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름:이요조
◎ 2001/12/21(금) 16:01 (MSIE5.0,Windows98;DigExt) 211.222.169.197 1024x768
| 작년 것
나는 오늘 메주 콩을 쑨다. 동짓날 임박해서 이제야 메주를 쑨다. 삶아낸 콩을 찧어 메주를 빚으며...팥죽을 쑤며.. 바쁜 일손 중에도 문득 문득 어머니를 그리워한다. 어머닌 한 해도 메주를 거르신 적이 없으시며 한 해도 팥죽을 안 끓인 해가 없으셨다. 5남매를 한결같이 한 번도 생일상을 거른 적이 없으시듯.... 장맛이 집안 맛이라고 늘 말씀하시던 어머니-, 3년 전 정말 내가 담근 우리집 장맛이 이상해졌다. 꽃가지가 곰팡이로 변하고... 장 맛이 갈려면 갱엿을 넣어보라는 어머님의 옛말을 기억하고 그렇게 해봤으나.... 때가 늦었는지.. 효과가 없었다. 난, 죄짖는것같아 버리지 못하다가 그 이듬해 하수구에 쏟아버리며 불길한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비가 오면 나만 맞을까마는 우리는 뜻밖에 준비 없는 비를(imf)맞았고 우리집 또한 예외일 수 없었다. 사업의 불황! 뒤이은 나의 척추수술, 딸아이의 황당하고 급작스러운 병마... 여느 집 할 것 없지만 좀체 우환에서 벗어날 길이 없었다. 작년엔 김장도 채 못하고 병원에서 살았었다. 올 해는 마음을 다져 먹고 갓김치 알타리 깍두기 동치미 배추김치를....담궜다. 그건 김장이 아닌 내겐 어떤 무사안일을 비는 기원이였다 이제 장을 담글려면 메주 쑬 일만 남았다. 시골에서 좋은 콩을 구해왔다. 메주로는 한 말이지만 내 손으로 삶아내어 내 손으로 주물러서 늦은 메주라 잘 뜨라고 조그맣게 한 가운데다 구멍까지 내고.. 다 만들고 나니 허리가 저려왔다. 내년 음력 이월엔 장을 담그리라. 두 번 다시 실패가 없는 장을... 나에겐 또 다시 시작 해 보려는 뜻이 스민 우리 가정을 위한 까맣고도 짠, 결의를...... 세가지 일을 한꺼번에 하려니 힘이 든다. 동짓날이면 의당히 떡을 하는 날이다. 비록 방앗간에다 주문하는 떡이지만.... 크리스마스도 되었고 집엔 연만하신 어머님이 계셔서 아무래도 케잌보다는 떡을 즐겨 하신다. 뜨거울 때 냉동 보관했다가 하나씩 꺼내면 맛이 제대로 돌아온다. 옛날엔 동짓죽이 동네를 돌고 돌았다. 누구네 집 팥죽이 맛있는지 알 수 있었다. 굳이 크리스마스나 동지가 아니어도 이웃들과 떡 한쪽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정이 참 좋다. 내일 부터는 해가 길어지기 시작한다. 예로부터 동짓날은 작은 설이라 했다. 동지가 가면 한해가 다 가고 새해라 했다. 그걸 보면 우리네 조상의 슬기를 알 것 같다. 음력을 사용하면서도 양력을 몰라서가 아닌, 절기가 양력으로 맞추어 더 정확하고... 동지면 새해라는 것이 더 더욱 그렇다. 양력을 읽고 있는 음력~ 어쩜 양력보다 더 정신적으로도 넉넉한...... 우리 조상들은 붉은 팥이 액운을 물리친다고 새해를 맞기전 모든 나쁜 것을 쫒아내기 위해 대문에다 정지간(부엌)에다 장독간에다 외양간에다 고방(곡식창고)에다 곳곳에 붉은 팥물을 뿌렸다. 부정한 것들이 범접을 못하도록... 나쁜 액을 물리치는 뜻에서, 샤먼에서 기인 했다 하기 보다 우리네의 좋은 세시 풍습이라 생각하고싶다.
성경에서 애굽의 장자의 죽음에도 하나님은 모세에게 히브리 백성을 구할 방법을 양의 피를 문설주에다 바르라고 말씀 전하셨다. 죽음의 기운은 양의 피를 바른 집은 비켜가고.... 맛있는 팥죽 한 그릇과 바꾼 장남의 권리를 약탈해 온 야곱......
찹쌀 새알심 동동 띄운 팥죽을 아이들에게 먹이는 매년 행사를 멈추고 싶진 않다. 아이들이 어릴 적엔 나는 반죽을 해 두고 아이들을 기다렸다. 세 아이들이 다 모이면 손을 닦이고 함께 새알심을 만들었다. 아이들은 깔깔거리며, 이상한 모양도 만들지만 들어가면 똑 같아 질 것을..... 우리 애들이 나중에..나중에...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나처럼, 또는 동짓날이 다가오면 제대로 된 옛 추억거리라도 만들어 주려는..... 내 사랑하는 아이들 마음 속에 영원히 안주 하고 싶은 못난 에미 속내도 함께 반죽해놓은 새알심을........아이들은 알란가..? 오늘도 늦게사 하나씩 들어올 내 아이들에게 팥죽 한 사발을 디밀고는 다가올 새해엔 정말 좋은 일들만 있기를 간구해 본단다.
내, 사랑하는 아이들아~
2000년 동지에 써둔 글
*경상도 지방에는 생일날 찰밥에다 팥을 넣음 붉은 것이 액귀를 쫒는 의미도 있지만 좋은 吉常(길상)의 의미도 함유되어 있음.
http://column.daum.net/yojolady/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