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신라시대의 정자

양산8경 임경대에서

 

양산시 원동면 화제리에 있는 통일신라시대 정자 <임경대>를 찾아서~

 

고운 최치원1이 즐겨 놀았다는 곳!

양산팔경중 하나 임경대2를 찾아가는 길이다.

 

바위에 씌인 시는 다 닳아서 형체를 알리 없지만....

낙동강마저 붉게 물들이는 노을이 기막히게 좋다는 그래서 시인 묵객들이 즐겨 찾는다는 곳!!

 

오봉산을 오르는중이었다.

산봉우리 겹쳐진 사이로 빨간 홍시감이 그만 꼴까닥 자취를 감추었다.

<누가 먹었지? 아까 그 홍시감? 누구 본 사람? >

우리가 임경대에 도착했을 때는 그만 노을은 지고 피빛 잔명만 붉으스레 남아있었다.

<아~ 10분만 일찍 왔더면......우리도....나도 시가 나왔을텐데~~>

 

실은 아쉽게도 사진은 노을 져버리자 그저 그렇게 밋밋했다.

카메라 Av 설정을 -로 놓았더니 노을이 잔명이 그런대로 짙어진다.

 


강 건너가 김해란다.


줌인했더니....경겨운 마을의 저녁풍경이 다가온다.

 

 

........................

 

년전에 합천해인사의 소리길을 걷다가 농산정을 만났다.

역시 최치원선생이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은둔하며 지내던 한 곳!
<농산정>이 생각났다.

 

12살의 어린 나이로 당나라 유학을 떠났던 선생은

분명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을거며...그리고 어려서부터 신동 소리를 듣고 자라지 않았나

나름 생각해본다. 그러나 당나라에서는 이방인이요.

신라로 돌아오니  6두품이란 굴레의 관직에서

그다지 기개를 다 펴지 못한 것 같다.

지리산자락 즉 농산정에서 신발만 두고 사라져....신선이 되었다는 설이있다.

아무튼

신라시대 최고의 문장가 최치원임을....

 

물소리 새소리 바람소리....사유의 시간 외에는 아무런 말이 필요없는 곳!

홍진으로 가득한 이 세상 이야기,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곳! 산조차 물소리에 먹먹한 !

그래서 지금은 문화재로 등록 되어진 농(聾/귀머거리농)자를 붙인 “농산정”이란 이름의 정자가 서 있고

최치원의 詩가 어우러진 곳!!

이 곳!

임경대 역시 그러하니...

 

그가 생각나서...

농산정도 임경대도...초야에 묻혀 은둔한 심경도...

 

 

양산 8경 유적지 임경대 초입길에는

임경대를 찾아 최치원선생을 기리며, 또는 임경대의 비경을 시로 노래한

숱한 묵객들의 한시를 비를 만들어 조경을 해두었다.

낙동강을 바라보는 벼랑의 숲이 좋고.....

일몰은 시간을 맞춰 가면 아주 좋은 강물에 비치는 반영의 노을을 즐기시면

누구나~ 저절로 시인이 될 것 같은 경관이다. 

 

 

 


 

  1. 유교·불교·도교에 이르기까지 종교적인 이해가 깊었던 학자이자 뛰어난 문장가이다. 진성왕에게 시무책을 올려 6두품이 오를 수 있는 최고 관등인 아찬을 받은 점 등으로 미루어 6두품 출신일 가능성이 많다. 868년 12세 때 당나라에 유학, 7년 만에 빈공과에 장원으로 급제했다. 876년 강남도 선주의 표수현위로 임명되었다. 880년 도통순관 승무랑 전중시어사 내공봉에 임명되고 비은어대를 하사받았다. 885년 신라로 돌아와 한림학사 수병부시랑 지서서감에 임명되었다. 문장가로서 능력을 인정받았으나 골품제의 한계로 자신의 뜻을 펼 수 없었다. 이에 외직을 청하여 대산·천령·부성 등지의 태수를 역임한 뒤 자신의 불우함을 한탄, 관직에서 물러났다. 산과 강, 바다를 소요자방하며 지냈고, 말년에 해인사에 들어가 저술활동에 몰두했다. [본문으로]
  2. 일명 고운대, 최공대(崔公臺)라고 하는데, 황산강(현 낙동강의 옛 이름) 서쪽 절벽 위에 있다. 벽에는 최치원의 시가 새겨져 있었으나 오래되어 조감하기 어렵고, 시만 전할 뿐이다. 임경대는 오봉산 제1봉의 7부 능선에 있는 바위 봉우리로 낙동강과 건너편의 산, 들과 어울려 수려한 산천을 확인할 수 있는 훌륭한 명소 중의 하나다.물금에서 국도 1022호선을 따라 원동면 화제 방면으로 가다 보면 물금과 원동의 경계 지점 왼편에 육각의 정자를 만날 수 있다. 이 정자는 양산시에서 관광객들의 쉼터로 만든 것이다. 임경대는 이곳으로부터 남서쪽으로 약 200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고운 최치원이 즐겨 놀던 곳으로, 낙동강 동쪽 절벽 위에 있었다.하다.임경대는 낙동강과 인접한 오봉산에 위치하며, 근처에 등산 코스 및 행글라이더 활강장이 있어, 산악인들과 행글라이더 동호인들의 발길이 증가하고 있다. [본문으로]

 


합천 소릿길이라기에 청산도에 나오는  서편제길을 떠 올렸다.

 

아하! 소리를 하며 넘어야 하는 길이구나!

얼마나 지루하고 힘들었으면.... 요기 까지가 청맹과니 내 생각의 한계다.

길이라면, 눈에 확 들어오는 끝 간 데 모를 정도로 죽-이어진 길!

그래서 그 길을 따라 정처 없이 떠나고 싶은 길~  그런 길이 아니었다.


걷기 테마로드로 홍류동 계곡에 조성된 ‘해인사 소리길’은 계곡을 따라 물소리, 새소리, 바람소리 등 자연의 청량한 소리를 다양하게 듣는 즐거움을 간직한 길이라는 뜻에서 소리길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한다.


합천 8경(景) 중 하나인 홍류동 계곡을 따라 조성된 해인사 소리길에서는 무릉교, 농산정, 낙회담 등 가야산 19경 중 16경을 모두 볼 수 있다. 특히 풍치가 가장 빼어난 '농산정(籠山亭)'은 통일신라말 최치원 선생이 이곳의 풍광에 빠져 신선이 되었다고 전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소리길 초입에서 해인사 입구까지 성인 여성 기준으로 3~4시간이면 완주가 가능하다.

 

홍류동계곡 6.4km를 7개의 다리로 이어져 해인사 계곡을 끼고 자연의 소리를 들으며 걷는 길...

위에 보이는 사진 속에 계곡을 요리조리 휘감아 돌고 돌아 나가는 길이다.

 

 

물소리 새소리 바람소리....사유의 시간 외에는 아무런 말이 필요없는 곳!

홍진으로 가득한 이 세상 이야기,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곳!!

그래서 지금은 문화재로 등록 되어진 농(聾/귀머거리농)자를 붙인 “농산정”이란 이름의 정자가 서 있고

최치원의 詩가 어우러진 곳!!

 

버스로 스쳐지나가던 이 계곡 .....오른편 숲으로 난 길을 걷는다.

◀ 사진은(左) 합천 어느 마을을 돌며 버스에서 찍은 길!

 

이 길처럼 산모롱이를 돌아가고도 싶고 산 고개너머

길을 가면 또 어떤 세상이 나올까 무척 궁금하던 길!!

 

여름방학이면 물 것 많고,

겨울보다는 먹을 것 적은 시골로

왜 들어가냐는 가족들의 지청구를 받으며 외갓집을 찾아

어린나이의 뚜벅이로 길을 하냥 걷던...

아마도 그 때부터 나는 길을 좋아했는지도 모른다.

 

뙤약볕에 멀고 힘들지만...

뚜벅뚜벅 걷다가 보면 어느새 저 멀리 반가운 외가가

설핏 보이면 저녁 짖는 연기가 모락모락  퍼져나던 풍경이 펼쳐지면  걸음이 더 바빠지던 길.....

 

그런데 여기 소릿길은 그런 길이 아니다.

............................................................................

 


해인사로 들어가는 門, 홍류문이다.

무에 붉게 흐르기에 홍류라 지었을까 했더니 봄 가을로 붉은 꽃이나 단풍잎이 떨어져 계곡이 온통 붉게 된다는 홍류동 계곡!

 

▼가을 이미지는 합천군에서 ....

 

아직은 신록이 푸른 봄이다.

빗방울 마저 후두둑 내리니 소리길은 그 푸르름에 氣를 보탠다.


 

 

 

 

 

 

 

 

 

 

 

 

 

 농산정(籠山亭)

경남 합천군 가야면 구원리
종목 문화재자료 172
지정일 1990.01.16

 

 

 

 

 

 

籠山亭에는 최치원 선생의 칠언절구 둔세시가 새겨져 있다. (농산정 이라는 이름도 그 시의 한 귀절이다.)

 

 

“미친 듯 겹친 돌 때리어 첩첩한 산 울리니

(狂奔疊石吼重巒 광분첩석후중만)


 

지척간의 말소리조차 분간하기 어렵다네

(人語難分咫尺間 인어난분지척간)


시비소리 들릴까 저어하노니

(常恐是非聲到耳 상공시비성도이)


흐르는 물 시켜 온 산을 감았네”

(故敎流水盡籠山 고교유수진농산)

 

 

한자명칭 籠山亭신라말의 학자이며 문장가인 최치원(857∼?)이 지은 정자로, 은거 생활을 하던 당시에 글을 읽거나 바둑을 두며 휴식처로 삼았던 곳이다. 최치원은 신라의 유교학자들 중에서 대표적인 인물이다. 당나라로 유학가서 과거에 급제한 후, 중국에서 황소의 난이 일어나자 「토황소격문」이라는 글을 써서 이름을 날렸다. 귀국 후 정치개혁을 위해 노력을 기울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관직을 떠나 가야산에 은거하면서 여생을 보냈다. 건물을 세운 시기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1922년 해체해서 원래대로 다시 지은 것을 1936년 보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건물의 규모는 앞면과 옆면이 모두 2칸씩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송림사이로 흐르는 물이 기암괴석에 부딪히는 소리는 고운 최치원 선생의 귀를 먹게 했다하며, 선생이 갓과 신발만 남겨두고, 신선이 되어 사라졌다는 전설을 말해주듯 농산정과 시구를 새겨놓은 큰 바위가 있다. 홍류동에는 주요문화재 자료인 농산정과 낙화담, 분옥폭포등 19명소가 있으며 특히 농산정 맞은편에는 암각된 최치원 선생의 친필을 볼수 있어 더욱 유명하다.
합천 8경중 제 3경이다.

농산정계곡은  물소리로 가득하다.  시리도록 푸른 물이 사시사철 흐르는 이 곳!!   

최치원의 詩를 음미해보며 잠깐 쉬어 가잔다. 

 

흐르는 물 시켜 온 산을 감았으니....  나도 이미 홍진의 세상에서 귀가 멀었거늘....소릿길인들 오죽할까!



물소리 새소리를 들으며 이런 길을 걷는다.

자연속으로 숲 속으로 들어가는 길이다.


 

 

 


 

 

 

 

 

 

 

 

 

 

 

 

 

 

 

 

 

 

 

 

 

 

 

 

 

 

 

 

 

 

 

 

비오는 소슬한 봄날씨임에도 불구하고 계곡물에 첨벙 뛰어 들고싶은 이 마음은 뭘까?

 

 

작은 암자(길상암) 이 있는 계곡에서 멈췄다. ....

이 곳에서 부터 진경이던데(버스에서 살펴보니) 큰 바위벼랑길이 이어지는 ,,,,,,길이었다.

시간상 길상암 앞에서 소릿길 트레킹을 마감했다. 아쉽다.

우리가 타고 갈 버스가 되돌아 나오기를 기다리며...일행중 일부는 길상암에 올랐다.  길상암에 올라보는 것도  소리길의 연속이었다.

온 몸에 푸르름이 잔뜩 묻어나는 길.....물소리 새소리에 귀가 먹먹한 길....

그래서 이름 지어진  <농산정>의 소리길이었나 보다.

                                                                                                     합천여행 2012,5,3 이 요조

좁은 계곡사이에 걸린 듯 얹힌 길상암에  한 낮인데도 빛이 조붓하게 쏟아져 내린다.

잠시면 스쳐 지나갈 햇살이다. 잠시이기에 더 소중한 햇살이다.

햇살도 스님을 닮는지 여기서는 묵언수행 중이다.

 


 

 

 

 

'여행발전소 > 경상도'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해인사로 들어가는 숲길에서 만난 <고사목> (합천)  (0) 2012.05.28
해인사 '영지' (합천)  (0) 2012.05.24
오도산자연휴양림 수달래!!(합천)  (0) 2012.05.13
해인사 신록속으로 고고씽~ (합천)  (0) 2012.05.09
철쭉군락지 황매산 능선 트레킹 (합천)  (0) 2012.05.05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