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도사 대명광전
오후 2시,
얼굴이 맑은 스님께서
"님만 님이 아니고 기른 것은 다 님이다"라는
만해(卍海)의 말씀을 남기며 합장하고 조용히 일어선다.
포동포동하게 살찐 함박꽃 문살을 살며시 밀고
대웅전을 나와 가을 햇살 가득한 절 마당에 내려선다.
옛 향로(香爐)
그 속에 가득한 온기 없는 재,
어쩌면 그 재들이 인연(因緣)의 줄을 맺게 할 지도 모르는 일.
자꾸만 언어(言語)의 그물에 잡혀 들어간다.
그물코마다 구슬이 달려 서로를 비춘다는
제석천궁(帝釋天宮)의 보물 인다라(因陀羅) 그물.
무한(無限) 겹겹의 비춤이 있는 그런 그물이면 좋으련만,
어떻게 이 그물을 비집고 헤어날 수 있을까.
아, 라울라(障碍)
바람같은 세월 산바람을 타고 흩어지는
낭랑한 풍경(風磬)소리
뎅긍...
천년(千年)을 울리고 돌아 와
다시 천년(千年)으로 되돌아오는 고요
마음은 적막공산(寂寞空山)
둥둥...
하늘이 처음 열리듯
우주(宇宙)를 두드리는 법고(法鼓)가 울린다.
뭇 생명(生命)을 깨우치는 목어(木魚)가 운다.
산은 가득 차 있고 산은 비어 있다.
차고 비어 있음은 마음 두기에 달려 있는 일
오는 것도 마음.
가는 것도 마음.
모두가 업(業)을 따라 오가는 것을.
그 날,
님이 서 계시던 자리
휘어진 노송(老松) 앞에 내가 서 있다.
가을 볕 아래 뻗은 가지를 가만히 만져본다.
님도 만졌을까...
소중한 것은
작은 인연(因緣)으로 오는 것
아주 작은 것이 이토록 귀(貴)하고 아름다운 것을.
선가(禪家)에서는 시절인연(時節因緣)이 오면
만날 사람은 만나게 된다고 했다.
어느 날 문득,
탑(塔)돌이 중에
님은 화사한 모습으로 가만가만 오실까.
운문사(雲門寺) 가지산에 해가 진다.
범종(梵鍾)의 자비(慈悲)가 우주(宇宙)를 품어 안는다.
마음은 적막(寂寞) 하늘은 침묵(沈默),
솔숲 위로 아득한 무욕(無慾)의 하늘이 푸르다.
쌍계사 대웅전 분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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