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석사의 석탑

극락에 이를 수 있는 16가지 방법 중 마지막 세 방법인 3품 3배관의 9품 만다라를 형상화하여 다듬어지지 않은 돌을 잘 짜 맞추어 쌓은 석축

부석사에 한번쯤 다녀온 사람들은 누구나 석축과 돌계단을 특별히 기억한다. 이 석축은 부석사를 창건할 당시 비탈을 깍고 평지를 고면서 만든 것이다.
물론 석축의 목적은 사찰을 짓기 위한 땅다짐에 있지만, 석축 돌계단 그 자체에도 상징하는 바가 있다. 즉, 극락에 이를 수 있는 16가지 방법 중 마지막 세 방법인 3품 3배관의 9품 만다라를 형상화한 것이다.

천왕문에서 요사체로 오르는 계단이 하품단이며, 여기서 다시 계단 오른 범종루까지가 중품단, 범종루에서 세 계단을 올라 안양루를 지나 무량수전 앞 마당에 다다르는데, 마지막 계단으로 상품단이다. 이렇게 부석사를 찾는 이는 상징화된 돌계단과 석축을 지나면서 극락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또 하나 눈에 띄는 점은 반듯하게 다듬은 규격화된 돌들로 석축을 쌓지 않고, 돌의 자연 생김새를 그대로 이용해 잘 짜맞추어 쌓았다는 것이다.

 

 

부석사 절집을 가려면 천왕문 계단서 부터 108계단을 올라야 한다.

그 계단이 있는 곳마다의 석축은 자연석 그대로 짜맞추었는데도 자로 잰 듯 반듯하게 잘 짜 맞추어 놓았다는 점이 아름다운 부석사의 절터를 다지는 시금석인 셈이다.

 

 해설사에게 들었던 정보를 살짝 기재하고 넘어가자면~~

천왕문1 안에는 사천대왕있는데 다른 사찰에서 보았던 형태와는 다르다, 검과 비파와 탑과 과일?을 들고 있다.

흔히 우리는 건달이라고 하는 말의 어원은 바로 비파를 들고있는 건달바(비파든 사천왕 이름)에서 나온 말이란다. 건달바는 인간세상의 락(樂)을 이름이고

검은 지혜의 검이고 탑을 든 사천왕은 불법을 말함이고 과일?을 든 사천왕은 사계절을 주관하는 천왕이란다.

 

천왕문에서 바라 본 석축과 계단의 정렬이 마음을 가다듬어준다.

 

천왕문을 들어서면 바로 눈 앞에 계단이 있는데....그 계단의 넓이가 각각 다르다.

석축이 담쟁이 덩쿨에 거의 가려져 있다.

계단의 넓이가 다른 점이 ..특이하다.

 자연석 디딤돌 그 느낌이 좋아서~~찰칵!

오랜세월 석축은 흔들림없이 부석사를 받치고 있다.

세월의 더께를 느껴보다.

 절터의 기반을 닦기 위함이지만 천년이 지나도록 너무나 반듯한 석축과 계단!!

안양루를 받치고  바로 아래의 석축

 잘 쌓았음을 바라보는....감동이다.

 부석사 절집은 볼 게 넉넉해서인지 108계단을 올랐는지 조차도 모를 일이다.

경치에 홀리고....아름다운 절집에 홀려서일까?

 담쟁이 덩쿨이 오래된 석축을 햇볕에서 은근히 가려주고 있다.

겨울이 오면 담쟁이는 옷을 벗고 따뜻한 햇볕을 쬐도록 해 줄 것이다.

아래 사진을 자세히 드려다 보면 볼수록 .......석축을 얼마나 잘 쌓았는지 느껴진다.

계단은 돌을 길게 잘라서 차곡차곡 쌓듯이 단을 쌓아 올렸다. 저러니 든든하지

후세에 이렇듯 많은 내방객이 있을 줄 알았을까? 아직 몇 천년도 더 든든하게 지탱해 줄 것이다.

자로 잰 듯 반듯한 석축 옹벽들

부석사에 가시거든 배흘림기둥만 만져보지 마시고

석축과 돌계단도 눈여겨 보자...내 몸을 내어주는 참 보시가 있음이야~ 

 

  1. 천왕문/절의 입구에 있는, 사천왕을 모신 문. 불법을 지키고 밖에서 오는 사마(邪魔)를 막으려고 세운다. [본문으로]

 

 

 

 

 

천년고찰 영주부석사1는 종교가 불교가 아니라는 이유 말고도 참으로 근접하기에 어렵다고만 느끼고 있었다.

지난 번 답사 때에도 무량수전을 (주심포의 팔작지붕 정도만 익히고)감히 이야기 하지 못하고 입구의 은행나무길만 생뚱맞게 쑤석거렸다.

 

 

 부석사2는 고려시대의 대표적인 주심포계 건물로 손꼽히는 무량수전과 여기에 봉안된 소조 불좌상, 현존 최고의 사찰 벽화인 조사당 벽화, 당간지주와 석등, 고려각판 등의 유물들은 모두 당대를 대표할 만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더구나 무량수전의 매력은 함부로 논하기가 어려운 건 사실이다. 한국의 유명한 미술사학자시며 미술평론가인  최순우(崔淳雨)님의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어 서서' 란 글이 베스트셀러가 되어서일까?  한국에서 가장 너른 정원을 가진(소백산자락) 절집이면서 한국 최고의 목조건물로 이만큼 아름다운 절집이 없어서?

 

늦더위의 따가운 땡볕에도 숱한 발걸음은 부석사로 이어지고 또 이어지고 있었다.

9월인데도 열대야가 왔다는 무더위 속이라 그런지 무량수전에서 바라다보이는 시야는 그리 맑지를 못했다.

 

절집을 찾는 사람들은 벼르고 별러 어쩌다가 찾지만 절집에 머무는 스님들은 철마다 변화하는 이 아름다운 부석사의 사계와 시시각각

태양의 위치에 따라 그 조명을 달리하는 모습의 자연을 대할터인데 달리 부럽다는 생각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처음 이 절을 찾았을 때는 나 스스로가 낯을 가렸다.

이젠 좀 친학 척 해보려고 무량수전에 올라서서는 아미타불(阿彌陀佛) 가까이 다가서기도하며  옆모습을 앵글에 담아도 보고 광배도 렌즈에 담아보고,

슬그머니 배흘림기둥을 어루만져도 보다가 종내는 슬쩍 기대어 서기까지 하였으니~~~

 

부석사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은 건축물 기둥의 중간이 굵게 되고 위·아래로 가면서 점차 가늘게 된 주형(柱形). 쉽게 말해 기둥의 위와 아래만 오목하고 가운데 부분이 볼록하게 나온 것을 말한다.

 

부석사....아무래도 서너번은 더 찾아와야지만 그 깊은 속내를 조금은 알 것만 같은.....

지금은 공사중이라 템플스테이도 2011년이 되어야 재개된다는데....와서 며칠은 잠시 속세를 잊고 아침저녁으로  부석사 무량수전에 안긴다면

며칠동안만 그리한다면  배흘림기둥 거랭이에 묻어 둔 침묵의 속살거림이라도 ..아니 향내라도 맡아지지 않을까?  천년 그윽한 .....

 

  지난 해 봄에 왔던 맑은 사진으로 대체해 본다.

안양문(安養門)계단

 『安養』은 곧 『極樂』을 일컬음이니 이 절은 바로 땅 위에 극락세계를 옮겨 놓은 격이라 한다.

안양문 계단을 오르자 무량수전 앞 석등이 보인다.

 

무량수전앞 석등

사각의 이중 기대석 위에 8각을 기본으로 한 통일신라시대의 전형적인 팔각석등으로 무량수전과 자오선상에 위치하고 있다.

계단에서 올라와서 곧장 무량수전의 아미타불께로 향하지 말고 우회하라는 뜻도 있다한다.

 

 무량수전은 우리나라 팔작지붕의 시원(始原)으로 알려져 있고, 주심포 기둥이 절묘한 배흘림기둥인 것으로도 유명하다.

 신라유물인 무량수전 앞 석등(石燈)(국보 제17호)

 

석등 앞으로 배례석이 놓였다. 상면 중앙의 연화문은 이중원의 자방을 두고 주변에 8엽의 잎을 돌렸는데

사이에는 간엽이 새겨졌다. 통일신라 이후의 일반형에 속하는 배례석이라 할 수 있다.

석등의 간주석은 팔각주이며  八正度 라고도 하는데,

1,정견 2.정언 3, 정업, 4정사선.....등의 교훈이 들었으며 바로보고, 바로 말하고....반듯한 생각과 반듯한 행동의 가르침등을 나타낸다고 한다.

 

 무량수전의 주심포

 배흘림기둥

기둥의 직경이 밑에서 1/3지점에서 가장 크고 위와 아래로 갈수록 작아지는 기둥을 말한다. 서양 그리스, 로마의 신전건물에서도 이러한 기둥을 사용했는데 이를 엔타시스Entasis라고 한다. 주로 큰 건물이나 정전건물에서 사용했다. 고구려시대 고분벽화의 건축도에서 배흘림기둥이 나타나는 것을 볼 때 배흘림은 고대서부터 사용되었으며 조선시대 말까지 이 기법은 이어진다. 현존하는 건물 중에서 고려시대 봉정사 극락전, 부석사 무량수전, 수덕사 대웅전, 강릉객사문 등과 조선시대 대부분의 건물에서 나타나는데 이중에서 강릉객사문이 배흘림 정도가 가장 강하다. 또 맞배집이 팔작집보다 배흘림의 정도가 강하게 나타난다. 통일신라기의 목조건물은 남아있는 것은 없지만 쌍봉사 철감선사부도(858년) 등의 석조물에서 배흘림 정도가 강한 기둥의 흔적을 찾아 볼 수 있다. 이로 보아 삼국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는 배흘림이 강했지만 조선시대 다포 팔작지붕이 유행하면서 그 정도가 약해졌다고 할 수 있다.

천년의 느낌을 어루만져보다. (13세기경 ) 고려시대 목조건물

 소조아미타여래좌상 (국보 제45호) 

소조불이라함은 흙으로 만든 불상이란 뜻이다.

 안양루 계단에서 아래로 바라보다.

안양문(安養門)을 세웠으니 『安養』은 곧 『極樂』을 일컬음이니 이 절은 바로 땅 위에 극락세계를 옮겨 놓은 격이 되는 것이란다.

이 안양루의 공포가 멀리서 바라보노라면 공포불 현현불로 비취는 신비의 모습!! 부석사의 숨은그림찾기가 이루어지는 곳이다.

 안양루를 받치고 있는 기둥과 거랭이돌

안양문을 통과 무량수전에 올라와 배흘림기둥에 기대어서 굽이굽이 소백산자락 능선을 바라보노라니..

홍진의 모든 업보가 말그라니 다 씻겨나가는 듯......

무량수전 뜨락에는 떨어진 돌배 몇 개가 나뒹굴고 배롱나무 꽃만 붉디 붉더라!

 

 

 

부석사라 이름하게 됨은 무량수전(無量壽殿) 서쪽에 큰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는 아래의 바위와 서로 붙지 않고 떠 있어 '뜬돌'이라 부른데서 연유하였다고 한다.

옛문헌'택리지'에 의하면 명주실이 이 돌 아래를 통과했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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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석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6교구 본사인 고운사(孤雲寺)의 말사이다.
〈삼국사기>〈삼국유사〉에 의하면 의상대사가 신라 문무왕의 뜻을 받들어 676년에 창건하고 화엄종을 널리 전했다고 한다.
우리나라 최고의 목조건물인 무량수전을 비롯해 국보5점, 보물4점, 도유형문화재2점 등 많은 문화재를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 10대 사찰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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