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은 1997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과거 무차별 개방으로 훼손됐던 창덕궁을 1979년부터 제한된 관람과 가이드와 동행하는 관람 방법 등을 통해 잘 보존해 온 결과였다. 이번 후원 1Km 개방은 자연 상태의 비경을 그대로 담고 있다는 면에서 언론과 세간의 관심을 받고 있다.



   ▲부용정, '사정기비각'

 

 

창덕궁 비원은 우리가 만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가장 한국적인 정원이라는 사실에는 어떠한 부연도 필요없다고 생각한다.

후원은 단지 정원의 의미 뿐만아니라 왕이 여가와 복잡한 현실속에서 벗어나 욕심을 버리고 마음으로 사색을 했던 장소이다.

조선의 왕들이 경복궁이라는 버젓한 정궁을 두고도 그보다 작은 창덕궁의 비원에 머물기를 좋아했던 까닭은 자연의 지세에 별다른 변경을 가하지 않고 그에 어울리게 건물을 배치했기 때문이다.

뿐만아니라 경북궁처럼 좌우 대칭과 같은 정연한 구도가 아니라  인공이 아닌 자연, 기계적인 삭막함이 아니라 따뜻함과 섬세함이 알게모르게 묻어난다는데 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건축은 정원못지않게 자연과 조화를 이룬다. 비원 안의 건물들 또한 그러하다.

부용정, 영화당, 애련정 , 연경당등도 그런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나무와 벽돌로 집을 짖고, 얇은 창호지로 창과 문을 만들어 밖의 자연의 소리와 함께 동화되고, 햇살의 따사로움 또한 창호지를 통해 방으로 들어오는 느낌이란 어느 나라에서도 느낄 수 없는 우리만의 것이라 생각한다.

안과 밖이 자연스레 보이는 낮은 담장, 마루 또한 막혀있는 것이 아니라 방에서 나와 마루에 앉아 멀리 보이는 자연의 풍경을 애써 보려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보이는 그런 점들이 우리나라 선조들이 얼마나 자연을 파괴하지 않고 동화되려 했던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 부용정의 자연정원


후원입구 낙선재에서 다시 중희당 터를 지나 북쪽으로 진행하면 문이 두 개 나오는데 동쪽문은 창경궁으로 통하  는 문이고 서쪽문은 후원으로 통하는 문이다. 그런대 후원으로 들어가자면 한가지 눈에 걸리는 게 있다. 바로 깔끔하게 포장된 포장도로 이다. 이곳은 시민들이 휴식하는 공원이 아닌 말 그대로 역사를 보존하고 있는 보존 공간이다. 이 포장도로는 1960년대 군사정부시절 만든 도로라 했다. 산길을 포장한 덕(?)에 양쪽의 생태계를 갈라놓는 꼴이 꼴이 되었다한다.

 

'금마문'안의 좌우모습
 

 

창덕궁을 관람하고,

 

창덕궁 후원 옥류천 특별관람은 입장객의 인원을 제약한다.

홈페이지로 들어가서 회원가입을 하고 후원 특별 관람 신청해야하는데,   내가 갈 때만 해도 동절기라  후원의 백미인 옥류천 등, 특별 관람은 금지 되었단다. 그 것도 6월1일부터 개시가 된다니 언젯적부터 우리나라 동절기가 6월이 와야 끝나는가? 의아스럽다. 나는 작년부터 비원을 보고 싶어서 자못 안달이 났던 게다.

나 같은 사람들의 불평이 잦았는지 앞당긴 3월 28일부터 특별관람을 개시한단다.

홈페이지로 들어가서 가입을 하고 , 특별관람 3월 28일자 예약을 하려고 아무리 클릭을 해도 열리지 않는다. 가만히 보니 예약 날자가 따로 있단다.

그 것도 한 달 전 단 하루만, (09:00 부터 인터넷 예약 접수)

3월 관람은 3월17일,  4월 관람은 3월 21일, 5월 관람은 4월 20일, 6월 관람은 5월 23일, 7월 관람은 6월 20일, 8월 관람은 7월 21일, 9월 관람은 8월 22일, 10월 관람은 9월 20일, 11월 관람은 10월 24일,


그러니..특별히 보고자 원치 않는 사람은 오지 말 것을 당부하는 게 아니고 뭔가?

명심하고 기억해뒀다가 필히 예약을 할 일이다.

그런데 현대를 살아가는 바쁜 사람들이 과연 바쁜 와중에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르는데...

예약 신청일 마저 외워두었다가 예약을 하고 또 한 달 뒤에, 관람할 날짜에 맞춰 창덕궁을

찾아가야 하고, 아! 너무 어렵다.

다행인 것은 하루에 3번 뿐인 관람에도 1시간 전에 가서 줄을 서있으면 1인 1매에 차례대로 10매

까지는 된단다.

아마도 인터넷 예약 후, 빠진 자리같은데...그 것도 관람객이 총 50명, 한정이라니~~

이번에 둘러 본 관람은 그냥 매시 15분 45분마다 들어가는 팀에 합류를 했는데  창덕궁 왼편

골목길~ 그 길의 좌로, 현대건물을 끼고 북쪽으로 올라가면 무료주차장이 있긴 했으나....

주차장에는 나오는 차가 있어야 들어갈 수 있으니 줄을 서서 기다려야한다.

주차를 잘 하고도 시간이 맞지 않으면 30분을 더 기다려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마침 내가 갔을 때는 어떤 고마우신 분이 대신 주차를 시켜주겠다기에 망정이지 겨울이라

3시 45분인데 그 게 마지막 관람이었다.


안내인을 벗어나 따로 관람이나 행동을 할 수 없는 곳!

관람을 하는 요일마다 관람 순서를 코스별로 정하여서 창덕궁 전체를 다 볼 수 없는 곳!

사진촬영은 단체로 행동할 때는 무료이지만 따로 할 때는 신청하고 4만원을 내는 곳!

 

경복궁내를 구경하고 오른쪽으로는 창경궁을 끼고 올라가는 도로는 깔끔하게 포장된 길이었다. 가을이면 사람들은 낙엽을 밟으며 즐거워할 운치는 있겠지만, 창경궁과의 생태계를 가로막았다는 길이다.

왼쪽으로는 후원을 들어가는 금마문과 불로문이 있고 오른쪽으로는 창경궁과 통하는 문이 닫겨져 있었다.  곧장 바로가면 비스듬한 산 언덕으로 내려다보면 애련궁이 있는 애련지와 후원뜰이 거지반 보인다는 곳!

창덕궁 후원이 난잡한 놀이터로 변한 것은 연산군 때이다. 연산군 3년 초에 후원의 서쪽담장을 높이 고쳐 쌓게 하여 궁밖 사람들이 궁안의 놀이를 들여다보지 못하게 하였고 또 9년에는 동쪽담장과 서쪽담장 아래쪽의 집들을 모두 헐게 하였다. 더욱이 10년에는 성균관이 후원과 근접하고 있다고 하여 성균관을 다른 곳으로 옮기게 하였다.

 

안내인의 자세한 이야기도 들을 겨를 없이 나는 셔터 누르기에만 급급했다.

마지막으로 돌아 나오는 길에 금천교 다리를 그냥 지나쳐서 대충 윗부분만 찍은 게 마음에 걸려서

제대로 찍어보고자 다리 북쪽을 좀 자세히 찍으러 퇴장하는 무리에서 잠시 이탈했다.

조각이 다르다는 다리 맞은편 남쪽도 찍어왔어야 하는데...

출구 쪽에서 안내를 하던 아가씨와 관리인이 내 모습을 주시하고 있다.

미안해서 그 자리를 얼른 벗어나 나왔다.


집에 와서 사진을 보니, 그 아름다운 석축의 다리 모습에 감탄!!  너무 너무 마음에 흡족했다.

잡귀를 쫓는다는 도깨비 얼굴도 보이고 큰 거북이도 한 마리도 엎드려 있다.

비록 창덕궁은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 창건되었지만 이 돌다리만은 그대로라니...

거의 600년이 넘은 창덕궁의 진짜배기가 아닌가!

 

그나마 다행인 것은 보고싶었던 낙선재를 보았고, 그래도 후원 입구를 들어서서 후원의 일부인

아름다운 애련각과 부용정을 보고,

금천교(북)를 외쪽이지만 찍어 온 일이다.

 

창덕궁의 출입제한이 심하다고 불평한 점, 정말 바르지 못한 생각 같아 미안하게 생각한다.

너무나 안일하게 길들여져 있었으므로 궁에 대한 경외심이 나에게도 물론 없었음이다.

궁은 역사의 현장이고 역사를 담고 있는 곳이지 소풍장소가 아닌 것이다.

우선 창경궁을 한 번 생각해보자 저들은 우리의 궁에다가 짐승들을 모아놓고 창경원이라 비하한 이름을 붙여놓고 가볍게 소풍을 오는 곳으로 만들었다.


일인들은 자기들의  궁을 황궁이라 부르며 신궁으로 떠받들면서 우리 궁은 도시락 싸들고 놀러나 가는 관광유원지로 만들어 버렸던 것이다.


 

창덕궁의 출입제한이 심하다고 불평한 점, 정말 바르지 못한 관념의 인식에 나 자신, 부끄럽게 생각한다.

너무나 안일하게 길들여져 있었으므로..... 궁에 대한 경외심이 나에게도 물론 없었음이다.

궁은 역사의 현장이고 역사를 담고 있는 곳이지 소풍장소가 아닌 것이다.

우선 창경궁을 한 번 생각해보자 일제강점기하에 저들은 우리의 궁에다가 짐승들을 모아놓고 창경원이라 비하한 이름을 붙여놓고 가볍게 소풍을 오는 곳으로 만들었다.


일인들은 자기들의  궁을 황궁이라 부르며 신궁으로 떠받들면서 우리 궁은 도시락 싸들고 놀러나 가는 관광유원지로 만들어 버렸던 것이다.


창덕궁의 출입이 그만큼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우리는 자긍심을 고취시킬 일이다.


다시금 올곧게 새겨보는 민족 혼,

어려울수록 그만큼 보존도 잘 될 것이 아닌가!

이제라도 우리 후손들에게만은 바른 문화유산을 물려줘야겠기에,

나는 이제  출입의 그 어려움을 달갑게 감수할 것이다.


 

글:큰사진/이요조

○작은 사진과 해설은 검색

 

◎ 창덕궁 홈페이지 정보

 

○일반관람/ 예약 필요없음(매시 15분 45분 입장 겨울은 3시45분 종료)
약 2,1Km 소요시간 약 1시간 20분
관람료:대인 3,000원 소인 1500원

 

○특별관람(옥류천)은 필히 예약 개장일로 부터 하루 3회
인원제한있음(50명)
관람료:5,000원
인터넷예약 40명 현장판매 10매(1인1매)


10시 관람은 9시부터, 13시 관람은 12시부터, 14시 관람은 13시부터,
3,1Km  소요시간  2시간 내외
예약은 인터넷 홈페이지로 매월 4째주 하루만 9:00부터 다음 달 한 달분을 예약 받습니다.

 

 

       

금마문과 불로문


      후원으로 들어가는 문이다.

      남쪽에는 금마문이 있고 북쪽에는 불로문이 있다. 금마문은 왕이 드나들었던 문이라는데,

      그 문으로 들어가면 입신양명하고 불로문으로 들어가면 건강하게 오래산단다.

      개중에는 이탈해서 금마문으로 들어가는 이, 두엇을 빼고는 대부분 불로문으로 우르르~~ 불로문은

      통으로 조각된 돌문이다. 물론 나도 입신양명보다는 그저 잘먹고 잘살기, 불로문을 택했음은 물론이다.

 


▲ 애련정

불로문과 애련정


금마문 옆 담장 중간에는 담장을 끊어 2개의 다듬은 돌 초석을 놓고 이 위에  모양으로 한 장의 통 돌을 깍아 세운 불로문이 있다. 본래에는 문짝을 달았었는지 돌쩌귀 구멍 자리가 남아 있는데 이 문을 드나들면 늙지 않기를 기원했던 모양이다, "궁궐지"에도 불로문 앞에 연못이 그려져 있는 것으로 볼때  이"궁궐지"의 기록이나 "동궐도"의 내용이 서로 같으며 또 사실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또한 동궐도"에는 순조 27년(1827)에 지은 기오헌과 의두각이 없고 대신 양안제와 거림운이라 쓴 2채의 집이 그려져 있는 것으로 보아 동궐도"가 필자가 밝현던 순조 24년

(1824)에서 28년(1828) 사이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했던 것을  1년 앞당겨 1827년 이전에 그려진 것이라는 사실을 밝힐 수 있게 되었다. 불로문을 들어서면 오른쪽으로 넓은 네모난 연못이 있고 이 복쪽 연못가에 애련정이 자리잡고 있다. 애련정은 숙종 19년 (1692)에 지은 것이다. 부연을 둔 겹처마로 사모지붕 중앙에는 절병통을 얹어 마무리하였다.기둥과 창방 아래에 낙양판을 붙여 정자 안에서 밖으로 내다보는 경관이나 정자를 바라볼 때 한층 아름다움을 더해 주고 있다.

기둥에는 주련 들이 걸려 있는데 그시는 다음과 같다.

 

비맞은 연잎 위에 진주알 흩어지고

활짝 핀 연꽃은 단장한 고운 볼일레

정자는 여래 자리에 가깝고

못은 태을주를 띄웠네

꽃이 사랑스러워 군자라 일컫고

거북이 나이를 성상께 바치네

푸른 연대로 어주를 드리고

찬란한 놀 천화의 향기 흩도다

 
 

▲주합루 어수문


주합루/어수문
 


주합루는 부용정 북쪽 맞은편 부용정 연목의 북쪽 놓은 언덕 위에 이층 다락집으로 우뚝 서 있다. 이 주합루를 처음 세운 것은 정조 원년인 1777년으로 아래층에는 왕실의 도서를 보관하는 규정각이 있고 그 위층은 열람실로서 사방의 빼어난 경관을 조망할 수 있는 누대가 있다. 정문인 어수문을 들어서서 여러 단의 돌계단을 딛고 올라서노라면 먼저 주합루 팔작 지붕이 그리고 다음으로는 누의 공포 창방 기둥들이 눈앞에 다가 오다가 1층 규장각 제일 중앙 어간을 마주하게 된다. 누의 건축은 장대석 바른층 쌓기를 한 높은 기단위에 다듬은 돌초석을 놓고 밖으로는 방주를 세우고 안쪽으로는 두리기둥을 세웠다. 기둥 윗몸에 익공 2개를 놓아 이익공 양식으로 꾸몄다. 부연을 둔 겹처마로 팔작 기와지붕을 덮었는데, 용마루는 양쪽에 회를 발라 양성을 하였고 용마루 끝에는 취두를 얹고 추녀마루에 잡상들을 얹어 한껏 치장을 하였다.


▲주합루, 규장각

 

 


 
▲사정기 비각덕궁


 

사정기 비각


부용정 큰 못 서쪽물가에 서 있는 이 비각은 숙종 때 세운 것이다 본래 세종 6년 영순 군과 조산군으로 하여금 지금의 주합루 근처에서 우물을 찾도록 하였는데 마침 두짝 씩 찾아내어 이것들을 마니, 파려, 유리(琉璃), 옥정이라 이름을 지었다. 뒷날 숙종 16년(1690)에 이를 기념하여 옛 술정각 자리에다 비를 세우고 비각을 건립하였는데 이것이 사정기 비각이다.



 

 

 

▲ 부용정



 

부용정


부용정은 숙종 33년(1707)본래 택수재로 지은 것을 정조 16년에 고쳐 지으면서 부용정이라 부르게 된 정자이다. 정자의 남쪽은 낮은 동산인데 여기는 단이 지게 흙을 파내어 고르고 그 가장자리를 장대석으로 마무리 하였다. 그리고 단마다 꽃을 심거나 석함을 놓아 치장하는데 이것이 바로 우리의 전통정원에서의 화계라 부르는 것이다.

화계는 글자 뜻 그대로 꽃을 심어 만든 계단을 말하는데 궁궐 뿐만 아니라 사대부 집이나 정자, 누대 등이 서 있는 주변에 구릉이 있는 곳이면 화계를 꾸민다. 우리나라는 전국토 2/3가 산지이기 때문에 곳곳에 산과 구릉이 많아서 이런 화계를 (부용정에 새겨진 물고기)두는 것이 일반적인 정원의 모습이다.  그리고 화계는 특히 뒤뜰 뒷동산을 중심으로 두기 때문에 예부터 뒷동산을 잘 가꾸어 왔고 이를  가꾸는 사람을 "동산바치"라 불렀다.
동산바치는 오늘날의 정원사이다.

 

부용정 화계위에는 석함이 있고 석함에는 괴석이 담겨져 있는데 일종의 정원을 꾸미는 석물이다. 괴이하게 생긴 그러나 운치 있는 괴석을 담아 두는 석물이라 하여 석함이라 부르며 때로 괴석을 받쳐주는 대라는 뜻으로 괴석대라고 도 한다. 석함은 일반적으로 정방형이나 장방형이지만 때로 육각형, 팔각형이기도 하다. 그 높이도 다양하여 바닥에 닿는 낮은 것에서부터 높은 대를 세우고 그 위에 다시 괴석을 담은 석함을 올려놓기도 한다. 또 부용정 기둥에는 기둥마다 주련들이 걸려 있는데, 여기에는 한시들이 초서체로 새겨져 있어 이들 시구를 감상하노라면 저절로 시흥에 젖고, 더더욱 부용정의 공간정서에 몰입하게 된다.

시는 다음과 같다

 

천 떨기 고운 자태 아름다운 놀 흐르고

십리에 퍼진 맑은 향기 사향을 터트린 듯

낭원의 신선들 푸른 일산 펄친듯

대라천 일천 부처 향성에 싸여 있듯.

붉은색 푸른색 어리 비쳐 맑은 물에 드리웠고

꽃도 잎도 향기로워 발속에 스며드네

활짝 핀 꽃봉오리 삼천궁녀 취한 볼이요

연잎의 빗방울은 오백 나한 염주알이라.

거북이 놀고 고기 헤엄치는 맑디 맑은 가을 물속이요

이슬 짙고 바람 좋은 서늘한 초가을일레.



<우리궁궐이야기, 청년사, 홍순민 지음> 발췌


 

▣  고궁문화재 무료안내

 

               한국어 : 3월(16회)      : 09:15 ~ 16:45 매시15분, 매시45분 입장
                        4월~10월(17회) : 09:15 ~ 17:15 매시15분, 매시45분 입장
                        11월~2월(14회) : 09:15 ~ 15:45 매시15분, 매시45분 입장

               영  어 : (3회) 11:30 / 13:30 / 15:30
               일  어 : 3월~10월(5회) - 09:30, 10:30, 12:30, 14:30, 16:30
                        11월~2월(4회) - 09:30, 10:30, 12:30, 14:30
               중국어 : (2회) 11:00, 15:00
               ※ 문의 02)762-8262

특별 관람코스
 - 실시시기  2006,3, 28 ~ 2006.11.30 (휴궁일인 매주 월요일은 제외)
 - 매일 3회 (10:00, 13:00, 14:00)
 - 입장료 : 5,000원
 - 문의 및 예약 : 02-762-0648  www.cdg.go.kr

                  10시(1회)               1시(2회) / 2시(3회)
   ===============================================================
   제 목       옥류천 산책 관람           옥류천 안내 관람
   안내방법   별도의 설명없이 안내자와   안내자의 해설과 함께 관람
              동반 관람

 

 

 

창덕궁관리소
창덕궁 보존, 관리 및 외국어 안내.
02-762-0648 | 서울특별시 종로구 와룡동 2-71 
창덕궁휴게소
02-762-6268 | 서울특별시 종로구 와룡동 5-4

 

▶여행길잡이


▲창덕궁=지하철 3호선 안국역 3번 출구에서 5분 거리. 개별 관람을 할 수 없고 정해진 시간에 입장해 안내를 받아야 한다. 동절기(12~2월)에는 오전 9시45분부터 오후 3시45분까지 매시 45분에 입장이 가능하다. 1회 입장객을 50명 선으로 제한하고 있다. 인터넷 예매가 편리하다. 창덕궁 홈페이지 참조(http://www.cdg.go.kr)

 

 


창덕궁은 조선시대 궁궐 가운데 하나로 태종 5년(1405)에 세워졌다. 당시 종묘·사직과 더불어 정궁인 경복궁이 있었으므로, 이 궁은 하나의 별궁으로 만들었다.

임금들이 경복궁에서 주로 정치를 하고 백성을 돌보았기 때문에, 처음부터 크게 이용되지 않은 듯 하다. 임진왜란 이후 경복궁·창경궁과 함께 불에 타 버린 뒤 제일 먼저 다시 지어졌고 그 뒤로 조선왕조의 가장 중심이 되는 정궁 역할을 하게 되었다. 화재를 입는 경우도 많았지만 제때에 다시 지어지면서 대체로 원래의 궁궐 규모를 잃지 않고 유지되었다.

임금과 신하들이 정사를 돌보던 외전과 왕과 왕비의 생활공간인 내전, 그리고 휴식공간인 후원으로 나누어진다. 내전의 뒤쪽으로 펼쳐지는 후원은 울창한 숲과 연못, 크고 작은 정자들이 마련되어 자연경관을 살린 점이 뛰어나다. 또한 우리나라 옛 선현들이 정원을 조성한 방법 등을 잘 보여주고 있어 역사적으로나 건축사적으로 귀충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160여 종의 나무들이 울창하게 숲을 이루며 300년이 넘는 오래된 나무들도 있다.

1917년에는 대조전을 비롯한 침전에 불이 나서 희정당 등 19동의 건물이 다 탔는데, 1920년에 일본은 경복궁의 교태전을 헐어다가 대조전을 다시 짓고, 강령전을 헐어서 희정당을 다시 짓는 등 경복궁을 헐어 창덕궁의 건물들을 다시 지었다. 지금까지 남아있는 건물 중 궁궐 안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은 정문인 돈화문으로 광해군 때 지은 것이다.

정궁인 경복궁이 질서정연한 대칭구도를 보이는데 비해 창덕궁은 지형조건에 맞추어 자유로운 구성을 보여주는 특징이 있다. 창덕궁과 후원은 자연의 순리를 존중하여 자연과의 조화를 기본으로 하는 한국문화의 특성을 잘 나타내고 있는 장소로,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