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 가고 버림 받은 것들 끌어안기
아침 햇살에 물든 은행잎!!
은행나무의 배경은
동쪽에서 해가 비껴 떠오른 오전 9시경이었다.
한 달만 더 기다리면, 내가 그렇게나 보고싶어 했던 부석사 황금빛 은행나무길을 걸을 수 있을텐데...
9월 하순이라지만 늦더위가 한여름 무더위 못지않다.
그래선지 은행잎들은 아직도 여름처럼 싱그럽도록 푸르다.
아침 식사 후 바로 들린 부석사엔 지난 밤 많이 내린 비로 인해 아직 먼저 오른 사람은 거의 없어 보였다.
천년 고찰의 신비를 안은 부석사를 답사하기에 더 없이 고즈넉한 시간이다.
은행나무길은 우거진 숲그늘로 어두운 듯.. 비쳐보이다가
들어오는 아침 햇살을 받은 곳은 연신 눈부신 연둣빛으로 환해보이다가...
혼자서 길을 오르노라면 ...제절로 깊은 생각에 마냥 잠겨서 걷고 또 걸어도 지루하지 않을 명상의 길이다.
신경숙의 소설이야기를 빌자면 상처받은 자들끼리 부석사를 찾아 떠났지만 끝내 도달하지 못했던 곳이다.
설마 소설탓이겠냐마는 영주부석사엔 상처받은 사람들이 오면 치유를 받는다는 잔잔한 설이 생겨났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상처 한 두 번 받지 않은 사람 어디 없을까마는
상처 받은 사람들이 부석사에 다다르면 치유가 되는 그런 절집이란다.
상처받아 딱지가 채 굳지 않아 가끔씩 딱지 아래서 선혈이 흘러 내리는 아픈 사람들에게 영주 부석사는
세상에서 지치고 다친 사람들의 꿈의 이상향이 되어버렸다.
삿갓 김병연이 부석사를 찾아들어 세상 사느라 백발이 희끗해진 년후, 늦게사 부석사를
찾아들었다는 싯귀처럼 나 역시나 백발이 희끗해서야 부석사에 첫 발을 내 딛었다.
이 나이에 아직까지 무슨 아픈 상처가 짜다라 남아있겠냐마는...
나도 남에게서 받은 흉터 한 두개 쯤은 지지않을 흔적으로 남아있어
살아오면서 내가 누구에게 몹쓸 상처를 주며 살지 않았는지, 뒤집어 생각해 볼 일이다.
안양루를 오르는 길은 좁은데다가 올라가면서 점차 좁혀지는 느낌이다.
무지한인 내 소견에도 짐작컨데 좁은 문은 생명을 뜻하지 않나 싶다.
좁은 문이란 힘든 길, 기피하는 길, 하지만 생명으로 향한 길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게 아닐까?
형태적으로 본다면 혼자 들어가야 하는 길이고 많은 것을 가지고 가지 못하는 길이기도 하다.
어머니의 탯속에서 어둡고 좁은 길을 통과해서 중심에서 약간 좌측으로 비껴선 듯한 석등을 피해
오른쪽으로 오르면 고고성을 내며 태어나는 신생아처럼 부지불식간에 무량수전 불당위에 솟아 오르게 된다.
이 어찌 새로 태어나듯 하는 생명길이 아니고 무엇일까?
우리나라의 목조건물중 가장 오래되고 가장 아름다운 건물이라는 무량수전의 날아갈듯한 팔작지붕의 선과
무뚝뚝한 듯 무량수전을 말없이 떠받치고 있는 배흘림기둥과 하이얀 창호의 문틀과 문살의 아름다운 모습이 그 곳에 있다.
눈에 가슴에 늘 익혀져 온 것 같은 천년의 세월이 살아 숨쉬는 배흘림기둥의 불룩한 나무결을 쓰다듬노라니 아!
손바닥으로 해서 온 몸에 전달되는 촉감은 세밀하면서도 따뜻하다.
세상의 물결에 이리저리 부대낀 상한 마음을 위로하고 다스리려 한다면 명상로를 시작으로 천천히 걸어 올라보라!
주말이라면 사람들이 한창 붐비는 한 낮을 피하고...
아침 일찌감치 올라 태백 산봉오리를 부드럽게 감싸 안은 운해를 바라보거나
관광객들이 내려오는 오후 느즈막히 올라 부석사의 석양을 바라만봐도 좋으리라~
소백산 자락을 딛고서서 태백산맥의 등허리가 물결로 출렁이듯 바라보이는 곳에 허리를 쭉 피고 바로서서
침묵으로 구순하게 엎딘 태백을 보노라면 .... 세상사 아무것도 아닌 듯, 별일 아닌 듯,
저 아래 세상일이 하찮은 것인 양 갑자기 큰 해탈의 도량이 밀려들 것이다.
눈물이 나면 와락 쏟아내도 좋을터, 이내 서럽던 마음이 차분하게 씻겨나가리라~~
비바람 치는 날에나,
은행나무 앙상한 겨울,
발이 푹푹 빠지는 눈내리는 날에도...
영주부석사를 찾은 느낌을 옮기다. 사진:글/이요조 2008,9,21
은행나무 명상길
postscript
거의 인적이 안 보이는
은행나무길을 찍은 것은
함께 간 팀원들이
포토라인의 규율을 지켰기 때문이다.
은행열매가 떨어진 길바닥
우리는 정지선을 정하고 일제히 샷!!!
또 걷다가...정지하고,
제일 어눌한 줌마 포즈 의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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