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울어진 첨성대

 

 

피사의 사탑, 경주 첨성대


어! 이상하다.

 

사진을 캡쳐하면서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첨성대 사진을 열 장 가까이 찍었는데....한결같이 사진이 삐딱하게 나온 것이다.

할 수없이 고르고 골라 그 중에서 구도가 반듯한 듯한 사진을 그나마 하나 골랐다.

여러분들도 경주에 가시면  아무 스스럼없이 자연스레 사진을 찍어 확인해 보시기를,

묘하게도 약간 기울어진 첨성대를 손쉽게 얻으실 수가....

첨성대가 정말 피사의 사탑처럼 되어 가는군요.

(미욱하게도 첨성대가 기울었다는 사전 지식이 내겐 없었지요~)

 

 

나는 아직도 첨성대를 바라보면 잘 모른다.

지금의 옥상만도 못한  방범초소 같은 장소에서 무슨 천문대 관측을...?

그런 생각을 그 때도 했었다. 그냥 첨성대가 석조물로써  그 가치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과(어렸을 적)

어른이 된 지금은 그저 고정된 자리에서 바라보이는 별자리의 이동을 알면 달력이 없던 시기에 그나마

농사 절기를 알아 낼 수 있지 않았을까...하는 정도였다.

 

음...그러니까 나침반이 발달하지 못했던 시대에 자오선의 표준이 되었다고 할 정도로 나는 다 아는 척

했다.  동양철학으로는 심오한 주역의 이치를 알 수 있는 천문대라고도 하는데, 거기 까지는 나의 나의 한계 밖이고,

 

첨성대는 언제나 별 볼 것 없다는 실망만 안겨 주었는데,'아는 것만큼 보인다' 는 말을 이젠 알 것 같다.

불교와는 전혀 무관한, 과학적인 석조 건축물이었으니,

 

지역 주민들에 의하면,  6·25 전쟁 이후 첨성대의 기울어짐이 심해졌다고 증언했다며

“당시 첨성대 북쪽에 포병부대가 있었고 탱크들이 지나다녔는데 그것이 지반 약화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안타깝다.

그런 문화유산이 밤에는 화려한 조명아래 정작 그 아픈 흉터를 가리고 섰으나..

그 훼손의 복원은 우리가 맡아 해야 할 몫인 것을....

 

 

 

 

 

2006년 2월11일 밤,

글:사진/이요조

 

 

 

내용/검색글 편집▼

 
 첨성대가 기울고 있다.
 
북쪽 7.2㎝, 동쪽 2.4㎝  지반 무르고 수분 많은탓

 

 

 

기울어진 첨성대’에서 주목되는 부분은 이탈리아의 피사의 사탑(斜塔)처럼 첨성대의 기울기가

‘현재 진행형’인지 여부이다. 2003년 12월의 1차 조사 결과와 오는 9월부터 착수할 2차 조사 결과

를 비교해보면 혹시 있을지도 모를 ‘붕괴 가능성’을 막는 방법으로 이어질 것이다.

첨성대가 기우는 이유는 세 가지가 제시됐다.

 

▲첨성대를 받치고 있는 땅을 분석한 결과 북동쪽이 상대적으로 덜 단단하고

 

▲첨성대 밑 북동쪽 땅에 수분이 많이 포함돼 있는 점

 

▲지하 부분에 대한 레이더 검사 결과 기초에 사용된 돌(일명 호박돌)이 많이 깨지고 무너져 있다는 것이다.

 

 

 

 

 

 

 

▲ 右上 전체가 기울면서 틈새가 벌어진 모습도 보인다. 左 이에 비해 1890년대 후반~1900년대 초반으로 추정되는 사진에는 첨성대가 똑바로 서있고 틈새고 발견되지 않는다.   右 첨성대가 기울어진 모습은 눈으로도 쉽게 확인된다. 첨성대 아래 '기단석'은 수평과 비교할 때 북측으로 1.91도 동쪽으로 0.745도 기울어져 있다.

 

 

정성스런 설명의 검색이미지

 

 

경주 첨성대

 

 

개요

 

      ㅇ  
신라 선덕여왕때 세워진 첨성대는 천문관측대로 동양에서 가장 오래 되고 유일한 석조
           구조물이다.  화강암으로 되어 있으며, 규모는 높이9.17m, 윗지름3.1m, 아랫지름이5.17m,
           지대석 한 변의 길이가 5.35m이다. 
           이중으로 지어진 지대석과 기단은 네모 형태로 8매와 15매의 장대석으로 되어 있고,  그
           위에는  27단으로 원통형의 본체를 쌓았는데,밑은 넓고 위로 갈수록 좁아지다가 윗부분은
           수직으로 되어 있다.
           여기에 사용된 석재 수는 1년을 나타내는  365개이며, 1단의 높이는 약30cm 이다. 정상에는
           우물  정(井)자 석이  2단으로 쌓여있는 데 이  위에  어떤 관측기를 놓았을 것이라고 추측
           된다. 24절기를 별을 통하여 측정하였고 이 정(井) 자석이 신라 자오선의 표준이 되었으며
           동서남북의 방위 기준이 되었다고도 한다.현재 동북쪽으로 약간 기울어져 보이나 석조부분
           만은 원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매우 보기 드문 유적으로, 국보 제 31호로 지정되어 있다.

 

 

문화재 가치

 

ㅇ 국보 제31호 경주 첨성대, 경북 경주시 인왕동 안에 보존.

ㅇ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대인 <첨성대>는 634년(신라 27대 선덕여왕 3년)에 세워

졌다.

ㅇ 또한 이 <첨성대>는 종교적 건물을 제외하고는 현재 전하는 건물 중에 가장 오래된

건물이기도 하다.

 

 

기능

 

ㅇ 이 첨성대는 별을 관측하는 것 외에도, 4계절 24절기를 정하는 역할을 맡아 보았으며,

해석하기로는 신라의 도시계획연구소였을 가능성도 있다.

 

 

모양

 

   ㅇ 전체 계단 수 = 30단(음력으로 한 달 30일을 나타냄)

   ㅇ 밑둘레 기단 돌 = 12개(1년 12개월을 나타냄)

   ㅇ 계단 본체 = 27단(신라 27대 선덕여왕을 나타냄)

   ㅇ 꼭대기의 네모진 이중 석재 = 각각 동, 서, 남, 북을 나타냄(방위)

 

 


종목 : 국보 제31호
분류 : 유물 / 과학기술/ 천문지리기구/ 천문
수량 : 1기
지정일 : 1962.12.20
소재지 : 경북 경주시 인왕동 839-1
시대 : 신라
소유자 : 국유
관리자 : 경주시

천체의 움직임을 관찰하던 천문관측대로, 받침대 역할을 하는 기단부(基壇部)위에 술병모양의 원통부(圓筒部)가 올려지고 맨 위에 정(井)자형의 정상부(頂上部)가 얹혀진 모습이다.

원통부는 부채꼴모양의 돌로 27단을 쌓아 올렸으며, 매끄럽게 잘 다듬어진 외부에 비해 내부는 돌의 뒷뿌리가 삐죽삐죽 나와 벽면이 고르지 않다.

남동쪽으로 난 창을 중심으로 아래쪽은 막돌로 채워져 있고 위쪽은 정상까지 뚫려서 속이 비어 있다.

동쪽 절반이 판돌로 막혀있는 정상부는 정(井)자모양으로 맞물린 길다란 석재의 끝이 바깥까지 뚫고 나와있다.

이런 모습은 19∼20단, 25∼26단에서도 발견되는데 내부에서 사다리를 걸치기에 적당했던 것으로 보여진다.

옛 기록에 의하면, “사람이 가운데로 해서 올라가게 되어있다”라고 하였는데, 바깥쪽에 사다리를 놓고 창을 통해 안으로 들어간 후 사다리를 이용해 꼭대기까지 올라가 하늘을 관찰했던 것으로 보인다.

천문학은 하늘의 움직임에 따라 농사 시기를 결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농업과 깊은 관계가 있으며, 관측 결과에 따라 국가의 길흉을 점치던 점성술(占星術)이 고대국가에서 중요시되었던 점으로 미루어 보면 정치와도 관련이 깊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일찍부터 국가의 큰 관심사가 되었으며, 이는 첨성대 건립의 좋은 배경이 되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신라 선덕여왕(재위 632∼647) 때 건립된 것으로 추측되며 현재 동북쪽으로 약간 기울어져 있긴 하나 거의 원형을 간직하고 있다.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대로 그 가치가 높으며, 당시의 높은 과학 수준을 보여주는 귀중한 문화재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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