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름:글/이요조
◎ 2002/6/5(수) 14:13 (MSIE5.0,Windows98;DigExt) 211.222.168.163 1024x768
| 백진스키의 그림읽기
칼럼을 쓰면서.....절반을 팔아먹은 영혼을 그리고자 했다.
자...... 악령을 어떻게 표현한다?
난, 조카넘(에니메이터).....홈피에 들어가서..... 괴물 그림을 훔쳐다 써 볼까..잠간 생각 타가.....
어디까지나 내 영혼 문제이지 싶어 그냥 내키는 대로 그리기로 했다.
치졸한 낙서에도 못 미치지만.......
.............
善을.....돋보이게 하기위한 惡을 具現하는 법!
밝음을 극명하게 드러내기 위한 상대적 음영법!
...............
세계문학 전집편에 일본 것을 읽었다.....
거의 20여 년 전에.... 작가도 잊었고...아마 일본에서 우리나라의 '이상'쯤으로 추앙 받는 작가로 기억된다.
제목은 무엇이었는지..... 기억에도 없고 地獄圖 라고 만 생각된다.
일본도 아주 헐벗고 굶주렸던 옛날의 이야기를 그렸다.
일본문학을 처음 접하면서.......그들의 劍 같은 차고도 냉랭한...정말 劍의 文化임을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귀한 독서였다.
地主가.....그림을 꽤나 좋아했다.
그 당시...한 괴벽의 화가가 있었는데.....
그의 화실에는.....아마...구역질 날 정도의(아마 죽은 짐승들의 사체,,,뭐 그런 것이라 생각된다.)
이해가 되지 않을 이상한 광경들이 묘사되었던 걸로 기억난다.
어느 날 지주는 그 괴벽의 화가에게...지옥도를 부탁하고 그 화가는 그림의 소재를 묘하게도
사람을 죽이자고 주문하기에 이른다...
불붙는 꽃가마에..... 사람을 태워서 죽이는... 지옥을 더 이상 표현할 수 없는...
해서...드디어
제일 중요한 자리에 넣을 ...마지막 그림을 그릴 그 날이 다가 왔다.
꽃가마가 나타나고...이내 화염에 휩싸였다.
꽃가마 휘장이 불에 미친 듯 타 오르고...그 속에서 몸부림치는 입에 재갈을 물린 아리따운 처녀는
그 화가의 단 하나뿐인 혈육, 홀로 길러왔던 외동딸이였던 것이다
지주의 계략에 넘어 간 것이다. 아니 그림만 전부였던.....자기의 계략에 스스로 몰린 것이었다.
고통에 일그러져......짐승과도 같은 포효를 하며.....그림을 그렸다는 소설...
지금도..... 책장에 꽂혀있긴 하지만 꺼내어 확인하고 싶진 않다.
아무튼 나의 낙서 같은 악령그림을 그린 후, 나는 .......벡진스키의 작품을 만난다.
분명 으스스한... 그림인데도...... 우리는 그가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이 그림을 그렸는지 알아야만 한다.
나도 예의 그 地獄圖같은 생각에만 미처 먼저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러나,
그가 어떤 사람인지......왜 이런 그림을 그리게 되었는지.......그의 프로필을 알고 나자....
그의 그림을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그는 전쟁을 끔찍하게도 싫어하는 반전파임이 틀림없다.
난, 그의 그림에서..지구의 종말을 보는 듯했고......황폐의 고독 무서움,,,,,참을 수 없는 적막같은 것도
보았다.......소리가 사라진.....아니.......모든 것이 실종된....폐허의 잔재들......
얼마 전 무너져 악마의 얼굴로 불타오르는 화염에 휩싸인 쌍둥이 빌딩도 보았다.
부둥켜안고 있는 남녀의 유골에서는 봄페이 최후의 날을 보는 듯했고......
(봄페이 전시관에는 화산재에 뒤엉킨.....남녀의 부둥켜 안고있는 마지막 포옹이...조각처럼 된,
화산석에 쌓여 화석으로 된 것을 전시하고 있다 함)
오염된 환경으로 썩어 문드러지는 미래를 보았다.
마치 그의 그림은 지구종말의 히든카드처럼 우리에게 예시의 경고를 해주는듯 했다.
미리 보는 지옥......
그 일본 문학의 지주가.....
그 때......벡진스키를 만났더라면...그 화가의 고명딸을 그림의 소재로 내어놓고
그 화가는 미친 듯 붓을 휘두르다가 죽어갔을,
그런 쓸데없는 노력은 안 했어도 되었을 것을.....
난, 그림을 대하면서 화가의 어린 시절 암울하고 무서웠을..... 그의 기억
戰後에는 건축가로 재건에 한몫하면서...그가 유달리 더 느꼈을.....전쟁, 참혹의 결과를...
극명하게 극단화시킨..... 포스트모더니즘.......그의 작품세계,
그가 만약에 살아있다면.....나는 정말이지 그에게로, 조용히 다가가서... 어머니처럼 가슴으로 그의 머리를 포근히 안아주고 싶을 정도의 깊은 연민이 끓어올라 온몸에 전율이 다 일어 날 지경이었다.
글/이요조
"Beksinski's powerfully unique paintings are such as I have never before seen"
H.R. Giger
2001.11.12
1929년 폴란드 남동쪽 샤녹에서 출생하였다. 어린 시절은 제2차 세계대전의 와중에서 우울하게 보냈으며, 아버지가 측량기사인 것에 영향을 받아, 1947년 폴란드 독립 후 건축학을 공부하였다. 대학 졸업 후에는 교수로 취임하여 전후 폴란드 재건에 힘썼다. 전쟁의 와중에 많은 사람이 징용되고, 폴란드의 문화는 비천한 것으로 전락된 시기에 어린 시절을 보낸 영향으로 위기감과 상실감, 절망감을 작품 곳곳에서 볼 수 있다.
파스텔과 연필을 주로 사용한 드로잉은 인간의 형상을 왜곡시킨 것이 대부분이며, 그가 추구한 추상적 구조는 그의 정신세계를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드로잉, 페인팅, 플라스틱 재료의 사용, 철판 조각과 석고 부조를 제작하였는데, 이것은 단순히 물성이 변형되어 자유로운 형태로 표현된 것에 그치지 않고, 전쟁으로 인한 파괴와 대지의 죽음, 황량한 도시의 이미지를 초현실주의로 표현한 것이다.
1950~1960년대의 작품은 볼펜과 잉크를 사용한 것이 많은데, 주제가 매우 에로틱하고 생생하다. 피부의 파괴를 통해 뼈와 살이 분리되는, 신체가 분해되는 과정도 묘사하였다. 이러한 벡진스키의 은유법은 대부분 삶의 단조로움을 표현한 것이며, 그가 나타낸 에로틱한 꿈과 상상력의 세계는 '환시 미술'이라는 독특한 장르를 구축하였다.
(출처: 두산 세계 대백과 EnCyber)
BEKSINSKI 1973. Craie noire Black chalk 그라베 그 여자의 몸 속에는 그 남자의 屍身이 매장되어 있었다 그 남자의 몸 속에는 그 여자의 屍身이 매장되어 있었다 서로의 알몸을 더듬을 때마다 살가죽 아래 분주한 벌레들의 움직임을 손끝으로 느꼈다 그 여자의 숨결에서 그는 그의 屍臭를 맡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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