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변원목열

2013년 3월 13일 10시 15분경의 목책

 

 

바다를 다스리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는 원리를 몸소 실현 한 해상제국의 건설자 장보고의 발자취를 찾아 완도로 접어들었다.

 

완도하면 청해진의 유적지 장도를 둘러보기로 했다.

다녀간지 몇 달 되지 않지만 내 가족들에게 보여주고 알려주고 싶은 곳이기도 했다.

 

그 때 해변원목열을 처음 보았는데, 이번에는 자세히 살펴보고 지난 번

찍어두었던 사진과 함께 글로 써 보기로 했다.

 

1200년이 지난 오랜세월에도 썩지않고 화석처럼 돼버린 목책!!

바다를 지키려는 우리 선조들의 투철한 정신의 화석인 것 같아보이는 건 나만의 생각일까?

 

지금도

 

 

청산도를 들어갈 여행 스케쥴은 카페리에 차를 싣고 하려면 10시 50분까지는 연안터미널로 가야하기 때문에 마음은 바빴다.

들은 장도를 둘러보게 하고 나는 물이 빠진 시간을 감사해하며 마음 조급하게 남쪽 해변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찾을 수가 없었고 바닷물은 서서히 들어오고 있었다.

 

 

신발에 뻘만 잔뜩 묻힌채 돌아나오는데...<목책원목열100m>라고 씌인 고마운 안내판이 서있다.

마음이 너무 급해 보질 못했다. 얼마나 고마운지....갯벌이 아닌 모랫길을 100m 쯤을 내달려 갯벌쪽을 바라보니

이런 고마울데가...깃발도 꽂혀있다.

깃발과 안내판이 새로 생겨 고맙긴 한데 뭔가 조금 더 신경써주는 안내가 있었으면 하고 바라고 싶다.

 

 

물이 날 때를 기다렸다가 작업을 했을 우리 선조들을 생각해 본다.
질벅거리는 자칫 무너지는 지름 80cm의 U형의 뻘구멍을 파내어 직경 40cm정도 크기의 소나무를 일렬로 촘촘히 세워

울타리를 둘러덨 흔적들~
1200여년이 지난 지금, 뻘 위로 드러난 부분은 썩어서 없어지고 뻘속에 박힌 부분만 남아있지만, 작업을 했던 그 옛날의 광경을

생각하니 ....1200년 후 그 흔적을 구경하러 나와서는 좀 전에 신발에 묻은 뻘을 투덜대던 자신이 웬지 부끄러워진다.

 

 

 

 

 

목책에 관련된 네이버 백과사전에는

 "역사적으로는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하여 만든 성(城)을 가리키기도 한다. 급히 방어시설을 만들거나 임시로 성을 만들 경우, 또한 대량의 노동력을 구할 수 없는 도서(島嶼)지방에서 사용하였다. 한국의 성곽은 토성(土城) ·석성(石城)이 흔히 알려져 있으나, 목책으로 울타리를 만드는 경우도 많으며,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꾸준히 만들어져왔다. 경기도 행주산성(幸州山城)에는 석성을 쌓기 전에 목책이 있었는데 이것은 임시로 쌓은 것이다. 조선시대 《단종실록》(4권)에는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거제도(巨濟島) 등,  도서 요충지에 목책을 세워 방비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唐 해적 막으려 완도군 해안 1000여개 설치 본문장보고가 설치한 1200년전 목책 ‘방치’…唐 해적 막으려 완도군 해안 1000여개 설치전남 완도군 장좌리 장도(장군섬)섬 입구에서 남쪽 해변 선착장까지 해안을 따라 설치된 총 연장 331m의 목책(원목렬)은 장보고가 당나라 해적의 침입을 방지하기 위해 만든 방어용 목책이다.

 

 

청해진 유적지(완도, 장도)

 

 

 

장도 청해진유적지란 전라남도 완도군 완도읍 장좌리(長佐里) 장도(將島:將軍島)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군사유적이다.1984년 9월 1일 사적 제308호로 지정되었다. 청해진대사 장보고(張保皐)가 1만의 군사를 거느리고 해상무역권을 장악하던 곳이다. 일찍이 당나라에 건너가 무령군소장(武寧君少將)에 오른 장보고는 중국인들이 신라인들을 잡아다 노비로 삼는 데 격분하여 벼슬을 버리고 귀국, 왕에게 해적의 노략질을 근절하기 위해 청해(淸海:莞島)에 군영을 설치할 것을 건의하였다. 828년(신라 흥덕왕 3) 그는 청해진대사로 임명되어 군사 1만명을 이끌고 청해에 진을 설치, 해상권을 장악하고 중국 해적을 소탕하는 한편,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해상무역의 패권도 장악하였다. 유적으로는 해중에 나무 말뚝을 박아 두른 방책(防柵)이 있고, 1만 명의 식수정(食水井)으로 사용하였다는 청해정(淸海井)이 있어 지금도 맑은 물이 솟으며, 이 밖에 토성의 일부가 남아 있고, 기와 파편 등도 출토되었다.

 

 

 

 

다시 되돌아가게 해준 고마운 안내판

현재 300여m에 이르는 목책 부근에 칼라 깃대도 세워놓았지만

멀리서는 잘 보이질 않았다.

드디어 해변원목열 발견

목책이 윗부분은 사라졌지만

1200년을 그대로 있다는 건....산 역사의 또렷한 증거다.

아직도 나무결이 그대로 살아있는 소중한 유적지의 목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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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0월 14일 오후 2시 15분경의 목책

 지난 사진이지만

 

그 날은 비가 오고 있었다.

하지만 물은 서서히 빠져 나가는 중이었고

그동안 장도 앞에 있는

장보고 기념관을 둘러보았다.

물은 빠져나가고

빠져나간 갯길을 걸어 장도로 들어갔다.

처음 본 목책은 감동이었다.

방금 물이 빠져나간 목책에는 다슬기가...

방금 물에 씻기운 듯 깨끗한 목책을 볼 수 있었으니...

아마도 내리는 비 탓도 있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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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 치에서 바라 본 완도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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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2012 3월13일 11시 30분 배를 타고 청산도로 이동

완도여객터미널에서 출발~

 

천연기념물 28호 [주도]를 뒤로하고....

사진에 보이는 배 옆으로 절반만 보이는 더벅머리 작은 섬이 주도이다.

다도해새상공원의 수많은 섬중에 상록활엽수림이 유난히 울창한 보고이다.

3,000여평에 소나무, 붉가시, 광나무, 황칠, 후박, 동백나무등 목초본류 137종이 서식 1962년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

 사진에 마주 보이는 저 곳 청산도까지

45분을 뱃길로 가야한다.

마침 바람도 없고 봄날씨처럼 따뜻하다.

 완도타워가 산 너머 보인다.

저 타워에 올라가니 완도 시내가 한 눈에 다 들어왔는데...

 

완도는 이젠 섬이 아니다. 완도대교가 놓이고 지금도 새로운 다리를 건설중에 있었다.

완도의 섬 청산도로 향해 .....뱃길로 달린다.

봄을 찾아 나선 남해안 여행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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