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흐 골드베르그 변주곡
연주: 아마티 현악 사중주(현악 사중주 버전)
* 강충모의 피아노 연주 *
아리아라는 이름의 테마를 30개의 변주곡으로 연주한 뒤 다시 아리아로 연주를 끝맽는 골드베르그 변주곡은 연주가에게 심오한 구도의 자세를 요구한다. 원래 쳄발로를 위해 작곡된 작품이지만 피아노 연주가들도 각자의 개성을 표출한 연주들을 들려주고 있는데, 강충모는 김대진과 더불어 국내에서 활동하는 최고의 연주가로서 특히 바흐에 대한 연구가 뛰어나 바흐의 건반악기를 위한 독주곡을 연속해서 전곡 연주회를 가지는 등 끝없는 열정을 과시하고 있다.
바흐 - 골드베르크 변주곡 BWV - 988 (굴렌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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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드베르크 변주곡]이라는 것은 통칭이고 바하가 이 곡에 붙인 원래의 명칭은 [여러가지 변주를 가진 아리아 Aria mit verschiedenen Veranderungen]이었다. 보통 말로 나타내면 [아리아와 변주]라고 할 수 있겠다. 바하가 일찍이 작센공으로부터 궁정 음악가의 칭호를 받으려 했을 때 그 중개의 노고를 한 것이 헤르만 카를 폰 카이저링크 백작 (Hermann Karl von Keyserlingk)이라는 사람이었는데, 이 사람을 모시고 있던 클라비어 주자 요한 테오필 골트베르크(Johann Theophil Goldberg 1727 - 1756)가 있어 이 사람을 통하여 백작으로부터 작곡의 의뢰가 있어 완성한 것이 이 변주곡이다. 골트베르크는 단찌히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백작의 보호 아래 음악을 배우고, 빌헬름 프리이데만 바하에 사사한 일도 있었다. 그 후 세바스티안 바하로부터도 가르침을 받았는데, 클라비어의 연주에 뛰어났었던 것은 이 변주곡을 그가 연주한다는 전제 아래 바하가 썼다는 사실로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주제로 사용되고 있는 아리아는 1725년의 [막달레나 바하를 위한 연습곡집] 제 2권속에 있는 것으로, 바하는 이것에 30개의 변주를 붙인 것이다. 각 변주에는 주제에 제시된 저성부의 음의 진행이 원칙적으로 유지되어 가므로(단, 변주 6과 8만은 상성부) 그 점을 거론하면 샤콘느나 팟사칼리아에 가까운 형태라고도 하겠으나, 그것은 기법상의 하나의 형태이고, 이 변주곡의 본질적 기법은 아니다. 바하에게는 샤콘느나 팟사칼리아, 혹은 오르간을 위한 코랄 변주곡 같은 것을 제외하고는 변주곡다운 것은 거의 없으며, 이것이 이 장르에서 유일한 작품이라고 하겠다. 그리고 바하 자신도 이 곡이 너무나 길다고 생각했는지, 중간의 변주 16에는 서곡이라고 지시하여 후반부에의 도입적인 역할을 가지게 하고 있다. 또 하나 이 변주곡에서 특징이 있는 것은 카논에 의한 변주를 변주 3에서 6,9,12....로 3번째 마디에 두고, 또 그것을 같은 음에서 시작하여 점차 음정을 1도씩 불려 가는 형태를 취하고 있는 점이다. 그 점에서는 계산적으로 만들어 졌다는 인상이 강하여 다분히 바로크적인 영향이 남아 있다고도 할 수 있는데, 변주 기법으로서는 성격 변주의 방향에서 처리되고 있다. 또한 이 곡은 2단 건반을 가진 클라비어로 연주되도록 씌어져 있으므로 바하는 거의 모든 변주에서 그 점의 지시를 하고 있다. (클래식 명곡 대사전 - 세광음악출판사 중에서) |
♣ 독특한 바하 음악의 스페셜리스트 글렌 굴드 (1932.9.25 - 1982)
굴드는 토론토 왕립 콘서바토리를 졸업했지만 유럽이나 미국에서 별도의 음악교육을 받은 일이 없었다. 바로 이 점이 굴드의 매우 특이한 연주스타일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고 볼 수 있다. 요컨대 '음악의 중심지'가 그의 성장환경에서 빠져 있는 것이다. 굴드는 빈은 물론 프랑스에서도, 모스크바에서도 음악을 배우지 않았으며 19세기의 흐름을 이어받은 대가들에게 사사받은 일도 없었다. 그 영향이었는지 그의 음악은 고전적인 형식에 구애받지 않았으며 템포의 설정도, 프레이징 도, 장식음의 처리도 '자유로움' 그 자체였다. 여기에 기괴한 그의 성격까지 더해져서 당시로서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기상천외한 굴드의 음악이 탄생하게 되었던 것이다.
1955년 바하의 골드베르그 변주곡의 레코딩으로 데뷰하여 1982년 바하의 골드베르그 변주곡의 레코딩을 다시 한번 녹음하고 죽음에 다다른 기이한 우연이 굴드를 말할때 가장 먼저 생각하게 되는 부분이다. 흔히 그를 기인이라고 한다. 이를 증명하듯 굴드의 여러 이해할 수 없는 행위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일화가 있다.
※ 예를 들면 콜럼비아 레코드의 프로듀서였던 하워드 스콧의 이야기,
"글렌 굴드가 처음으로 콜럼비아의 30번 가 스튜디오에 온 날은 1955년 6월의 그 축축하고 무더운 때였습니다. 그는 해리스 트위드 쟈켓과 스웨터 위에 겨울 외투를 껴입었고, 쉐트랜드 울 스카프를 하고, 헝클어진 긴 금발 위에 모자를 깊이 눌러 쓰고 천천히 문을 열고 들어왔습니다. 그의 장갑을 낀 손에는, 뒤쪽에 캐나다를 상징하는 단풍잎이 그려져 있는 접는 의자가 들려 있었 고, 다른 손에는 다혈증 약병과 골드베르크 변주곡이 들어있는 작은 핸드백이 들려있었어요."- (hitel 소리모꼬지 클래식 게시판 류태형(910014th)씨 글에서) |
* 연주의 일생을 보면 골드베르크로 시작하여 골드베르크로 생을 마감한 것이 마치 골드베르그 곡의 형태와 같습니다. 아리아로 시작하여 30개의 변주를 거친 후 다시 아리아 다 카포로 곡이 끝나는 것과 같습니다. 데뷔를 골드베르크의 녹음으로 시작하여 마지막 연주의 녹음이 바로 골드베르크 변주곡으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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