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나이 50,그 중 1년 >
지난 해 이맘때 큰 딸아이는
“나,수술해야 한대요-.”
경악할 소리를 서슴없이 뱉으며
왈칵 울음을 쏟아냈다.
아이 혼자서 감내하며 검사했던 병원으로
달려간 나는 청천벽력의 소리를 들어야 했다.
세상에!
‘하나님! 어찌 이런 고난을----
난 카피한 필름들을 들고
서울 큰 병원은 죄다 돌아 다녔다
약간의 차이만 있을 뿐
수술은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소위 말하는 명문을 나오고
1년 미국연수도 하고 온
우리에겐 샛별같이
예쁘고 착하기만 한 딸이-----
그 어렵던 취업난에도
어디를 가얄지
망설이던
교만 때문일까?
난,하던 일도 그냥 팽개치고
두 달을 아픈 딸아이와
함께 고통을 나누었다.
같은 통증이 왔다.
퇴원 후 심신이 지친 아이를
나는 집에서 간호를 하면서
무어가 그리 바쁘게 살아왔는지
지나온 나를 돌이켜 보았다.
회복기에 들어서
아이는 다시 휴직계를 내고
우린 그 일로 잃은 것도 많지만
더 크고 중요한 많은 것을 찾을 수 있었다.
엄마와 딸이
제 가끔 바쁜 핑계로
얼마나
요원한 사이였는지-----
우린 다시금
하나처럼 되고
우린 다시금
참 모녀 지간으로 돌아 섰다.
나는 능력이 닿는 한
하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
보고 싶은 것
뭐든 다 해주고 싶었다.
어느날,
군대에 간 친구가
훈련이 고될 거라고
보고 싶은지, 혼자 중얼댔다.
"우리바람 쐬러 나가자."
나는 아이와 함께
말없이 강으로 내달았다.
“여기가 그 부대 훈련장이야”
날자가 맞질 않아
걔는 그 날 캠프에 있었지만
그 장소가 틀림 없었다
아이는 그 곳을 눈에다 담고 있었다.
그 다음날
전화로 둘은 신이 났다.
공감대 형성이 된 것이다.
“거기 경치 너무 너무 좋지 그지 그지?”
이제 1년,
오늘 아이가 다시 첫 출근을 했다.
안쓰럽다.
두자니 그렇고 보내자니 그렇고—
엊그제
잠자리나 편히 해줄 요량으로
메트리스나 갈아줄까 하고
외출했다가 심하게 머리가 아파왔다.
“엄마, 나 땜에 아프지?”
“내 가 왜?”
“나, 출근 시키려니---“
“야, 꿈보다 해몽이다.”
어제는 TV ‘가을 동화’ 보면서
저도 나도 엄청 울었다.
드라마를 핑계 삼아
둘이 맘 놓고 울었다.
오늘 아침
짐도 많은 아일 데려다 주지도 못하는데
아이는 씩씩하게 출근했다.
“엄마,이제 나, 나가고 나면 병 낫을 걸”
딸아이를 보내놓고
앞이 희미한 눈으로 이 글을 쓴다.
언젠가는 홀로서기 해야 할
아이를 위해 하나님께 무릎을 꿇어야겠다.
2000년 11월 첫날 울보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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