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름:이요조

2002/7/14(일) 13:53 (MSIE5.0,Windows98;DigExt) 211.222.169.196 1024x768


"참 병이다 병..."  


긍지란 무엇일까?









사람 사람에게는 저마다 한가지씩은 잘 하는 것이 있어 저마다 그로 인한 대단한 긍지를 갖게 한다.



이 긍지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좀 우쭐해져서는 누구를 가르치려 들고 자기 방식대로 주장하려 들 때..

그  습관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 어느덧 몸에 베이다 보면 남들 하는 짓꺼리가 모두 마뜩잖아지기 시작한다.



나도 한 긍지를 가졌다.

매사에..'만만디'인 내가 예전에 초보 주부일 적에..시어르신이 사들고 오신 아나고 횟감을 씻고 또 씻어

그야말로 단물을 다 빼서...솜뭉치로 만들었던 실수의 기억이 있다.



친정 어머님은 그닥 교육은 많이 받으신 분은 아니셨는데도 양재기본도 없이..암홀이 뭔지 모르셔도

우리들에게  손수, 잠옷이랑 원피스 브라우스등도 곧잘 만들어 주셨던 무척 부지런하시고 솜씨 좋은 분이셨다.



딸 여덟 자매중..둘째인 어머니가 제일 먼저 돌아가시자

이모님들은... 언니~` 언니~` 그재주는 우리나 주고 가지....하며 울었었다.


비오는 날은 게으른 여자들은 잠자기 좋은 날이고 부지런한 여자들은 일하기 좋은 날이라고 하시며

머리에 수건하나만 달랑  쓰신 채 비를 맞으시며... 계단청소를 하시던 분이셨다.



어렸을 적, 육이오 난리통에.. 피난 내려 오신..한 깔끔한.. 평양 아주머니가

우리집 문간방에 세들어 사셨는데 아마 어머닌 그 때..음식 솜씨도 전수 하셨는지

사람들은 모두 어머니의 손끝 맛에 찬탄을 마지 않았다.



그런 어머니신데..... 이 사실을 아셨으니...나는 당연히 큰 야단을 들은 것은 너무나도 자명한 사실이였다.



"에그..내탓이로구나.. 저것들.. 하는 것 성에 안 차서 당췌 시키들 않았더니

오늘 이렇게 사돈님께 걱정을 듣는구나.. 여잔 모름지기 일손이 재야 하는 법...

느려터진 손으로 횟감을 주물럭댔으니...안봐도 훤하구나~~  ㅉ~ ..........................."



그 후로..얼마 못가 내,어머님은 이내 병마로 돌아가시고 그 말씀은 내게 유언처럼 각인되어 왔다.



어느새.. 내가 그 때,  어머니 나이가 되어 간다.

이젠 요리학원에 다니면서도 내가 손이 제일 잰 학생이 되었다.



손이 재어서가 아니라 부엌일은 일손의 순서였다.

즉 일머리였음을 ..그 道를 깨우친 것이다. 그리고 한 평생 살아 오시던 당신의 생활 모습들이

뒤늦게...흑백영화처럼... 왜? 내게 낱낱이 리플레이 되어 가슴을 후리며 오는건지...나는 이제사 안다.



오이지를 담근다. 미리 먹을 것, 두고 먹을 것,  나눠 줄 것...  

삭은 오이 맛을 보고 냉장고에다 보관 할 때는 다시 맛간을 첨가해서 마지막 끓인물을 붓는다.

심심하게 할 것 따로... 약간 피클형으로 할 것 따로....

썰어서 양념까지 해서..병에다 담고...그 병 두껑은 모아둔 포장지로 윗 옷을 입힌 후

역시 모아 둔.. 리본으로 예쁘게 묶어서.. 선물하는 이 즐거움,



이젠.. 이 모든 것이 아무도 못말리는 나만의 긍지가 되어 버렸다.

장마 전... 밑반찬 준비로 사와서 담근 오이지, 한 접이

두접이 되고...또 다시 세접이 될 때.. 나누는 마음의 행복지수는 비례한다.



군에 간 아들 면회를 가도, 고속도로..먼 길을 떠나도,

언제나... 휴계소 등나무 아래 도시락을 펴는 우리 집...정오도 되기 전.. 밥 먹자고 보채는..

남편이 있는 한... 나의 이 작은 긍지는 계속 될 것이다.



남편에게 아내로서의 늘 떳떳함이 따로이 있다면..

난 바로 이 것이다 라고 대답 할 수 있다. 최소의 경비로 최대의 효과적인 음식제공을 한다는 것,

먹을 것을 챙기는데도..나 스스로 생각해 보아도 귀재다. (자화자찬?..암튼..ㅎ~)

많이 먹진 않아도 뭔가 계속 자주 먹어야 하는 남편... 그 입에다 무언가 꾸준히 건네주면서

즐거이 받아 먹는 오물거리는 그 입을 볼 때... 난, 먹지도 않고 배부르고 난 있는 그대로도 충분히 행복하다.



약속을 좀체 않는 나, 약속은 언제나 나를 그 날까지 부담스럽게 한다.

왜냐면 꼭 지켜야 하므로...그러나 어쩌다 무지개같은 약속은 꿈꾸는 시간이 길어서 좋아한다.

전국에 분포된.. 남편의 동창친구..열댓명의 모임..그 날은 우리 모두를 설레게 한다.

마치...수학여행을 떠날 어린 아이들처럼,

그렇지만.. 그것은 일년에 딱 두번이고,

가까운 지인들 중에 부부끼리 자주 떠나는 단 한 집 우린 이젠 모두 서로를 닮아 있다.



날씨가 너무 좋은..국경일 같은 날 서로는 갑자기 전활하고

가까이 떠날때는 그냥 전화 한통화로 '우리 바람 쐬러 갈래요?" 그 걸로 끝이다.



각자 집에서 냉장고에 있는대로 주섬주섬 담는다.

언제는 끼니도 막 때웠고..해서 보온병에다 냉동실에서 꺼낸 누룽지..

뜨거운 물로 몇번 튀기듯해서 마지막으로 팔팔 끓는물 부어 출발했다.



한적한 개울로 내려갔다. 모두 조금 출출한 모양이다.

즉석 누룽지탕을 꺼내놓았다. 잘 익은 김치랑..젖갈이랑 딱 맞아 떨어졌다.

웬 누룽지탕?...뜨겁고도 부드러운... 간만에 먹는 누룽지..

(식은 밥이 남았을 때..후라이팬에다 밥을 잘 펴서...은근히 두면

저절로 노릇한 누룽지가 된다. 그 누릉지를 냉동실에 모아두면.. 된다.)



가만 생각해 보니... 언제든..먼 길을 떠나도 먹을 것을 만지는 것은 언제나 나였다.

언제부터 그렇게 되었을까?  언제 적부터 내 어머니처럼...

남의 손길을 믿지도 못하지만..아예 믿으려 들지도 않고,  

나만 고달퍼지는 이, 짓꺼리에 탐닉당하고 있을까?



얼마전..딸아이 친구가 집으로 왔다.밥을 한끼 차려주면서 보니..젖가락질이 너무 서툴다.

그래서 시집가서 음식 장만할 때, 부침게나.. 튀김등을 어떻게,

날렵하게 뒤집어 가며..일을 할 것인지.. 젖가락질은 그 아귀에 힘이 들어 김치라도

한 손으로 쭉 쭉 찢어내야 한다고 더구나... 여자라면, 하는 궤변도 늘어 놓아본다.



오늘 아침 식탁에서는 우리 어머님..잡수시고 늘..그렇게 부탁말씀 드려도

내가 한눈 파는 사이 김치 보시기 두껑을 그 새 닫아 놓으셨다.



김치 붉은 양념이 약간 묻은 유리 뚜껑이 가지나물 그릇 두껑으로 닫겨져 있다.



"엄니.. 관 두세요 제발~ 이래서 제가 한다니까요"

두껑까지 들어 보이며 덧붙여 말씀 드려 놓고는..이내 후회한다.



"참 병이다 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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