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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여행중에 만난 이 그림 앞에서 순간 나는 세한도를 느꼈다.

그리고 아래 작품 설명을 읽고는 세한도와의 교감을 알고  나 자신이 대견해서 무척 기뻤다.

청맹과니 내 눈에도  애써  세한도와 연관을 짓다니..... 이 아니 흐믓한 일인가?

그 것도 바로 두 작품 다 제주도와 그리고  추운 겨울 따뜻한 茶 한 잔이  떠 올려지는 그림들이니....

 

세한송, 이 그림은 제주도 [오설록]전시관에서  내가 만나 본 그림이다.

 아마도  소장은  태평양화학이 틀림없을터~~

그 그림을  녹차와 걸맞게 소장해 준 것이 고마울 따름, 꼭 적재적소에 와 있는 느낌에,

설록차와 세한송, 연이어 세한도까지 떠 올리게 하는....푸른 녹차밭 그 속에 자리잡은 [o'sulloc 오설록 뮤지엄]館

 

매화를 닮은 녹차꽃이 제주도 맵찬 바람속에 하이얗게 피어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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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클릭~` 크게 하신 후 글을 읽으시면 됩니다.

 

내게는  입수된지 오랜 추사 김정희님의 난그림이 한 점, 있는데...

보시는 분들은 이 그림이 혹시나 가짜가 아닐까 염려 않으셔도 된다.

왜냐면 믿을만한 데서 나온 영인본이기 때문이다.

잘모르지만 그의 간결한 붓 끝에서 김정희의 선비다운 교양과 인품을  나는 어렴풋이 느낄 수 있기에, 무시로 이 그림 앞에 서면 마음을 가다듬고 눈길로 붓 끝을 따라 허공에다 난을 쳐 본다.

 /이요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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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ulloc 오설록

설록차 뮤지엄 오설록 (064)794-5312. http://www.osulloc.co.kr/museum/mu_intro.jsp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무료 개관.


제주와 녹차의 인연은 추사 김정희 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추사가 이곳 제주에서 유배생활을 할 때, 차에 대한 그리움으로 힘들어하자 다승(茶僧) 초의선사가 봄마다 차를 보내주었다고 한다.
추사는 그 보답으로 글을 보냈으니 그 우정이 지금의 한라산 자락 푸른 차나무의 물결로 다시 태어난 것일 게다.
인근에는 추사가 머물렀던 적거지가 있다.
복원된 옛 초가와 함께 기념관이 있어서 추사의 호쾌한 글과 그림을 감상할 수 있으니 다향만리 제주 다원 여행의 덤인 셈이다.

 

 

아랫글은 조선후기 서화가 김정희(金正喜)편/펌글입니다.

 

[ 세한도(歲寒圖) (1844)]
이 그림은 김정희의 가장 대표적 작품이자, 조선 시대 문인화 중 최고의 작품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이 <세한도>에 대해 평가를 하는 것 조차 불경스러운 일로 간주될 정도로 신격화, 신비화 되어 있죠. 이는 제주도 유배 중에 그의 처연한 심경을 생생하게 그려냈다고 생각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歲寒然後知松柏之後凋也

날씨가 차가워진 후에야 송백의 푸름을 안다

〈세한도〉는 김정희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그가 59세 때인 1844년 제주도 유배 당시 지위와 권력을 잃어버렸는데도 사제간의 의리를 저버리지 않고 그를 찾아온 제자인 역관 이상적(李尙迪, 1804-1865)의 인품을 소나무와 잣나무에 비유하여 그려준 것이다.
가로로 긴 지면에 가로놓인 초가와 지조의 상징인 소나무와 잣나무를 매우 간략하게 그린 작품으로 그가 지향하는 문인화의 세계를 잘 보여준다.
갈필로 형태의 요점만을 간추린 듯 그려내어 한 치의 더함도 덜함도 용서치 않는 까슬까슬한 선비의 정신이 필선에 그대로 드러나 있다.
이 그림에는 김정희 자신이 추사체로 쓴 발문이 적혀 있어 그림의 격을 한층 높여주고 있다.
'날이 차가워진 다음에야 소나무 잣나무가 늦게 시듦을 안다'는 《논어》의 한 구절을 빌어 '세한도'라는 말을 쓰게 된 것이다.
세한도는 이상적의 제자였던 김병선이 소장하다 일제 강점기에 경성대학 교수이며 추사 김정희의 연구자였던 후지즈카를 따라 도쿄로 건너가게 됐다.
당시 고서화 수장가인 손재형이 이를 안타깝게 여겨 일본으로 건너가 신발이 헤어지고 무릎이 헐 정도로 찾아가 매달린 끝에 결국 다시 찾아왔다.
당시 후지즈카가 소장했던 김정희에 관한 그 밖의 수많은 자료들은 2차 세계대전 말기 미군의 폭격으로 대다수가 타버리고 말았으니 <세한도>는 구사일생으로 간신히 화를 피한 셈이다.

 

 

 

세 한 도 
                                                  

 


한때 초막에서 샘물 길어 차 달이노라
때는 동지섣달 긴긴 밤
차거운 달빛이 문풍지 뚫고
소나무 그림자 청한(靑寒)한 기운 일으키고
돌샘물 길어 차 마시던 추사(秋史)의 넋은
제주도 거센 바람되어 머물고
돌 여자 바람이 많아 삼다(三多)
거지 도둑 문이 없어 삼무(三無)
바람 홍수 가뭄이 심해 삼재(三災)의 땅
유배지 탐라에는 아직도 칼바람이 부는데
정한(情恨)이 많아 애틋한 제주에
청풍명월로 머물고 있나니
돌하르방으로 지켜보고 있나니

 

 

 윤효선(소암)

 

▼ 추사 김정희님 자세히 알기

http://ncolumn1.daum.net/dist/commentLogin?sid=02GYe&eid=0KmAm&skin=t02&color=yl&view_fldid=00aBQ

▲조선 후기의 서화가 김정희(金正喜)의 문인화 보기/펌글

 

 

아래 사진은 윗 내용과 무관하나 그저 좋아서 찍어 둔 것인데 .....훗 날 정원을

이런 모양새로 그리면서...어찌보면 강요배님의 세한도를 현대식으로 풀어 그리셨다면 나는 세한도를 현대식으로 이런  정원과 집은 어떨까 생각해봤다.

 

'허균'의 '누실명'도 본문은 옛글인 고로 그저 그리 닿아들진 않아도 현대어 풀이에서야  그제서야  썩..좋음을 알아 챈 무식한 나, /이제는 열광하는,

 

그런데... 그 게 풀이하는 개개인에 따라 그 느낌이 그 매력이 자꾸만 달라지는 것을.....

 

아무튼 '세한도'의 풍취를 인위적으로 흉내내본다면 하는....생각에서 완전히 사족같은 image를 첨부하는 무식쟁이 나임을 자처하노니~~~

 

그림은 아는 것 만큼 보인다지 않는가?

[세한도와 세한송]

강요배님의 현대식으로 풀어그린 그림보다야 그 윤기가 덜하다.

함부로 평을 말라는 [세한도이지만] 뱃길로도 멀...제주도 유배길,
아마도 제목(歲寒圖) 그대로 유배의 심정과 그리고 자신의 청렴결백한 심중의 그림이니 강요배님의 그림처럼 여유로움 같은 건 없을게다
그가 그리려는 것은 사물이 아니라...마음이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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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둔한 마음에  바늘끝 만큼이라도 닿은 '세한도'임에야  칼럼주인 상상에 맡겨야지 어쩌겠는가?

흐~`

 

죄송스런 / 이요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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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  모사찰, 좀 떨어진 경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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