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겨울 부채
"아버지 저 왔습니다." "왜 이리 더디 왔느냐."
추석에 뵈온 친정아버지를 며칠 전 구정이 코앞으로 다가올 즈음에서야 뵈오러 갔었다.
문을 밀치며 반가워하시는 여든 일곱의 아버지. 어머니를 먼저 보내신 지도 어언 5년여... 모습을 뵙는 순간 마음속에서 아릿한 아픔이 일렁이며 일어났다.
같은 서울에서 내 차를 몰고가면 30분이고 지하철도 바꿔타지 않고 1 시간이면 갈 수 있는 거리를 출가외인 딸년은 앉자마자 치밀어 오르는 더운 목젖을 가라앉히면서 찾아 뵙지 못한 변명을 있는 데로 늘어놓고 있었다
이야기를 다 들으신 아버지께서 "그래...그 병풍 내가 꼭 한번보고 싶구나. 네가 그렇게 오랫동안 애를 써서 글씨를 쓰고 더 더욱 그 어른의 글이 내용이라면, 그런데 내가 가서 볼 수도 없고."
혹독하리 만큼 딸들에게 특히 엄격했던 아버지 그렇게도 호랑이시던 옛모습은 간 곳이 없고 어지럼증을 호소하시며 차를 타고 하시는 외출도 손과 다리를 떨 정도로 건강이 쇠잔해 지셨다.
한참을 뭉그적거리시더니 윗목에 있는 장롱의 서랍을 여시고는, '어느 문중의 碑文을 지어주었더니 약간의 사례비와 함께 선물로 보내왔다는 전주 합죽선 부채 두 자루'를 꺼내놓으시더니... "여기에는 蘭(난)을 치고 ... 이곳에는 "制外 安內 (제외 안내)라는 ...글을 써서 완성해 오려므나."
"蘭(난)을 친 부채는 너의 향기가 날것이니 내가 지닐 것이고 制外 安內 (제외안내: 밖의 일을 잘 제어하면 집안도 편안해진다 라는 뜻) 글씨를 쓴 부채는 정서방(남편)을 줄 것이니라." 하시면서 이 두 가지를 만들어서 곧 가져오라 하신다.
"아버지 천천히 해서 여름이 되면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라고 말씀드리니 아버지께서는 "내가 그때까지 살려나 모르겠다." 라고 하신다.
아버지가 주신 숙제를 안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흩날리는 진눈깨비는 아버지의 여생이 아주 조금 남았음을 일러주는 듯 했다.
지금 나는 매일 부채를 만지며 하루라도 빨리 숙제를 해야 한다는 부담을 안은 채 부채에 그릴 난과 글씨 연습에 하루를 바친다. 이 딸자식의 향기가 담긴 겨울부채를 가슴에 하루라도 빨리 품고 싶으신 아버지의 간절한 눈빛을 읽고 왔기에.... 아버지~~!!!!!!!!
윤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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