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혼불문학관 *

 

혼불문학관은 몇 번이나 드나들었지만 여태 단 한 줄의 글로도 쓰질 못했다.

<혼불>을 떠 올리면 암울한 시대의 아픈 이야기보다 내 손가락, 생인손 앓듯한 내 지난날의 통증이 먼저 쫓아 나올 것만 같아서 차마 입을 꾹 닫고 있었다.

 

2015년 11월 11월에 찾은 문학관을 오르는 계단 중간에서 시들어가는 붉은 맨드라미꽃을 보았다.

피처럼 붉은 꽃 맨드라미~~

마치 그렇게 자신을 붉게 불사르며 시들어 갔을 최명희님을 뵙는 것 같아 서럽게 셧터를 눌렀다.

 

1998.12월 11일에 에 장편소설 혼불작가 최명희님의 별세소식을 들었다.

그 당시에는 <혼불>을 읽진 않았지만 매스컴에서 하도 떠들석해서 언젠가 읽어보리라 생각했던 게 4 년이나

지나서야 손에 쥐어 볼 수가 있었다.

제 4 권을 읽고 뭐라고 중언부언 쓴 글이 아직도 블로그에 있는 걸 보면....

10권을 채 다 읽었는지...지금 생각해보니 마지막이 마지막인양 그리 선명하게 끝나지 않았던 것도 같고

<혼불>을 읽는 그 당시 내 상황도 혼불의 시대처럼 지극히 암울했었다.

 

2002년은 병원생활중이었다.

당시 병원에 수레에 문고를 끌고 오는 봉사자들이 있어서 책을 쉽게 빌려 볼 수가 있었다.

나는 기꺼이 <혼불>을 읽으며...다음책 1,2,3,4를 읽어 나갔다. 블로그에 끄적거린 걸 일부분 다시 되돌려 보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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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명희 님의 '혼불' 4권을 읽다가
마음에 집히는 대목이 있어서 옮겨 써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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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개 이름 없는 아녀자가 제 쓰던 바늘이 부러진 것을 보고 애통히 여겨
조침문(弔針文)을 쓴 여인이
있었던 것처럼,
손때 묻은 바가지 한 짝 깨트린 것을 슬프게 여기어 조표자가(弔瓢子歌)를 애절하게 써서
마음을 달래며 바가지한테는 침중 위로를 한 글도 있다.

이러한 노릇이 바로 마음 가진 인간이 저절로 취허게 되는 '짓'이며,
발전허면 '도리'가 되는 것이다.

생명없는 바늘 한 개, 바가지 한짝에도 간곡한 제문을 지어 이제는 명을 다한 물건과 사람이
서로 교감을 할진대, 하물며 우주의 영물이라 하는 사람이랴

이를 증명하여 소고당(紹古堂)이라고 당호를 쓰던 고씨 부인은 궁체 달필로
두루마리에 규방가사 한 편을 남기었으니, 이름하여 '조표자가'이다.


오호통재 오호애재 다락방을 청소하다
아차실수 손을 놓아 두쪽으로 내었으니
애닯도다 슬프도다 이바가지 어이하리
아름답고 고운자태 삼십년을 곁에두고
너를사랑 하였거늘 차마못내 아까워라
모시끈에 합쳐보자 에고에고 내바가지

........중략


여름이면 주렁주렁 무겁게 열어 지붕이나 토담에 지천으로 익어 가는 박을 따서
그 반쪽으로 만든 바가지 한 개도, 하루 이틀 아니요 삼십 년을 곁에 두고 아침저녁 손에 들면
그 것이 어찌 한낱 물건이리.
정령이 스밀 일이었다.
사람의 기운은 독한 것이라

그 손이 닿는 것은 인(燐)이 묻어 한밤중에도 파랗게 불을 켜고 심지어는 부지깽이나
몽당 빗자루 같은 것도 쓰다가 아무데나 내버리면 저 혼자 도깨비가 된다.
저한테 스민 사람의 기운을 이용한 변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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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엣 글은 옮겨 쓴 '혼불'의 일부분 발췌문)

 

여기서 나는 정령이 스밀 일이라~는 대목에서 이 글이 마음에 와 닿았다.
나는 옛 조상 님들의 정령이 깃 든 듯한 물건을 정신 없이 좋아한다.
왠지... 옛 사람들과.. 시공을 초월해서
그 정령들을 만나 보고 지고 할 것도 같아
그 가신 분들의 숨결이 들려오기도 하고
그 분들의 영혼을 대할 수 있을 것 같아 무조건 좋다.

오랜 세월의 때가, 오랜 숨결이 묻어날수록  내밀한 많은 이야기가 숨겨진 것 같은 그런 옛 물건이 너무 좋아서

 갓 태어난 빤지레한 물건보다 정령이 깃든 듯한 옛 물건을 수집하기를 좋아하는데...

울퉁불퉁 집에서 만든 듯 곱지 않지만 정이 가는 떡살!

손 때가 묻어  반지르르해진 떡살, 이 물건의 참 주인 그 삶은 어떠했을까?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서 남편이 직접 깎아 만들었을 그 정성이  그 사랑이이 내게도 마구 전해지는 듯 하다.

 

내 어머니가 쓰시던 인두 하나에도..내 어머님의 숨결을 손결을 바느질하시던 모습이 서려있고..

 

어찌 손 때 묻은 한낱 물건인들 그 주인의 성정을 아니 닮을손가?
그 주인의 애틋한 보살핌 같은 사랑을 어이 모르랴!
내가 왜 지금 이 글을 쓰려고 발췌해냈는지...

 

사실은 병원에서 울려퍼지는 '코드블루'와...영혼을 담아오던 질그릇들이 금이 가고 깨어지는 장면을 무수히 보아왔다.  늘 사용하던 물건 하나에도 정령이 스민듯 소중히 여기거늘....

여기저기서 마치 악령이 깃든 듯...제절로 금가고 녹쓸고 녹아내리는 영혼을 담아왔던 그릇들~

(이상 옛글 독후감 중에서)

.

한마디로 혼불은 읽을수록 아프다 못해 저리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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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또 이런 책도 읽었으니...내가 너무 암울한 탓이었을까?

"영혼을 깨우는 이야기" 제리뉴콤/편집의 오헨리, 도스토 옙스키,찰스 디킨스 등의 글들을 모은 책에서

사망아 내려가라 장례식 설교 (사망을 속이기까지, 사망아 내려가라!)

우울할 때는 우울한 음악이 위로가 되 듯, 마음과 몸이 피폐한 그 당시에 혼불은 고맙게 매우 잘 읽었다.

흡인력있게 쭉쭉 영혼으로 빨려 들어왔다.

그러나 지루한 병원생활을 하는 내겐 너무 어둡고 무겁고....짜증났다.

 

좋았던 점은  내가 새로운 을 익힌다는 것!

면역력까지 높여준다는 지혜의 다이돌핀이 마구 쏟아나게 만든 것!

인생의 생로병사와 그리고 모든 관혼상제등의 기록등이 내가 유난히 싫어했던 역사책처럼 세세하게 기록된 것이 이상스레 흥미로운 감동을 주었다.  마치 역사를 잘 익히기 위한 만화책처럼 ....

한마디로 <혼불>은 우리 조상들의 생활관습등을 일러주기 위한 소설의 장르를 빌린 생생한 살아있는 기록, 역사였다.

 



 

 

문학관 마당에 들어서자

어디선가 나타난 실로 귀한 노랑나비가 하르르 하르르 날아다닌다.

마치 최명희님의 혼 이라도 실린양 나는 노랑나비를 쫓아간다.

<남방노랑나비>

곧 추워질텐데 어쩌누? 나비는 노란 단풍잎 사이로 숨는다.

왼쪽 그림 정중앙에 날개를 접고 매달렸다.

 

 

난 단숨에 달려간 곳이 또 있다.

건물 뒷편에 돌맹이에다가 소원을 쓴 기억에...

아마 다 없애버렸을거야 하며 달려가보니

감사하게도 돌무더기에 곱게 헨스를 치고 쌓아두었다.

어딘가에서 내 소원돌맹이가 숨을 쉬고 있을테다.

소원이 이루어지도록~~

 

 

1947년생이니 향년 51세로 별세했다. 안타까운 나이다,

최명희님은 80년부터 필생의 역작인 「혼불」의 집필에 들어가 95년 10월까지 만 7년 2개월 동안 월간 「신동아」에 2부에서 5부까지를 연재, 국내 월간지 사상 최장 연재기록을 세웠다.

「혼불」은 어둡고 억눌린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의 꺼진 혼불을 환하게 지펴올렸으며 세시풍속, 관혼상제, 음식, 노래 등 민속학과 인류학적 기록들을 아름다운 모국어와 극채색으로 생생히 복원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최씨는 이 작품으로 지난해 단재상과 세종문화상에 이어 올해 여성동아대상, 호암상 등을 차례로 받았다. 이밖의 작품은 단편 <메별> <만종> <정옥이> <주소> 등이 있다.

 

작가 최명희는 1947년 전주에서 태어나 전북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국어교사로 재직중이던 198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쓰러지는 빛」으로 당선 등단하고,
그 이듬해인 1981년, 동아일보 창간 60주년 기념 장편소설공모에「혼불」(제1부)이 당선되어 이후 집필 활동에 전념했다.
「혼불」은 1980년 4월부터 첫 장을 쓰기 시작하여 1996년 12월에 이르기까지 만 17년간 투혼하며 집필한 작품으로 총 5부 전 10권으로 출간되었다.
「혼불」을 통해 한국문학사에 한 획을 그은 최명희는 단재문학상, 세종문화상, 동아대상, 호암예술상 수상, 전북대 명예문학박사학위, 정부에서는 국민문화훈장을 추서했다. 다른 작품으로는「몌별(袂別)」,「만종(晩鐘)」,「정옥이」,「주소」등 20여편의 단편과 수백 편의 수필이 있다.
최명희는「혼불」을 통하여 순결한 모국어를 복원하고자 했으며, 뉴욕주립대학교 초청에서 강연했던 글「나의 혼, 나의 문학」은 뉴욕대 한국학과  고급한국어 교재이기도 하다.

「무엇이 나로 하여금 이렇게 끊임없이 “혼불”을 쓰게 하는 것일까. 여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터이나,
첫째로 가장 중요한 바탕을 이루는 것은 나의 ‘근원에 대한 그리움’일 것이다.
이를 다른말로 하면 ‘나 자신에 대한 그리움’이라고 할 수도 있으리라.
나는 인간과 자연과 우주와 사물의 본질에 숨어있는 넋의 비밀들이 늘 그리웠다.
그리고 이 비밀들이 서로 필연적인 관계로 작용하여 어우러지는 현상을 언어의 현미경과 망원경을 통하여 섬세하게 복원해 보고 싶었다.」
                                                                    -미국 시카고대학 초청강연 중에서-


집필하던 님의 책상과 육필원고



<혼불>에 등장하는 생로병사, 관혼상제의 디오라마 중에서

 

시간이 넉넉하면 책도 좀 꺼내보고 쉬었다오면 좋으련만...

혼불마을의 저수지<청호지>

제 9 장 베틀가에 나오는 청호지와 그 반영

옛 일을 아는지 모르는지 말이 없다.

 

 

 

저수지 반영을 찍고 돌아선 16여 분 뒤

그 날 오후 5시 11분(카메라 정보에 의하면)

지는 해를 찍었는데 역광이라 사진 속의 태양은 어둠속에 달처럼 떠올랐다.

글 쓰려고 사진 준비를 하다가

나는 문득 <망혼제>를 떠올렸다.

저녁해가 넘어가고 어둠이 내려앉는 시간에 치루는 망혼제는 인간세상과 인연을 정리하라는 뜻으로

죽은자의 적삼을 뒤집어 지붕위에 던져걸고 <훠어이~ 훠어이>

그리고는 함께 갈 저승사자의 밥도 대문간에 챙겨둔다.

먼-길 잘 모시고 가라고...

이렇게 혼을 보내는 것을 시작으로 발인제등....의식을 차례로 치루는

망혼제가 갑자기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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