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름:솔향

2002/11/28(목) 12:48 (MSIE5.0,Windows98;DigExt) 61.80.43.119 1024x768


반가운'계단이'소식









*반가운'계단이'소식*




    제 동네 슈퍼에서 '계단이'를 데려간 수진엄마를 우연히 만났다.
    인사를 건네는 둥 마는 둥 나는 계단이의 안부부터 물었다.
    "계단이는 잘 있어?"
    "응, 너무 잘 있어..곤석 보통이 아니던 걸"
    "그랬어? 어쨌는데?"
    "우리 집에 원래 강아지가 한 마리 있잖아..그런데 그 계단이 녀석을 데려다
    놓았더니 우리 집 몽실이가 꼼짝도 못하는 거야..밥을 줘도 계단이가 다 뺏어먹고..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옆집에다 계단이를 줬지..그랬더니 그 집에서 지금 아주
    호강하고 살어..지나가는 사람마다 참견 다 하면서 아주 똘똘하게 집을 잘
    지켜준다고 그 집 엄마 계단이 칭찬이 자자하거든.."

    휴~~~ 다행이다.
    계단이를 생각할 때마다 가슴 한 켠에 걱정이 남아있었는데..
    내가 계단이를 만난 건 지난 추석 전 날밤이었다.
    어떻게 해서 녀석이 우리 아파트에, 그것도 우리 통로의 계단 3층까지 올라오게
    되었는지는 모를 일이다.
    나와 눈이 마주친 녀석은 바들바들 떨면서 두 눈에 넘칠 듯 가득 비애를 담고 있었다.

    털을 깎은 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이제 막 자라기 시작하는 짧은 털이 녀석의
    몸을 더욱 처량하게 만들고 있었다.
    집을 잃은 게 분명했다.
    그러나 녀석의 배 밑을 본 순간, 나는 집으로 데려갈 수는 없다는 생각을 한다.
    순진무구한 숫처녀인 우리 집 뚜리(우리 집 애견의 애칭)를 생각하니 도저히
    녀석을 데려갈 수는 없는 일이라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어떡하지?
    일단 먹을 것과 물, 깔개를 마련해 주고는 그 밤을 지냈다.

    다음날 이른 아침,
    우리 가족은 준비한 음식을 정성껏 싸들고 큰댁으로 가려고 나오는데 얼핏
    계단이를 찾아보니 지난밤 챙겨주었던 밥그릇이며 물그릇은 오간 데 없이 사라지고
    물은 쏟아져 있고 깔개도 없는 맨땅에서 녀석이 오돌오돌 떨고 있다.
    아래층 아주머니께서 계단이를 보고 쫓아내시기 위해 한바탕 소란을 떨고
    가신 모양이다.(나중에 확인했더니 쫓아내려고 빗자루로 때려서 내보내도
    잠시 도망갔다가는 또 다시 우리 계단으로 오더라는 것이다)

    "안되겠어..여보, 뒷 베란다에 가셔서 큼지막한 박스 하나만 가져다 줘요"
    "이 사람..지금 바쁜 시간인데.."
    "잠시면 돼요"
    나는 계단이를 안고 옥상으로 통하는 계단으로 갔다.
    거긴 사람들의 출입이 없으니 계단이가 오가는 사람들의 눈총을 받지 않아도 된다.
    남편이 가져온 두꺼운 종이박스를 옆으로 누이고 깔개를 깔아주니 계단이는
    조금 안정감을 갖는 눈치다.
    그 앞에 딸아이가 들고 온 먹이와 물통을 놓아주고 우리는 큰댁으로 떠났다.

    차안에서 딸아이가 말한다.
    "엄마, 그 강아지 이름 '계단이'라 하면 어때?
    "응 계단이? 그래 그러자 계단에서 만났으니 계단이..ㅎㅎ"
    그렇게 해서 지어진 이름 계단이..
    그 날밤 우리 식구는 사실 계단이 때문에 친정 집에서 하룻밤 묵지도 못하고
    새벽녘에 놀이감을 접어두고 집으로 돌아와야만 했었다.
    그 애처로운 눈길이 마음에 밟혀서.....

    그 며칠후..
    나의 주선으로 계단이는 수진이네 집으로 가게 되었고, 어제서야 궁금하던
    계단이의 소식을 듣게 되었던 것이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낸다던가...
    몽실이에게서 먹을 것을 뺏어먹었다는 계단이의 행동은 삶을 향한 강한 투지가
    아니었나 싶다.
    녀석이 어떻게해서 우리 아파트 통로를 고집하게 되었는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쫓아내도 쫓아내도 다시 올라와 3층 그 자리에 앉아있더라니....
    거기 있으면 누군가 자신을 구해주리라는 본능적인 어떤 메시지를 부여잡았던 것일까?

    영하로 떨어져버린 차가운 날씨 겨울..
    지금 계단이의 보금자리는 더없이 따뜻하다니 이보다 더 포근한 겨울이야기는
    내게 없을 듯 싶다.


    글/솔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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