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를 피우는 여자*


오래 전엔 여자가 담배 피우는 모습도
하나의 진기한 구경 꺼리었던 때가 있었지요.
요즘엔 너무도 보편화되어 눈 요기꺼리도 안되지만…….

조명 은은한 카페의 구석진 자리에서 늘씬한 여인이
긴 머리 멋지게 틀어 올린 채 가느다란 손가락 사이에
흰 담배 한 대 끼어들고 도도한 모습으로 뿜어 올리는 담배 연기.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처럼 환상적이지 않습니까?
저는 그런 걸 감히 흉내도 못 내고,
보는 것만도
눈부셔서 바로 보지 못하고 슬쩍슬쩍 훔쳐보지만요.

담배라면 내 어머니만큼 피우신 분도 없을 것입니다.
제가 어머니를 인식할 때부터 어머님은 담배를 피우셨고
돌아가시기 얼마전까지도 담배는 어머니의 유일한 벗 이였으니까요.
말씀인 즉 새파랗게 젊으신 새댁 때부터 담배를 피우기 시작하셨다는데
그건 시도 때도 없이 일어나는 속앓이 때문이었다고 하셨지요.

병명도 잘 모르고 제대로 된 병원 한번 가 볼 처지가 못 될 때
민간요법의 하나로 담배는 그 시절 유일한 치료법이었을 겁니다.
그렇게 배우게 된 담배는 평생 어머니의 벗이자 자존심이요,
세상사를 마시고 내뿜는 돌출구였지요.

딸인 나와 다투고 난 후 토라져서
담배 한 대 피워 무시고 돌아 앉아 있던 그 뒷모습.
한복 저고리에 쪽진 모습이
비록 멋진 신식여성들의 그럴싸한 그림은 아니라도
그 자그마하고 둥근 어깨너머로 뿜어져 올라가던
그때의 담배 연기는 어머니의 가슴에 꽁꽁 묻혀있던
화를 풀어내는 실타래 같아보였지요.

평생 그 걸 보고 느끼며 살아서 그런지
아니면 담배를 그리 즐기며 사셨어도 아흔이 넘도록
건강하게 장수 하셔서 그런지
담배 피우는 것이 무조건 부정적으로 보이지만은 않더라구요.

오히려 담배 못 피우는 남자를 만나 살면서
급한 성격의 남편이 앞 뒤 가릴 것 없이 화다닥 거릴 때
담배 한 대 피워 물고
자신을 돌아다보시려 하시던 어머님의
담배 연기 피워 올리던 그 때 그 뒷모습이 그리워집니다.

-2002. 3. 15 일. 대청에 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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