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ce=굴림체>
**동행자**
족히 30분쯤은 기다렸다가 겨우 행선지를 확인하고는 시외버스를 탔다.
흔들리는 버스에 아직 적응치 못하고 잠시 비틀대며 자리를 찾는 내게
로, 옆 자리에 올려 놓았던 앉은키만한 커다란 베낭을 들어 바닥으로
내려 자리를 마련 하시고는 와서 앉으라는 신호를 보내시는 할아버지를
발견하고...
"아, 감사합니다.”
얼른 인사를 드리며 풀썩 넘어지듯 할아버지께서 내어주신 빈자리로 가
앉았다
잠시 후...
버스의 흔들림에 차츰 몸이 익숙해 짐을 느끼며 자리를 내어주신 옆 자
리의 할아버지께 감사한 마음으로 나는 조심스레 말을 붙여 보았다
"할아버지, 어디로 산행을 떠나시는지요?"
"나? 등산..청평으로 가지."
"녜,거기..호수가 참 좋지요?"
언젠가 청평호 앞에서, 산을 타고 오르는 물안개를 바라보면서 안개 속
같이 불투명한 아침을 맞이하던 어느 날의 하루를 떠올리며 무심한 질
문을 드리는 내게로 할아버지는 참 진지한 답변을 해오신다
"그럼, 좋은 게 호수 뿐인가 어디."
"......."
"거긴 뭐든지 다 좋아. 예전보다는 조금 못하지만 그래도 아직은 사람
도 좋고, 물도 산도 다 좋지. 그래서 올 여름은 거기서 나려고 가는 걸"
"베낭이 무겁진 않으신가요?"
보기 싫지 않을 정도로 손때가 묻고 군데군데 까만 곰팡이의 흔적이 남
은 큼지막한 군청색 베낭으로 눈길을 보내는 나를 따라 할아버지는 마
치 오래도록 정을 주며 함께 살아온 애완견의 목덜미를 어루만지듯 살
가운 손길로 베낭을 어루만지시며 말씀하신다.
"무겁긴, 아직 이 정돈 괜찮아. 예전에 비하면 모든 걸 절반으로 줄인
걸. 이젠 힘이 들어서 텐트는 못 가지고 다녀. 그래, 민박을 정해 놓고
다니지."
"오래도록 산을 타셨나보군요. 실례가 아니라면 할아버지 연세를 여쭈
어보고 싶은데요.."
"나? 이제 여든 넷이라우. 산을 탄지는 한 삼십년 됐고..우리 남한
땅에 있는 산은 거의 다 가봤지. 외국의 낮은 산 몇 개 가 보았고..."
"녜? 이렇게도 정정하신데 여든이 넘으셨다구요? 그럼 산엔 자주 가
시는지요?"
"그럼! 일년이면 반은 산에서 지낸 다오"
"어머나 그럼, 할머님이 싫어라 하시지 않으시나요?"
"없는 걸! 먼저 떠나 보낸 지 한 7년쯤 됐어...건강했으면 참 좋았을
것을. 애기 엄마도 운동 열심히 해요. 여자들이 건강해야 해."
"아 저런, 죄송합니다 할아버지.."
"괜찮아.그런 걸 가지고 죄송은 무슨..다 때가 되면 떠나야 할 일인
걸. 나도 준비하고 있지."
"녜? 무슨 준비를..어떻게요?"
"죽는 거! 그거 연습하고 있어야 해! 첨엔 좀 두렵게 생각했지. 그런데
이젠 아녀. 그동안 마음을 많이 비워냈거든. 욕심을 버리면 두려울 게
없어."
차창 밖으로 아침부터 흐린 하늘이 낮게 내려와 앉았더니 어느새 후두
두둑 유리창을 향해 빗방울을 뿌리고 있다.
어느새, 두눈에 가득 걱정을 담아버린 나.....
"비가 오는데요 할아버지.."
"내 걱정할 일은 없다우. 난 민박집으로 가면 돼. 단골집이니 아무 때
나 가지. 방이 없으면 주인장하고 같이 자면 되고."
"아,그러셨군요..그래도 자녀분들이 걱정 하지 않을까요?"
"첨엔 딸이 성화를 부리더니 이젠 내 고집에 항복했는지 잠잠해. 간간
이 전화로 안부를 전하고 집에 들릴때만 찬가지를 날라오곤 해. 난 딸
만 셋이라우."
"녜, 딸들이 더 살갑지 않던가요 할아버지?"
"다 똑같아. 자식이란 그저 키우는 재미고..다 크고 나면 지들 살기에
바쁜 게지."
"자식에게도 절대 욕심 가지면 안돼. 내가 줄 수 있는 만큼만 주고,
절대 바라지는 말아야 내 맘이 편한 법이야."
"그것도 욕심을 버리는 차원인가요?"
"그렇지! 욕심을 버리면 행복해 지는 게야. 그게 하루 아침에 얻어지
는 게 아니니 탈이지. 나이 들어 다 늙어진 다음에 깨달아지니 말이야.
절대 남의 것 탐하지 말어. 내 것도 다 못 쓰고, 누리지 못하고 가는
게 인생이야. 욕심을 버리고 살면, 사는데 돈도 많이 안 든다는 걸 알
게 되지."
"그런데 말이야 아직 젊음이 있다면 그게 절대로 안돼야. 젊다는 건 욕
심이 있다는 것이거든, 그땐 그게 욕심인지 뭔지도 모르는 법이고....
희망이나 꿈 같은 것과 혼돈 되어 오는 경우가 많아서 절대로 모른단
말
이야. 그러니 나이가 그저 먹는 건 아닌 게지. 허허허허허"
에구, 아무래도 이 할아버진 산신령님이신가 보다.
"할아버진 혹시 신앙이 있으세요?"
"나? 전엔 교회도 나가보고 절에도 가봤는데..지금은 그냥 마음으로
하나님만 믿고 살아. 하나님은 언제나 내 마음속에 계시는 분이시고 나는
그분을 경외하거든. 왜냐하면, 나를 이 땅에 보내시고 또, 언젠가는
내가 돌아가 만나야 할 분이잖은가. 허허…허허.. 그러는 애기 엄마는
신앙심을 아직 못 가졌나?"
"녜에..저도 할아버지처럼..아,벌써..삼거리가 나왔네요 할아버지! 전
예서 이제 내려야만 되거든요. 그럼..조심해서 잘 다녀오세요. 꼭,
건강하시구요.."
"그래,그래...잘 가요."
할아버지는 젊은 시절 오랜 외국생활을 하셨다고 한다. 그러는 중에
할머니 속도 많이 썩혀주었다시며....그래서 좀더 일찍, 자신이 가진
것이 가장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 게 제일 후회스럽다고도 하셨
다. 볼일을 다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야, 나는 작고 못난 것
일지라도 지금 내가 가진 것들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가슴속에 새겨보
며 진실로 행복할 수가 있었다
모든 동행자는 언제나 내게 커다란 가르침을 주고...
그러기에 나는,
무시로 길 떠나기를 참 좋아하나보다.
글/솔향
Daum cafe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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