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

 

 

종일 우울하다.

요즘 한 사흘 내내 휴지, 걸레만 들고 산다.

하루에도 수십 번 걸레 빨기~~ 비누에 빡빡 문질러....

 

우리 집엔 이미 강아지가 세 마리나 있다.

엊그제...늦은 밤에 전화가 왔다.

"XX님~~ 강아지 안키우실래요? 시베리안 허스키 한 쌍이에요"

내가 중매해준 욱이 엄마다.

"그럼 주무시지 마세요"

얼결에 그러지 머 했는데... 우리 집 머스매 둘이 좋아서 난리다.

꼭 키워보고 싶었단다.

아니 얼마전에는 꼭 '골든 레트리버'를 키워보고 싶다기에 그 소원대로 입양했잖은가?

이러다...키워보고 싶은 대로 다 들이면 집이 아니라 개천국이 되겠다.

만약에 온다면 뒷마당에 헨스를 치고 몽이랑 함께 키우지 뭐... 그런 생각도 해두었다.

 

막내늠..그랬다간

"엄마 안되겠지요? 갖고 오지 말라 전화하세요~~"
"아..나도 그러고 싶은데...정말이야~~" 어쩐지 기분이 마뜩잖았지만 이미 어쩌랴

말을 꺼낸 뒤인걸... 이상스레 별로 내키지 않은 이런 일도??

 

좀 있다가 초인종 소리에 대문 앞까지 따라나온 우리 집 막내 종열이는 화이트 허스키라며

그나마 굉장히 좋아했다.

그 중 화이트 허스키 한 마리만 하란다.
암놈은 어머니가 키워보겠다고 하신 단다.
그러면서 약을 준다. 설사병에 걸렸단다.

'헉! 강아지에게는 설사가 치명적인데...전염도 쉬 되는데..'
싫다고 똑 부러지게 말도 못 꺼내고 마지못해 받아들였다.
그런데 상태가 심하다. 욱이 아빠 친구네서 얻어왔단다.

욱이와 그 남동생,  남자 아기가 둘이니 얼마나 조물려트려서 스트레스를 받게 했는지...
가히 짐작이 가는 상황이다.

병원에 갔더니.. 설사할 때는 예방 접종이 안 된다며 약만 먹이라며 주고 간다.

 

'어라..뭔가 이상하다~~'

아무리 늦은 시간이라지만,.,날 대문 밖으로 불러내서는 집에도 들어오지도 않고

개가 언제 태어났으며... 뭐 이런 얘기 단 한마디도 없이....그냥 휭-떠나버리다니...

아이들이 산 생명을 장난감처럼 마구 주무르다 싫증이 났다거나 아프다가나 하면

그 생명을 끝꺼지 책임져야 할 일이 아닌가?

 

이 게 어디 갖다 버리는 것이지.. 강아지를 주는 것인가?

우리 엄니는 도로 갖다 주라고 난리도 아니시다.

참  어리석은 나도 많이 생각케 되는 일이다.

욱이 엄마의 언니네 부부와 우리 부부는 교회에서 알 게 된 단짝 부부다.

(남선교회/여전도회)

어쩌면 그녀도 내 블로그를 몰래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블로그는 서로 잘 알고있는 사람들이 보게되면 마음속의 글이 다 나오질 못하는 법인데....

남편들끼리는 동갑이지만 그녀는 한참 아래여서 나와는 나이 차이가 좀 난다.
그러나 얼마나 똑 부러지게 영악한지..
얄미울 정도다. 깔끔하기로 결벽증이 좀 있는데.. 그 자기의 깔끔함을 세상 잣대로 삼는...

현관 쓸고 닦고..지저분하면 가족들에게 신경질을 냅다 부리는,

자기를 늘 볶으며 사는 그녀, 그 곁의 가족들은 또 얼마나 좌불안석일까?

 

그녀의 동생 욱이 엄마는 늘 언니네를 생각해서 뭘 가져와도 꼭 두 개를 마련하는데..
아마도 강아지도 그래서 두 마리를 얻어온 모양인데...가져다 논 강아지가 똥을 싸대니..

필시 싫다고 난리 법석을 치며.....아마도  내게  갖다주라고 했을 것이다.


우리어머니는 이 게 주는 거냐? 버리는 거지? 빨리 전화해서 보내라고 난리시고...

 

'엄니 그러면 우리가 더 나빠져요~~"

 

정말 우울한 생각이 들지 않는 건 아니다.


그녀는 우리 집에도 현재  몽이까지 세 마리라고 분명 알고 있을 텐데...
왜 내게 이 병든 강아지를 보냈을까?
강아지의 생태를 잘 모르니..죽을거란 생각은 않았겠지...그랬겠지? 많게는 소형견 15마리(모두 한 가족/아까워서 못 나누고)도 기르던 나였으니.. 그리고 목욕도 같이 하다시피 한 나였으니...이쯤이야 알아서 잘 살리겠지 하는 마음에서였을까?.....아마도 믿는 마음에서 였을까?
마음이 복잡해져왔다.

 

약을 먹이니 약도 게워낸다.
아무래도 불길해서 따로 격리해서 키우기야 하고 있지만..

뒤치다꺼리가 힘든다.
개에게는 인삼이라는 마른 북어를 고아서 불린 쌀을 빻아 미음을 갖다 놓았지만 물만 먹는다.
해서 물도 두 종류를 갖다 두었다. 설탕물과 생수,

 

급기야 어제 저녁엔 피 같은  설사를 하기에  아들들에게 병원 다녀오게 했더니..
다 문을 닫았더란다.  24시 동물병원도 불만 켜졌고...비가 많이 와서 그랬을까?

 

오늘 아침 일찍 병원을 다녀온 막내 종열이..
검사료가 비싸..42,000원이니 들었다며...엄마 개들에겐 바이러스가 다 있는데요
스트레스를 받으면 이렇게 된대요 그리고 허스키는 어려서는 장도 약해서 장염도
잘 오는데.. 이젠 어쩔 수 없대요. 외국 같으면 안락사 시킨대요.
다른 개들에게 전염성이 강하니 격리시키래요. 사망확률이 75%니  아무 것도 주지말고(심지어 물까지도) 지켜보래요.

이런... 맙소사..그럼 죽기를 지켜보라는 말이로군.

그럼 검사나 하지 말지..나쁜.....사람들....죽을  강아지에게 검사는??
그럴 줄 대충 알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죽을만큼 무척 괴로울 때는 내 곁을 찾아오더니... 이젠..어두운 구석만 찾아 들어간다.

...............

 

오늘 아침,
나는 흉흉한 꿈을 꾸고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불길하다기  앞서 우울하다.

그러지 않아도 그 집사님네랑 사이가 좀 소원한데... 뭔지 모르게 서운하다.
아픈강아지 던지다시피 주었으면 그 안부 전화라도 먼저 해 줄 수 있을 텐데...

 

 

생명,
어찌..나를 빤히 보는 이 동물을 ... 날더러 어떻게 하란 말인가? 

 

..

 

 

혁이는 갔습니다.

생명하나 지어 나와..이 세상에 며칠을 머물다 간지 모르겠습니다.

언제 태어났는지... 그 것도 모르지만....갔습니다.

우리집에 버려지다시피....유기된...아기

일요일 밤 11시 넘어 와서 4박5일을 함께한 혁(화이트 허스키)이~~

 

마지막 모습, 그 게 보기 싫어서 아들 넘에게 맡기고  배낭을 지고는 12시 무작정 기차를 탔습니다.

해발 500쯤되는 동두천 소요산을 올랐습니다.

 

오후 5시 쯤 산을 내려와서   6시 30분경 집에 다다랐을 때는 전화로 곧 죽겠다기에...

집으로 들어 오지 못하고 그냥 무턱대고 시내를 한바퀴 더 돌았습니다.

 

이제 죽음은 보기 싫습니다.

저에게 그 분은 왜 죽음을 많이 보여주시는지...

 

아픈 다리로 걷고 걸었습니다.

오후 8시 반에 집에 들어오니... 혁이는 뒷대문 밖에 내놨답니다.

 

엄니는 우셨는지.. 코가 빨갛습니다.

엄니는 마음이 너무 아프다셨습니다.

엄니는 그 넘이 눈에 밟힌다며... 저녁도 안드십니다. 아니 못 드신답니다.

 

두 넘이(아들) 혁이를 묻으러 갔습니다.

깊이 잘 묻으라 했습니다.

 

지금 막..돌아왔습니다.

내일부터 장마비가 많이 온다는데... 잘 묻었냐 물었습니다.

 

내세에는 그런 허튼 생명을 타고 나지 않았으면 합니다.

 

 

.................

 

강아지 죽음 하나 두고 무슨 장난이냐 하시겠지만...

그렇습니다.

겨우 젖 뗀.. 하찮은 미물의 강아지, 생명일지라도... 너무 안쓰럽습니다.

이리도 온 가족이 우울합니다.

 

 

걱정, 함께 해주신 이웃 블로그님들

춘하추동님..... 깡통로봇, 빼빼님 정말 고맙습니다.

 

제가 우리 엄니에게는 못할 짓을 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엄니~용서하세요~"

 

 

                                             Vitalli Chaconn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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