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이 요조
온종일 기다림에 삽짝이 닳는구나
오라는 님 아니오고 서쪽 창에 노을만 드네
흰 박꽃 달빛에 저려 눈물같이 피누나!
님을 위해 잘 익힌 술동이를 그러안고
마음의 빈 강에다 나룻배 띄워 놓고
어둔 밤 길 못 드실라 조용히 노래하네.
어느 가을밤에,
<박꽃은 기다림이다. 박꽃은 눈물이다.>
보름달,
둥근 모습을 닮은 박이 영글어 가는 계절, 가을입니다.
예전에는 박꽃이 저리도 고운지 몰랐지요.
옛날, 옛날 농촌에 시계가 없던 시절에 박꽃 봉오리가 봉긋하면 보리쌀을 앉혔더래요.
저녁을 지을 준비를 하는 게지요.
보리쌀을 삶아내면 내일 아침밥 할 때 가마솥에 깔 보리만 바구니에 퍼서
매달아두고는 저녁밥을 지었지요.
쌀 반, 보리 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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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박꽃이 예뻐서 봉오리를 갖고 와서는 물병에다가 꽂아두었더니,
밤이 되자 화안하게 피어나더군요.
얼마나 눈부시게 고운지...눈물처럼 희고 맑고 순수했지요.
눈물 같이 피어나는 꽃!
하얀 박꽃!!
오늘 아침 일어나 보니 박꽃은 앵돌아져 입마저 꼭 다물고 있더군요.
박꽃은 여인입니다.
글:사진/이요조
2007년 9월 13일
박은 둥굴어 풍성한데...박꽃은 쓸쓸한 모습입니다.
결실의 계절 가을은, 이렇게 두 얼굴로 우리 곁에 다가옵니다.
풍성함과 무언지 모를 허전함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