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마줄기를 두 단 사와서는 놀망쉴망 껍질을 깝니다.
언제 저 걸 다까나 싶어도 시나브로 다 까고 맙니다. 문제는 허리가 아파서 그렇지~~
남편은 그 걸 보고 왜 까냐고 퉁박입니다.
까주겠다는 말에....설레설레 손사레 칩니다. 내 손구락에도 일케 물이 드는데...집에 있는 남편이라도 손가락에 풀물이
든다는 건 못봐 줄 노릇입니다.
제 마음이 평온한가 봅니다.
마음이 조급하고 불안하면 이렇게 여여하게 고구마줄기를 까고 앉았을지 생각해봅니다.
제겐 사치스런 망중한입니다.
아무런 잡념도 없이 그저 고구마줄기를 깝니다.
손가락에 풀물이 든들 말든....아무시랑도 않습니다.
이 나이 들어보니 사람의 손톱 밑에 끼인 때에도 종류가 있다는 걸압니다.
자식들을 위해서 농사일로 자연히 거칠어지고 손톱 밑엔 어쩔 수 없는 흔적들...
도시에서도 직업이 어쩔 수 없어 생기는 흔적들.....주부라서 도리없이 생기는 흔적들....
행주 빨고 빨래 빨고 걸레질 몇 번에 걸레 빨고 나면 한 이틀이면 옅어질 것을....
고구마줄기는 잎이 붙은데서 그 가운데 오목한 곳을 가르면 조로록 잘 찢어집니다. 두 번만 벗겨내면 됩니다.
인생살이도 그러한 거 같습니다. 순리대로, 주어진 복대로 사노라면 술술 잘 풀리는 것을....
역으로 거스르자니 힘이듭니다.
저희 집 아이들도 그렇습니다. 나이들이 꽉 차서 단지 그 이유로 부모 된 도리로 애면글면해봤자 아무 소용도 없이
들들~ 애먼 속만 볶깨는 것을....
맨 위에 맏이인 딸이 졸업과 동시에 결혼을 하게 되면... 곧이어 후속타 장남, 보내면 되고....
막혔던 웃 논에 물꼬가 터지듯 저절로 해결되는 것 같습니다.
같이 까주겠다는 남편을 극구 말렸더니 감동했는지, 바깥에 나갔다오면서 구운 옥수수 두 개를 사왔습니다.
<난 찐 옥수수를 더 좋아하는데....>이 말이 목구녕을 넘어오려다가 걸립니다.
근데 먹어보니 또 괜찮습니다. 찬스를 놓친 자빠진 말도 이럴 땐 미덕이 되어주기도 하군요.
세상사엔 뭐든 공식이 없나봅니다. 언젠가는 다 해결 날 일이....
고구마 순 까 듯..언제 다 까나 싶어도 묵묵히 까다보면 끝이 보인다는 거...
미리 앞 서 달려 나가서 고민할 필요는 없는 거 같습니다.
고구마 줄기 하나를 까면서도 오만가지 사유에 빠졌다가 꿈에서 깨 듯 정신을 차립니다.
<자...이젠 어떻게 맛있게 만들지? >
글/이요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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