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개하나


무슨 감기 약인지 잠이 쏟아진다.
약만 먹었다 하면 몇 시간은 그냥 내처 자야한다.

이젠 감기가 어느정도 잡혔는데.....
작년 이맘때...감기 백신을 맞은 후 처음으로 되게 앓아보는 감기였다.
지독한 감기였다.
눈물 콧물이 어찌나 흐르던지...
눈을 못 뜰 정도로 얼굴은 해산에미 마냥 붓고....

한 이삼일을 호되게 앓은 후

지난 밤에도 좁은 자리에서 몸부림이 그렇게 날 수가 없었다.
정말 ...괴로울 정도의 뒤척임이었다.

그런데...감기가 거의 떨어져 나간 것 같은 오늘 밤도, 예의 그 몸부림이 또 찾아왔다.

초저녁,
약을 먹고 혼곤히 잠에 빠졌는데...
딸 아이가 손을 뻗쳐 날 흔들어 깨웠다.
난 화들짝 놀라서 일어나고....
아무일도 아닌 것에 짜증을 내고 아이는 그만 무안했나 보았다.

잠은 멀찌감치 달아나 버리고 그 짜증 나는 뒤척임에....
나는 어찌할바를 몰랐다.

아이의 침상에 베개가 둘....쿠션이 하나~

(물론 다리 수술환자에게 필요한 다리베개지만...)

그 베게 하나만 내 발아래다가 받쳤으면 싶었다.

" 베개 하나만 줄래?"

"..........."

아이의 일순 표현이 눈매가 싸늘하게 느껴졌다.

좀전, 화를 낸 나에게로 향한 서운한 반격이리라

싫다는 뜻으로 받아들인 나는 포기하고 잠을 청했으나.....

나는 자리를 차고 일어났다. 지금은 새벽 한 시,

한 번 달아나 버린 잠은 올리가 만무하다.

이제 곧 정상의 고지에 다다라서.......

둘이서 힘을 합쳐...끌거니 밀거니 하면서 만들어 놓은 고지에 다다라서

별 것 아닌 것에도 이렇게.... 속이 상하는구나

열달을 배슬러서.....만 25년을 키워내고..... 그 중 2년을 동생들 다 제쳐두고......

저만 위하고 살았거늘....

그러고도 넉달 가까이..... 오직, 제 곁에서만 맘 졸이며 산 에미를....

몸이 아파서 에미가 짜증 한 번 낸 것으로...

그렇게 서운하였을까?

이렇게...

나 스스로, 내 잘못으로 잘 못 가르친 철없는 내 딸년 앞에 마음이 잔잔히 흔들린다.

내 속으로 난 내 새끼에게도 그러하거늘....

만약 이게 남이라면....

여태 들인 공은 물거품처럼 사라지고......서운함만 남으리라.

아무 것도 아닌 ... 하찮은 '베개' 같은 것에도.... 등 돌릴수도 있겠구나

싶은 엉뚱한 생각을 해보았다.

정말 하찮은 '베게' 같은 마음으로......

사람의 마음이란 참으로 복잡미묘하고....상황에 따라 시시때때로 변한다.

어쩜,,,

우리 모녀의 사랑싸움이? 아니 이 짧은 갈등이.. 이제 어려운 고비를 처음 넘기고 맞는

긴장이 풀려 나오는 하품의 일종이리라.

우리사 어찌할 수 없는 천륜이라지만.....



만약에......그저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아주 사소한 하찮은 이런 일로도...마음에 금이 갈 수가 있으리라는 생각을 해 본다.

그토록 사랑하기 때문에 공을 들이고... 시간과 정성을 할애해서..가꾸다가

어느 일 순간..별 것 아닌 것에....의심을하고....마음을 상하다가

그러다가 바보처럼 여태껏 쌓아올린 큰 것은 보지 못하고....

작은 것에 서운해선 돌아설 수도 있다는 것을....

사랑이란,
별것아닌 아주 작은 것에도 잔잔히 흔들릴수있는 근시안적인 것을....


소중한 사랑을 한다면....

징검다리를 건느듯.. 그렇게..조심스럽게.... 건너야 할 것이다.

큰 사랑은 작은 사랑의 배려가 모여서 자라나듯 하는 것임을....

일순 잘못된 오해 하나가.....

큰 사랑도 파괴해버리는 대단한 위력을 가질 수 있음에,

사랑은 모든것을 참고 견디는 온유한 것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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