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2월
22일 (수) 09:20 주간조선 |
“병원인가, 리조트인가” |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송산리, 서울에서 자동차로 2시간을 달려 도착한 가평군청에서도 차로 15분여를 더 달려야 다다를 수 있는 이곳 심산유곡(深山幽谷)에 지상 8층 지하 4층 대형병원이 들어서 있다. 병상 수는 280여개이지만 상당수가 1인실로 운영되고 한방병원과 특수 물리치료 시설, MRI와 CT 등 첨단 진단 시설 등을 갖추고 있어 웬만한 대학병원 규모를 넘본다. 병원 로비에 들어서면 마치 서울 강남의 병원 한복판에 서있는 기분이다. 세련된 인테리어에 은행, 편의점, 레스토랑 등이 병원 안에 있다. 하지만 병원 밖을 나서면 민가도 드문 산골이다. 이 병원에 들어와 있는 우리은행은 가평군에 있는 유일한 시중 은행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이곳에 지난해 외국인 환자 1만7797명이 다녀갔다. 1일 평균 33.3명의 외국인 환자가 입원했다. 이런 산골짜기에 왜 이렇게 큰 병원이 있으며, 여기에 우리나라에서는 극히 드물게 외국인 환자들이 많이 오는 걸까. 병원은 통일교 재단이 2003년에 세운 청심병원이다. 자연히 이곳을 찾은 외국인 환자의 80%는 통일교인이다. 미국, 일본, 베트남, 필리핀, 태국, 폴란드, 오스트리아, 대만, 중국, 러시아, 몽골 등 다양한 지역에서 온다. 외국인 환자의 85%는 일본인이 차지하고 있다. 일본에는 통일교인이 20만명 안팎으로 있으며,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통일교인이 있는 나라다. 병원은 이 때문에 외과, 산부인과, 정신과 등 일본인 의사를 4명 고용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일본과 한국 의사 면허를 동시에 갖고 있는 전문의들이다. 이밖에 간호사, 의료기사 등 일본인 의료진은 총 37명이 있다. 환자 코디네이터 다카시마 유카리(여·29)씨는 “외국인 환자가 오면 입원 수속부터 퇴원시 병원비 정산까지 맡아서 처리해 준다”며 “일본인 환자만 담당하는 전속 직원이 2명 있다”고 말했다. 그녀는 영어, 일어, 한국어가 유창해 외국인 환자를 전담하고 있다. 외국인 환자의 의료수가는 우리나라 건강보험 수가의 150%이다. 즉 치료비가 우리나라 병원보다 1.5배 비싼 셈이다. 이것이 국제 표준 진료수가라는 것이 병원 측의 설명이다. 병원에서는 진료비를 미화·일화 등 외국돈으로도 지불할 수 있다. 일본 환자들의 경우 이 병원에 낸 치료비를 본국에 돌아가 환급 받을 수 있다. 우리나라 건강보험공단과 같은 일본의 사회보험공단이 이곳의 진단서와 치료 내역서를 인정하고 있기 있다. 특이한 것은 병원에 일본인 산모들이 와서 분만을 많이 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일본인 산모 분만 건수는 250여건이며, 이는 해마다 늘고 있다. 일본인 산모 하타 미키(30)씨는 지난 1월 30일 이곳에서 둘째 아기를 출산했다. 그는 뉴질랜드 근방의 솔로몬 제도에서 왔다. 하타씨는 “첫 아기는 일본에서 낳았지만 둘째 아기는 여기 와서 낳고 싶었다”며 “일본인 간호사와 의사들이 있다고 해서 안심하고 왔다”고 말했다. 그의 남편인 랜스 리카베케씨는 솔로몬 제도 사람으로 부부는 통일교를 통해 맺어졌다. 통일교인이 이곳에서 아기를 낳고 원하는 경우에 한해서는 교회에서 아기 이름도 지어준다. 하타씨도 이를 원했고, 교회에서 지어준 이름은 ‘성현’이었다. 따라서 하타씨의 둘째 아기 이름은 아버지 성을 따서 ‘성현 리카베케’가 됐다. 산부인과 병동의 일본인 간호사 마쓰모토 유코씨는 “일본인 산모가 하루 최대 30명이 입원한 적도 있다”며 “여기서는 자연분만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남편이 가능한 분만실에 참여한다”고 말했다. 이같은 분만 문화는 통일교의 교리가 아니라 일본식 분만 문화를 참조한 것이다. 워낙 일본인 산모가 많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것이라고 마쓰모토 간호사는 말했다. ‘공항 픽업 서비스’ 제공 산모들은 통상 출산 예정일 약 40일 전에 이곳으로 들어온다. 이곳 수련원에서 기거하면서 산전 관리를 하다가 예정일에 맞춰 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수련원 투숙 비용은 하루 2만원꼴로 저렴하다. 출산 후에는 약 2주간 한방요법으로 산후조리를 받고 돌아간다. 강흥림 홍보팀장은 “일본에는 산후조리 문화가 없는데 일본인 산모들이 아기 낳고 이곳의 찜질방에서 쉬는 것을 너무 좋아한다”며 “일본에 소문이 나면서 통일교인이 아닌 산모들도 이곳을 찾는 경우가 점점 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병원은 일본인 산모를 대상으로 ‘분만 패키지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비용은 항공비·분만 비용 등을 모두 포함해 30만엔(약 300만원)이다. 강흥림 팀장은 “일본에서는 아기를 낳으면 무조건 정부로부터 30만엔을 받기 때문에 그 수준에 맞추어 운영한다”며 “일본에서 아기를 낳으면 병원 비용이 30만엔 넘게 나오기 때문에 일본인 산모들이 이곳을 선호하고 있다”고 말했다. 병원은 ‘분만 패키지’가 일본인 산모들에게 인기를 끌자 이를 대대적으로 선전할 판촉 사무소를 올해 상반기 도쿄에 개설할 예정이다. 병원은 일본인 산모나 환자가 입국한다고 연락이 오면 ‘공항 픽업(Pick-up)’ 서비스를 제공한다. 일본인 말기 암 환자들도 병원을 많이 찾고 있다. 통일교인 환자들은 죽기 전에 이곳에 와서 치료를 받는다는 의미로, 교인이 아닌 환자들은 자연 친화적인 환경에서 양·한방 협진 요법으로 치료를 받을 수 있다는 소문을 듣고 이곳을 찾는다. 일본인 의사인 노리히사 요코 가정의학과 과장은 “치료를 받으면서 편안한 휴식을 취해야 할 말기 암 환자들이 지내기는 이곳이 최고”라며 “이곳에 생을 마감하는 일본인 환자들도 상당수”라고 말했다. 이곳 병원이 일본인 환자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에는 한류(韓流)도 작용한다. 병원에서는 배로 겨울연가 촬영지인 남이섬까지 15분이면 갈 수 있다. 산후조리하는 산모뿐만 아니라 그 가족들이 남이섬 관광을 하는 것을 너무 좋아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병원에 선착장을 만들어 정기적으로 남이섬에 일본인 환자와 가족들을 실어 나른다. 병원에는 간혹 서양에서 온 환자들도 입원한다. 통일교인이거나 서울에 거주하는 외국인이 영어가 통하는 이곳을 일부러 찾아오기 때문이다. 병원은 이들을 위해서 서양식 ‘빵 식사’를 제공한다. 독일인 환자 하이디 스트라이벨(여·56)씨는 “영어가 가능한 의료진이 있어 좋다”며 “어지러움증이 있을 때마다 여기에 입원한다”고 말했다. 이곳은 통일교단이 세운 병원이지만 일반인 환자와 통일교인 환자 간에 차이는 없다. 의료진도 통일교인은 20~30%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비(非) 교인이다. 비(非) 교인인 정신과 전문의 신성응 과장은 “이 지역 주민들은 처음에 통일교에서 병원을 세운다고 해서 이상하게 봤지만 이제는 종합병원이 가까운 곳에 있다고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곳을 ‘종교 병원’으로 보지만 서양 사람들은 양·한방 요법을 더 좋아하고 이곳을 친환경 병원으로 인식한다”고 말했다. 가평= 김철중 조선일보 의학전문기자(doctor@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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