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진해 경화동의 하사관 학교에서 하사관 기본교육 28주를 마치고 새벽 미명에 서울 용산역에 도착한 우리 악만 살아남은 46명의 해병 신임 하사관들은, 우리를 수송하기 위해 김포 청룡부대에서 나온 '청룡 버스'에 나눠 타고 김포 반도로 떠났다.
말로만 듣던 전방으로 향하면서 소문으로 익히 들은 '청룡부대'에 대한 공포감을 서로 나누던 우리는 김포읍을 지나서도 30분이나 계속 북으로 달려가는 버스 안에서 점점 말을 잃어갔다.
모두들 말을 안하고 있었지만 속으로 '전방이라더니 이러다 정말 철책선 앞에 내리는거 아냐'라는 생각으로 두려움반 호기심 반 뭐 그런 생각에 젖어 있었다. 그 때, 어떤 놈이 신음소리를 내듯 나즈막한 소리를 질렀다.
"씨벌... 다들 밖에 봐봐..." 그놈의 말에 밖을 쳐다 본 우리는, 하늘에서 엄청나게 쏟아지는 '눈'을 보고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세상에 벌써 눈이라니... 이게 말이 되는가.. "조오또... 서울에서 반팔 입고 입대한 게 엊그제 인데 여긴 벌써 눈이 오는구만..."
눈을 바라보며 어처구니없어 하던 우리는 차창에 스치는 길거리마다 빨간바탕에 노오란 글씨로 새겨진 청룡부대 마크들을 보며 오싹함을 느꼈고, 유격 부대 마크가 걸려 있던 '벽암지 교육대'안에 임시로 만든 하사관 특수교육대라는 곳에 들어서면서 그 앞에 걸려져 있던 구호를 보고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국가가 부르면 어디를 가도 최정예 전투 요원으로... ' '누구나 해병이 될 수 있었으면 난 이곳에 오지 않았다. '한번 해병이면 영원한 해병이다' '선배 해병의 명예에 누를 끼치지 말자' "악을 기르자" '죽음을 각오하면 못할 것이 없다'
젠장......이윽고 버스가 멈추더니, 버스 문이 열리고 빨간색 팔각모를 쓴 교관이 버스에 탑승했다. 눈이 안 보일 정도로 모자를 깊게 눌러 쓴 그 교관은 우리를 보고 나즈막히 말했다. "연병장에 4열 종대로 집합하는 시간 25초 준다. 만약 늦는 새끼가 있다면..." 그렇게 말한 후 교관은 모자를 살짝 쳐들고 우리를 바라보았다. 그리곤 말했다.
"죽. 인. 다. "
우리는 잠시 내리는 눈을 보며 젖어있던 상념에서 후다닥 깨어나 번개같이 버스에서 뛰어내렸다. 왜냐면... 교관의 눈은 인간의 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뒤로... 우린 태어나서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다고 느꼈던 지난 7개월의 하사관 학교 생활의 공포감에 비해 거의 두배의 고통에 시달리며 혹독한 훈련을 받았다. 우리들에게 교관들은 말 그대로 전술학이나 가르치는 선생으로서의 교관이 아니라 팔각모를 깊게 눌러 쓰고 구타라는 먹이를 찾아 헤매이는 '하이에나'였다.
그들은 무슨 일이든지 우리들을 심한 욕과 구타로 윽박질렀다. "옷 벗는데 30초 실시!!" "샤워 하는데 3분 실시!!" "전투화 끈 매는데 10초 실시!!" "식사시간 15초 실시"
그들은 시간내에 우리가 완수하지 못할 때엔 자신이 갖고 있는 정신봉으로 우리의 어느 부분이든 골프 풀스윙하듯 후려갈겼다. 무방비 상태로 맞은 동기들은 특히 얼굴부위를 맞을경우 입안이 다 터져 며칠동안 밥도 제대로 못 먹을 정도였다.
이렇게 숨쉴 수 없는 날들이 이어지던 어느 날... 중요한 훈련을 눈 앞에 두고 내무반에서 교육대 최고의 악명을 날리던 독사 교관이 훈시를 하고 있었을 때였다. 야간 침투작전 중 가장 중요한 훈련에 대한 설명이었기에 분위기는 그 어느 때보다도 살벌했었고 모두들 교관이 그 악명높은 독사 교관인 관계로 그의 일거수 일투족에 눈빛을 초롱거리면서 집중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뿌우우웅~~~!!" 난 내 옆에 앉아 있던 놈의 히프 쪽에서 터져 나오는 이 소리에 흠찟 놀라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 순간, 모든 동기들의 시선이 내 쪽으로 오는 것을 느꼈고, 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를 하듯 돌처럼 굳어 버렸다.
"......" "......"
숨막히는 정적이 흘렀다. 방귀를 꾼 내 옆의 놈은 물론이고... 방귀소리에 놀라 이쪽을 쳐다보는 동기들의 모든 눈엔... 공포의 정신봉과 이단 옆차기가 날라올 것이라는 공포감이 가득했고... 방구 소리가 인근 지역에서 들려 주범으로 오해받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지독한 방귀냄새가 코로 밀려 들어와 숨도 제대로 못 쉬는 두 가지의 복합적인 고통 앞에 나는 정신이 아득해져갔다.
"흐음..."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구타에 예외를 두지 않던 독사가 아무 말 없이 하던 말을 이어가는 것이었다. 아마도 그 역시 생리현상은 어쩔 수 없었을 거라고 생각하였던가...기가 막힌 표정으로 내 쪽을 쳐다보던 동기들은 안도의 눈빛으로 시선을 거둬들였고... 나 역시 안도의 눈빛으로 내 옆에서 방귀를 낀 진짜 주범을 쳐다보며 깊은 숨을 내쉬고, 내 옆에서 방귀를 끼고 본인 스스로가 더 놀랬던 그 놈 역시, 나를 안도의 눈빛으로 쳐다보며 한숨을 쉬는 찰라에...
"푸식... 푸식... 푸시식..." 오옷!!!!!! 이 미친 자식이!!!!! 너무나 안심이 된 나머지 기도 안 막힌 방귀소리를 내었던 것이었다!!! 더 이상의 용서는 바랄 수도 없었다. 평소 깊게 눌러 쓴 모자에서 눈동자를 발견할 수 없던 독사가 지휘봉을 던져버리고 내 쪽을 쳐다보았다. 그의 눈빛은 분명 '어느 자식이야!!'라고 묻는 게 역력하였는데... 그 눈빛에 나는 본능적으로 '예31번 올빼미 하사 임!두!만!'이라는... 내가 범인임을 자수하는 관등성명을 대 버리고 만 것이었다.
그 순간... "휘이익!!!" 빛보다도 빨리 그의 정신봉이 내 주탱이를 날려 버렸고 그 뒤로 태권도 3단을 자랑하는 교관의 이단 옆차기가 내 가슴을 즈려 밟았다. 그리고 약 10분 동안... 내무반에서는 아래와 같이 무협지에서나 볼 수 있는 모든 초식들이 전개되었다. 허공답보 (허공에서 실전되는 초절정 고수들의 경공술. 내공이 바탕되야 됨) 금나수 (소림에서 사용하는 무술로 손으로 잡아 공격하는 기술) 태극권 (무당에서 사용하는 무술로 남의 힘을 빌려 공격하는 기술) 복호장 (아미파에서 사용하는 무술로 호랑이를 잡을 때 쓰는 장법) 매화권법 (화산파에서 사용하는 매화의 모습에서 유래된 권법)
물론 위의 말은 웃자고 한 말이지만... 지금 생각해도 어떻게 그렇게까지 맞을 수 있었는가 싶을 만큼 참 많이 맞았다. 언제나 한탄스러운 건... 그런 순간에 기절이라도 해서 의무반으로 실려가면 좋으련만... 내 맷집과 정신은 그걸 다 맞으면서도 더 맞을 수 있다는 게 슬픈 현실이었다.
그 뒤로... 그는 나를 자신의 생명의 은인으로 떠받들고 살았다. 친구를 위해 기꺼이 희생한 나의 높은 인격을 존경한다며... 그는 자신의 종교를 팔아서 얻은 초쿄파이를 내게 갖다 주었고... 아침식사 때 딱 한번 나오는 피같은 250미리 우유도 가끔 내게 주었다. 내가 아무리 사양해도 그리고 그 귀한 화랑담배도 난 그 이후 떨어지지 않았다. 개도 은혜를 갚는다'라는 말로 내게 강권을 했고 난 그것을 못이긴체 받아들이고.........
시골에서 자랐고 고등학교도 농업고등학교를 나온 그는 농사짓는 분들의 그 정직하고 성실함을 그대로 본받았던 사람이었고 앞으로 훌륭한 영농지도자가 되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있는 내 인생에서 가장 순박했다고 기억되는 사람이었다. 자신은 언제나 남을 위해 댓가없이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으면서도 자신을 위해 자그마한 은혜를 베푼 사람에겐 두고두고 갚는 그야말로 훌륭한 인격체를 가지고 있던 사람이었다.
그 힘든 후반기 특수교육대 생활을 마치고... 특교대 생활의 괴로웠던 만큼이나 나에게 주어진 힘들었던 군생활을 거의 마쳐가던 어느 날... 제대를 얼마 안 남겨 놓고 해병대 역사상 기억될만한 안전사고가 일어났었다.
세상 사람들 에게는 알려진 일이 없는 사고였지만 이 사고로 많은 해병들이 죽었고 본부대 간부였던 나는 그들의 장례식을 주관해야만 했고 난... 그곳에서 우연찮게 그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그는... LMG사격장 교관을 하던 그가 서투른 신병의 오발사고에서 자신은 미처 빠져 나오지 못한 채... 지금은 이렇게 관에 누워서 나를 마주하게 되었던 것이다.
관 앞에 멀쩡히 웃고 있는 그의 사진을 보고... 그 와 함께 죽어간 사병들의 시신을 수습하던 내 마음은... 아마.......... 평생을 살아가면서 그를 잊을 수 있을까 싶었다. 군대만 아니었더면.....내 그를 위해 마음 놓고 울어라도 주었으련만, 눈물을 참아가며 시신을 수습하고 장례식을 준비하는 나의 가슴은 갈래갈래 찢어나가는 듯 했다.
나중에 제대한 후 사회에 나가서 맘 놓고 만나보자고 했던 우리였건만...그 힘든 군 생활을 다 끝내고 얼마 남겨 놓치 않은 이 상황에서...그와 헤어진지 벌써 23년 이럴순 없었다... 이래선 안 되는 거였다. 난 지금 그의 이름을 확실히 기억하지 못한다. 처음부터 그의 이름보다는 그의 청룡부대 하사관 특교대 때의 번호였던 32번 만을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그가 나에게 남겨 놓고 간 형상들은 많이 남아 있다. 쵸코파이... 우유... 농촌... 그리고... 눈물...
오늘 토요일 오후 텔레비젼에서 군대관련 프로그램을 보다 문득 기억나는 이 친구를 떠올리며... 이렇게 몇 자 끄적거렸다. 이 청명한 5월에 먼저간 친구를 그리며...
ㅡ남도사랑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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