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토리묵을 별로 좋아라하지 않는 나는 그저 사다먹는 그런 도토리묵맛에다가 양념맛이려니 생각해왔다. 그랬는데.... 청량산에 들렀을 때 일이다.
등산 조금하고 내려와서 배도 그다지 고프지 않았는데... 묵을 시켜놓으니 묵 색깔이 메밀묵같기도 하고..도토리묵 같기도 하였다.
그 맛은 얼마나 좋던지...
올해는 도토리 풍년이라한다. 옛말에 도토리 나무는 들판을 보고서 열매를 맺는다고 하였다.
들판이 황금들판이면 좀 덜 맺어도 되고 흉년이 들면 저가 미리 알고서 주렁주렁 매달고 서 있다는 제 1의 구황식물이었다 한다.
그만큼 도토리는 배고픈 서민들에게 아낌없이 열매를 내주었나보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올해는 큰 바람도 큰 비도 없어서 온 들판이 황금 들판이거든....참으로 알 수없는 노릇이다.
잠깐 버섯이야기를 비추고 가자면 버섯은 큰비 큰바람이 지나가야 포자번식이 용이로워 버섯풍년이 든단다.
벼농사가 흉년이 들어야 비로소 버섯이 풍작이란다. 고로 올해는 버섯이 흉작이다.
버섯이란늠은 시절을 딱딱 맞추었는데......ㅎ`ㅎ` 도토리 저만 이상한늠 되어버렸다.
청랑산에서 순수한 도토리맛에 입맛을 베려버린(?) 올 가을은 유난히도 산에서 배낭가득 걸머지고 내려오는 바지런한 사람들을 보곤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렸다. 나는 뭔가? 가짜음식 추방하고 진짜음식, 바른 먹거리를 찾아내고자 하던 나 아니던가?
지천에 널브러진 좋은 먹거리를 내싸두고도 이러고도 음식만들기를 좋아한다고? 하는 자책감에 시달렸다.
수유리 이모님을 연천 오봉사에 몇 번 모셔다 드린 계기를 인연으로 절집과 친해졌다.
누구 말마따나 녹색중독증이 있는 나는 깊은 산사의 녹음속에 파묻히면 몸과 마음이 늘 정화되는 것 같아 종교를 떠나서 자주 찾아가는 친분이
생겼는데...울창한 산의 숲만 바라보아도 절로 몸과 마음이 명쾌해지곤 하였다.
어느날 남편과 나는 도토리를 줏으러 갔다가 차마 깊은 산은 배암이 무서워서 못 가고 절집 주변에서 도토리를 아주 쬐끔 줏었다.
아주 난생처음 해보는 짓꺼린데...숲이 우거져 산길은 형태조차 없고 가시덤불을 피하느라 험한 비탈을 주르르르 미끄러지기도 했다.
미끄러지는 순간에도 그깟 도토리가 눈에 들어왔다. 어쩜! 그런 순간에도 오로지 생각은 단 하나!! 도토리 뿐이었는지~~
무릎이 아프도록 까졌지만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인생에 있어 어떤 목적이 뚜렸하다면 다른 건 하나도 꺼리낄 게 없구나!!
설사 어떤 난관이 닥쳐도 한 번 세운 목표는 흔들림없으니, 다른 건 다 핑계일 뿐~ 별 문제 될 게 없다는....
목적의식이 뚜렷한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앞머리 희끗한 나이 접어들어서야 나름 신통방통한 생각을!!! 하며 까진 무릎, 손바닥을 보며 피시식 웃었다.
이야기 순서가 바뀌었는데....어느날, 돌아오는 길에 도토리를 무겁도록 줏어 등에 진 아저씨 한 분을 만나 전철역까지 태워드렸다.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갔는데...도토리이야기였다. 도토리는 두 번에 걸쳐서 떨어진단다.
처음 떨어지는 도토리는 9월중순께 부터~ 그리고 한 20일 후, 두 번째 상수리는 시월 중순께 나눠서 떨어지는데...
나중에 떨어지는 도토리가 동글동글 통실하니 맛도 좋다한다. 그리고 도토리와 상수리로 나뉜다 한다.
상수리과에는 온대와 열대에 걸쳐서 200~250종이 있는데,,, 상수리는 도토리의 한 종류일 따름이란다
갈참나무, 졸참나무, 신갈나무, 떡갈나무 등에 잡종인 떡신갈나무, 떡속소리나무, 물참나무, 갈졸참나무, 떡신졸참나무 등등
그저 우리는 참나무또는 도토리나무라고만 알고 있었는데....하 많은 참나무를 가려 분별하기란 전문가만 구분할 수 있을 듯..
그리고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도 덤으로 하나 더 내려놓고 가셨다.
다른 게 아니라....도토리를 먹을만큼만 오늘 밤안으로 껍질을 까서 맷돌믹서에 갈아서 물에 담가 놓으면 뻘건 물을 몇 번 갈아준 다음
가라앉은 가루로 묵을 쑤게되면 약간 떫떠름하지만 아주 맛난 도토리 묵이 된단다.
<오잉? 말리고 가루내고 하는 일이 내겐 벅차서 감히 상상도 안되던 일이....이렇게 늘 도토리만 줏으러 다니는 산꾼 아저씨에게
한 수를 쉽게 배웠으니 ...이 아니 좋은 도토리묵 레서피인감?>
도토리는 인체의 모든 나쁜 중금속을 배출시킨다 하지 않았던가?
알게 모르게 도시생활에 찌들어서 병명없이 그저 앓고 있는 사람들에겐 참으로 도토리묵은 명약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당장 줏어와서 해보고 싶을 정도였다. 실은 그래서 그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시도때도 없이 줏으러 올라갔던 것이다.
그래도 첫 눈에 보이는 건 있어가지고....아주 조금만 줏어서 왔다.
그런데,
도토리는 뭐고 상수리는 뭘까? 참나무과가 수도 없이 많다는 건 알았지만....밤아니면 다 도토린 줄 아는 내게는 참으로 난감한 정보였다.
요즘들어 절집에서 고추를 뽑아놨으니 고추를 따가라는 말에 놀이 삼아 간 어느날 <탁....타다닥...>하는 소리에 어디서 총을 쏘는지 알고 놀랐는데
알고보니 산이 울리도록 참나무를 후들겨 패는 것이다.
견디기 어려운 놀란 나무는 후두둑 품고있는 알을 떨어뜨리고, 그 뿐이랴 곁에 섰는 나무들 마저 놀라서 품었던 도토리 알들은 내어놓는 소리가 빗소리로 들린다.
나무도 감정이 있다는데....예쁘다고 쓰다듬으면 물 올리는 소리가 리드미컬하면서 더 청명하게 들린다는데...(청진기를 갖다대면)
도토리를 건네는 나무에게 고맙다는 커녕, 큰 몽둥이로 후들겨 패고 다니니.....
다람쥐 먹게 놔두지..그 걸 갖고오냐는 이야기는 조족지혈이 되었다.
자연을 아낄줄 아는 사람이 됩시다.
가을 들판을 바라보고 흉년이 들면 도토리를 더 열심히 맺는다는 구황식물인 참나무에게 우리는 무엇을 베풀었냐고 나에게 되물어봅시다.
도토리 말리지 않고 울궈서 바로 묵쑤기
도토리를 두배나 줏었는데....썩었다. 한 대접도 채 못되는 양이다.
내버리고 나니 이 정도밖에 없다. 물에 한 일주일 정도 불렸나보다. 붉은 물이 우러나왔다.
먼저 블렌더에 불린 도토리를 갈고는 2차로 대충 갈린 도토리를 믹서에다가 물과 함께 갈았다.
웃물을 따뤄내고 끓여야는데...그냥 조금 따루다가 앙금이 일어나갈래 그대로 끓였다. 그랬더니 묵이 좀 질다.
하루쯤 시간을 가지고 완전 가라앉힌 앙금만 끓이면 아주 탱글한 묵이 되겠다. 떫은 맛이 더 좋다.
tip/ 소금을 조금 집어넣으면 전분이 잘 가라앉는다고 한다.
올록볼록한 칼로 썰었다. 묵은 잘 미끄러지기에 나무 젓가락 사용이 용이하며 묵에 이런 무늬가 있으면
잘 집어들 수가 있기 때문이다. 묵무칠 야채는 그냥 있는재료만 사용했다. 파프리카, 피망, 미나리,
묵이 좀 질고 떫다.
물러보여도 쇠젓가락으로도 거뜬하다.
오늘은 묵은지를 꺼냈다.
지난 김장 갈치김치가 남았다. (갈치가 보임)
쫑쫑 썰어서 참기름 깨, 파 마늘 설탕 약간 넣어서 조물조물!!
묵은지를 도토리묵과 함께 곁들였다. 내가 처음 만들어 본 진짜배기 도토리묵이다!!
<도토리, 말리지않고 바로 묵쑤기>
한대접의 도토리가 4대접의 묵으로 탄생했다.
물을 좀 따뤄냈다면 3배가 딱 맞다.
tip/ 울궈내기까지 한 7~10일 걸렸나보다.
**도토리의 놀라운 능력을 알아냈다. 도토리는 물을 정수하는 능력이 있단다.
도토리는 물에 아무리 넣어두어도 물이 변하지 않는단다.
도토리를 줏어오는대로 물에 넣어도 그 물은 썩거나 변하진 않는데
다만 떫은 붉은물이 나오기 때문에 자주 갈아주는 게 좋을 뿐이다.
글/이요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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