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옵니다. 어제부터 쉼 없이 비가 오니 자꾸만 계단에 서서 바깥마당 풍경을 훔칩니다. 그저께 여행을 떠나기 전 걷어들일까 하는 마음에 사다리를 타고 올라 가 호박을 현관지붕에서 내리긴 했는데 아직도 시퍼런 줄기를 보곤 차마 끊어내질 못하곤 내려왔습니다. 얼마나 줄이 튼튼한지... 그냥 허공에 대롱거리며 매달려도 암시랑도 않습니다. 꿈쩍도 못할 만큼.. 어미는 아가를 젖줄로 단단히 묶어 두었나봅니다. 이산가족, 사랑하는 자식을 북에 두고 온 어머니들은 자나깨나 긴-그리움으로 희미한 불꽃으로 그 생명 연명하다가 만남 뒤엔...바로 훅- 꺼져버리던, 그런 허무를 주기 싫었습니다. 호박잎은 첫서리를 맞아 다 스러졌지만 줄기는 터지고 찢겨도 아직 할 소임이 남았다는 듯 푸르게 싱싱합니다. 흉터 투성이, 정말 못난 곰보호박, 그래도 지어미에겐 생명줄입니다. 입동 지나 소설이 낼모렌데 뿌리에서 줄기로 끈질기게 살아있는 모정이 기특해 보입니다. 그 기대를 제 손으로 저버리기엔 차마 못할 짓이었습니다. 호박을 아래에서 올려다보니... 아직 탯줄도 끊지 않아 마른 호박꽃잎을 궁둥이에 달고 있는 모습이 우스워서 혼자 비시시 웃어보는 가을비 가슴을 적시는 날에, 이요조 아래 사진들/며칠 전, 호박을 끌어내리던 날
김도향과 조영남의 가을비 우산속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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