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무나무와 라일락

바람이 쌀쌀해 지고
수은주가 영하 삼도로 내려가면
어김없이 집안 구석을 차지하는 고무나무가 있다
나는 초겨울날 아침 고무나무를 바라보며 상념에 잠긴다.
이 나무가 우리 집과 인연을 같이한 것은 딸아이 젖먹일 때이다.
방 세개에 베란다 난간을 화강석 돌로 치장한 집을 지었을 때이다.


방 두개에서 살다가 어머님방 부부방 아이방 따로 장만하니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었다.
아이 엄마는 잠이 다 오지 않는 단다...
전에 살던 집이 방이 두개라 늘 불편해 했던 아내다
그 집에 이사하면서 친구가 이 화분을 선물했다. 무성하게 자라고..
가지가 두개로 뻗고..
싱싱한 파란 잎이 마음에 들었다..


나는 그 뒤로 이 화분을 잊고 살았는데..
중곡동으로 이사 오기 위해 집을 수리하는데 이 화분이 눈에 띄었다.
공사중 다칠세라.
차고에 들여놓곤 했는데. 키가 커서 차고 천장에 닿아
이 화분을 간수하느라.
공사를 하는 기간에 애를 먹었다.


공사를 마무리하고
정원을 하면서 정원사가 "나무를 고르러 가시지요 "하여.
정원사를 따라가 보니 나무 값이 만만치가 않았다
향나무, 과일나무, 단풍, 꽃나무 몇 가지를 샀다.


나무가 잎도 별로고
볼품 없는 나무를 정원사가 들고 오며 가지고 가잔다.
하는 말이, "이 꽃나무 향이 좋고요 이름이 라일락이라고 합니다"
나무를 다 심고 정원 석도 쌓았다.
놓는 방법에 따라 모양이 달라 보인다.

잔디를 입히고 길도 다듬고 화분들도 거실 앞에 가지런히 늘어놓고
정원일 이 끝이 났다.

볼품 없는 그 라일락은
좋은 자리는 향나무 뒤에 구석 외진 곳에 심어졌다.
이놈은 괴이하다. 나무 이름이 부르기 좋은 개나리, 백일홍, 목련이니,
연산홍이니 고유한 토속적이고 이름도 얼마나 정감이 가는 이름들인가.
그러나 라일락은 외국어에다 부르기도 생소하고 모양새도 정원수로는
어울리지 않는다.

고무나무는 거실 앞에 놓고 커지기 전에 가지를 자를 것을
아내가 말리는 바람에 못 자르고 키만 키웠다.
겨울에는 거실에 들여놓고 고무나무 위에 크리스마스 트리를 장식한다.
열대식물에 그리스-머스 트리를 장식하니, 얼마나 웃음 나는 일인가.
잎이 어렸을 적 먹어본 식은 개떡같이 두껍고 뻣뻣하며 잎 한 개도
전지 가위로 잘라야 한다.
비가 오면 저 혼자 비를 떠받을 양으로 투박한 잎으로 받아낸다.

라일락은
가지를 마구 쳐서 심었는데 제법 어울리게 가지와 잎이 나왔다.
잎도 상추 잎처럼 연하고 적은 비가 내려도 싫은지 잎들이 흔들어 댄다.
비가 그치고 따뜻한 봄날 라일락이 꽃을 피웠다..
붉은 색이 많은 보라색이고 꽃도 작아 눈길을 끌지못하나 소박한 모습이다.

꽃도 한 송이 우송이 나눌 수 없이.수십 송이가 하나로 뭉쳐 핀다.
놀란 것은 향이 강하지도 않고 연한 향이 특이하다.
보잘것없었던 라일락이 느낌이 달라 보인다.
향은 집합에도 이웃에도 길가는 사람도 한마디씩 풍기는 향을 칭찬한다
집안에까지 향으로 가득하다

고무나무는.......
그 뒤로 도저히 크는 키는 강당할수 없어 두 가지를 모두 잘랐다
자른 곳에서 우유빛의 피를 흘리며 아픈 모습이다
무성하던 성장은 멈추고 잎도 감나무 잎처럼 작아지고
볼품이 없이 되었다.
지금은 오래 전에 이 집으로 이사오면서.........
모든걸 잊고 살았는데.

오늘아침 옛 생각 속에 빠져든다.

지금도 옛집에는........
라일락은 겨울 날 봄에 꽃을 피우기 위해.......
추운 겨울을 밖에서 추위를 견디며 준비하겠지?
두나 무가 우리네 삶을 닮았다.

라일락은 천대받았으나 큰 변화 없이
봄에는 향기를 내며 제 주변을 즐겁게 하고 있겠지 !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그러나 딸아이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헤어져 만날 수 없다
지금도 향나무 뒤 외진 곳에 있는지?

거실에서 사랑 받던
고무나무는 아이들 손끝에 추리를 달고
사진을 찍던 화려했던 옛날을 잊은 체 지금은 거실에 천덕꾸러기로
가족의 무관심 속에 떠나 있다.
아이 엄마가 종종 물을 주고 보살핀다.
그래도 우리 가족의 지난날을 간직한 체 가족과 같이 살고 있는 것은
고무나무뿐이다.

오ㅡ랜세월
소식은 없어도 가슴에 남아있어 영원히 기억되는 친구가 그립다......
처음에 화려하고 같이한 친구가 가까이 살지만 있는지 없는지
무관심 속에 떠나있는 이는 없는지.........
이 아침 고무나무를 바라보며 마음이 아프다.


중곡동썬입니다 (2001.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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