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서 더 행복海
[조선일보 2005-07-15 03:01]    

여행 매니아 추천 바캉스지

[조선일보]

여행 매니아들은 올 여름 바캉스를 어디에서 보낼까. 무조건 해외 여행을 고집할까. 천만에! 국내에도 숨은 비경, 보석 같은 여행지가 많다는 게 그들 생각이다. 몸을 새우처럼 붉게 태우고, 시끌벅적하게 놀다오는 것만이 즐거운 바캉스도 아니다. 세상 시름을 잊게 하는 자연 속의 명상. 모처럼 마주한 가족들의 속엣 이야기들을 들어주며 위로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피서라고 입을 모은다. 시인 신현림, 들꽃박사 현진오, 동화작가 임정진, 도베 편집장 최승영, 영화배우 조재현 등 여행 매니아들이 올 여름 바캉스 지를 추천했다.

● 현진오의 관매도 - 풍란 향에 취해 더위를 잊는다

사시사철 식물을 좇아 전국을 누비지만 여름 피서철은 좀 꺼려진다. 어디를 가더라도 교통체증, 인파, 바가지 요금에 짜증이 나기 때문이다.하지만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여름만 되면 꼭 가보고 싶은 곳이 있으니, 남해의 섬 관매도다. 진도에서 1시간쯤 연락선을 타고 들어가야 하는 오지 섬.

이맘 때 관매도에는 지구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향기 좋은 꽃인 풍란이 만개한다. 뱃사람들이 망망대해 안개 속에서 방향을 잃었을 때, 바람을 타고 흘러온 이 꽃의 향기를 맡고 육지가 가깝다는 것을 알고 안심하였다고 전해오는 난초 풍란. 남해안 어디에서나 볼 수 있었던 식물이지만 관상 가치 때문에 너도나도 캐어가서 지금은 멸종위기 식물이 되고 말았다. 현재는 이곳 관매도와 제주도에서만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따름이다.

풍란 복원은 관매도의 얼굴이라 할 만한 해송숲에서 이뤄지고 있다. 예로부터 거센 바닷바람을 막아주는 방풍림으로서 마을의 안위를 책임져온 해송숲이 이제는 멸종위기에 처한 풍란의 보금자리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해송숲을 한가로이 거닐며 피서철에 딱 맞춰 피어나는 풍란의 향기에 취한 후에, 관매도해수욕장 맑은 물에 풍덩 몸을 던져보면 어떨까. 2㎞에 이르는 해수욕장 백사장을 걸어보는 것만으로도 먼 길 마다않고 달려온 본전을 뽑고도 남는다.

(동북아식물연구소장)

● 신현림의 하조대 - 해수욕장 삶을 명쾌하게 만드는 바다

마치 오래 전부터 꿈꾸었던 곳이란 생각이 든다. 동해바다. 하조대 해수욕장. 달콤한 설렘과 열정은 멀리서부터 나를 흔들어댄다. 몇 번이나 왔는데 새롭게 느껴지는 건 무엇 때문일까. 풍경의 군더더기 없음. 그 심플한 아름다움. 이국적 분위기. 간절히 갖고 싶지만 가질 수 없을 때처럼 그 애달픈 감정을 부르기 때문일까.

모래사장 위로 나른한 바람이 불어왔다. 한 번, 두 번 불어올 때마다 내 스커트가 부풀었다. 명주실처럼 흔들리는 수평선. 어찌보면 삶이 이렇게 단순한 것을, 왜 그리 칡넝쿨처럼 복잡하게 생각했던가. 오랫동안 힘들게 한 문제의 실마리가 풀리는 것 같다. 한 번 더 세차게 모래사장을 덮치는 파도에 내 고민은 씻겨내려간다. 가장 힘들 때 진정한 자신을 만날 수 있고, 가장 외로울 때 많은 것을 이룰 수 있음을 다시 생각했다. 바다에서는 아주 작은 감각에도 민감해진다. 감각은 명민하게, 삶은 심플하게 만드는 하조대 앞바다를 나는 사랑한다.

감미로운 손길, 따사로운 어깨, 날 네 품에 파묻고 말았어, 네 마음속에만 살 거야. 누군가는 연인에게 사랑고백을 하고, 누군가는 경외감에 몸을 떨고 살아있음에 감사할 것이다. 누군가는 가슴 뭉클한 미소를 짓고 당신에게 다가갈 것이다. 그 순간, 아무 것도 놓치지 말 것. 황홀과 경외감을, 그리움이든 슬픔이든 뜨겁게 타오르는 열애의 감정을.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양양가는 길목, 하조대는 분홍빛 노을 속에 길게 눕고 있었다.


(시인·사진작가)

● 조재현의 지심도 - 잠시 자연에 묻혀 쉬고 싶을 땐

잠시 자연에 묻혀 마음 편히 쉬고 싶을 때 경남 거제도 앞 지심도가 생각난다. ‘겨울연가’ 촬영지인 외도가 약간 ‘관광지’ 같은 느낌을 준다면, 지심도는 아직도 인공의 때가 거의 묻지 않았기 때문이다. 몇 년 전 낚시를 하러 왔다가 이 천연의 섬에 완전히 매료돼 버렸다. 약 2시간이면 돌아볼 수 있는 작은 섬이지만, 휴가 동안 한 2박3일 머물기에도 그만이다.

서울에서 대전~진주~고성~통영을 거쳐 고속도로로 운전해 약 5시간이면 거제도에 닿는다. 자녀와 함께라면 고성에 있는 세계 최대 공룡발자국 화석지와 공룡 박물관에 들를 것. 남해 삼천포 쪽에서 거제도로 들어갈 경우에는 삼천포 앞바다에서 난 자연산 회를 꼭 먹어볼 것을 권한다. 거제도에서 2시간여 간격으로 출발하는 배를 타고 10~15분 정도 들어가면 지심도에 도착한다.

지심도는 ‘동백섬’이라고도 불릴 만큼 동백나무가 많다. 해안에는 자연 발생적으로 생겨난 기암절벽들이 그득하다. 마을 주민 가운데는 이 섬에 우연히 여행 왔다가 떠나기 싫어서 영영 주저앉았다는 외지 출신 사람들이 많은데, 섬에 가 보면 그들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다.

(영화배우)

● 최승영의 청산도 - 꼬불꼬불 추억 따라 걸어보세요

전남 완도에서 배로 40여 분. 그 시간이 지루할 듯하나 청산도의 맛을 보고 난 이라면 설렘이 40분이다. 영화 ‘서편제’와 드라마 ‘해신’ 탓에 비밀스러운 즐거움을 빼앗기긴 했지만 그나마 여느 섬들보다는 덜 알려진 편이다.

물론 청산도를 으뜸으로 꼽는 데는 그 때문만은 아니다. 수심 완만한 신흥리 해수욕장은 썰물 때는 투명하기까지 한 백사장을 2㎞나 드러낸다. 방풍림 그늘에서 느끼는 한기는 에어컨의 그것에 버금간다. 1.2㎞의 은빛 백사장을 앞에 두고 200년이 넘은 노송에 기대어, 지리해수욕장에서 바라보는 낙조의 풍광은 감히 타히티의 그것에 견줄까.

개인적으로 이 먼 섬을 선호하는 이유는 아련한 추억에서 진화를 멈춘 시대성에 있다. 꼬부랑 할머니의 허리마냥 꼬불꼬불 휜 마을길. 그 길을 따라 앉아있는 논밭이며 돌담, 초가집이 아늑하다.

강태공에게는 그야말로 천국이다. 우럭, 노래미, 도다리, 광어, 농어, 참돔 등 그야말로 물고기 천지다. 밤이 되면 낚싯대와 도마, 초장을 챙겨 바다로 향하는 주민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데, 말솜씨만 받쳐주면 즉석에서 회 대접을 받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삼치회는 빼놓을 수 없는 미각의 호사다. 흐물거리는 맛이 처음에는 괴이하나 홍어삼합마냥 한 번 먹으면 그 맛을 잊지 못해 기꺼이 지갑을 비우게 된다.

(월간 도베 편집장)


● 임정진의 강릉 - 마음의 평안 찾고 싶다면…

또 강릉? 하지만 나는 가고 또 가도 강릉이 지겹지 않다. 우선 선교장에 들른다. 열화당에 맴도는 그 살가운 대화들의 흔적이 현판 곳곳에 새겨져 있는 것 같아 좋아서다. 러시아에서 들여와 잇대었다는 구리 처마에 부서지는 여름햇살, 활래정의 연꽃들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가. 단아한 한옥의 기품을 더욱 빛내주는 것은 선교장을 지그시 내려다보는 자태 수려한 소나무들이다.

일반에 잘 알려지지 않은 강문 해수욕장도 괜찮다. 이곳엔 두 개의 서낭당과 하늘 높이 솟은 진또배기(솟대)가 있다. 다른 지역의 솟대에는 대부분 오리가 올라앉아 있지만 강문에서는 바닷가 마을답게 갈매기가 앉아 있는 것이 재미있다. 하늘과 땅을 잇는, 현세와 내세를 잇는 상징적 구조물을 아이들에게 보여주면 유익하다.

너무 유명해 번잡스러워진 절이 싫다면 성산리 보광리에 자리한 보현사로 가자. 신라시대 보현보살이 창건한 아름다운 절집이다. 산세가 우람하고 골이 깊은 그곳의 아름다운 풍광에 동해안 고속도로가 가로질러 있어 민망스럽기는 하나 어쩌겠는가.

속세를 떠나 진짜 선경(仙境)에 빠져보려면 구정면 학산리에 있는 굴산사지도 들러볼 만하다. 한국에서 제일 큰 5.4m 키의 당간지주 둘이 들판에 우뚝 서 있다. 마음에 깊은 중심이 필요한 이는 그 모습을 새기고 오면 좋을 듯하다. 문의는 강릉문화원. (033)648-3014

(동화작가)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