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가을여행
참으로 오랜만의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인적 없는 해인사 암자로 오르는 숲길을 걸으며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진작에는 아무생각도 없었는지도 모릅니다.
하늘은 슬프도록 푸르고 구름은 걱정 한점없이 평화롭게 떠가고
바람은 또 그렇게 새소리와 함께 가을을 나르고 있었습니다.
암자 밑 고냉지 채소밭의 무우랑 김장배추는
스님들의 그 청정한 몸과 마음만치도 싱싱하고 깨끗하게
겨울을 준비하고 이따금 딱! 딱! 떨어져 내리는
도토리 열매의 작은 소리에도 화들짝 놀라는 저의 죄 많은 심장에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보현암 금강굴 널따란 법당에는 향내마저 바람에 씻기어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는 텅빔으로..... 화려한 금빛
비로자나 부처님은 저의 외로운 영혼을 아시는 듯 모르시는 듯
삼매경의 평안함으로 그냥 계시더이다.
법당에 혼자 30분을 그냥 앉아 있었습니다.
삼선암 선방에서 공부하는 비구니스님들의 회색빛 장삼과
그 해맑은 얼굴빛을 먼발치에서 보면서
참으로 좋으시구나!! 해서 많이도 부럽기도 했습니다.
인연의 끈을 과감히 끊고 출가할 수 있었음에....
숲속길 여기저기에는 이름 모를 풀벌레와
마지막 꽃을 피우는 들꽃들의 향연으로
가을빛은 더욱더 찬란하게 빛나고
먼 암자에서 들려오는 목탁소리의
그 단조로우면서도 감미로운 소리는 흐르는
계곡물 소리와 함께 평안과 평온과 깨끗함을 노래하더이다.
해인사 구비를 감고 흐르는 계곡 물은
쉴새없이 지저귀는 새소리와 송사리 떼 같은 작은 물고기들을
어울리면서 어디서 와서 어디로 굽이쳐 흘러가는지
그렇게 마냥 흐르고 있었습니다.
내 마음의 어지러운 생각과 내 더러운 영혼의 찌꺼기도
그 맑은 물살에 묻혀 씻겨져 내리면 좋으련만............
마냥 그러고 있었습니다.
어느 순간에 밀짚모자를 쓴 너무나 해맑은 비구니스님이
제 곁에 다가와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인삼을 다린 차 한잔을 조그만 보온병에서
따라서 전하는 겁니다.
그 뜨거운 차 한잔과 함께 스님이 저에게 들려주신
20 여분간의 법문은
제 서러운 이번 가을여행의 해답이 되어 왔습니다.
인연은 끊고자 해서 끊어지는 것이 아니다.
인연의 연이 끝나야 자연히 사라지는 것.....
그것은 우리의 인간의 의지나 힘으로 되어지는 것이 아닌 것....
주어라~~~~~ 무엇이든지 끊임없이 줄 수 있을 때까지 주어라....
연이 다하면 아무리 붙잡으려 해도 떠나갈 것이니.....
그 스님은 선방으로만 다니면서 참선을 하신다는 先炅스님이였습니다.
스님이 참선 후 보행시간에 산길을 내려가면서
본 모습이나 다시 올라오실 때 모습그대로 혼자 앉아있는 저를 보면서
참으로 고민이 많은 보살이구나 생각하여
옆으로 와서 얼굴을 보니 전혀 고민 있는 얼굴이 아닌
맑고 밝은 얼굴 이여서 차나 한잔 권하고 가려다...........
허나 저는 선경스님의 법문을 들으면서
하느님은 또 다른 이런 모습으로 저를 사랑하시는구나
그리고 나를 이렇게 타일러 주시려는 구나
막연하나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스님과 헤어져 한없이 계곡을 따라서 걸었습니다.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올라오고 더러는
떨어져 내리는 도토리 열매를 줍고 있었습니다.
정말 내려오기 싫었습니다.
그냥 한없이 가을 속에 묻혀있고 싶었습니다
아니 그냥 그 속에서 침잠해 버리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저의 발걸음은 어쩔 수 없는 세상사의 인연을 찾아서
내려오는 길을 접어들어야 했으며
나의 슬픈 가을여행도 메말라 가는 구절초의
몇 송이 남지 않은 보랏빛 꽃송이의 애절한 빛 바램으로
쓰러져 내리고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나의 슬픈 가을여행은
또다시 일상으로의 회귀였습니다.
그러나..... 그러나........
당신의 따뜻한 영혼의 위로와
先炅스님의 법문은 내 가슴의 또 다른 의미로
슬픈 가운데에서도 행복하게 떠오를 수 있는
소중한 가을여행의 진실이었습니다.
남쪽의 낭만의 가을여행이었습니다. (2001.9.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