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이 소년기에서 청년기를 지냈던 외가다.
옛날에는 대체로 처가에서 사는 게 지금처럼 흉은 아니었나보다.
신사임당은 이율곡을 친정 강릉에서 양육했고 .....아산의 맹씨고택도 최영장군도 손서 맹사성에게 살던 집을 물려준 것을 보면...
물론 이순신의 친가가 가난해서 이 곳 외가로 와서 자랐다고는 되어있지만...요즘과는 달리 대체로 외가의 성장이 흔했나 보다.
장군이 마시던 우물도 있고 무과에 급제하기 전 연습하던 활터도 있고 그의 아들 이면과 그의 장인 장모의 묘소도 있는데,
이 문화재가 경매에 붙여지다니......참으로 어이상실이다. 네티즌들의 모진 입방아로 이슈화되고도 남겠다.
사실이지 문화재 500m이내에는 사유재산이라 할지라도 증개축이 허용되지 않는 상황을 고려하자면
응찰자도 없어 번번이 유찰되는 건 따논 당상,
현충사내의 이충무공의 고택이 설령 사유재산으로 그 권리권을 행사하기란 요원하다.
하지만....이 게 무슨 날벼락인지, 숭례문을 태워먹고도 모자라서 이젠 문화재 경매라니~
그러나 사실인즉슨
국가지정문화재라도 국가가 사들이지 않은 '사유지'의 경우 소유권자가 경제적으로 위기에 처하면 언제든지 '경매 대상'이 될 수 있단다.
몰라서 그렇지 한 두 번의 일이 아니라...그런 일이 간간이 있어왔다 한다.
그래도 현충사내에 있는 이순신의 고택은, 아니 우리 국민들 가슴속에 살아있는 성웅, 이순신은 그 느낌부터가 좀 남다르지 않은가?
아마도 문화재청 아니면 아산시에서라도 입찰을 볼 것이라 한다.
5월28일 충무공탄신일전에 무슨 좋은 전언이 있으리라고 가늠된다.
응찰자가 있다면 당연히 국가에 환수해야한다고들 말하지만
누가 응찰하려들까? 사우지로는 아무런 행사조차 할 수 없는 무용지물인 것을
어라~ 이상하다.
집안마당이 바뀌었다. 이런....누가 이런 짓을....
마당에다 씨멘트를 깔았다.
대체 누군가? 차라리 돌을 군데 군데 깔아 옛정취를 돋구면 몰라도
요즘 일반 주택에서도 잘 하지않는 시멘트마당을....
아마도 보리훓어서 도리깨질하는 농가로 착각했나보다.
도대체...어떤이가?
............................................................................................................................
2007년 새해 방문했을 때,
사진 몇 장 비교하자면
마당은 이랬었다.
눈녹아 낙숫물이 떨어져 홈이 패여나고..그런대로 좋았다.
차라리 흙마당 그대로 두지....
아니면 디딤돌 듬성한 잔디마당을 하든가...
수령 500년 이상 된 은행나무는 이순신장군의 어릴적 모습을 알고 있으리라~~
아들 '이 면'의 묘와 장인장모의 묘가 있는 곳이다.
무과에 급제하기 전까지 맹연습 하였던 장군의 활터
붉은 명자꽃이
아픈 듯...붉게 떨어져 있었다.
아쉬운 마음을 접은 채 현충사를 돌아나오는 길,
벚꽃이파리....하르르르.....
길 위에 나뒹굴고,
'여행발전소 > 문화유산 기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공세리성당 (0) | 2009.05.04 |
---|---|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옛 살림집(孟氏 古宅) (0) | 2009.05.03 |
소수서원과 주세붕선생의 초상(周世鵬肖像) (0) | 2009.03.17 |
지독한 사랑의 詩人, 기녀 '홍랑'의 묘를 찾다. (0) | 2009.03.12 |
③ 미수 허목을 만나보다. (0) | 200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