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나를 가르치려드네~

 

 

    한 해를 또 보내는 이별연습을 하는 것일까?

    가을이 시작되면 꼭 가을앓이를 한 번은 치러야만 되니...
    아직 그 터널을 덜 벗어났는지 가을 나무같은 지난 글들 사이로 휘청대며  걷노라니,
    묵은 일기의 지나간 순간들이 가을날 애잔히 떨어지는 낙엽처럼 가슴에 내려앉아 쌓인다.


바쁘게 돌아다니더니 이제야 내 본연의 자리로 몸만 우선 돌아왔다.
장기 출국한 남편의 오피스텔 이삿짐도 옮겨와야 하고 아직 할 일은 태산인데,
그 동안 별 소득도 없는 바쁜 일에 정신이 쏙 빠졌었다.
여기 저기 주부의 빈자리가 난다.
지금은 간장 고추장 담을 시기,
나는 오늘 간장을 담그고 오늘밤에나 직접 삭혀서 고운 엿물로 고추장을 담을 것이다.
누가 들으면 아주 득도한 주부의 이야기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해 보려고 노력하는 것이지

그리 매끄럽게 가사에 통달한 주부가 아님을 인정한다.

이 나이되도록 세련된 칼질도 채 못하면서,  일을 하면서도 가끔 혼자서 피식 웃는 게
번잡하게 또는 굼뜨던 내 행동이 돌연 조리 있게 잽싸게 움직이는 것을 느끼고는 마치
내가 하는 게 아니라 돌아가신 어머니가 도와주시는 것 같은 손길을 느낀다.
어머니의 가사 일을 등 너머로 본 기억은  남아있어서
한참 신이 나서 퍼질러 놓고 일을 할 때는 내가 울 어머니의 모습을 영락없이 닮아있다.
그대로 흉내 내며 늙어가는 나를 본다.


내 딸도 나중에 나처럼 그리할런가?

못하는 솜씨라도 낑낑대며 최선을 다하며 살런가?


엄마의 자리에 서서 바라보는 딸은 항상 미진하다.


내 아이는 뭘 못하겠지? 바빠서, 아님 몸이 약해서? 시집가면 할 수 있을까?
그래서 제대로 붙잡고 앉아 가르칠 기회도 놓쳤고 이젠 남은 시간마저 촉박하다.
노는 입에 염불한다 했던가? 그래서 나는 아이에게 요리편지를 쓰기 시작했고 그 끝은 아득한 줄로만 알았는데,
맹탕이던 아이는 어느새 차츰 음식 만들기에 재미를 들여가긴 하는데,
나는 간장, 된장, 고추장을 기본으로 청국장을 먹이려들고 가능하면 제철 야채와 시래기나물 등속을 먹이려드는 반면 

딸아이는 육식위주의 서양요리를 선호한다. 
해서 어쩌다 만드는 것도 느끼한 육식의 양식이 대체로 주가 된다.
아이는 육식을 워낙 좋아해서 고기가 고프면 어쩔 줄 몰라 맴을 도는 그런 아이다.
어미의 본뜻과는 달리 요즘 서양요리에 심취했다. 물론 설거진 내 몫인 거고,  에혀~
이 어미는 고기를 먹지 않아도 고기가 전혀 그립지 않은 채식주의잔데 과연 내 속으로 낳은
아이가 맞을까?
ㅎ~ 곰곰 생각해 보니 성장기엔 나 역시 다름없었네!
시집와서 시어른들의 끝도 없는 육식선호에 아마 어깃장 놓다가 영영 변해버린 입맛이 아닌가 싶다,
아니면 백줴 이유 없이 그럴 수가 없다, 아무래도 그랬지 싶다.

나에게도 그렇게 철없던 시절이 있었구나~

그랬던 내가 벌써 딸아이를 가르치려들다니~

 

딸아이는 요즘 내 요리 사진, 찍은 것만 보면 늘 타박이다.
"엄마!  사진이 흔들렸잖아요. 보세요! 엄니 카메라 보다 화소가 훨씬 낮은 내 카메라(사진)도 이리 멋진데.."
내게 우리음식을 배우랬더니 되레 내게 사진을 가르치려 든다.
딸은......

    .

    .

    .

    .

     

    고맙다!
    네가 사다준 요리책과 사진 잘 찍는 책은 건성 읽긴 했었다.
    사진 테크닉 책은 부록으로 끼어온 CD도 아직 그대로 붙었구나!
    나는 너를 가르치고,
    너는 나를 가르치고,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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