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초상화 (벌초를 다녀와...) ...... 그리고


얘 아범아~ ~ 할머님 뵈러 가자꾸나~ ~
얘 어멈아~ ~ 애들은 긴 옷 입혀 데려오려마~ ~
내 먼저 그 곳으로 떠나니
니들은 천천히 쉬엄쉬엄 오거라~ ~


개학을 코앞에 둔 손주놈들은
밀린 숙제, 일기 숙제 말도 못하고
궁시렁 궁시렁 차에 오르고
급기야는 즈덜끼리 공연히
티각태각 째려보며 눈 부라리고


장손의 눈꺼풀 누르는 무거운 숙취는
커피로 빈속을 채우며 등을 바로 세우고
분단장한 며늘아기 거울을 보다가
스치는 옛 생각에 가슴 아리다.


우리 손주며늘아기
이쁘다 고와라 하시던 할머님은
지금쯤....
얼마나 고운 흙이 되어 계실까....


큰놈 업고 만두 빚어 쪼르르 달려가면은
증손주놈 귓불을 부비며 돌아서
고무줄 고쟁이에 꼬깃꼬깃 모아둔
자식들의 효도용 쌈짓돈을
뉘 볼세라 몰래몰래 움켜 주셨었는데.......


6.25 .....
담배를 구하러 나가신 후
끝내 돌아오지 않은 지아비의
시신 없는 가묘 위에 난 쐐기풀 손수 뽑으시더니.....
삼베수의 반듯하게 갈아 입으시고는
자손들이 넣어드린 젖은 노잣돈 여며
꽃상여 타시고 먼길 가신지
어언 삼년이 다 되어가네....


할머님은....
야속했던 할아버님 곁에 나란히 누워
곱디고운 흙으로 사무처 내리고
묘의 분상은
만삭의 아낙되어 서러움 달래다
그 어느 곳에서
생명의 울음소리 들려주실까....


할애비된 아들이 붙여놓은 담배연기는
바람결에 안타까이 타들어 가고
새댁이던 며느리의 적삼은
손주놈 등살에 메뚜기 잡느라
허리춤 속살을 하얗게 드러내밀고


증손주놈 애비는 밀짚모 쓰고
무성한 떼 촘촘히 이발을 하고
증손주놈 에미는 갸우뚱 찡그리며
도장나무 미용을 한다.


파르라니 깍인 묘의
풋풋한 풀내음은 어디서
시원해진 가을바람 몰고와


늙은아들 주름에 숨은 탄식 떨어내주고
늙은며늘 가슴에 묻힌 한숨 쓸어내주고
손주놈 힘줄에 입김으로 다가가 주고
손주며늘아기 머리에 리본인냥 앉아있다가


이리뛰고 저리뛰는 증손주놈 소매를
붙잡다가 엉결에 간지러이 흘러내리는
달콤한 후손의 콧물을 훔치고
파르르 날아가 버린다.


얘 아범아~ ~ 너 오늘 애 많이 썼다
얘 어멈아~ ~ 너도 오늘 애 많이 썼구....
그럼 오는 추석에 다시 보자꾸나 ~ ~


어여 어여 가거라며
뒷짐지고 뒤로 물러서시며
아들손주며느리를 먼저 보내고
땀에 젖어 눅눅해진 담배에 불을 붙인다.


파르라니 깍인 묘 뒤로
우뚝 서있는 소나무에서
매미의 애절한 쉰 노래소리가
늙은 아들 손끝에 매달려
가려는 아들 차의 시동을 늦춘다.


"이봐 망구~ ~"
"내달 추석에도... 저 매미가 .... 그때까지 울고 있을까?"


늙은 아들 귓전에
매미의 쉰 울음소리 남아


매 엠~ ~ 매 엠~ ~
매 엠~ ~ 매 엠~ ~


다가올 추석을 기다리는 거래나.........



2002. 8. 25. 시할머님 묘에 벌초를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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