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양서석지의 입구

 석지 영양군 입암면 연당리에 소재하고 있으며,  조선 광해군(光海君) 5년(1613)에 석문 정영방(石門 鄭榮邦) 선생이 경정(敬亭) 앞에 만든

조선시대 민가(民家)의 대표적인 연못[池塘]이다.


선생은 서쪽의 구릉 하에 흰 돌이 서있는 곳에 못을 파고 서석지라 이름을 짓고, 그 위에 정자를 세웠다.

좌우로 주일재(主一齋)와 운서헌(雲棲軒)을 두고 경정(敬亭)이라 일컫었다.

 

 

보호수/ 400년된 은행나무

 

정자 앞에 서 있는 은행나무는 경관을 더욱 좋게 하며 경정의 역사(현재 수령이 400살이 넘었다)를 말하여 준다.
은행나무 등걸에 핀 곰팡이와 연이은 기와담장의 푸른 이끼와 곰팡이가. 말없이 세월을 대변해주는 것 같아보였다.

국가지정문화재 중요민속자료 제108호인 서석지는 우리나라 조경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서 전남 완도에 있는 '부용원' 전남 담양에 있는 '소쇄원'과 더불어 한국의 대표적인 3대 정원으로 손꼽히고 있다.

 들어서자 마주 보이는 연지에 감탄을 했다. '자연과 인간의 합일사상'을 토대로 만든 조선시대  민가 연못의 대표적인 정원이다.

 

연당리 마을에는 태화당고택을 비롯하여 많은 전통가옥이 밀집해 있다.

 

 연꽃은 이미스러진 계절이지만 연밥이 익어가고.....담쟁이가 붉게 물들어간다.


 도드라진 정원에는 매화 국화소나무 대나무를 심어 사계절을 나타내었다고 한다.

 60여개 의 서석은 물에 잠기기도 드러나기도 한다.

서석은 자연스런 돌계단이 되어주어서 연못으로 내려가 연꽃을 직접 즐길수도 있게 되어있었다.

 

 

 서하헌/보이는 쪽마루 말고도 안쪽이 마루방이었다.

 

 

 사우단/지금도 소나무 매화 대나무 국화가 어우러진 화단이다.

 경정에 올라서서~~

 경정에 올라서니 흔행나무와 서석지가 한 눈에 내려다보인다.

 

 안뜰 뒤로 보이는 담배건조장이 눈에 띄었다.

지금은 사라진 담배건조장이 뒷모습이지만 온전히 제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듯 보였다.

 이대로도 그림이 되는 듯 한 허물어져가는 건조장과 한옥 담장의 조화....

건조장의 뒷모습도 아름다워 몇 컷 더 찍어보았는데....더보기로, click~~

 

 

더보기

 

 내문으로 들어가니 디딜방아가 있고,

 

 건조장 모습이...

흙벽의 자연스러움을 그림으로 옮겨보고 싶어 사진을 더 찍었는지도 모른다.

 보랏빛 나팔꽃이 담장을 타고 피어올랐다.

 

 

 

 

 

중요민속자료 제108호 서석지(英陽 瑞石池) 


서석지는 영양군 입암면 연당리에 소재하고 있으며,  조선 광해군(光海君) 5년(1613)에 석문 정영방(石門 鄭榮邦) 선생이 경정(敬亭) 앞에 만든 조선시대
민가(民家)의 대표적인 연못[池塘]이다.
선생은 1577(선조10年)에 예천 용궁에서 출생하여 우복 정경세(愚伏 鄭經世) 선생이 우산(愚山)에서 제자들을 가르칠 때 수업하여 경학(經學)의 지결(旨訣)을
배웠다. 선생은 성리학과 시(詩)에 능하였고, 1605년(선조38年) 진사(進士)에 합격하였다
그러나 1608년 이후 광해군 때 세상이 어지러워지자 이곳에서 학문 연구로 일생을 마쳤다.
그 후 1627년에 병자호란이 일어나고 세상이 점점 더 어지러워졌다. 1636년(仁祖14年) 병자호란이 끝나자 선생은 넷째아들인 임천 제(臨川 悌)를 데리고
자양산(紫陽山) 남쪽 기슭인 이곳(진보의 임천, 현재 입암면 연당 1동)에서 살았다 한다.

선생은 서쪽의 구릉 하에 흰 돌이 서있는 곳에 못을 파고 서석지라 이름을 짓고, 그 위에 정자를 세웠다.
좌우로 주일재(主一齋)와 운서헌(雲棲軒)을 두고 경정(敬亭)이라 일컫었다. 이 정자는 자손들이 여러 차례 중수하였으며 건물이 방박하고 사방 부연을 달고
사면에는 난간을 돌렸으며 좌편에 서실 두 칸을 별도로 개축 하였으니 주일제라 말한다.
못 가운데는 부용화(연화)가 있어 여름에는 정자위로 향기를 풍기며 꽃을 구경할 만하다.
그리고 정자 앞에 서 있는 은행나무는 경관을 더욱 좋게 하며 경정의 역사(현재 수령이 400살이 넘었다)를 말하여 준다.
마루 위에는 정기(亭記), 중수기(重修記) 경정운(敬亭韻) 등 당시의 대명절의로 이름난 명사들의 시가 이 걸려 있다.
이 마을에는 선생의 자손들이 세거하고 있으며 1979년 12월 28일 중요민속자료 108호로 지정되었다.


또한 이 서석지는 1982년 2월 20일 서울 산림청 임업시험장 강당에서『한국정원문화연구회』주체로 열린『서석지 학술연구발표회』에서 문화재 전문위원 민경현(閔庚玹)씨가 이 정원(庭苑)이 갖는 독특한 양식과 조경술(造景術)등을 분석 평가하여 국내외에 널리 소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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