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존석굴'과 '삼존석굴모전석탑'

 

신라 소지왕 15년(493)에 극달화상이 창건했으며 석굴은 지상에서 20m 높이에 위치하고 굴 입구 높이는 4.25m, 굴 속 길이는 4.3m, 바닥은 평면이고,

네모 반듯한 형상으로  천장은 한가운데가 제일 높고 사방주위는 차차 낮아지는 하늘 형상을 하고있다.
석굴 내에는 본존불인 아미타불과 좌우로 대세지보살, 관음보살이 있고 본존불의 결가부좌한 모습과 깍은 머리, 얼굴모습은 풍만하며 거대하고

엄숙한 기품이 있다. 당초에 석굴 앞에 절이 있었으나 폐허가 되고 당시의 주춧돌만 남아 있어, 사찰 복원사업으로 1989년부터
선방, 산신각, 종무소, 법당, 소하천 등을 증개축 하였으며, 주위의 경관이 수려하여 관광지로도 유명하다 한다.

고구려에서 전해진 신라불교가 팔공산자락에서 꽃피워지고 신라왕도(王都) 경주로 전해져 결실을 맺었단다.

팔공산 비로봉에서 뻗어 내려온 산줄기는 이곳에서 거대한 바위산 절벽을 이루었고,  이 절벽허리 20m 높이에 남으로 향한 둥근 천연동굴에

삼존불상을 봉안하였으니 삼존석굴이라 한단다.

신라의 불교 공인(법흥왕)전 핍박받던 시대에, 숨어서 오로지 불심(佛心)으로만 수도하던 곳으로서, 8세기 중엽 건립된 경주 토함산 석굴암 조성의

모태가 되었다는 이야기!!

 

세상사람들에게 군위군에 위치한 삼존석불은 <제 2의 석굴암>이라고 불리워져 마치 석굴암의 아우인 것처럼 느껴지나 천만의 말씀이다.

1세기나 앞 서 만들어진 석굴이라 경주 석굴암의 모태가 되었다는 점 잊지 말아야 할 점이다.

 
군위의 문화해설사는 이야기꾼이었다.
경주 석굴암 조성의 모태가 된 삼존석굴의 이야기도 어찌나 재미나케 하던지...
학소대에 조금 이상한 느낌이 있어서 어떤이가 줄을 매어 절벽을 내려와 살펴보니  숨겨지듯 자연으로 가리워진 나무가지와  얽히듯 덮혀진 덤불을

헤쳐내고 보니 동굴 같은 게 있더라...그 안에는 오랜세월동안 나무가지와 덤불로 가득 엉겨서 겨우 굴이 아닌가 싶을 정도더란다.
일단 신고를 하고 처음 발견한 그 사람은 날이면 날마다 석굴 아래로 사람이 겨우 다니는 길을 내고 그러던 차 여러사람이 함께 동참하게 되었고
지금의 사찰이 지어지기 전까지는 까마득한 절벽 허리에 뚫린 굴이었다 한다.

애초에 민둥 암벽에 동굴을 내기는 어려웠을테고 자연 동굴에 사람이 제법 서있을만한 공간만 확보되면 그 곳에다가 불상을 앉혔을 것이다라고 추측만 할 뿐...

그 동굴은 나무에 가리워져 불교가 핍박받던 시절, 숨어서 오로지 불심을 닦는 곳으로는 안성맞춤이었을 그런 동굴이다.


아침을 먹은 식당에서 뒷문으로 나가 조금 접어들면 바로 삼존석불이 있는 곳이란다.
식당에서 동쪽으로 조금 걸어나가자  대략 500미터 전방에 삼존 석굴이 정면으로 바라보이는 게 아닌가?
기암절벽에 둥글게 뚫린 석굴이  멀리서 바라만 봐도 그 자체로도 신기한 아름다움이 있어서 얼른 몇 컷 찍었다.

그런데 한참을 'ㄴ'자로 꺽어져 걸어 내려가 극락교를 건느고  식당에서 'ㄷ' 자로 꺽어진 비로전앞에 서서 바로보니 이게 웬일!!
삼존석불의 석굴이 또 정면으로 보이는 게 아닌가?

 

이건 말로만 듣던 매직이다.
전에 스펀지에도 나왔던 움직이는 부처님 얼굴처럼 이 석굴이 그렇게 보여지는 것이다.
처음 석굴을 보고 사진을 찍은 곳은 비로전, 석굴, 처음자리는 석굴을 축으로 60~70도의 각도에서 바라본 석굴이었다.

집에와서 사진을 자세히 살펴본 결과 석굴의 형태는 여기서도 저기서도 정면으로 보이지만
우측에서 바라보니 본존불과 좌측의 대세지보살만 보였고

비로전에서 바라보니 본전불과 관음보살만 보였다.
가까이 중앙에 서니 석불 모습은 막상 높아서 잘 보이지 않았다.
근간에 와서 사찰이 지어지고 축대가 그만큼 놓아지고도 올라가는 계단을 만들어 사람들의 출입은 제한하게끔 문은 잠궈 두었다.

특별히 잠긴 문을 연 특혜로 우리는 모두 가까이서 사진을 찍게 되었는데, 장구한 세월 석굴의 천장에서 황토 빗물이 스며들어 본존불의 좌대는

진흙으로 오염되어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맑은날,  아침해가 뜨고  '섬존석굴'을 멀리서 바라보노라면  석굴안으로  빛이 은은히 스며들고 

석불은 황금빛으로 서서히 변해간다는데 정말 그럴 것 같았다.


날씨마저 꾸무리한 날 오전녘에 별 의식않고 사진을 퍽퍽 찍어대어도  그 모습 그대로 그 황금빛이 스며든 듯, 전혀 어색하지 않다.

상상만으로도 황금빛을 좋이 느낄 수 있었다.

 

 

삼존석불을 찾아간 날은 잔뜩 흐렸다가 석굴을 벗어난 좀 후에 가을비가 추적추적내리기 시작했다........................./이요조

 

 

 

 군위 삼존석굴 /국보 제 109호
소재지 경북 군위군 부계면 남산리 산 15 위치에 있는 이 불상은 八公山 북쪽 계곡 학소대(鶴巢臺)의
천연절벽 자연동굴안에 모셔진 미타 삼존석불이다.

이 석굴사원은 경주 토함산 석굴암보다 조성연대가 1세기 앞 선 것으로 석굴사원의 효시라 할 수 있다.
석굴은 둥근 입구와는 달리 바닥은 평면의 2단으로 되어있고 천장은 입구의 높이보다 더 파 들어간 유선형 모양이다.
깊이 4,3미터, 폭 3.8미터, 높이 4,25미터의 동굴 전면에는 간단한 석축을 쌓아 의식장소를 마련했고 안쪽으로 턱을
만들고 그 앞에는 별도의 화강암으로 된 사각의 대좌를 놓고 그 위에 본존상을 봉안했으며 좌우에 관세음보살님과 대세지보살님을 모셨다.
본존불은 높이 2.88미터로 머리에 무수히 가늘고 얕은 음각의 선들이 나타나 있으며 정상육계는 아주 크게 표현되어 있다.
좌우의 협시 보살상은 입상으로 거의 같은 양식이다.
이 석불은 손의 모양이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하고 있는 아미타불(阿彌陀佛)로 7세기 말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본존 아미타불 광배의 문양

필자의 청맹과니 눈에는 얼핏 신라의 천마총이 떠오르기도 하고

고구려 벽화가 생각나기도 하는

본존불의 뒷면 굴안에 직접 새겨진 광배무늬! 

아주 눈에 익은 아름다운 음각이다.

 

 

줌인으로 당겨찍은 모습, 석굴은 분명 나를 정면으로 향하고 있었다.

석굴안에 형상은 좌측 대세지보살과 본존불만 비쳐보인다.

 

 

석굴은 90도 각도 내에서는 다 마주 바라보이는 석굴로 비쳐보인다.

물론 본존불인 아미타불은 그대로 보이지만 좌우 양쪽의   대세지보살, 관음보살이 보였다가 안보이는 것만 다를 뿐이다.

 

 

검지를 쥔 비로자나불좌상의 손모습이 궁금했는데...모든 것은 하나다라는 것을 나타낸 표현이라고 한다.

 

 

비로전에서 바라본 석굴...본존불과 우측 관음상만 보인다.

 

 비로전에서 바라본 석굴

석굴에서 마주 바라다보이는 정경  '삼존석굴모전석탑' 이 눈 아래 보인다.

 

'삼존석굴모전석탑' (문화재자료 241호)

다층 기단위에 단층의 탑신부를 형성한 특이한 형태로서통일신라시대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탑신부는 근세에 다시 축조되어 원형에서 변형되었으나 탑형을 유지하고 있는 귀중한 문화재 유물이다.

 

좌대까지 부처의 옷자락이 내려와 유연한 곡선을 지어내었다.

빗물이 스며들어 흙탕물로 오염이 된 상태다.

 

 

팔공산 학소대 벼랑 허리에 있는 동굴이라 계단을 축조 가까이 가게 만들었으나 보존을 위해 일반인은 못들어가게끔 차단해두었다.

 

click~하시면 글씨를 보실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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