 원효대사
소재지 부산 기장군 장안읍 장안리
본문
불광산(659m)
자락에 있는 고찰로 통도사(通度寺)의 말사이다. 673년(신라 문무왕 13) 원효대사가 창건하여 쌍계사라 부르다가 809년 장안사로 고쳐
불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모두 불에 탄 것을 1631년(인조 8) 의월대사가 중창하고, 1638년(인조 16) 태의대사가
중건하였다. 1654년(효종 5) 원정·학능·충묵이 대웅전을 중건하고, 1948년에는 각현이 대웅전과 부속 건물을 중수했으며 1987년 종각을
세우고 요사를 중창하여 오늘에 이른다. 경내에 대웅전(부산기념물 37)·명부전·응진전·산신각과 석가의 진신사리 7과를 모신 3층석탑이 있다.
입구에는 5기의 부도가 있고 법당 앞에는 가지들이 엉켜 올라가는 모습을 한 높이 2.5m의 단풍나무가 서 있다.
사찰 뒤쪽에는 원효대사가 수도중에 중국 중난산 운제사의 대웅전이 무너지는 것을 알고 소반을 던져 대웅전에 있던 1,000여 명의 중국
승려들을 구했다는 전설이 전하는 척판암이 있다. 주변에 수산과학관, 해동용궁사, 임량해수욕장, 고리원자력발전소 전시관, 이길봉수대 등 명소가
많다. 기장시장에서 장안사행 마을버스가 다니며, 승용차로 가려면 기장에서 좌천을 지나 사찰로 갈 수 있다.
음력 5월 초하루 기장군에 있는 장안사를 찾았다.
장안사 부근에는 유원지로 더 알려져서 유명한 먹거리가 아주 많았다.
여동생이 하도 "언니야 장안사는 새벽에 오면 안개 낀 계곡이 너무 좋아~"
하면서 함께 간... 장안사~
사월초파일 연등이 달리기 시작하는 아담하고 알찬 사찰이었다.
다른 사찰에 비해 석조물이 유난히 눈에 띄었다.
절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휴홍준님의 글을 되새기며 동생에게 이야기했다. 사찰을 구경 오면 말이다.
첫째 그 절이 얼마나 오래 된 절인지...그 건축물을 눈여겨보고...
대웅전에 올라서서 그 절터를 한 번 가늠해 보는 거다.
예부터 사찰은 다들 빼어난 곳에 자리 잡았으니...왜 어떻게 좋은지 그 지색을 어림잡아라도
느끼려 살펴 보고
어디가 다른 사찰과 다른 점이 있는지...잘 살펴보고
대웅전 벽에 그려진 벽화를 보고.....해우소도 들러보고,,,,문 창살도 유심히 보고
탑의 모양도(미술사적 가치)유심히 볼 것이며...
언니랍시고(정작 내 언니는 안 갔으므로) 아는 척 썰을 풀었다.
대웅전 천정 탱화가 오래된 듯...특이하고 벽화 그림도 이야기가 있는 듯 보였지만...
일주일 앞둔 초파일이라서 그런지 사람들이 꽤 붐볐다.
화단에 꽃들도 아주 정갈하게 잘 가꿔진 절이었다.
장안사에 대한 사전 정보가 없어서 이, 가똑똑이도 실은 코끼리 꼬리만 잡아보고 왔다.
물론 동생이 말하던 들어가는 입구 계곡은 아마도 여름이면 세인들로 발 붙일 곳 없어 보였다.
그 날 들어서면서 계속 테이프로 스님의 독경소리가 울려 퍼졌는데...
늘 같은 구절만 되풀이되었다.
아마도 끝절은 混尼佛(혼니불) 불교의 무지함에.....구개음화로 들리는 홑이불의 환청!
"더퍼라...혼니불, 더퍼라 혼이불, 더퍼라...혼니부울 더퍼라~~"....
같아서 웃음이..절로.....( 죄송합니다. 정말 그렇게 들리데요)
아래 이야기가 늦게사 생각이 나서 덧붙입니다.
비록 '덮어라 혼니불' 이지만...'짚신 세 벌'과 무에 다를꺼 있나 싶어 혼자 웃어 봅니다.
짚신 세벌
옛날 무식한 짚신 장수 한 사람이 도를 닦겠다는 결심을 하고 고승에게
찾아가 도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고승은 사심이
없는 즉각적인
마음이 바로 부처라는 뜻으로 ‘즉심시불’이라고 짧게 대답했다.
그러자 이 짚신 장수는 무식한 까닭에 ‘짚신 세 벌’이라는 줄 알고 여러 해 동안
‘짚신 세 벌’을 외우고 다녔다. 그러던 중, 어느
날 그는 도를 깨우쳤고
마음이 곧 부처라는 것을 깨달았다.
"근데...장안사 큰스님~ 사찰 오른 켠에 큰돌로 조각된 달마스님이요 아무래도 이상해요~ 그리고 그 앞에 크고 깊고 투명한 아크릴 통에 돈이 들어 있는 것도 이상하고요"
"달마대사의 위엄이나....친근감은 전혀 없고요. 마치 삥 뜯으러 서 있는 불량배 같았어요.
조각으로서 좀 질이 떨어진다는 말씀을....따라서 아름다운 장안사의 품격에 저해 될까하여 감히...무식한 소인배가 한
말씀~~"
사진/글:이요조
달마대사 사진은 찍어오지 못했습니다.
아니 아예 찍지 않았습니다. 그럴 생각이 안들어서.....이렇게 용기내어 이야기 드릴 줄 알았음 찍기라도 할 걸...
기분 좋아지는 아주 재밌는 약숫터
밑에서 두번째 불상은 포대화상 스님인 것 같소....
서양 기독교에서는 산타크로스 할아버지에 해당되오....포대화상 살아
생전에
무엇이든 포대(자루)를 들고다니며 퍼주며 나눔과 베품을 몸소 실천한 생불이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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